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개미’와 은유

[주식시장은 생태계], [21세기 한국주식시장은 19세기 조선영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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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탈레반!’ 단 한 번도 주식을 사본 적이 없고 주식은 위험한 도박이라고 생각해 왔던 나에게 아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도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에 관심을 갖지 않았던 나의 사고방식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시대의 급격한 변화를 읽지 못하고 ‘공자 왈 맹자 왈’ 도덕성만을 강조하면서 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한 조선의 사대부들에 비유한 명명일 것이다.

사실 주식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수치 변화에 둔감해 주식시장이라는 복잡계를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주식시장이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핵심 축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지만 여전히 나는 주식 투장에 뛰어들 생각이 없다. 그래서 주식시장의 동향이나 주가지표에 관한 기사를 아예 읽지 않는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주식 관련 기사들의 제목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동학개미’와 ‘동학개미운동’이라는 용어가 나의 눈길을 끌었다.

  • 증시 달구는 ‘동학개미운동’ 삼성전자 파는 외국인 이길까
  • 한국금융 후진성 공매도로 인한 피해들…동학개미의 운명은 망한다??

‘개미’와 ‘공룡’의 전쟁: [주식시장은 생태계]

직감적으로 ‘동학개미’가 대충 “외국인 투자자들의 행태에 반발하는 한국인 투자자들” 정도의 의미를 지닐 것이라 어렴풋이 짐작했다. 어떻게 이러한 의미를 지니게 되는지 구체적으로 밝혀보고 싶었다. ‘동학개미’에서 ‘개미’는 ‘개미투자자들’의 약칭이며, 이것은 ‘부분(‘개미’)이 전체(‘개미투자자’)를 대신함’이라는 개념적 환유의 사례이다. ‘개미투자자’는 개인 자격으로 주식시장에서 주식을 사고파는 참여자들을 은유적으로 지칭하는 표현이다. 개인 투자자들에 상대적인 참여자로서, 투자 법인이나 은행, 보험 회사, 증권 회사 등의 기관 투자자들은 은유적으로 ‘공룡’이라 불린다. 이러한 비유는 주식 시장을 묘사하는 수많은 글이나 일상의 대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아래 예문 참조).

  • 금융 관련 규제를 완화해 시장을 불려도 외국 투기 자본이 먹튀를 하고 나면 결국 개미 투자자들만 피해를 입는다.
  • 게임스톱, 개미 따라한 공룡 있었다…7800억 원 수익 누구?: 게임스톱 사태의 진정한 승자는 공룡이지만 개미의 전략을 택한 공룡이었다고 WSJ은 전했다.
  • 미국의 개미(개인투자자)공룡(기관투자자)의 전쟁인 게임스톱(게임스탑) 사태가 영화화된다고……MGM은 개미공룡을 물리친 흥분이 가라앉기 전에 되도록 빨리 영화를 출시한다는 목표아래……개미공룡을 이긴 것은 마치 성경에서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것과 비슷한 소재여서 흥행성이 충분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 사조산업 ‘개미들의 반란’은 결국 좌절됐다. 소액주주들은 감사위원 투입을 시도했지만 표 결집력에서 사측에 밀리면서 제안한 안건 통과에 실패했다.
  • 이날 비디오게임 소매업체 ‘게임스탑’의 주가하락에 베팅했던 헤지펀드들이 개인투자자(개미)들과의 전쟁에서 백기투항 했다. 게임스탑은 이날 하루에만 135% 폭등했고 레딧의 주식정보페이지인 ‘월스트리트베츠’는 게임스탑의 폭등을 주도했다. 레딧에서는 개미와 월가 공룡의 전쟁에서 개미가 이겼다는 축포가 넘쳐난다.

 

이러한 표현은 ‘생태계’ 개념을 통해 ‘주식시장’ 개념을 은유적으로 이해하는 사고방식이 한국인들의 마음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사고과정에서 ‘주식시장’은 이해하고자 하는 목표의 ‘개념영역(프레임)’이고, ‘생태계’는 이 목표 개념을 이해하는 데 동원되는 근원의 개념영역이다. ‘생태계’에는 수많은 종(種)들이 있으며, 모든 종은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경쟁을 한다. 어떤 종은 적응하여 살아남고 어떤 종은 적응하지 못하여 사라진다. 모든 종의 개체들은 생존에 필수적인 ‘먹이 확보’를 위해 다른 종들과 종간(種間) 전쟁을 하고, 동일한 종의 다른 개체들과도 종내(種內) 경쟁을 한다. 각종의 물리적 크기는 다양하며 개체 수도 다양하다. 예를 들어, 개미의 물리적 크기는 다른 동물에 비하면 작은 편이고, 몸집이 큰 다른 종의 개체와의 일대 일 대결에서는 패배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수십만의 개미들이 몸집이 큰 개체를 동시에 떼거리로 달려들어 물어뜯어 죽이기도 한다. 공룡은 지구상에 존재한 다른 어떤 종의 생명체보다도 거대한 몸집으로 생태계를 지배했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멸종동물이다.

