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남편은 전문 납관사입니다! (영화 굿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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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편은 전문 납관사입니다! (<굿바이>)

영화제작과 흥행이 갈수록 묘연한 가운데 요즘 재개봉 영화가 늘고 있다. <화양연화>, <러브레터>, <위플래쉬>, <패왕별희>, <인터스텔라> <다크 나이트>, <인셉션> 같은 쟁쟁한 제목이 우리를 다시 맞는다. 한 시대를 풍미했거나, 숱한 화제를 뿌렸던 작품이 대다수다. 그런 가운데 조용한 화제작 <굿바이>가 다시 상영되고 있다.

2008년 개봉되어 2009년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받은 <굿바이>. 1975년 구로사와 아키라의 <데르수 우잘라> 이후 일본 영화가 수확한 두 번째 쾌거로 기록된 작품이다. 2008년 14만 한국 관객을 끌어모은 <굿바이>의 당시 제목은 <굿, 바이>였다. 영화의 원제는 ‘출발’을 의미하는 영어 <Departures>였다.

<굿바이>의 제목은 아무래도 처음 제목 <굿, 바이>가 좋아 보인다. 좋아, 안녕히! 그런 뜻이 담긴 쉼표 하나의 의미가 강렬하게 다가온다. ‘굿바이’는 좀 더 익숙하지만, 가볍고 경쾌한 느낌을 주는 작별 인사다. 영화에서 다루는 주제와 소재가 죽음과 결부된 인물과 사건에서 발원하기에 다소 무거운 제목 <굿, 바이>가 나아 보이는 것이다.

출향과 귀향

머리 빠진 듯 객석 곳곳이 듬성듬성 비어있는 도쿄의 음악회. 주인공 다이고(모토키 마사히로)가 첼로 연주에 열중한다. 음악회는 나쁘지 않게 끝나지만, 악단 소유주는 그날 악단 해체를 선언하고 깊숙이 허리 숙인다. 거액을 들여 산 첼로를 원망스러운 눈길로 들여다보며 자책하는 다이고. 그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어 보인다.

청순하고 순종적인 아내 미카(히로스에 로코)에게 도호쿠의 야마가타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을 밝히는 다이고. 2년 전 고인이 된 어머니가 물려준 카페 딸린 이층집이 있는 고향. 다이고의 눈에 크게 들어오는 구인광고. ‘연령, 경험 무관! 정규직 보장!’ 면접을 본 즉시 합격을 선언하는 NK 에이전시의 사장 이쿠에이(야마자키 츠토무).

이렇게 <굿바이>는 아주 느릿하고 평온하게 서두를 열면서 객석을 인도한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 지점에서 다시 시작한다. 다이고에게 맡겨진 직분이 아주 희귀한 업종이기 때문이다. 염습과 납관. 고인의 시신을 정결하게 닦아서 관에 넣는 장례를 담당하는 장례지도사 업무다. 달리 말하면 ‘염습사’나 ‘납관사’가 될 것이다.

첼리스트 다이고는 진짜 납관사가 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다이고가 강물을 내려다보며 다리 위에 서 있다. 저 아래에서 연어가 회귀하고 있다. 자신이 태어난 강물의 드센 물살을 사력을 다해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들. 죽을 줄 알면서도 필사적으로 고향에 돌아와 산란하고 방정한 끝에 죽음을 맞는 연어를 보는 다이고의 심사는 어떨까?!

죽음의 형식과 남는 사람들

<굿바이>에서 우리는 다채로운 죽음의 형식과 대면한다. 그와 아울러 죽음을 맞이하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표정과 관계를 바라보면서 상념에 잠기게 된다.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을 맞이한 중년 사내가 이쿠에이와 다이고에게 불처럼 화를 낸다. 5분씩이나 늦었다는 이유로. 하지만 작별할 때 사내는 아주 고마워하면서 먹을 것을 내준다.

“오늘 아내는 지금껏 본 중에서 제일 예뻤습니다.”

