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국회의원의 막말, 왜 모욕적일 수 밖에 없나?

언어학자가 본 한국 사회와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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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봉 가톨릭대 영어영문학부 교수] “조선시대 후궁이 왕자를 낳았어도 이런 대우는 받지 못했을 것”

조수진 국민의 힘 의원이 동료 여성 국회의원인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조선 시대 후궁에 빗대어 표현해서 뜨거운 논란거리가 되었다. 논란의 초점이 주로 고 의원 개인을 조선 시대에 왕자를 낳은 후궁으로 보는 공격적이고 모욕적인 막말을 한 것 자체에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 표현의 모욕성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조 의원이 화자로서 드러낸 표현에 깔린 인식 분석과 사건 이후 사회 각 분야의 비판, 즉 메타적 비판은 부족해 보인다. 이 글에서 필자는 언어학자의 시각에서 이 주제와 쟁점 관련 분석과 의견을 제시해보려 한다.

언어학적으로 조수진의원 발언 분석하면

언어학 분야에서 어떤 대상을 다른 것에 빗대어 표현하는 현상을 포괄적으로 ‘은유(metaphor)’라고 본다. 은유에는 기본적으로 말하는 순간 떠오르는 즉흥적인 유사성에 기초한 ‘단발성 은유(one-shot metaphor)’가 있고 두 개념 영역 간 체계적인 유사성에 기초하여 다소 면밀하게 의도하여 발언하는 ‘개념 은유(conceptual metaphor)’가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조 의원의 발언이 화자로서의 의도는 단발성 은유에 그친 것이라도, 이 표현을 접하는 청자들은 이 은유 표현을 개념 은유로 확대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조 의원은 공당의 책임 있는 정치인이므로 이 발언을 듣는 수많은 청자들(고민정 의원 개인을 포함하여 모든 정치인은 물론, 언론을 통해 이 표현을 접하는 모든 국민들)은 이 은유 표현과 함께 전달되는 ‘함축(implicature)’의 의미까지도 민감하게 읽게 된다.

이 표현을 개념 은유로 해석하게 되면 이해하고자 하는 목표 영역은 ‘여성 정치인’이며 근원 영역은 ‘후궁’이 된다. 개념 은유의 기저에는 두 영역 간의 유사성을 뒷받침하는 ‘체계적 사상(systematic mapping)’이 있다. 그렇기에 ‘여성 정치인은 후궁’이라는 개념 은유를 접하게 되면 청자들은 두 영역 간 유사성과 관련한 온갖 사상을 연상하거나 상상하게 되며 이것이 함축의 의미로 전달된다.

즉 이 은유 표현의 모독성은 단순히 여성 정치인을 후궁으로 빗대어 지칭한 것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이 표현에 깔린 체계적인 사상들, 즉 ‘공천권을 가진 남자 당 대표는 왕’, ‘정치권은 온갖 공작이 난무하는 궁궐’, ‘남자 당대표의 총애를 받는 인정은 후궁이 왕의 아들을 낳아 사랑받는 기쁨’ 등-이 일으키는 추가적인 ‘함축(implicature)’의 의미에 의해 심화되는 것이다.

특히 고민정 의원의 경우에는 청와대 대변인 출신이므로 3번째 사상을 ‘문재인 대통령의 총애를 받은 인정은 후궁이 왕의 아들을 낳아 사랑받는 기쁨’ 수준으로 확대 해석하여 매우 불순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대통령과 여당 쪽 지지자들에게는 심한 모욕감을 유발하는 치명적 위험성이 있다.

‘여성정치인은 후궁’ 인식 드러낸 건 아닐까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우리가 꺼낸 말 한마디가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잘 드러낸다는 뜻이다. 우리가 화자로서 어떤 은유 표현을 쓸 때는 (단발성 은유든 개념 은유든) 그 표현의 기초가 되는 전제적 믿음과 인식을 함께 드러내게 된다.

조 의원이 화자로서 ‘여성 정치인은 후궁’이라는 은유 표현을 쓴 순간, 그녀가 평소에 한국 정치에서 여성이 정치인이 되기 위해서는 실세 남자 정치인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고, 이 믿음을 조선 시대 궁궐에서 궁녀들이 왕에게 잘 보여서 후궁으로 발탁되기 위해 온갖 애교와 공작도 서슴치 않았던 상황과 비슷하게 보고 있었다는 인식을 전달하게 되는 것이다.