한편 ‘주식시장’의 영역에는 주식과 투자자라는 역할이 있다. 투자자는 크게 개인투자자와 기관투자자의 두 부류로 나눈다. 각 기관의 투자 규모는 개인 투자자의 투자 규모에 비교할 수 없이 크지만, 투자 기관들의 총수는 개인 투자자들의 총수보다 훨씬 적다. 주식은 우선주, 보통주, 저성장주, 대형우량주, 고성장주 등 분류 기준에 따라 다양한 종류가 있다. 투자자들은 지속적이며 안정적인 수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종목의 주식―이른바 우량주―을 적시에 구매하고 적시에 판매하여 수익을 최대화하고 손실을 최소화하려고 시도한다. 대개는 주식시장에의 정보 접근성이 더 뛰어나고 가용 금액이 더 많은 기관투자자들이 개인투자자들에 비해 수익을 내는 경향이 있다. 드물게는 수많은 개인투자자들이 연합하여 기관투자자들보다 더 많은 수익을 내기도 한다.

조금은 더 구체적인 개념(근원영역)인 ‘생태계’를 통해 더 추상적이고 복잡한 개념(목표영역)인 ‘주식시장’을 이해하는 사고과정―즉 [주식시장은 생태계] 은유―은 두 영역 사이에 존재하는 일련의 하위대응으로 구성된다. 구체적으로 개미는 개인 투자자에, 공룡은 기관 투자자에, 먹이 확보는 수익 창출에 대응한다. 또한 개미 대 공룡의 대결은 개인 투자자들과 기관 투자자들의 경쟁에 해당한다. (물론 공룡이 멸종했기에 실재하는 세계에서 개미와 공룡의 다툼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흔히 ‘몸집이 큰 생명체’를 ‘공룡’에 비유한다. 이렇게 재구성한 세계에서는 개미 대 공룡의 대결이 가능하다.) 일대 일 대결에서는 개미가 공룡을 이길 수 없지만 수억 마리 개미들이 연합하면 어떤 거대한 생물도 물어뜯어 죽일 수 있다는 것은, 따로따로 투자할 때는 개인 투자자들이 손실을 보고 기관 투자자들이 수익을 내지만 연합하여 투자하면 개인 투자자들이 기관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안겨줄 수 있다는 것에 해당한다. 이 [주식시장은 생태계] 은유의 일련의 하위대응은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생태계(근원영역)   주식시장(목표영역)
·개미   ·개인투자자
·공룡   ·기관투자자
·먹이 확보   ·수익 창출
·종간(種間) 전쟁   ·투자자 간 경쟁
·개미는 물리적 크기는 작으나, 수억 마리의 개미들이 연합하면 어떤 거대한 생물도 물어뜯어 죽일 수 있다.   ·각 개인투자자의 투자 금액은 작지만, 연합하여 엄청난 금액을 특정 종목에 투자하면 기관 투자자를 이길 수 있다.
·공룡은 지구상에 존재했던 다른 어떤 동물보다도 몸집이 큰 동물이었지만 지금은 멸종했다.   ·기관투자자는 개인 투자자보다 더 많은 자본을 보유하고 있지만, 총수가 적어서 개인 투자자 연합에게 손실을 볼 수 있다.
[주식시장은 생태계] 은유의 하위대응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화자들 중에서 ‘개미(투자자)’ 앞에 ‘동학’이 덧붙은 신조어 ‘동학개미’가 개미의 한 부류를 가리킨다고 이해하는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은유적으로 이 신조어는 코로나19가 발생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2020년 3월 한 달 동안 “보유한 주식을 대규모로 팔아서 한국 주식시장의 급락세를 지속적으로 유발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행태에 맞서 대규모 매수세를 이어가며 주식시장의 안정을 지켜낸 한국인 개인 투자자들”을 가리키고, ‘동학개미운동’은 “한국인 개인 투자자들의 그러한 매수 행태”를 가리킨다.

