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학생독립운동 주역, 국보법 몰려 처형
기념사업회 올해로 2번째, 광주일고서 개최
“미서훈 300인, 국가가 합당한 예우해야”

광주학생독립운동 주역 고(故) 장재성(1908∼1950) 선생을 기리는 추모 행사가 5일 열렸다. 이날 행사는 장 선생 아들 상백(79)씨가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 의미를 더했다.
장재성기념사업회는 이날 오전 11시 광주제일고등학교 대강당에서 ‘장재성 선생 추모제’를 진행했다. 이에 앞서 오전 10시30분에는 교내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과 장재성 선생 흉상을 찾아 헌화했다.
행사는 개회, 국민의례, 장재성 연보 낭송, 내외빈 소개, 내외빈·유족 말씀, 장재성 추모 연극, 성진로·장재성 홀 방문 등 순으로 진행됐다. 내빈으로는 더불어민주당 이용빈 의원(광주 광산갑), 장휘국 광주교육감, 김성종 아시아인문재단 이사장 등이 참석했다.

뉴스보이 캡과 체크무니 남방 차림의 상백씨는 행사 내내 무덤덤한 표정으로 무대만 빤히 쳐다봤다. 그는 전날 경기 하남에 거주하는 큰아들 윤영(50)씨와 함께 광주를 찾았다. 이날 행사에는 둘째 아들 헌영(48)씨도 함께해 삼부자가 처음으로 자리를 같이했다.
참석 소감을 묻는 질문에 상백씨는 “이런 일도 있네요. 참석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 제가 더 할 말이 있겠어요?”라고 짧게 답했다. 그동안 겪은 트라우마와 관련해선 “사실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상백씨 아들 윤영씨는 “아버지는 기념사업회가 할아버지 관련 활동을 계속 하는 모습을 보고 이번 추모제에 참석해야겠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면서 “이렇게 많은 분이 매년 할아버지를 기억하고, 기리고 있는 모습을 아버지가 실제로 보셨으니, 이제는 조금이나마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용빈 의원은 “아직도 장재성 선생을 포함 미서훈자 300인이 국가로부터 제대로 된 예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번 추모제를 통해 잊고 살아왔던 우리 민족의 과거 사실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일제부터 군부독재 시절까지 처참하게 말살된 우리의 기억을 다시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미서훈자의 역사적 평가와 존엄을 찾아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장휘국 교육감은 “장재성 선생은 일제강점기에 나라를 위해 싸우고도 훗날 사회주의 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우리 정부에 의해 옥살이를 하다가 결국 불법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정부가 아직도 그분에 대한 합당한 예우를 하지 않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라면서 “우리 교육청은 학생들이 장 선생의 정신을 이어받아,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정의로운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날 현장에선 장 선생을 기리는 공연도 펼쳐졌다. 극단 토박이가 장 선생의 일대기를 다룬 ‘무등의 빛 장재성’이라는 연극을 초연했다.
공식 행사는 교내 장재성 홀을 방문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장재성 선생은 1926년 광주고보 5학년 시절 학생 비밀결사인 ‘성진회’를 결성해 일제에 저항했다. 1929년 광주에서 한·일 학생 사이 충돌 사건이 발생하자, 학생투쟁지도본부를 결성하고 광주학생 시위를 주도했다. 이 사건으로 광주학생독립운동 관련자 중 최고형량인 4년형을 선고받았다.
해방 정국에서 건국준비위원회 전남지부 조직부장을 역임한 장 선생은 남북 분단에 반대해 몇 차례 북한을 방문했다. 1948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광주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시국사범으로 몰려 총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