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닮은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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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만나는 나무들을 보면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불과 며칠 전보다 확연히 달라진 그 눈부신 성장의 모습을 눈으로 똑똑히 확인시켜 주기 때문이다. 살인적인 폭염 앞에서 물과 그늘을 찾아 피하기에 급급했던 사람들과는 달리 자신에게 주어진 천금 같은 때를 놓칠세라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노력해 온 그 모습이 장하다. 실로 이 순간만큼은 나무의 위대함을 경건한 마음으로 높이 사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하루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나무들 앞에서 나는 저만큼 매일매일 성장하고 있을까? 아닌 척하지만 심연 깊숙이 감추어진 덜 자라고 부족한 아이들이 아직도 내 속에는 얼마나 많은가! 때로는 주어진 상황을 이기지 못하고 불쑥불쑥 못난 ‘나’가 튀어나오면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후회가 뒤따르며 얼굴이 붉어지곤 한다. 흰머리가 하나 둘씩 늘어가는 나이에 제각각의 나이로 성장이 멈춰 서 있는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일은 결코 유쾌하지가 않다. 그때마다 몹시 부끄러워질 뿐이다. 이 점에서 아이들과 나무는 나를 비추는 신선한 거울이다.

한 달 간의 방학을 마치고 등교하는 학생들을 교문에서 맞는다. 가정으로 돌려준 한 달이란 시간은 아이들을 또 얼마나 성장하게 했을까? 날로 몸과 마음이 부쩍부쩍 성장하는 우리 아이들을 보면 나무들과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의 성장은 옆에서 느끼고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오지다. 책을 읽고 정겨운 사람들과 산과 바다를 찾으며 학교에서 다해 주지 못한 자양분을 오롯이 섭취했나 보다. 1학기 내내 머리에 잔뜩 멋을 부리던 아이는 오늘 마치 군에 입대할 것 같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남의 간섭에 앞서 스스로 자기 용모를 가꿔가는 모습이 대견스럽다. ‘어른들의 기준을 잠시 유보한 채 조금 인내하며 기다렸더니 저 알아서 하는구나!’

몇 년 전 여름방학. 복지관의 협조를 받아서 거동이 불편한 독거어르신들을 모시고 바닷가에 다녀온 아이들이 있다. 손자 손녀쯤 되는 중학생 아이들이 휠체어를 밀며 정성을 다하는 모습에 한 할머니의 감정이 북받쳤다. “내가 바닷바람을 쐰 게 언젠데 내 자식들도 못하는 일을 이리 해주다니…….” 눈시울을 적시는 할머니와 위로하는 아이, 그리고 이를 지켜보며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함께 울었단다.

이렇게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돌아온 아이들이 반갑고 또 고맙다. 이런 아이들과 제일 먼저 무엇을 할까? 협의 끝에 소록도에서 푸른 눈의 두 천사로 잘 알려진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생생한 활동이 담긴 영상물을 전교생이 함께 보기로 했다. 이어 자신들의 느낌과 함께 두 분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는 내용이 담긴 편지쓰기 시간을 가졌다. “너무 훌륭해요. 남의 나라에서 평생을 병과 외로움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고 막 눈물이 났어요.”

적막했던 학교가 학생들로 다시 활기가 넘친다. 역시 학교의 주인은 학생인가보다. 주어진 여건을 타박하지 않고 성장을 게을리 하지 않는 나무들! 우리 아이들이 이런 나무들처럼 자신의 빛깔과 향기를 갖춘 성숙한 어른들로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성장해 갔으면 좋겠다.

녹동 바닷가에서 웬만한 목소리로 부르면 들릴 듯한 소록도, 그곳은 천국이 아닌 한과 눈물로 점철된 ‘당신들의 천국’ 아니었던가. 그곳에서 평생을 사랑과 헌신 그 자체로 살다가 어느날 홀연히 편지 한 통 남기고 고국으로 돌아간 두 분! 꼭 이분들께 노벨평화상이라는 겸손한 선물이 흐뭇하게 주어지기를 우리 아이들과 함께 기원하고 또 기원한다. 벌써 우리 학생들의 간절한 소망이 담긴 500통 가까운 편지 상자가 소록대교를 건넜을 것이다. 아울러 민주·인권·평화의 도시에서 호흡하며 두 분의 삶에 깊이 물든 우리 아이들의 가슴 속에도 또 다른 평화상의 씨앗이 소중하게 움터 자라나리라.

(남도일보 화요세평 2019.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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