동학개미(운동): [21세기 한국주식시장은 19세기 조선]

그러면 어떻게 해서 한국인들은 ‘동학개미’의 이 은유적 의미를 별다른 인지적 노력 없이 거의 무의식적으로 이해하는가? 바로 이 신조어가 우리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개념적 은유 [21세기 한국주식시장은 19세기 조선영토]에서 언어적으로 발현된 표현이라는 사실 덕택이다. 사실 이 지구상의 어떤 영토이든 거대한 생태계의 일부이며, 우리 선조들이 살았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한반도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21세기 한국주식시장은 19세기 조선영토] 은유는 앞에서 살펴본 [주식시장은 생태계] 은유와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

‘동학개미(운동)’이란 신조어를 들을 때 한국인들의 마음속에서는 자연스럽게 ‘동학농민운동’프레임과 ‘은유적인 개미들(개인 투자자들)’이 활동하는 ‘생태계(주식시장)’ 프레임이 떠오른다. ‘동학농민운동’ 프레임은 조선 조정(관), 조선 영토(한반도), 동학농민군, 외세(일본, 러시아, 청나라) 등의 역할과 이 역할들 사이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사건들에 대한 영상과 지식으로 구성된다. ‘주식시장’ 프레임은 투자자, 투자 금액, 주식, 투자 규칙 등의 역할과 이 역할들 사이에 일어난 사건들에 대한 영상과 지식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이 두 프레임의 요소들 사이에나 사건들 사이에 일련의 대응이 일어나게 된다. 예컨대 개인투자자(은유적 개미)들은 동학농민군들에, 한국투자기관(은유적 공룡)은 조선 조정에, 외국인 투자자들은 조선을 침략한 외세인 일본이나 청나라, 러시아에, 한국주식시장(의 우량주)은 침략당하는 조선(의 영토)에 대응한다. 그리고 외국인 투자자들의 한국 주식시장 교란에 대처하기 위한 개인 투자자들의 집단적인 매수는 반외세 저항운동에 해당한다. 이러한 일련의 대응은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9세기 조선영토(근원영역)   21세기 한국주식시장(목표영역)
·동학농민군   ·개미(개인투자자)
·조선의 조정(관)   ·공룡(한국투자기관)
·외세(일본, 러시아 등)   ·외국인 투자자
·조선(영토)   ·한국주식시장(우량주)
·동학농민군이 조정과 관의 부정부패와 억압에 저항한다,   ·개인 투자자들이 연합해 손해를 안긴 기관 투자자에게 저항한다.
·조정이 외세(일본군)와 연합해 동학농민군을 물리치고 결국엔 외세가 조선영토를 차지한다.   ·한국투자기관이 외국인 투자자와 연합해 주식시장을 교란하고 많은 이익을 차지하고, 결국엔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주식시장을 지배한다.
·동학농민군이 반외세 반봉건 세력과의 전쟁에서 결국 패배했지만, 동학농민군이 승리한 전투도 있다.   ·개인 투자자들의 연합이 기관 투자자들과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손해를 안기기도 한다.

 

[21세기 한국주식시장은 19세기 조선영토] 은유의 하위대응

 

‘동학개미’는 무엇을 부각하는가?

[21세기 한국주식시장은 19세기 조선] 은유의 언어적 발현인 신조어 ‘동학개미(운동)’는 한국주식시장의 실재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이 신조어는 은유적 ‘개미(개인 투자자)’들의 집단적인 구매 행위가 애국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실재와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다. ‘개미들’의 행위는 물론 부분적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과도하게 매수하여 주식시장을 교란하는 행태에 저항하여 한국주식시장을 안정화하고 외국인 주주들의 지배력으로부터 한국의 우량기업을 지키기 위한 애국적인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동학개미’는 바로 그들의 구매 동기가 이 애국적 의도에 있다는 사실을 부각한다. 하지만 이것이 그들이 연합하여 주식을 구매한 동기의 전부는 아니며, 더 중요한 동기는 근본적으로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수익을 내고자 하는 주식시장의 본질(‘사익 추구’)에 있지 않을까.

 

낮에는 영어 교사, 밤에는 언어학자로 살아온 두 얼굴의 사나이. ‘동고송’의 전신인 '고전을 공부하는 교사모임'의 창립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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