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를 빛낸 의인들(16) 학생탑 밑에 숨은 김한동 선생의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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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동(가운데) 선생이 지인들과 1940년 12월 에 찍은 사진.

 

김한동(1915년생)은 1929년 광주고보에 입학하여 그해의 대시위에 참여하였다. 당시 김한동은 14세의 1학년 학생이었다. 그는 이 일로 퇴학을 받았다. 두 차례의 시위로 학생들은 큰 희생을 치렀다. 250여 명이 구금되거나 퇴학을 당했으니 교실이 텅 비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으로 퇴학을 당하고 감옥에 갔다 온 젊은이들이 이후 1930년대 우리의 역사를 이끌었다. 성진회의 주역 왕재일은 장흥에서, 최규창은 영암에서, 이기홍은 완도에서 농민운동에 뛰어 들었다. 물론 일제는 또다시 이들 운동가들을 대규모 검거, 투옥하였다. 한 자료에 의하면 1934년에서 36년까지 투옥된 독립투사들이 1만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독립투사들로 감옥이 넘쳐났던 것이다.

김한동 역시 1932년 전남노농협의회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되었다. 그런데 17세 나이의 어린 청소년이었던지라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김한동은 멈추지 않았다. 친구들과 함께 독서회를 만들어 헤겔 철학을 공부하였고 에스페란토어를 익혔다. 그 당시 약소국의 청년들이 찾는 언어가 에스페란토어였다.

김한동은 멈추지 않았다. 1937년 김한동은 적색노조를 결성하였고, 이듬해 1938년 구속되어 2년 형을 받았다. 24세의 일이었다. 김한동에게 민족 해방은 민중 해방과 다른 것이 아니었고, 독립운동은 노동운동과 다르지 않았다. 아니 가장 치열한 독립운동은 노동운동이었다.

김한동 선생이 직접 쓴 에스페란토어.
김한동 선생이 직접 쓴 에스페란토어와 번역문.

1940년 출옥한 김한동은 광주 히노데 자동차부에 취직하였다. 1942년 혼례를 올렸으며, 이듬해 장남 김승일을 얻었다. 1940년 출옥 이후 1945년 해방까지 김한동의 삶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이 정도이다. 그런데 1945년 8월 9일 소련이 극동으로 이동하자 일경은 김한동을 예비검속하였다고 한다. 며칠 후 석방되었다. 출옥하자마자 김한동은 아내에게 “조선옷을 달라”고 하였다고 한다. 조선인의 생활방식을 누리고 싶은 열망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해방은 오지 않았다. 애국지사들은 새 나라 인민공화국을 건설하고자 하였으나, 미군정청의 아놀드 소장은 인민공화국을 정면으로 부정하였다. 새파란 젊은이가 우리의 독립운동가들을 우롱하였다. “인공의 지도자들은 유치하고 어리석으며 타락한 사기꾼들”이라고 말이다. 애국지사들의 앞길은 어두워졌다.

1948년 8월 15일 들어선 대한민국은 정상적인 나라가 아니었다. 서북청년단과 친일파들이 대낮에 독립운동가들을 몽둥이로 두들겨 죽였다. 제주와 여순은 미군과 이승만이 벌인 계획된 학살극이었다.

1948년 10월 여순 사건이 발생하고 며칠 후 피신 중이던 김한동이 망월동의 집을 찾아왔다. 다음 날 아침 김한동은 망월동에서 광주로 걸어 나왔는데 공교롭게도 김한동은 시내에서 경찰에게 붙들렸다. 부인은 남편의 체포 사실을 몰랐다.

애국지사 김한동 선생.

1949년 어느 날 편지가 왔다. 5년형을 받고 김천 형무소에 와 있다는 편지였다. 1950년 어느 날 또다시 편지가 왔다. 3년형으로 감형을 받고 진주 형무소에 와 있다는 편지였다. 1년 반 후면 출옥을 할 것이니 아들을 잘 키우라는 당부와 함께.

6·25가 터지고 흉흉한 소문들이 들려왔다. 누군가는 경찰이 수감자들을 다 죽여 버렸다고도 했고, 누군가는 인민군이 진주형무소의 문을 열었다고도 했다. 아들 김승일은 1957년 진주로 수학여행을 갔는데, 그때까지도 아버지가 진주에서 총살당한 것을 모르고 있었다.

2002년 태풍 루사가 경남 마산 진전면을 할퀴고 지나갔다. 그 바람에 진전면에 매장되었던 유골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2004년 이 유골이 1950년 진주형무소 수감자들을 집단 처형하여 매장한 시신임이 밝혀졌다. 김승일은 아버지가 1950년 7월 이곳에서 처형되었음을 비로소 확인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슬픈 사연을 안 것은 김승일 61세의 일이었다.

 

 

 

 

 

 

 

 

30만부가 나간 '철학콘서트'에 이어 '역사콘서트'와 '촛불철학'을 출간했다. 지난 5년 동안 운사 여창현의 문집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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