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바위 얼굴’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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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에서 온 편지 1>

큰 바위 얼굴의 추억

김선호(보스톤 칼리지 연극과 무용교수)

새해가 밝았다. 새해가 오면 나는 해돋이를 보기 위해 자주 산에 오른다. 오랜 미국 생활에서 나의 행동은 조금씩 변했다. 그 중의 어떤 것은 지금 내 삶의 일부가 된 것도 있다. 바로 산을 찾는 일이다. 올해는 코로나로 연말연시를 집에서 보내달라는 주지사의 간곡한 메시지가 왔다. 나는 새해 산행을 포기했다.

코로나가 있기 전, 나는 산행을 위해 늘 ‘뉴햄프셔(NewHampshire) 주’로 올라갔다. ‘뉴햄프셔 주’는 캐나다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북동부 뉴잉글랜드 6개 주의 하나이다. 산과 호수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 특히 ‘화이트 마운틴스(White Mountains)’라는 국유림 안에는 알파인 가든(Alpine Garden)과 같은 고산 식물 군락지가 죽 펼쳐져 있다. 이 산은 원시 자연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어서 사람들의 발걸음이 몰리는 곳이다. 새해 첫날이 되면 나는 이곳을 찾아 한해의 소망을 기원하였다. 산과 나, 침묵 속에 대화를 나누며 나는 새해를 시작하였다.

 

프랑코니아 노취의 북동쪽 봉위리중의 하나인 마운틴 질랜드(Mt.Zealand)에서 북쪽을 향한 정경. 전형적인 화이트 마운틴의 겨울 풍경으로 사진 왼쪽 위는 최고봉인 마운틴 워싱턴 (Mt.Washinton)이다.

 

뉴햄프셔 주에 있는 산과의 인연은 조금 각별하였다. 90년 중반 무렵, 나는 안무(Dancing)를 공부하기 위해 보스톤으로 유학을 왔다. 나는 절친한 친구와 함께 무엇인가 재미있는 일을 계획했다. 하지만 나는 가난한 학생 신분이었고 자유로운 여행을 하기에는 형편이 좋지 않았다. 플로리다 주나 멕시코의 캔쿤 같은, 따뜻한 남쪽 지역으로는 가지 못하고, 가까운 뉴햄프셔 주의 산을 다녀오기로 하였다. 보스턴에서 ‘화이트 마운틴스’의 국유림 입구까지는 차로 달려 2시간 남짓 거리이다.

 

화이트 마운틴스 의 가을호수, 레이크 탈리튼( Lake Tarleton)이다. 뉴햄프셔주의 중남부 지역에는 특히 호수가 많고 Lake Disrtict) 9월 말부터 10월초에 단풍이 절정을 이룬다.

 

국유림으로 들어서 ‘프랑코니아 노취 (Franconia Notch)’ 라는 협곡을 지나기까지 우리들의 여행은 즐겁고 순조로웠다. 산을 덮고 있는 거대한 자작나무 숲, 아직 눈이 녹지 않은 화강암 협곡은 절경 그 자체였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우리는 협곡을 지나고 있었다. 그때였다. 차가 협곡의 중간지점을 지날 즈음, 순식간에 시야가 흐려지며 사위가 어두워지더니 먹구름이 몰려왔다. 이내 눈발이 몰아치며 앞을 내다보기 어렵게 눈보라가 휘날렸다. 한 치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화이트 마운틴스’는 급격한 날씨 변화와 강한 바람으로 유명한 곳이라고 자주 듣긴 하였다. 하지만 이렇게 급작스레 날씨가 돌변할지 생각하지 못했다. 놀란 가슴을 연신 쓸어 담는데도 순간순간 눈보라는 급격히 심해졌고, 이내 협곡은 ‘겨울 왕국’이 되었다. 불안이 엄습했다.

대자연의 경이로움에 나는 한동안 넋을 빼앗겼다. 사람이 죽음의 위기에 직면하면 살아온 순간들이 빠르게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다고 했던가 … 주변의 모든 것이 하얗게 변해가는 것을 보면서 문득 지난 일들이 빠른 속도로 나의 머릿속을 스쳤다.

