당신의 시간은 무탈합니까?! (시간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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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프루스트의 장편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913-1927)는 주인공의 기억에 새겨진 시간의 인상과 심리의 반영이다. 소설의 시간은 화자의 막연한 의식에 자리하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시간이 아니라, 역사적인 사건과 결부한 명확하고 구체적인 시간이다. 소설은 시간을 되찾음으로써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우리는 소설의 주인공처럼 예민하고 치열하게 시간과 대면하지 않는다. 쫓기는 사람처럼 살아가는 현대인은 시간의 본질과 의미를 반추할 여력이 없다. 어제가 오늘 같은 주 5일의 노동일과 이틀의 휴일로 쪼개진 1주일은 52번 되풀이됨으로써 1년을 이룬다.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시간은 흐르고 흘러 소년은 청년이 되고, 청년은 노년과 만난다.

시간의 본향인 영국 그리니치에 살면서 전문 작가로 활동하는 리즈 에버스의 <시간 인문학>에는 ‘가볍게 읽는’이란 수식어가 딸려 있다. 지은이의 말처럼 이 책은 인간의 삶에 깊이 개입하는 시간을 여러 각도에서 무겁지 않게 조명한다. 표지에 적힌 ‘우주 탄생에서 시간여행까지 인류와 함께한 시간에 관한 모든 것’이 지은이의 지향을 설명한다.

시간과 계절

우리가 인식하는 시간의 가장 작은 단위는 초(秒)다. 60초가 모여 1분이 되고, 60분이 모여 1시간이 된다. 낮 12시간과 밤 12시간의 24시간이 하루가 되고, 하루가 30번 모이면 1개월이 되며, 12달이 모여 1년이 된다. 여기서는 보편적으로 쓰이는 10진법이 아니라, 60진법과 12진법이 적용된다. 지은이의 생각을 따라가 보자.

“60은 쓸모 있는 약수가 많은 수로 12개의 인수가 있다. 60은 1부터 6까지 모든 수로 나눌 수 있는 수들 가운데 가장 작은 수다. 그러기에 60은 중대한 수다. 동서양에서 길이와 단위에서 쓰이는 12진법은 시간을 나타내는 방법으로 아직도 유용하다. 12진법은 고대 이집트, 수메르, 인도와 중국 등 초기 문명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78)

영국과 미국 같은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 세계 각국이 사용하는 미터법의 기준은 10과 10의 배수를 사용하는 10진법이다. 두 가지 예외가 있다면 그것은 시간과 달이다. 오늘날 통용되는 12달의 이름은 고대 로마인에서 유래한 것으로 기원전 8세기에 발생했다고 한다. 그런데 12달로 이루어진 1년은 지역마다 달리 몇 개의 계절로 나뉜다.

“인도에는 혹서기, 우기, 가을, 겨울, 늦은 겨울, 봄의 여섯 계절이 있다. 아프리카 대다수 지역에는 건기와 우기 두 계절밖에 없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계절을 홍수기, 겨울, 여름의 세 계절로 나누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는 봄과 여름, 겨울만 있었을 뿐 가을은 따로 없었다. 아이슬란드와 스칸디나비아에 거주했던 게르만족은 로마인과 접촉하면서 비로소 봄과 가을이라는 단어와 개념을 도입했다고 전한다.” (51-52)

시계의 진화

시간을 현재와 과거, 미래로 인식하는 지구의 유일종 인간은 여러 형태의 시간 계측기구를 만들었다. 최초의 해시계와 물시계는 기원전 1,500년 무렵 고대 이집트와 바빌로니아의 천문학자들이 사용했다. 자연철학의 나라 고대 그리스는 법정에서 원고와 피고에게 할당된 시간의 양과 매춘부가 고객과 함께한 시간을 측정하는 데 물시계를 썼다고 한다.

요즘도 찜질방이나 사우나에서 요긴하게 쓰이는 모래시계는 8세기에 유럽에서 발명되었다. 기온변화에 민감하지 않고, 요동치는 장소에서도 유용했기에 모래시계는 해양의 범선에서 18세기까지도 널리 사용되었다. 시계의 진화에서 분수령은 추를 사용한 기계시계였다. 13-14세기에 유럽에 등장한 기계시계는 자본주의 발전을 강력하게 추동한다.

