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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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보름 예정으로 시작한 집수리 공사가 한 달을 넘기게 되었다. 2층 베란다에 창유리 끼우고, 들뜬 외벽 보강 정도 생각했는데, 7년 넘긴 목조주택은 곳곳에서 사람의 손을 부르고 있었다. 하기야 시간과 더불어 쇠락하지 않는 것이 있겠는가, 잠시 생각한다.

공사를 지휘하는 박 대목(大木)은 마당의 조경도 손보았으면 한다. 주밀(綢密)하게 서 있는 크고 작은 나무가 분위기를 상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워진 나는 왕벚나무를 전지한다. 벌써 몇 차례 가지를 쳐냈으나, 왕성한 번식욕과 과시욕을 제어하기에 역부족이다.

대문 좌우에 번성한 황매와 장미 그리고 조팝나무에도 전지가위가 작동한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쓰지 않는 닭장이 눈에 거슬린다. 닭장 거주자였던 청계 9마리는 재작년 전남대 교환교수로 나가기 전에 이웃에게 넘겨주었다. 빈 닭장은 창고로 사용해왔던 터다. 그것이 거슬려 철거하기로 한다. 여분의 공간이 생겨난 마당이 한결 널찍하고 시원하다.

내부에도 문제는 산적해 있었다. 오랜 세월 입지도 쓰지도 않는 물건이 지천으로 넘쳐났다. 이번 기회에 낱낱이 들여다보고 버리기로 한다. 아쉬울 것도 그리워할 것도 없다. 그렇게 버리자고 마음먹고 정리하기 시작하니 일곱 부대가 쉽게 나온다. 그동안 나와 함께 있었으나, 따로 살았던 사물이 자리를 비운 것이다. 퇴락한 추억과 완전하게 작별한 기분이다.

물건을 정리하다 든 생각은 채움보다 버림이 어렵고 쓸모 있다는 게다. 이 물건이 왜 이곳에 있는지조차 생각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누가 주었는지, 언제 받았는지, 무슨 쓸모가 있는지 가물가물한 사물의 연이은 행렬. 다용도실과 옷장, 책상과 장식장, 주방에서 나온 물건들에 담긴 나의 다채로운 욕망은 찬란하되 누추한 것이었다. 처연한 인간의 탐욕이여!

덕분에 오래 묵은 과실주와 안 쓰던 물품이 본연의 자리를 꿰차고 의젓하게 앉았다. 더러는 돌아보고, 더러는 살펴서 쓰지 않는 물건은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해진다. 옛것이 오래도록 자리를 차지하면 새것이 들어올 여지가 없다. 오래되고 낡은 것은 버려야 비로소 새로운 것이 자리 잡고 활동을 개시할 수 있을 터다.

우리 내면의 오래되고 익숙한 습관과 사고방식도 오래된 물건과 매한가지다. 반성과 성찰 없이 기계적으로 답습하는 행동과 사유는 인간의 생기와 미래기획을 좀먹는다. 어제와 그제처럼 영위되는 오늘과 내일의 삶은 짙게 낀 이끼처럼 눅눅하고 축축하기 마련이다. 버리지 않은 혹은 버리지 못한 물건은 우리의 견고한 자기방어와 관련이 있다.

시간과 더불어 축적된 자신만의 생활방식은 안전하고 아늑하며 편리하다. 그것을 매너리즘이라 한다. 매너리즘은 낡고 둔탁하지만, 익숙한 옷이나 물건처럼 우리를 아늑하게 인도한다. 그런 평안함과 익숙함이 우리를 타성과 습관의 눅눅한 늪지대로 인도한다. 거기서 우리는 환경과 습속의 수인(囚人)이 되어 사멸의 길에 접어든다. 버릴 것은 버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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