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호(보스턴칼리지 연극과 무용교수)
고국을 떠나 오랜 외국생활을 하다보면 “여기에도 이런 곳이 있어?”하고 놀랄 때가 종종 있다. 나의 무지 때문이긴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는 순간엔 눈앞의 기이하면서도 친숙한 풍경이 좀체 믿기지 않거니와 받아들이기가 몹시 어렵다. 미국의 산에서 진달래를 보았을 때가 그랬다. 화이트마운틴스에도 진달래가 핀다.
<6월 초순 경, 화이트 마운틴스의 고산지역의 툰드라 기후에서만 볼 수 있는 야생화 군락. 알파인 가든 (Alpine Garden) 으로 불린다.>
내가 살던 고향 전라도 완도에도 봄이 오면 진달래가 만발했다. 우리 집 뒤에는 ‘서망’이라 불리는 산이 있었는데, 정상에 오르면 남해의 다도해를 한 눈에 다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장보고섬’은 물론이고 ‘약산도’와 ‘고금도’의 구비 구비 이어지는 섬 길이며, 지금은 생태의 섬으로 각광받는 ‘청산도’, 역사의 섬 ‘보길도’까지 모두 볼 수 있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경계취약지구라는 이유로 지어진 초소가 돌로 쌓은 봉화대 위에 있어 총을 들고 경계 근무를 서는 군인들의 모습까지 볼 수 있었다.
완도의 산에 핀 진달래를 우리는 ‘참꽃’이라 불렀다. 그런데 참꽃과 비슷한 나리꽃 모양의 꽃도 있었다. 그 꽃을 ‘개꽃’이라 불렀다. 왜 ‘참꽃’과 ‘개꽃’을 가려 불렀던지 어린 나는 그 까닭을 알지 못하였다. 진달래로 술을 담기 위해 할머니와 함께 꽃을 따러 갈 때면 할머니는 손주에게 “아가, ‘개꽃’은 따지 말그라 잉. ‘참꽃’만 따야제.”하며 할머니는 몇 번이나 이르셨다. 그래서 나는 ‘개꽃’은 먹을 수 없는 꽃으로 알았었다. 하지만 그 후로 진달래꽃도 독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진달래술을 담는 일이 중단되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철쭉꽃에는 독성분이 있고 진달래꽃은 안전한데도 말이다.
<5월이면 피는 화이트 마운틴스의 진달래>
나는 진달래꽃이 미국의 산에도 피어있을 것이란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처음 진달래꽃을 보았을 때 몹시 신기하였다. 미국에도 진달래꽃이 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그 후 나는 봄이 오면 진달래꽃을 구경하기 위한 산행을 자주하였다. 그 산행은 꽃을 즐기는 완상의 시간이자, 지나간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회상의 시간이며,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창작의 시간이기도 하였다. 진달래하면 한국의 시인 김소월이 떠오르듯이, 화이트마운틴스하면 떠오르는 미국의 시인이 있다. 바로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이다. 프로스트하면 그의 시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이 생각날 것이다.
그날 아침 두 길은 똑같이 놓여 있었고
낙엽 위로는 아무런 발자국도 없었습니다
아, 나는 한쪽 길은 훗날을 위해 남겨 놓았습니다!
길이란 이어져 있어 계속 가야만 한다는 걸 알기에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거라 여기면서요
And both that morning equally lay
In leaves no step had trodden black.
Oh, I kept the first for another day!
Yet knowing how way leads on to way
I doubted if I should ever come back.
프로스트는 화이트마운튼스의 Littleton이라는 마을에 거주하며 이 시를 썼다. 나에게도 한 때 이 시는 큰 위안을 주었다. 사범대에서 영어교육을 전공했던 나는 졸업을 앞두고 선택의 갈림길에 놓였다. 대학에 들어온 후 춤과 연극에 심취한 나는 도서관보다 연습실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말 그대로 춤과 연애하면서 ‘춤쟁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다 졸업을 앞두고는 뮤지컬 ‘캣츠’의 오디션에 내가 배우로 뽑히게 된 것이다.
이미 영어교사가 되기 위해 교생실습을 마쳤고 교사의 길을 예비하였는데, 졸업을 앞두고 ‘교사의 길’이냐 ‘무용가의 길’이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선 것이다. 선택은 쉽지 않았다. 판단은 혼란스러웠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때 프로스트의 이 시가 떠올랐다. 두 개의 길은 비슷하면서도 다르고, 한번 선택하면 내 삶의 방향이 어떠하리라 알기에, 내가 정한 길을 다시 되돌리기는 힘들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나의 심장소리에 귀를 기울었다. 무엇이 나의 심장을 뛰게 할 것인가?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나는 프로스트의 시를 되뇌며 결국 사람들이 가지 않은 길, 나의 심장이 고동치는 길을 선택했다. 그것은 ‘춤’이었다. 화이트마운튼스는 미국의 많은 문인들에게 영감을 주어왔다. 나는 산행을 하다 가끔 프로스트의 생가를 찾곤 한다. ‘가지 않은 길’의 시비가 있는 산책로 앞에 서면, 마치 한 사람의 순례자가 순례를 마치고 돌아온 듯 숙연해진다. 학창시절에 이 시를 읽었을 땐 “나도 언젠가는 나의 삶을 돌아보며 저렇게 이야기할 때가 있을까?”생각하였는데, 바로 그 시비 앞에 서서 그 순간을 회상하는 것은 특별한 감회를 일게 한다. 진달래꽃을 따던 유년시절과 두 길 사이에서 고뇌하던 청춘이 가끔씩 그립다. 하지만 이곳에도 진달래가 피고 프로스트의 시비가 있어 화이트마운틴스의 산행은 향수에 젖은 나를 달래준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생가> 프로스트는 이곳에 거주하며 우리에게 잘 알려진 ‘가지 않은 길 (The Road Not Taken) 을 쓰고 1915년 8월에 The Atlantic Monthly 에 발표하였다. 사진출처 (The Frost Pl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