나는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짧은 시간에 이곳과 다른 어떤 곳, 천상의 세계 어디라고 해야 할까, 나는 광막한 어떤 곳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한 차례 세찬 바람이 불어왔다. 놀란 나는 몽환에서 깨어 차창 밖을 둘러보았다. 그때 하얗게 변한 협곡 위 벼랑 끝에 사람 얼굴 같은 거대한 형상이 서 있었다. 세찬 눈발로 뒤덮인 산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저 둔중하고 신비한 자태의 형상은 대체 무엇일까? 나의 가슴은 뛰었다. 조금 있으니 눈보라는 언제 그랬냐 싶게 푸른 하늘과 밝은 햇살을 내주며 사라졌다.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순간이었다. ‘화이트 마운튼스’의 첫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 근엄하고 신비스러웠던 형상은 너새니엘 호쏜(Nathaniel Hawthorne)의 ‘큰바위 얼굴(The Great Stone Face)’ 에 나오는 그 바위였다.

보스턴에서 학기를 마치고, 나는 안무가로서의 활동을 위해 뉴욕으로 공간을 옮겼다. 미국 뉴욕에서 예술단을 이끌며 자립하기 위해 나는 힘든 나날을 보냈다. 그 당시 등산을 다닐 여유를 갖지 못한 것은 당연하였다. 마음속에는 그 산이 나를 부르며 손짓하고 있었다. 해가 바뀔 때마다 내가 세운 뜻을 정화하고 싶을 때면 산정 위로 솟는 해돋이가 몹시도 그리웠다. 생의 절박한 순간에 접했을 때 오히려 삶의 아름다움을 선사했던 ‘화이트 마운틴스’의 추억은 내게 잊지 못할 영감을 주었고, 그 이후로도 나의 예술 창작활동에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마운틴 리버티 (Mt.Liberty) 에서 바라 본 프랑코니아 노치. 이 정경 뒤로는 ‘큰 바위 얼굴’이 있는 화강암의 협곡이 있다.

 

그 후 여러 해가 지났다. 나는 ‘화이트 마운튼스’의 남서쪽 끝자락, 마이카(Maica)광산이 있는 어느 마을에 작은 ‘캐빈’을 마련하게 되었다. 자주 가고 싶었던 ‘화이트 마운튼스’의 봉우리들을 이제 마음껏 오르내릴 수 있게 되었다. 사계절의 순행, 달과 별의 차고 기움을 가까이에서 보고 느끼게 하는 ‘화이트 마운튼스’의 산행. 그날 나를 굽어보았던 그 ‘큰바위 얼굴’은 몇 년 사이 혹심한 날씨 탓으로 코와 눈의 일부가 떨어져나가는 수난을 겪었다. 그때 ‘큰바위 얼굴’은 나에게 무엇을 암시했을까 지금도 곰곰이 생각해본다. ‘화이트 마운튼스’의 추억과 함께 ‘큰바위 얼굴’은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새해인사를 건네며 아직도 그곳에 서있다.

 

‘큰 바위 얼굴’ 원래의 모습

 

마지막 날의 풍경

오며 가는듯한 느낌이 별로 없습니다.

단지 하루하루를 살아온 단절된 기억이 있습니다.

여느 날처럼 커피를 끓이고

능선 위로 깔리는 여명에 가슴이 찡합니다.

아름답습니다.

이것일까요? 한 해 동안 갈구해왔던 것이,

마음이 빈듯합니다

비어서 냉랭한 게 싫지 않습니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툭하니 생각이 머리를 칩니다.

일 년의 마지막 날.

커피를 홀짝이다 커튼을 아예 떼어버립니다.

꼭 보아야할 것이 이것인가 봅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솟아올라야 할 바로 이 무엇,

반짝이는 아침 해를 뒤로

겨울나무가 까만 골격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2004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카사 아시아 (CASA ASIA)의 공연포스터.

김선호 교수는 MBC 예술단과 뮤지컬 배우로 활동(캣츠, 코러스 라인, 동숭동 연가)하던 중 94년 미국으로 갔다. 무용 안무로 Boston Conservatory at Berklee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96년 <김선호 무용단(Sun Ho Kim & Dancers)>을 결성하여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안무가 겸 무용수로 현대무용과 오페라 무대에서 활동하였다. 현재는 ‘보스톤 칼리지 연극과 무용교수’로 재직 중이다. 즉흥 무용을 문학작품에 접목시킨 ‘멀티디스플리너리(Multidisciplinary:여러 장르에 걸친 종합적) 아티스트’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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