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단상: 영어교육의 국산화를 위해

언어학자가 본 한국 사회와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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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교육도 ‘사대주의’에 빠지지 않았나 반성할 때가 됐다
국내 영어교육 자산과 인력으로 ‘주체성’ 있는 영어 교육해야
‘영어 교육상품 수출하자’…”이제 영어는 우리 것이다”

이창봉 가톨릭대학교 영어영문학부 교수

며칠전 3.1절이었다. 이즈음이면 늘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영어 단어 ‘wood’를 ‘우드’라고 잘못 발음한다. 왜 ‘웃’이라고 발음하지 못하고 ‘우드’라고 발음하는 사람들이 그리도 많을까?

그 이유는 한마디로 발음을 일본식으로 잘못 배웠기 때문이다. 일본어는 단어의 음운적 구성이 종성, 즉 받침이 없이 자음과 모음의 조합으로만 된 개음절(開音節, open syllable)로만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일본 사람들은 모국어 간섭 (mother tongue interference) 현상으로 ‘우드’라고 발음하기 쉽다. 한국의 영어 수업 현장에서 이 일본식 영어 발음을 답습한 발음을 그대로 따라하면서 전해져 온 것이다.

‘wood’를 ‘우드’라 발음하는 세상

이 단편적 관찰은 외세에 휘둘리며 사대주의를 극복하지 못해 온 한국 현대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한국 사회의 영어 교육 역사가 그 모습의 한 가운데에 있다. 일제 강점기를 벗어난 탈식민 공간 환경에서도 한국은 영어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바탕으로 출발하지 못했다.

급속한 경제 성장을 추진하면서 영어 교육은 개인은 물론, 국가 경쟁력의 최우선 과제로 삼는 맹목적 영어 지상주의 분위기 속에서 서구 특히 ‘미국 숭배’ 풍조에 편승해 철저히 영어의 제국주의적 지배를 받아왔다. 우리의 영어 교육은 눈앞의 과제인 영어습득에 매달려서, 교육이 토대를 두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요인에 대한 보다 본질적인 물음들에 처음부터 차단됐다. 그 결과 한국 사회에는 영어 습득과 교육 관련 다양한 오류(fallacy)와 그릇된 접근이 만연해 왔다.

얼마 전 서울 시장 보궐 선거 출마를 선언한 나경원 전 의원이 구 단위로 원어민이 주도하는 영어교육센터를 2~3개씩 만들겠다는 공약을 한 적이 있다. 이 공약의 교육적 효과를 논하기 전에, 한국 정치인들에게는 왜 유난히 영어 교육을 떠올리면 원어민이 교육해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지 씁쓸한 느낌이 든다. 차라리 사설 학원들 중 경쟁력 있는 프로그램과 유능한 선생님들을 엄격히 선발하여 저소득층 자녀를 위한 특화 영어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주체적 발상이 훨씬 좋아 보인다.

필립슨(Phillipson)이라는 학자는 『Linguistic Imperialism(언어제국주의)』이라는 책에서 ‘영어교육에 관한 5가지 오류’들을 지적했는데, 그것들 중 한국사회에서 가장 심각하게 비판해야 할 것이 바로 ‘원어민 오류(the native speaker fallacy)’이다. 한국 사회에서 특히 영어는 원어민에게서 배우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것이라는 그릇된 인식이 팽배하여, 필요 이상으로 많은 숫자의 원어민 강사들이 수입되고 있고 많은 국내외 학자들이 비판하고 있듯이 영어 교육이 여전히 ‘고비용 저효율’에 머물고 있다.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이 급상승하는 때에 밎춰 영어를 어떻게 인식하고 교육할지에 대한 생각도 바꿔야 할 때가 됐다. 사진= 연합뉴스 출처 : 오피니언뉴스(http://www.opinionnews.co.kr)

 

왜 원어민에게 배워야 한다고 생각할까

국내 영어 교육 전문가와 교사들의 수준과 능력이 훌륭한데도 왜 우리는 여전히 원어민이면 무조건 영어를 잘 가르친다는 오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까? 영어 교육의 시대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한국 사회 전반의 영어에 관한 인식 수준이 여전히 사대주의적 잔영을 못 벗어나고 후진적이기 때문이다. 국내의 영어 교육 자산과 인력을 적극 활용해서 한국 특유의 주체성 있는 영어 교육 정책을 제안하는 정치인들이 거의 없다.

세상이 급격하게 바뀌고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 한국은 세계가 주목하는 방역과 경제 회복의 두 마리 토끼를 성공적으로 잡은 모범 사례를 보여 주면서 당당히 세계의 리더로 등장하고 있다. 한국은 이제 사대주의적 열패감에 사로잡혀서 미국과 일본을 동경하는 그런 후진적인 나라가 아니며, 오히려 저들이 보고 배워야 할 촛불혁명으로 주권재민의 모델을 만들고 아름다운 문화를 꽃피운 나라가 되었다. 더구나 한국 대중문화의 전 세계적 인기는 한국의 세계적 위상이 허상이 아님을 증명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을 남들에게 자신있게 보여 주고 남들을 이끄는 수준이 되었다.

어느 학자가 “세계어로서의 영어는 가고 세계의 영어 혹은 세계를 위한 영어의 시대가 도래했다(World English is out but world’s English is in)”고 주장했다. 이 주장의 근간은 이제 획일화된 영어, 하나의 영어, 표준영어라는 신화를 버리고 이제 ‘한국의 영어’ 혹은 ‘한국을 위한 영어’로 승화 발전시켜야 하고 그런 방향으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의 것’을 표현하는게 더 중요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이제 한국의 것을 영어로 표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제 영어를 숭배하고 무조건적으로 기능 향상에 매달리는 사대적 자세에서 벗어나 한국의 독창성과 우수성을 그들의 언어문화와의 비판적인 비교를 통해 영어를 주체적인 자세와 방법으로 습득하고 교육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래서 더욱 한국의 영어 교육 국산화가 시급하다. 한 발 더 나아가서 한국의 영어 교육 상품을 수출할 수 있는 수준의 국산 경쟁력 강화 노력을 할 때이다. 구체적인 예로 당장 각 급 학교 영어 수업에서 한국적 콘텐츠를 영어로 익히고 표현하는 수업을 강조하고 TOEIC 등 영미권 시험을 대체할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토종 공인 영어 시험을 개발 및 육성해야 한다.

한국적 콘텐츠가 중심이 된 각종 영어 학습서와 콘텐츠를 개발하고 수출하는 등의 노력을 생각할 수 있다. 정치권과 영어 교육 전문 관료들의 획기적인 의식 전환이 시급하며 모든 교육 주체들이 참여하는 민주적인 논의와 합의를 거쳐서 주체성을 살린 한국 특유의 독창적인 영어 교육 정립 노력이 요구된다.

우리 한국은 모든 면에서 뛰어나다. 영어는 미국과 영국의 것이 아니다. 우리의 것이다. 우리는 영어의 국산화와 국제 경쟁력 강화로 세계를 주도하는 영어 교육 한류의 물결도 이끌어 낼 수 있는 저력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출처 : 오피니언뉴스(http://www.opinio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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