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것과 듣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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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이 저문다. 불후의 명곡 <봄날은 간다>가 귓전을 쨍하니 울리는 시점이다. 왔으니 가는 것은 당연지사. 그러하되 봄이 오는 것은 반갑지만, 가는 것은 아쉽다. 우리에게 ‘보는 것(봄)’의 향연을 차고 넘치도록 선사한 화사한 봄날이 퇴장을 준비하는 시절이다. 하기야 소만(小滿)은 벌써 지났고, 6월 5일은 망종(芒種)이다.

너른 들을 걷다가 어디선가 새 울음소리 들린다. 유심히 들여다보아도 소리는 들리지만, 형상은 보이지 않는다. 저런 새소리를 금방 구별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한숨 절로 나온다. 그러다가 문득 물 위를 걷듯 달리듯 뛰듯 분망하게 돌아다니는 꼬마물떼새 두 마리. 청아하고 높은 음색의 소리 주인공은 그들이다.

작고 여윈 녀석들에게서 저리 높고 맑은소리 나오는구나, 생각하니 형상과 소리의 부조화와 불협화가 떠온다. 크고 두터운 생명의 소리는 낮고 둔탁하며 위압적이다. 작고 여린 생명체의 소리는 날카로우며 앳된 서정과 동행이다. 그런데 홀연히 들려온 저들의 소리는 예상과 달랐으니, 형상과 소리의 어긋남이다.

보는 것과 들리는 것 사이의 거리에서 오는 불협화는 유쾌함과 당혹감을 선사한다. 당연한 기대치를 단박에 박살 내는 현장감을 뭐라 해야 할 것인가! 묵직하고 살집 좋은 인간에게서 나오는 날카롭고 새된 목소리를 들을라치면 경이로울 때도 있다. 그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그러기에 예단은 언제나 금물이다.

대상을 인식할 때 동원하는 최초의 감각기관은 눈이다. 시각이야말로 정보를 수신하고 판단하는 기본적이고 중요한 수단이다. 오감 가운데 으뜸이 시각인 것은 당연지사. 오죽하면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까지 나왔겠는가?!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법전(法典) <경국대전>에서도 최악의 장애를 ‘맹인(盲人)’으로 판단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보는 것, 즉 외관(外觀)은 우리를 속인다. 조선 선비 이직의 말처럼 ‘겉 희고 속 검은 이’가 속출하기 때문이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외모에 정신을 놓고 실패를 경험한다. 시각을 보완하는 가장 적절한 감관(感官)이 청각인 까닭은 거기 있다. 소리를 듣고 대상을 온전하게 판단하는 것이다.

얼굴이 모두 다른 것처럼 누구에게나 고유한 목소리가 있다. 소리에는 그 사람의 인격과 교양과 성품이 담겨 있다. 하지만 우리는 시각에 압도된 나머지 청각신호에 대체로 태무심(殆無心)하다. 봄날은 보는 것의 나날들이다. 그 봄날이 간다. 보는 것의 시간이 흘러가면 열매 맺는 계절, 여름이 다가온다. 이 시기에 우리를 사로잡는 것은 시각이 아닌 청각이다.

요즘 부쩍 꾀꼬리와 소쩍새 울어대고, 개구리는 밤늦도록 울면서 시절을 알린다. 저런 낱낱의 생명체에게 허여된 시절이 오고 가면서 자연의 순환과 우주 운항은 어김없이 진행된다. 이제 여름의 노래에 귀 기울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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