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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이거 가져가요!”

A 선생님이 봉투를 건네줬다. 느닷없이 받은 선물이라 제대로 확인하지도 못한 채, 집에 와서 겨우 살펴보았다. 봉투에는 감이 가득 담겨있었다. 가을햇살을 양식 삼아 주황색 빛깔을 마음껏 품은 감이었다. 감에는 여기저기 거뭇한 상처가 묻어있었다. 아마 지난여름 태풍을 이겨낸 영광의 상처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봉투 속에서 감을 하나 끄집어내서 한동안 바라보았다. 감을 손으로 만져본 지 꽤 오래된 듯하였다.

십여 년도 더 된 때가 생각났다. 사람과 자동차로 붐비는 도시를 떠나, 눈앞에 펼쳐진 거라곤 그다지 높지 않은 산뿐인 시골로 이사를 갔던 때였다. 콘크리트로 산맥을 대신했던 도시의 풍경과는 아주 달랐다. 나이가 들면 전원생활을 희망한다던 어른들의 소망이 이해가 안 갔던 나이라 그런지, 나는 줄곧 그 콘크리트 산맥을 그리워했다.

그해 가을, 어느 땐가 감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나무에 감이 열린 것을 제대로 본 적이 있었나 싶었다. 얇디얇은 나무에도 그리 많은 감들이 주렁주렁 열린 모습은 꽤 생소했다. 그 생소함에 무언가 홀린 듯, 나는 저것을 다 따야겠다고 생각했다. 부러진 대나무를 주워 사정없이 감을 때렸다. 곤장질 같던 대나무 타격에 감이 하나 둘 바닥에 떨어졌다. 떨어진 감을 주워보니 대나무에 맞아 살갗이 터져있었다. 시장에 내다 팔 것도 아닌데도 그런 감들은 쓸모가 없다는 걸 느꼈다.

쇠 젓가락 한 쌍을 대나무 끝에 테이프로 칭칭 감아보았다. 그리고 젓가락 사이에 감 꼭지부분을 끼어서 빙글빙글 대나무를 돌렸다. 그렇게 하더니 톡하고 감이 바닥으로 떨어지거나, 쇠 젓가락에 매달려 안전하게 내 손안에 들어왔다. 그런 방법으로 하나의 감나무에서 감을 모조리 따내면 또 다른 감나무를 찾았다. 그렇게 나는 감을 계속해서 땄다. 집에 모아놓은 감만 해도 족히 백 개는 되는 듯했다. 그 감들을 보며 나는 흡족해했다. 당장에 먹을 수도 없는 떫은 감이었지만, 그저 만족스러웠다.

감을 따면서 마음의 풍족함을 느꼈다. 감을 따는 행위는 허기진 마음을 메우기 위한 행위였던 셈이다. 그 행위는 삶의 터전을 떠난 아이가 새로운 터전을 몸으로 익히고 받아드리기 위한 행위였다. 지금에 와서야 그 시절 내가 왜 그렇게도 감을 따댔는지 알 것 같다.

하늘 아래서 가을을 마음껏 즐기다가 감이 주렁주렁 매달린 감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나와 감나무가 연결된 추억의 흔적이 남아있기에, 해년마다 나는 감나무를 보며 미소 지을 수 있는가보다.

2020.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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