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돌길에서 만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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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문학면의 산음마을 독수정에서 시작하는 무돌길 담양 구간. 함충이재와 경상저수지를 지나 백남정재를 넘고 나면 탁 트인 시야와 함께 무동마을이 있다. 몇 년 전에 돌아가신 만주댁 할머니가 기어이 중국에서 돌아와 마지막 삶을 보냈던 할머니 친정마을! 지금도 뚜렷하게 기억하는 할머니의 주름진 미소가 힘들게 고개를 넘어온 사람들을 혈육처럼 반기는 듯하다.

할머니는 가난 때문에 10대 어린 나이에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인 남편을 만나 자식을 낳고 삶의 대부분을 그곳에서 사셨다. 그러다가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이라도 고향땅에서 살다 마무리하겠다는 일념으로 혼자서 고국의 친정마을을 찾아오셨다. 이때부터 할머니는 만주에서 시집온 것도 아닌데 만주댁이라는 호칭을 얻게 되었다.

이 할머니를 생각하면 문득 다문화가정과 그 학생들이 떠오른다. 중국에서의 할머니는 요즘 말로 다문화가정이었으니까. 광주에는 현재 3,600명 가까운 다문화학생들이 있는데 해마다 500명 이상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이분들이 모든 게 낯설고 생소한 환경에 적응하려는 모습에서 젊은 시절의 할머니가 거꾸로 읽혀진다.

다문화학생들은 엄연한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아 마음이 편치 않다. 한국 생활 5,6년이 지났는데도 이런저런 이유로 한글을 충분히 터득하지 못하는 엄마가 젖은 눈길로 아이를 바라보며 한숨을 지을 때는 가슴이 먹먹해진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만큼은 제대로 키우고 싶은데 현실이 여의치 않아 너무도 가슴 아프다고 한다.

“한글을 제대로 해득하지 못한 엄마가 한글로 된 가정통신문을 받아들고 얼마나 난감해 하겠습니까? 그러니 가정통신문을 이중으로 보냅시다. 한국어와 함께 엄마 모국어로 번역된 두 종류로 말입니다. 엄마가 아이의 학교생활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학교와 충분히 의사소통이 되어야만 하니까요.”

결국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도움을 받아 어렵게 시작한 것이 이중언어 번역 서비스였다. 전국 최초이었는지 아닌지는 몰라도 이중언어로 된 가정통신문을 받아들고 기뻐하는 다문화가정 엄마들의 표정을 생각하면 뒤늦은 감이 있어 오히려 미안한 생각까지 들었다.

지금 우리 곁에 있는 다문화학생들도 우리 사회의 소중한 인적 자산이다. 다문화 학생들이 우리 사회의 훌륭한 인재로 성장해서 정서적으로 친숙한 외가 나라와 경제, 문화 교류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면 우리나라 국익에도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의 다문화정책을 보면 아직도 아쉬운 점이 많다. 특교 사업 위주의 일회성 사업이 많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정책이 흔들림 없이 추진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다행스럽게도 우리시교육청이 다문화교육 지원계획을 마련해서 다문화학생 교육활성화에 적극 나섰다. 무엇보다도 학교구성원들의 다문화감수성 향상과 전문성 제고를 위한 다문화교육 연수 확대, 다문화 친화적 교육환경 조성과 다문화학생 맞춤형 교육지원을 위한 정책학교 운영 등은 크게 환영할 만하다.

생각해 보면 피눈물 나는 삶 아니겠는가. 그 성격이 조금 다르긴 해도 이국 만 리 낯선 땅으로 우리네 누님, 삼촌들이 간호사나 광부로 갔다가 그곳에 정착해서 살아가는 분들도 상당수 있지 않은가. 타국 땅에서 온갖 궂은 일 마다하지 않은 채 억세게 살아온 분들의 땀과 눈물을 생각해 보면 다문화가정과 학생들을 결코 남의 일로만 받아들일 일은 아니다. 학생들과 무돌길을 함께 걸으며 만주댁 할머니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다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또 다른 이웃들의 삶을 통해 나를 좀 더 이해하는 길이기도 하니까.

(키우리202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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