그녀는 여성 정치인을 남자 정치인에게 잘 보여서 자리를 얻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해야 하는 홀로 설 수 없는 태생적으로 의존적인 존재로 폄하해서 보는 인식을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조 의원 자신이 그런 믿음과 인식을 가진 것은 그것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문제될 것이 없다. 개인적인 믿음이고 주관적인 것이므로 시비와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공적으로 말로 드러내서 표현하는 순간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말은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 말에 깔린 화자의 믿음과 의식을 드러내고 그 말을 접한 청자의 감성과 생각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화자가 공인일 때는 더욱 그 의미 전달의 파장이 넓을 수밖에 없다.

이 사건이 터지자 정치계에서는 여권을 중심으로 일부 야당 인사까지 조 의원의 막말이 도를 넘었다고 비판하고 ‘성희롱적 발언’이라고 개탄하는 목소리가 연일 커졌다(지금은 사과한 상태다.) 사실 조의원의 발언을 둘러싼 쟁점의 실체는 성희롱이 아니라, 여성의원 스스로 여성을 독립적이고 자립적인 주체가 아니라 남성에게 의존된 종속된 개체로 폄하한 것이다.

고민정 민주당 의원(왼쪽)은 지난달 27일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을 모욕죄 혐의로 형사 고소했다고 밝혔다. 사진= 연합뉴스

여성의원이 여성을 폄하하다니

한국 사회의 엄연한 현실은 여성 의원이 한국 정치계에서 소수자(minority)라는 점이다. 이 상황 속에서 상식적 기대는 여성의원들이 같은 소수자로서 끈끈한 동료애로 뭉쳐서 서로를 더욱 존중하는 풍토일 것이다.

이 사건은 이 기대를 저버리고 여성 의원 스스로 젠더 불평등 인식을 드러내고 여성을 폄하한 사건이다. 젠더 불평등과 싸워야 할 여성 의원이 동료 여성의원을 모욕하고 여성 정치인 나아가서 여성 전체를 폄하한 것이다. 이 개탄스러운 사건을 접하고도 직접적인 모욕감을 느꼈을 여성 정치인들의 침묵은 그래서 더욱 의아하다.

최근에 정의당에서 발생한 성희롱 사건으로 다시 페미니즘(feminism)의 진정한 의미가 중요한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페미니즘의 근간은 여성의 권리를 중요시 여기는 것이고 여성을 억압하는 젠더 불평등을 드러내고 저항하고 싸우는 데에 있다.

젠더 불평등의 원인 제공자들은 주로 권력을 가진 남자들이었다. 남자들이 일으킨 성희롱과 성폭력 사건에는 매우 신속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던 정의당 여성 의원들과 여성단체들이 이번에는 침묵하는 것이 이해가 가질 않는다.

젠더 불평등을 일으킨 주체가 여성일 경우에는 더욱 엄격히 비판하고 싸워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남녀평등주의를 굳건히 믿고 주창하던 그들에게 남자들의 성희롱보다 여성 스스로 여성을 폄하하는 것이 더 개탄스러워야 하는 것이 아닐까?

페미니즘보다 더 우선시해야 하는 것이 휴머니즘이 아닐까? 남녀를 떠나서 사람을 폄하하고 모욕한 것에 침묵하는 것은 휴머니즘에 어긋난 것이다. 휴머니즘, 즉 인간 보편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 깔리지 않은 선택적 페미니즘을 내세우는 일부 여성들의 행태는 순수한 페미니즘이 아니라 정치적 페미니즘으로 보인다.

 

● 필자인 이창봉 가톨릭대 영문과 교수는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동 대학원 영어학 석사) 졸업 후 미 펜실베이니아대(University of Pennsylvania)에서 언어학 박사(세부전공: 화용론(Pragmatics)) 학위를 받았다. 주로 조건절(Conditionals) 연구 논문을 발표해 왔으며 최근에는 은유(metaphor)를 통한 인간 본성 탐구와 언어문화의 보편성과 다양성 관련 주제 연구를 해왔다. 영어와 미국문화 관련 글과 언어를 통해 한국 사회와 문화를 비판하고 성찰하는 글도 활발히 쓰고 있다.

출처 : 오피니언뉴스(http://www.opinionnews.co.kr)

 

출처오피니언뉴스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University of Pennsylvania)에서 언어학을 공부했고, 언어문화의 보편성과 다양성 관련 주제들을 연구하며 언어를 통해 정치와 사회와 문화를 분석하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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