사자의 몸을 유족들에게 보이지 않도록 유의하면서 정성스럽고도 깨끗하게 씻어내면서 시작되는 염습. 모든 동작 하나하나는 고도의 집중력과 예의가 동반한다. 영정사진 속 망자의 모습을 최대한 재현하면서 염습사는 마지막으로 망자의 머리를 빗기고 곱게 화장해준다. 그리고 시신을 관으로 넣으면 염습과 납관의 모든 작업이 종료된다.

영화가 죽음을 강력하게 그려내는 장면은 고독사 시신을 다루는 장면일 것이다. 사후 부패가 시작되고 나서야 비로소 발견된 시신을 처리해야 하는 보조 염습사 다이고. 그런 다이고를 사정없이 몰아치는 이쿠에이. 그에게 중요한 것은 망자를 보내는 지극히 인간적인 정리와 예의범절이다. 모든 주검을 공평하고 따뜻하게 대우하는 장인의 손길.

영화감독은 염습과정을 함께하는 가족들의 표정과 반응을 세심하게 화면에 담는다. 거기서 표출되는 그들의 감정과 관계가 객석의 눈물샘과 공감을 자극한다. 옛것을 지키려는 어머니와 탐욕스러운 아들의 갈등, 성적 정체성으로 인한 자살자 가족의 복잡한 심사와 대립, 사랑했던 어머니, 할머니와 작별하는 딸과 손녀까지.

장례에 담긴 일본의 풍습

가정에서 염습과정을 본 한국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거의 사라져버린 풍습이니까. 요즘 한국인 대다수는 요양병원이나 요양원 혹은 응급실에서 고단한 생을 마감한다. 예전처럼 식구들이 보는 가운데 집에서 영면에 드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고인의 사망 통지를 받고 나서야 모여드는 가족들과 이미 끝나버린 염습.

하지만 아직도 일본에서는 가족이 사망하면, 납관사를 집으로 불러 망자의 염습 일체를 맡긴다. 납관사는 염습과 납관작업을 주관하며, 이때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 모든 과정을 납관사와 함께한다. <굿바이>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과 인상적인 메시지는 염습과정에서 드러나는 살아남은 자들이 망자에게 보내는 예의와 작별이다.

드물기는 하지만 일본에서는 아직도 망자의 상여를 메고 가족과 지인들이 들길을 따라 만장을 펄럭이며 걸어가기도 한다. 오랜 풍습을 여전히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현대 일본인들의 정리가 새삼 궁금해진다. 무엇이 저들에게 낡고 오래된 습속을 지키도록 인도하는 것일까?! 당산나무 앞에 놓인 이끼 낀 바위 느낌이 난다.

돌 편지의 메시지: 생명과 순환

다이고는 납관사로 일하면서 점점 깊이 장례에 빠져든다. 하지만 그의 아내 미카는 생각이 전혀 다르다. 우연히 다이고의 돈벌이 수단을 알게 된 미카는 “만지지 마! 불결해!” 하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죽은 자들의 시신과 얼굴을 만진 손으로 자기 몸과 옷을 만지려는 남편을 향해 뱉어낸 강력하고도 본능적인 거부의 표현이다.

친구 어머니의 염습을 맡은 다이고의 모습을 뒷전에서 바라보는 미카의 눈길이 흔들린다. 망자를 보내는 최고의 예의와 엄숙함과 정갈함에 마음을 뺏기는 미카. 그런 아내에게 강변에서 작은 조약돌 하나를 집어 건네는 다이고. 여섯 살 때 아버지가 건네주었다는 돌 이야기를 꺼내며 자신을 버린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는 다이고.

단 한 번의 추억을 가슴 깊이 품은 다이고. 둥근 돌은 괜찮다는 뜻이고, 거친 돌은 마음을 돌아봐야 한다는 돌 편지에 담긴 사연을 듣는 미카. 연어의 귀환과 산란처럼 조약돌과 돌멩이는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아내 그리고 또 다른 생명으로 이어지는 순환과 대물림을 생생하게 표현한다. 거칠고 무례한 납관사들에게 미카가 당차게 말한다.

“제 남편은 전문 납관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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