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쉬는 갈색 털 뭉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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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엔 언제부턴가 갈색 털 뭉치가 돌아다닌다.

아주 옛날부터 함께였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나의 주변에 머무는 이 털 뭉치는 어느새 나의 생활 깊은 곳까지 침투했다. 이젠 너무나 자연스러운 존재이지만 가끔 새삼스럽게 이 녀석의 존재가 나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넌 어디에서 와서 나와 함께 있는 거니? 존재 자체가 특별한 이 녀석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고자 한다.

집에 있을 때 나를 졸졸졸 따라다니며 지켜보는 이 녀석. 밥 먹을 땐 식탁 바로 아래 자리를 잡고 앉아 인간들의 음식이 아래로 떨어지기를 간절히 기다린다. 내가 화장실에 가서 씻고 있을 땐 문 앞에 쪼그려 앉아 언제까지나 기다리다 가끔 너무 늦으면 문을 한두 번 긁기도 한다. 아무래도 “빨리 빨리 합시다, 거참.”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잽싸게 뛰쳐나와 내 앞에 와있는 이 녀석은 마치 몇 년 만에 만나는 마냥 이리저리 뛰고 소리를 내며 나를 반긴다. 고작 몇 시간 만에 보는 건데도 말이다. 책상에 앉아 일을 할 땐 내 발 밑에 자리를 잡고 몸을 말고 누워 온기를 전해주고 그냥 바닥에 앉아있을 땐 내 다리 옆에 자기의 갈색 털 뭉치 몸을 기대어 눕고 내가 침대에 누워 있을 땐 내 얼굴 옆 혹은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고 편히 쉰다. 나의 자세에 따라 자신의 포지션을 바꾸어 원하는 만큼의 접촉을 얻어내는 이 털 뭉치는 아무래도 애정결핍인가보다.

누군가 초인종을 누르면 세상은 다 자기가 지킨다는 듯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되도 않는 위협을 한다. 너무 짖어 안 되겠어서 방에 두고 문을 닫아두면 갈색 털 뭉치 속에 감춰져있던 긴 다리를 이용해 문을 부술 기세로 점프를 하며 항의한다. “너 네가 뭔데 날 판단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 갈색 털 뭉치는 인간과 같이 대소변 활동을 하는데, 언제부터인지 자신의 정해진 대소변 영역에 실례를 하는 걸 거부한다. 이것이 요즘 이 녀석에 대한 나의 가장 큰 의문점이다. 왜 배변 패드에 대소변 누는 걸 거부할까? 물론 추측은 가능하다. 언젠가 이 녀석이 볼일을 보는 걸 몰래 지켜봤다. 몸을 최대한 낮춘 상태로 한쪽다리로 몸을 지탱하며 아주 조심스럽게 볼일을 끝낸다. 오른쪽 다리는 들고 왼쪽 다리로 부들부들 버티면서 혹시나 몸에 묻을까 급히 소변을 싸고 뛰쳐나오는 이 녀석은 자신의 대소변이 더럽다는 인식을 갖게 된 게 틀림없다. 털 뭉치 주제에 눈치가 기가 막히게 빠르다. 그 때부터였을까. 배변패드는 쉽게 오염된다는 걸 인지하고 나서는 화장실 바닥 곳곳에 즉, 깨끗하고 순수한 자리를 찾아 급히 일을 보고 나오는 거다. 그래 너도 냄새나는 결과물을 피하고 싶겠지. 하지만 여기서 반전은 볼일을 다 본 후 녀석은 노란 액체가 묻은 자신의 소중한 부위를 핥으며 마무리를 한다. 아직 그 행위에 대한 문제점은 인지하지 못한 듯하다.

집에서뿐만 아니라 집 밖에서도 이 녀석의 특이함은 계속 나타난다. 언제 어디서라도 이 털 뭉치를 기쁜 상태로 만드는 손쉬운 방법이 있다. 간식과 산책이다. 이토록 단순한 생명체가 또 있을까? 아무리 우울하고 화나고 삐져도 간식 하나에 세상 다 가진 듯 방방 뛰는 이 녀석. 이렇게 단순하면 사는 게 참 행복하겠구나 싶다. 이 털 뭉치가 가장 좋아하는 산책 장소는 단연코 공원이다. 털 뭉치가 끝나는 가장 앞부분에 적극적으로 튀어나와 있는 작고 검은 색이며 콩 두개를 합친 것과 비슷한 크기의 구멍이 크게 나있는 코는 털 뭉치의 생명과도 같다. 이 코를 사용해 물체와 생명체를 간파한다. 먹을지 말지 결정내리는 것도 코다. 코를 사용해 전에 자신과 좋은 경험을 쌓았던 인간인지 아닌지 기억해낸다. 코는 단연코 이 녀석에게 명령을 내리는 장군 같은 존재다. 그렇기에 코를 즐겁게 할 수 있는 공원은 최적의 산책 장소다. 나무 냄새, 흙냄새, 다른 생명체가 싸고 간 배변 냄새, 가끔가다 떨어져있는 인간의 음식 냄새, 바람, 공기, 햇살, 새소리, 나뭇잎 소리, 지나다니는 인간들 소리…… 오감만족이란 게 이런 거겠지.

