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냐, 권력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오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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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색다른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여성 작가 리사 클라인의 소설원작, 여성 시나리오 작가 세미 첼라스 각본, 여성 감독 클레어 맥카시 연출, 여성 주연배우 데이지 리들리가 협업한 영화 <오필리아>가 그 주인공이다. 한마디로 여성들이 똘똘 뭉쳐서 일을 만들었다. 오필리아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1600)에 등장하는 비운의 인물이다.

오필리아는 햄릿의 식어버린 사랑에 괴로워하다가, 햄릿에게 아버지마저 잃고 실성한 나머지 죽음을 맞은 여인이다. 그녀는 독자적으로 생각하거나 출구를 모색하지 못하는 수동적이고 나약한 인물이다. 남성들의 권력과 애증에 휘둘리다가 끝내 파멸하는 비운의 여성. 그런 오필리아를 21세기 관점으로 재해석한 영화가 <오필리아>다.

영화의 전체적인 얼개는 <햄릿>에서 빌려왔지만, 이야기 전개와 등장인물들의 해석은 전혀 다르다. 고전의 현대적인 재해석은 언제나 양면의 칼날이다. 선과 악, 득과 실, 빛과 어둠이 공존한다. 셰익스피어를 곧이곧대로 따라간 케네스 브래너의 <햄릿>(1996)도 흥미롭지만, 이번에 나온 <오필리아>도 만만찮은 매력으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오필리아, 그녀는 누구인가

얼굴에 검댕이 묻은 여자아이가 15살 햄릿 왕자의 잔칫날에 사고를 친다. 덴마크 엘시노어 성의 주인이자 왕의 외아들로 신성로마제국의 비텐베르크로 유학을 떠나는 햄릿. 왕의 동생 클로디어스의 장난질에 정면으로 응수하고, 왕비 거트루드의 말에 또박또박 대꾸하는 당돌한 소녀 오필리아. 그녀는 귀족이 아니라, 평민으로 그려진다.

남다른 지적 호기심으로 오빠 레어티즈에게 이것저것 캐묻고 글도 깨우친 오필리아. 여자에게 금지된 도서관을 드나들고, 높은 창턱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담대한 소녀. 영화는 오필리아가 어떻게 성장하고, 변화하면서 자신의 내면과 세계관을 만들어가는지 추적한다. 인체 해부도를 보면서 공부하는 레어티즈에게 오필리아가 묻는다.

“사랑과 진실, 광기는 대체 우리 몸 어디에 있는 거야?”

남녀의 노골적인 사랑 이야기를 다룬 소설을 왕비 거트루드의 침실에서 읽어주는 오필리아의 눈빛과 표정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사랑을 향한 꿈으로 가득한 청춘의 오필리아. 다른 시녀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면서도 자신의 본성을 꿋꿋하게 지켜내는 자존감 높은 오필리아. 자신의 아름다움에 빠진 왕자에게도 할 말은 해야 하는 그녀.

“두 가지 욕망이 싸우고 있군요. 비열한 욕망과 고귀한 욕망이!”

오필리아와 거트루드

영화의 오필리아만큼 변화폭이 큰 인물이 거트루드다. 원작에서 햄릿은 부왕의 복수를 미루면서도 어머니 거트루드에게 ‘오이디푸스콤플렉스’를 그대로 드러낸다. 햄릿의 진정한 배신감과 절망은 어머니의 재혼에 있는 듯하다. 하지만 영화의 거트루드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시동생 클로디어스의 노골적인 유혹과 추파를 거부하지 않는다.

전쟁과 국가만을 생각하는 남편이자 국왕을 붙잡아두려는 소극적인 여인 거트루드. 반면에 오로지 자신만을 바라보며 접근하는 클로디어스를 향한 사랑을 주체하지 못하는 여인 거트루드.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한 햄릿이 자신의 노화를 비웃어버리자 지극히 절망하고 질투하는 여인 거트루드. 사랑과 권력 가운데 사랑만을 추구하는 거트루드.

오필리아의 성장과 변화만큼 거트루드의 변화과정도 흥미롭기 그지없다. 그녀가 젊음과 매력의 묘약을 청하는 성문 밖 숲의 마녀 마틸드와 맺고 있는 관계는 반전의 절정이다. 마틸드에게 의지하면서 ‘사랑’하나에 매달리는 거트루드. 사랑을 위해서라면 남들의 시선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거트루드. 하지만 그녀에게도 칼날이 있다.