1,430년 무렵 발명된 태엽으로 시계는 더 높이 진화한다. 20세기 초에는 손목시계도 출현했는데, 이것은 1차 세계대전 당시 장교들의 인기 상품이었다고 한다.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낼 필요 없이 시간을 바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3,000만 년에 1초의 오차가 있다는 원자시계가 등장하여 GPS 주파수 지정에 쓰이고 있다.

지은이는 스위스가 시계 강국이 된 까닭을 역사적인 근거로 설명한다.

“프랑스인들인 위그노는 장 칼뱅의 추종자들로 16-17세기 프로테스탄트 신도들이었다. 가톨릭교회에 비판적이었던 그들은 프랑스에서 박해당했는데, 1,572년 성 바르톨로뮤의 대학살 당시 파리에서 3만의 위그노가 살해되었다. 50만 위그노가 프로테스탄트 국가들로 이주했는데, 일부가 스위스에 정착하여 시계 산업의 중추가 되었다.” (104-105)

속도와 상대성

고속으로 주행했다가 과태료 통지서 받은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듯하다. 속도광이 아니더라도 고속도로처럼 도로 사정이 좋은 곳에서는 속도를 올려보고 싶은 마음은 인지상정 아닐까. 지은이는 나라별로 고속도로의 법정 최고속도를 자상하게 알려준다.

“이탈리아는 150킬로미터, 폴란드와 불가리아, 아랍에미리트는 140킬로미터다. 도이칠란트의 아우토반은 속도제한이 없지만, 시속 130킬로미터를 권장하고 있다.” (188)

1,888년에 카를 벤츠가 최초로 출시한 자동차의 최고속도는 시속 18킬로미터였다. 마차의 속도보다 고작 3배 정도 빨랐던 셈이다. 현존하는 슈퍼카 가운데 가장 빠른 차는 시속 431킬로미터로 달릴 수 있는 부가티라고 한다. 속도가 얼마나 빨라지고 있는지 웅변하는 자동차다. 그런데 지구의 자전 속도는 시속 1,609킬로미터다. 참고하시라!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일명 <프린키피아>로 명성을 날린 아이작 뉴턴은 시간을 절대적 시간과 상대적 시간으로 구분했다. 그에 따르면, 절대적 시간은 인간이 없어도 존재하며, 독립적이고 일정한 속도로 우주로 나아간다고 한다. 고전 물리학의 대가 뉴턴을 대체한 현대 물리학의 아버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을 간명하게 규정한다.

“어떤 남자가 예쁜 여자와 함께 한 시간 정도 앉아 있다면, 그 시간은 일 분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그를 뜨거운 화덕 위에 몇 분 앉혀 놓으면, 어떤 시간보다 길게 느껴질 것이다. 이것이 상대성이다.” (231)

의상대사가 <화엄경> 80권을 7언 30행 210자로 압축한 <법성게>에 시간의 상대성에 관한 기막힌 구절이 나온다. ‘무량원겁즉일념 無量遠劫即一念 일념즉시무량겁 一念即是無量劫’이 그것이다.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이 한순간이오, 한순간이 헤아릴 수 없이 긴 시간이라는 뜻이다. 이런 우주적인 상대성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깨달은 자들의 경지란?!

글을 마치면서

요즘에는 시간을 아주 미세하게 쪼개는 일도 다반사인 모양이다. 1초의 1,000분의 1인 밀리초, 100만분의 1초인 마이크로초, 10억분의 1초인 나노초, 더욱이 100경분의 1초인 아토초까지! 인간의 일반적인 이지(理智)로는 상상할 수 없이 쪼개진 시간 단위를 보면서 절로 몸이 위축됨은 나만의 일인지 궁금하다.

21세기 현대를 살면서 우리가 날마다 마주하는 위기의 징후는 다양하다. 캘리포니아대학 지리학과의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인류문명의 종말이 30년 남았다고 일갈한다. 그가 말하는 종말의 네 가지 원인은 핵무기와 기후위기, 불평등과 자원고갈이다. 그의 진단이 얼마나 정확할지는 모르지만, 종말을 가리키는 시계는 또박또박 나아가고 있다.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불평등이 엄존하는 지구촌이지만,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유일한 것은 시간이다. 하루 24시간은 부자든 빈자든 예외 없이 공유한다. 부자가 누리는 특권은 물질적 풍요가 아니라, 돈을 이용하여 타자의 시간을 구매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유일한 교훈은 ‘그날을 포착하라 carpe diem!’ 아닐까.

<시간 인문학>, 리즈 에버스 지음, 오숙은 옮김, 옐로스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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