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윤상원 일기에서 ‘5·18 살신성인’ 바탕 찾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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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윤상원 일기에서 ‘5·18 살신성인’ 바탕 찾았죠”

“어느 봄날이었을까? 해파재(海波齋)를 방문한 그 날, 나는 윤상원의 일기가 있음을 처음 알았다.”
‘오월의 아들과 아버지’가 쓴 일기를 책으로 묶고 해제를 쓴 황광우(63·인문연구원 동고송 상임이사)는 지난 11일 “<윤상원 일기>(글통 냄)와 <윤석동 일기>는 ’전태일 일기’와 함께 우리 시대가 남긴 소중한 보배”라고 말했다. ‘해파재’는 광산구 임곡동 윤상원(1950~80)의 생가로, 누구나 방문할 수 있도록 문이 항상 열려있다. 황 작가는 “아무나 출입할 수 있는 공간, 유리 상자 안에 윤상원의 일기가 안치되어 있었다. 나는 몹시 놀랐다”고 했다. 그래서 “2년 전 (유족에게) 바로 연락해 일기 복사본을 만들고 원본을 한국학호남진흥원의 수장고에 보관했다”고 덧붙였다.

5·18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은 길지 않은 삶 동안 열 권의 일기를 남겼다. 1960년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해 1968년까지 쓴 일기가 아홉 권에 달한다. 1977~79년 3년 동안의 삶은 한 권의 일기로 남겼다. 200자 원고로 3000장이 넘는 원본을 2000장으로 줄이는 작업이 쉽지 않았다. 황 작가는 “밤을 새워가며 일기를 읽고, 타자로 옮겼다”고 한다. “이 힘든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은, 윤상원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독자분들도 이 희한한 체험을 누리길 바란다.”

황 작가는 윤상원의 일기를 4부로 나눠 자연학교(초등)-부활(중등)-십자가(고등)-빛고을 공동체(대학교)라는 제목으로 해제를 붙였다. 5·18항쟁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은 죽음을 각오하고 계엄군의 진압에 맞서다가 산화했다. <윤상원 일기>는 ‘5월27일 새벽, 도청의 최후를 지킨 윤상원 등 15인 전사들’의 얼굴 사진으로 첫 장을 연다. 황 작가는 “1987년 6월 대항쟁으로 우리가 전두환을 권좌에서 몰아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광주항쟁에서 비롯되었고, 윤상원을 비롯한 15인의 숭고한 죽음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했다.

<윤상원 일기>엔 그의 인간적 내면이 담겨 있다. 황 작가는 “1980년 5·18항쟁을 그린 문학작품과 보고서는 많이 출간됐지만 ‘인간 윤상원’의 내면을 전하는 제대로 된 작품이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그는 “<윤상원 일기>엔 그의 성장 과정에 대해 알고 싶어 했던 우리들의 물음에 대해 거의 완벽한 답을 제공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스랑(처마), 가마치(가물치), 독(돌), 그짓말(거짓말), ‘억크러버렸다’(엎질러 버렸다) ‘땡깡’(생떼, 억지), ‘삼삼하건만’(생생하건만) 등 일기에 나오는 전라도 입말은 그대로 살렸다.

초등학교 일기엔 시적 표현이 많이 등장한다. 황 작가는 “무엇보다도 감동적이었던 것은 초등 4~6학년에 쓴 일기였다. 나는 백석의 시를 좋아하지만, 윤상원의 초등 일기는 백석의 시를 넘어선다”고까지 했다. 초등 4학년 때 일기엔 ‘봄바람 불어오면서 새 버들잎 살랑살랑 손짓한다’(60.2.14), ‘나는 어째서 개가 사랑하게 여긴다’(60.1.4), ‘살구꽃은 나에게 기쁨을 준다’(60.3.29) 등의 글이 보인다. 초등 6학년 일기엔 ‘가축도 닭이라 해서 천대해서는 안 된다’(62.8.5)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윤상원의 도덕의식은 중학교 시절에 완성태로 나타난다. 일기엔 “학교에 가니 종안이가 눈을 맞으며 치우고 있는 것이다.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사람이 아니다. 봉사하는 일이 가치 있는 일이다”는 내용이 나온다. 황 작가는 “일기를 보면서 살신성인하는 윤상원의 결단에는 기독교의 십자가 의식이 깊게 자리하고 있음을 발견했다”고 했다. 윤상원은 광주살레시오고 재학 때 성당에 나가기 시작했고, 신부한테 예수의 가르침을 배운다. ‘하나님께서 주신 나의 십자가, 꼭 지고 가리라’(68.9)
전남대를 졸업하고 1978년 2월 주택은행 봉천동지점에 취업했던 윤상원은 6개월만에 사표를 낸 뒤 광주 광천공단 노동자로 취업한다. 윤상원은 아버지에게 “부정과 불의가 판을 치는 이 나라 이 민족의 현실을 좌시할 수 없어 그만두려 하니 부모님 양해해주십시오”라는 편지를 보냈다. 그는 1978년 12월26일 들불야학 ‘동지’였던 박기순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뜬 뒤 “불꽃처럼 살다간 누이야. 왜 말없이 눈을 감고 있는가?”(78.12.27)라고 통곡한다. 윤상원·박기순의 넋풀이곡으로 만든 <임을 위한 행진곡>은 이제 한국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노래가 됐다.

아버지 윤석동(1926~2019)은 1988년부터 2007년까지 2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썼다. 황 작가는 20권 분량의 원본을 한 권으로 줄였다. “아들 윤상원이 쓰러지기 전까지 부지런한 농부였”던 윤석동은 “1991년 6월 5·18 유족회의 회장이 된 뒤 5월 광주가 갖는 세계적 의미를 깨우쳐갔다.” 사단법인 인문연구원 동고송과 윤상원기념사업회는 15일 책 헌정식을 비대면 행사로 연다. 황 작가는 “2권의 일기를 사는 시민들을 출간위원으로 모시고 <윤상원 평전> 출간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출처한겨레신문
30만부가 나간 '철학콘서트'에 이어 '역사콘서트'와 '촛불철학'을 출간했다. 지난 5년 동안 운사 여창현의 문집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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