클로디어스의 사랑에 속박된 여인에서 조금씩 자유를 되찾아가는 거트루드. 오필리아가 실성한 것처럼 꽃을 들고 나타나 클로디어스를 펜넬(꽃말: 힘)과 ‘매발톱’(꽃말: 아첨)으로 조롱한다. 분노한 클로디어스에게 정면으로 반기를 들면서 오필리아를 놔두라고 힘차게 저항하며 대드는 거트루드. 사랑의 노예 거트루드를 스스로 거부하는 그녀.

오필리아와 햄릿

<햄릿>을 읽다가 햄릿은 오필리아를 사랑한 것일까, 하는 의심이 든다. 아무리 광기가 도졌다고는 하지만, 오필리아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그녀에게 수녀원으로 가라는 햄릿을 도통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필리아는 그런 햄릿에게 변변하게 저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불귀의 객이 된다. 비극의 전형적인 여인상을 재연하는 오필리아.

영화 <오필리아>에 오면 전혀 다른 여인이 우리를 맞이한다. 수련이 상아 색깔로 산뜻하게 피어난 호수에서 멱을 감는 오필리아. 하필이면 그 시각에 호수에 나타난 햄릿. 오필리아를 짓궂게 놀리는 햄릿에게 전혀 꿀리지 않고 응대하는 오필리아. 아주 잰걸음으로 곤경을 피해 달아나는 오필리아에게 깊이 빠져드는 덴마크 왕자 햄릿.

오필리아는 자신과 햄릿 사이에 가로놓인 거대하고 육중한 신분 장벽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향하는 햄릿의 열망을 외면하지 않는다.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디아나)가 목욕하는 장면을 훔쳐본 죄로 사슴이 되어 화살 맞아 죽은 악티온 이야기를 햄릿에게 들려주는 오필리아. 지적인 왕자 햄릿을 사로잡는 총명한 오필리아.

그들의 운명은 각자의 선택으로 엇갈린다. 사랑과 결혼을 위해 덴마크 국왕도 포기할 수 있다던 햄릿과 그런 햄릿에게 함박웃음으로 화답했던 오필리아. 하지만 햄릿은 복수와 권력으로 급선회하고, 그들은 돌이킬 수 없는 길을 나란히 걷는다. <오필리아>에서 손꼽을 수 있는 명장면 아닌가 한다. 사랑이냐, 권력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21세기 오필리아의 귀환

셰익스피어 희곡의 여성들은 남성들의 장식품이거나 무엇인가 모자라는 부차적인 인물로 그려졌다. 오필리아도 거트루드도 예외가 아니었다. <베니스의 상인>에서 지극히 똑똑한 여인으로 묘사된 포셔조차 사랑하는 남성 바사니오 앞에서는 순종적인 여성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문화와 여성의 세기인 21세기에 이런 여성은 시대착오적이다.

<오필리아>가 대중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는 까닭이 여기 있다. 사랑을 외면하는 남편이자 국왕에게 물건까지 던질 만큼 격정적인 거트루드. 자신의 사랑 따위에는 완전한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남편을 버리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가는 거트루드. 그녀의 언니 마틸드 역시 여전히 첫사랑이자 옛사랑에게 모든 것을 던질 만큼 사랑의 화신이다.

오필리아는 마틸드와 거트루드가 선택한 운명보다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간다. 결투를 눈앞에 둔 햄릿이 필경 죽으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오필리아는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간다. 나란히 걸으면서 그들은 전혀 다른 운명과 대면한다. 우리 시대의 오필리아는 남성들의 장식품이거나 그들 운명의 보조자가 아니라, 자기 운명의 용감한 개척자다.

우리는 오필리아의 고단하고 신산한 여정을 본다. 홀로 노를 저어 강을 건너고, 말을 달려 거친 풀과 바위의 평원지대를 넘어 드디어 높은 곳에 우뚝 서는 오필리아. 아버지도 오빠도 국왕도 마침내는 유일하게 사랑한 애인이자 남편도 그녀를 막지 못한다. <오필리아>는 의지와 열망으로 자신의 길을 걸어 나가는 21세기 신여성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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