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지난 2년 동안 ‘윤상원 일기’에 파 묻혔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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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원, 그는 10일 간의 항쟁을 이끈 항쟁의 심장이자 두뇌였다. 5월이 오면 “나는 과연 목숨을 내놓을 수 있었을까?” 누구나 자문한다. 30세 한 청년은 항쟁의 전 과정을 목격하며 투사회보로 진실을 알렸고, 몸소 항쟁의 지도부를 조직하여 대변인을 맡았다. 항쟁의 입을 자임한 것이다. 그는 5월 26일 내외신 기자들을 모아놓고 “우리는 패배할 것이지만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이다”면서 항쟁의 미래를 예언하였다.

임박한 죽음을 기꺼이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이 청년을 보면서 외신기자들은 충격을 받았다. 전두환은 탱크로 광주를 고립시켰지만, 윤상원은 진실로 전두환을 국제사회에서 고립시켰다. 윤상원은 탁월한 전략가였다. 1987년 6월 대항쟁으로 우리가 전두환을 권좌에서 몰아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80년 오월 광주항쟁에서 비롯되었고, 윤상원을 비롯한 15인의 숭고한 죽음에서 비롯되었다.

그동안 80년 오월 광주를 그리는 문학작품과 보고서가 많이 출간되었다. 하지만 인간 윤상원의 내면을 전하는 제대로 된 작품이 없었다. 이번 출간하는 ‘윤상원 일기’는 윤상원의 성장 과정에 대해 알고 싶어 했던 우리들의 물음에 대해 거의 완벽한 답을 제공하고 있다.

일기의 원문은 거칠었다. 한자 보다 더 해독하기 어려운 것이 한글이었다. 밤을 새워가며 일기를 읽고, 타자로 옮기는 이 힘든 일을 내가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은, 윤상원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기에서 윤상원은 부활한다. 여러분들도 이 희한한 체험을 누리길 바란다.

무엇보다도 감동적이었던 것은 초4에서 초6까지 쓴 초등 일기였다. 나는 백석의 시를 좋아하지만, 윤상원의 초등 일기는 백석의 시를 넘어선다. 이곳 광주의 화가 하성흡 씨가 열 두 폭의 그림으로 윤상원의 일대기를 그렸는데, 나는 그림을 해설하면서 이런 글을 썼다.

 

할머니께서 사주신 빨간 일기장, 가슴에 안고 잠을 이루지 못하다.
들판 너머 황룡강, 여름이면 수영을 하고, 겨울이면 썰매를 타다.
봄이면 산하를 물들이는 진달래꽃, 벚꽃 속에 파묻히다.
올빼미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슬퍼지기도 한다.
기러기가 서쪽으로 갸웃갸웃하면서 나란히 날아가다.
닭이라 해서 천대해서는 안 된다.
어느 날 할머니, 떠나다. 하염없이 울다.

놀라운 것은 윤상원의 도덕의식이 중학교 시절에 완성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학교에 가니 종안이가 눈을 맞으며 치우고 있는 것이다.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사람이 아니다. 봉사하는 일이 가치 있는 일이다.”

나는 일기를 읽으면서 살신성인하는 윤상원의 결단에는 기독교의 십자가 의식이 깊게 자리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고교 시절, 상원은 성당에 나가기 시작하였고, 카톨릭의 신부로부터 예수의 가르침을 배운다. “하나님께서 주신 나의 십자가, 꼭 지고 가리라.”

대한민국의 입시 교육이 한 소년의 자유로운 영혼을 얼마나 가혹하게 파괴하는지, 지금 우리의 입시 제도가 얼마나 거대한 범죄를 자행하고 있는지, 확인하려면 ‘윤상원 일기’를 읽으면 된다. 대한민국의 학교는 거대한 영혼의 감옥이다. 이 학교의 파행이 아니었더라면, 초등 시절의 자유로운 영혼이 고이 자라게 하였더라면, 윤상원은 백석을 능가하는 시인이 되었을 것이고, 신재효를 능가하는 판소리의 대가가 되었을 것이다.

2년 전 봄날, 한겨레신문의 정대하 기자가 나에게 대뜸 요구하는 것이다. “황 작가가 제대로 된 윤상원 평전을 써주시죠.” 나는 숨이 막혔다. 그것은 거절할 수 없는 요청이었다. 한 청년은 목숨을 역사의 제단에 내놓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것은 수락할 수 없는 요청이었다. 평전을 쓰기 위해 갖추어야 할 기초 작업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망갈 수 없는 요청을 들이댄 정대하 기자에게 나는 역으로 물귀신 작전을 썼다. “당신이 기초자료를 모아 오면 내가 평전의 붓을 들겠다. 윤상원, 무슨 자료가 있는가?”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 오랜 시일 윤상원 생가를 출입한 정대하 기자로부터 ‘윤상원 일기’와 ‘윤석동 일기’가 있음을 알았다.

이번에 출간하는 ‘윤상원 일기’와 ‘윤석동 일기’ 는 확신하건대, 전태일 일기와 맞먹는 우리 시대의 국보이다.

 

30만부가 나간 '철학콘서트'에 이어 '역사콘서트'와 '촛불철학'을 출간했다. 지난 5년 동안 운사 여창현의 문집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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