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도 재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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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부끄러움은 있기 마련이다. 부끄러움이 전혀 없다면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고 부끄러움 그 자체를 합리화하자는 말은 아니다. 부끄러움은 자신의 내면에서 울려 퍼지는 양심의 발로이다. 우리는 부끄러움이 있고 그 부끄러움을 부끄러워할 줄 알기 때문에 사람이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누가 봐도 훤히 그 속내가 들여다보일 정도의 부끄러운 짓을 하고서도 부끄러운 줄조차 모른다면 맹자의 말처럼 이미 사람이라 할 수 없다.

한자에 부끄러움을 뜻하는 ‘恥’가 있다. ‘耳’와 ‘心’을 합친 회의문자이다. 맨 처음 ‘부끄러움’이라는 뜻의 글자를 만들려고 했던 사람이 숱한 생각과 생각을 거듭한 끝에 ‘바로 이거야’ 하며 발견한 글자였으리라.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그 탁월한 발상이 놀랍다. 사람이 자신의 양심에 귀를 기울이면 무슨 생각이 떠오를까? 아마도 자신이 살아오면서 저지른 이런저런 잘못 때문에 남은 몰라도 자신의 마음속 장벽을 뚫고 송곳처럼 불쑥 솟아나는 것, 이것이 바로 ‘부끄러움’이라고 무릎을 치며 규정하지 않았을까?

법구경 ‘독신품(篤信品)’에 ‘부끄러움도 또한 재산이다(慚愧亦財)’라는 말이 있다. 참으로 그렇다. 잘못은 잘못 그 자체도 문제지만 잘못하고서도 잘못한 줄 모르고 더구나 부끄러운 줄도 모를 때가 더 큰 문제다.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은 최소한 똑같은 부끄러운 짓은 하지 않거나 조심하겠다는 말이다. 그래서 ‘부끄러움도 재산이다’라는 말은 하나의 교훈적 명언이다. 반성적 자아가 제대로 작동함으로써 그만큼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때 부끄러움은 과거의 시간과 공간에 유폐되어 있는 굴욕의 정신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 된다. 그것이 현재와 미래에 활성화되어 나의 현재와 미래를 지켜줄 수 있는 긍정적 기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는 윤동주 시인의 순결한 양심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자신의 부끄러움을 알고 인간으로서 지켜야할 기본적인 삶의 자세는 지키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순진한 생각인지는 몰라도 우리 어른들이 초등학교 수준의 바른생활 규범만 충실히 지킨다 해도 세상이 이토록 혼란스럽지는 않을 듯하다. 우리 사회에는 몰라서가 아니라 버젓이 알고서도 저지르는 뻔뻔한 잘못이 얼마나 많은가.

곳곳에서 부끄러움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가 부끄러움을 알고 그것을 개인과 사회의 소중한 재산으로 삼을 줄 아는 사회는 건강하다. 최근 존경받는 한 정치인의 죽음이 우리 사회에 예사롭지 않은 충격을 던져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새삼 ‘더불어 살아가는 정의로운 민주시민 육성’이라는 광주교육의 지표가 더 큰 울림과 공감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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