산책을 할 때면 이 녀석은 코 장군님을 앞세워 나를 이끈다. 내가 털 뭉치를 산책시키는 건지, 털 뭉치가 나를 산책시키는 건지. 그러다가도 내가 몰래 숨으면 예전엔 기겁을 하고 나를 찾아 이리 뛰고 저리 뛰었는데, 이젠 장난인 걸 눈치 채고 여유롭게, 심지어 즐기며 나를 찾아다닌다. 예전엔 나를 찾으면 까무러치게 좋아하더니 이젠 나를 찾고 눈을 한번 맞추고 꼬리 한번 흔들어주고 자기 갈 길 간다. 머쓱함은 내 몫이다. 그럼에도 나를 찾아 반갑게 눈을 맞추는 이 갈색 생명체를 보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이 녀석의 산책 일과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영역 표시다. 이 털 뭉치는 자신의 영역을 소변으로 표시하는데 최대한 많은 영역에 자신이 왔다 감을 알리기 위해 소변을 아끼며 조금씩 분출한다. 가끔은 한 두 방울만 흘려내는 걸 보면 녀석의 기술이 대단함에 박수를 쳐주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미 많은 곳에 영역을 표시해 더 이상 소변이 남아 있지 않음에도 이 녀석은 천연덕스럽게 한쪽 다리를 들고 마치 노란 액체가 몸에서 나오는 것 마냥 상상을 하며 영역 표시 하는 ‘척’을 한다. 인간의 명예욕 못지않게 이 녀석의 욕망도 상당한 듯하다. 그런 녀석을 기다려주며 집으로 무사히 데리고 오는 건 꽤 귀찮은 일이다.

그렇게 집에 들어오면 잽싸게 화장실로 데리고 들어가 발과 얼굴을 닦이고, 말리고 화장실 문 밖에 내려놓는다. 그러면 자신이 하기 싫은 씻기를 잘 참았으니 빨리 당장 냉큼 간식을 주라며 화장실 문 앞에서 나를 뚫어질 듯 쳐다본다. 만약 계속 주지 않으면 한숨을 쉬며 내 주변을 계속해서 빙빙 돌며 맴돈다. 결국 난 항상 이 털 뭉치의 의지에 백기를 들며 간식을 꺼내든다.

이 녀석의 감정 표현은 무척이나 다양하고 꽤 정확하다. 기분이 좋을 땐 코 장군님에서 가장 먼 반대편 끝 부분에 달린 긴 꼬리를 흔들며 몸을 이리저리 움직인다. 정말 기쁘고 흥분될 땐 점프를 하고 소리를 내기도 한다. “꺄앙!” 대충 이런 소리다. 정말이다. 가끔 내 다리에 올려서 눕히고 얼굴을 마사지하듯 만져주면 애교를 부리며 자신의 양쪽 눈을 앞 두 다리로 쓸어내린다. 마치 고양이가 앞발을 핥는 것과 비슷한 행동이다. 차이가 있다면 이 녀석은 관심 받으려는 목적으로 그 행위를 한다는 것. 이 털 뭉치는 관종이 틀림없다.

한편 심기가 불편할 땐 초점 없는 눈을 하고 혀를 날름날름 거린다. 긴 꼬리는 축 가라앉아 있고 몸에는 힘이 없다. 천천히 걸어서 자신의 동굴 집으로 기어들어간다. 내가 자신을 두고 외출하려는 걸 눈치 채면 앞발을 앞으로 쭉 빼고 사이에 얼굴을 처박은 상태로 나를 노려본다. ‘설마 나 두고 갈 거야? 아니지? 나 데리고 갈 거지?’ 하는 표정이다. 잘못해서 혼을 내려고 할 땐 눈치 빠른 이 녀석은 잽싸게 식탁 의자 밑으로 들어가 숨는다. 의자 밑에 앉아 혀를 날름거리며 빨리 이 상황이 종결되기를 간절히 기다린다. 하지만 내가 크게 화가 나는 경우엔 털 뭉치를 의자 밖으로 빼내는데 그땐 온 힘을 다해 ‘의자’ 보호소에 머물고자 발버둥을 친다. 그럴 땐 얘가 이렇게 기운이 좋았나 싶다.

이 밖에도 이 녀석에 대한 나의 관찰에 대한 기록은 끝도 없이 이어질 수 있다. 지금껏 한 공간에서 공존한 시간이 5년 3개월 정도가 되는데, 앞으로 더 많이 쌓여갈 이 털 뭉치에 대한 나의 관찰기록은 나 스스로 생각지 못할 만큼 풍부할 것이다. 나와 이 작은 털 뭉치는 언제부터인가 같은 하늘 아래 함께 숨 쉬는 것이 당연한 사이가 되었다. 나의 삶에서 이 아이가 사라진다는 건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한 날의 선물처럼 나에게 온 이 아이는 이젠 나의 일상이 되었다. 힘들 때, 기쁠 때, 지쳐 있을 때, 힘이 넘칠 때, 화날 때, 명상 할 때, 책을 읽을 때, 웃을 때, 울 때, 밥 먹을 때, 티비를 볼 때, 운동할 때, 집에 들어올 때, 친구를 만날 때, 강의실에 수업하러 갈 때, 버스를 탈 때, 화장실에 갈 때, 요리할 때, 청소를 할 때, 노래를 들을 때, 멍 때리고 누워 있을 때,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쓸 때도, 이 작고 소중한 털 뭉치는 나의 공간에서 함께한다. 자신만의 특별한 방법으로 나의 일상을 채워준다.

나에게 이 아이는 뭘까,

이 아이에게 난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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