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표현’에 내재하는 은유와 오리엔탈리즘

[갈등은 전쟁], [이성은 위], [서양은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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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익주 (한겨레말글연구소)

2005년 무렵 이른바 ‘된장녀’가 나오고 난 뒤 주로 젠더 갈등에 참여하는 남성과 여성은 온라인상에서 수많은 혐오표현으로 서로를 공격해 왔다. 남성을 혐오하는 표현은 ‘한남충’ ‘한남유충’ ‘냄편충’ ‘애비충’ ‘남동충’ ‘오랩충’ ‘밥줘충’ ‘싸튀충’ ‘꽁치남’ ‘상폐남’ ‘폐저씨’ ‘오물남’ ‘걸레좆’ ‘쩍벌남’ 등이 있고, 여성을 혐오하는 표현에는 ‘된장녀’ ‘김치녀’ ‘성괴녀’ ‘상폐녀’ ‘무개념녀’ ‘개똥녀’ ‘오크녀’ ‘처녀충’ ‘낙태충’ ‘걸레녀’ ‘껌딱지’ ‘개똥녀’ ‘군삼녀’ ‘신상녀’ ‘명품녀’ ‘루저녀’ ‘패륜녀’ ‘(지하철)반말녀’ 등이 있다.

이러한 혐오 표현은 거의 대부분 ‘명사+명사’ 구조로 된 합성어(예: ‘애비충’ ‘오물남’ ‘된장녀’ ‘김치녀’)이다. 일부 표현은 ‘싸고 튀는 남자’+‘해충’에서 나온 ‘싸튀충’이나 ‘‘밥 줘!’라 말하는 남자’+‘해충’에서 나온 ‘밥줘충’, ‘한국남자+ 해충’에서 나온 ‘한남충’, ‘상장 폐지+남자’에서 나온 ‘상폐남’, ‘폐물+아저씨’에서 나온 ‘폐저씨’. ‘신상품+여자’에서 나온 ‘신상녀’, ‘군복무는 삼년을 해야 한다고 말한 여자’에서 나온 ‘군삼녀’, ‘성형+괴물+여자’에서 나온 ‘성괴녀’와 같이 줄임말의 형식이다. 줄임말의 의미는 본래 표현의 의미를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줄임말의 생성에는 [부분으로 전체를 대표함] 환유가 작용한다.

남성은 해충? 여성도 해충?:

[이성은 위], [남성/여성은 하등동물(해충)], [남성/여성은 오물(페물)]

‘비하’와 ‘조롱’, ‘모욕’의 의미를 전달하는 이러한 혐오 표현들이 다 비유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가령 ‘개똥녀’는 “지하철에서 애완견의 변을 치우지 않고 그냥 가버린 여자”, ‘패륜녀’는 “패륜적 언행을 하는 여자”, ‘반말녀’는 “존대법을 사용할 상황에서 반말을 한 여자”, ‘루저녀’는 “키 180센티미터 이하의 남자를 루저(loser)라고 말한 여자”, ‘신상녀’는 “신상품만을 즐겨 사는 여자”, ‘명품녀’는 “(자신의 능력에 맞지 않게) 명품을 좋아하는 여자”, ‘쩍벌남’은 “시내버스나 지하철에서 다리를 쩍 벌리고 앉는 남자 승객”, ‘개똥남’은 “지나가는 여성들의 얼굴에 화풀이 삼아 개똥을 바른 남자”를 뜻한다. 물론 페미니스트들은 역사적으로 남성들이 주도적으로 만든 것이라며 사회적 규범 그 자체를 거부하고 있지만, 이러한 행위는 대개 사회적 규범에 어긋나는 비이성적인 행위로 간주된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계몽주의 이후의 세계관에서는 인간이 이성적인 사유 능력 덕택에 동물과 식물, 물리적 환경을 통제하고 지배한다고 생각한다. 통제하는 사람(예: 왕)은 통제를 받는 사람들(예: 신하들)보다 우월적인 지위에 있고 공간적으로 더 높은 곳에 위치한다. 이러한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은유적으로 [통제는 위/통제 받음은 아래]이고 [이성은 위/비이성은 아래]이다. 얼핏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보이는 ‘개똥녀’나 ‘패륜녀’ ‘반말녀’ ‘신상녀’ ‘명품녀’와 같은 표현의 ‘비하’와 ‘조롱’ 의미에는 바로 이 두 은유가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사회적 규범을 지키는 상식적인 남성과 여성을 지칭하는 ‘개념남’과 ‘개념녀’도 역시 이 은유적 사고의 언어적 발현이다.

성소수자나 이주노동자, 재난 피해자, 빈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를 조롱하거나 비하하는 다른 유형의 혐오 표현과 마찬가지로, 젠더 갈등에서 사용하는 비유적인 혐오 표현은 대부분 개념적 은유 [남성/여성은 하등동물]와 [남성/여성은 무가치한 물건]에서 언어적으로 발현되는 사례들이다. 구체적으로 ‘한남충’ ‘한남유충’ ‘냄편충’ ‘애비충’ ‘남동충’ ‘오랩충’ ‘밥줘충’ ‘싸튀충’ 등은 남성을 해로운 벌레로 간주하는 인식하는 [남성은 해충] 은유에서 조어(造語)한 표현이고, “공짜를 좋아하고 가성비를 따지는 치졸한 남자”을 뜻하는 ‘꽁치남’이나 “심약한 남자”를 뜻하는 ‘개복치남’, “근육이 없는 홀쭉한 남자”를 뜻하는 ‘멸치남’은 남성을 어류로 간주하는 은유 [남성은 어류]에서 명명한 표현이다. 반면 ‘상폐남’이나 ‘폐저씨’ ‘오물남’ ‘걸레좆’은 남성을 무가치한 물건의 전형적인 사례인 폐기처분된 물건이나 오물(汚物)로 간주하는 은유 [남성은 무가치한 물건]의 언어적 발현이다. 이와 유사하게 여성을 혐오하는 비유적인 표현은 주로 [여성은 해충] 은유(예: ‘처녀충’ ‘낙태충’ ‘맘충’ 등)과 [여성은 괴물] 은유(예: ‘성괴녀’ ‘오크녀’ 등), [여성은 오물](예: ‘걸레녀’ ‘껌딱지’ ‘개똥녀’ ‘상폐녀’ 등)의 언어적 발현이다.

근래에 들어서 동물보호운동단체에서 ‘동물권리’라는 개념을 주창하고 이와 관련한 다양한 서적이 나오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인간은 자신이 지구상의 어떤 종(種)보다도 우월하며 따라서 모든 종(種)을 통제할 능력을 부여받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세계관에서는 당연히 인간이 필요하다면 다른 종(種)의 생명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죽일 수도 있다. 이 세계관이 상대를 하등동물이나 해충, 폐물, 오물로 보는 은유적 사고와 결합하면, 젠더 갈등이라는 전쟁을 수행하는 남성과 여성은 상대를 아무런 죄책감이나 양심의 가책 없이 상대를 마음껏 비하할 수 있다. 실제로 “한남충들은 토막 쳐서 개밥으로 던져주자”와 같은 표현을 너무나도 쉽게들 사용하고 있다. 그들의 마음속에서 상대는 인간이 아니라, 마음대로 죽여도 되는 해충이고 하등동물이고 이미 더 이상 쓸 수 없는 오물일 뿐이기 때문이다.

[남성/여성은 하등동물(해충)] 은유와 [남성/여성은 오물(폐물)] 은유는 상대의 ‘인간으로서의 정체성’ 그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이런 연유에서 나는 아무리 젠더 갈등이라는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해도 ‘한남충이나’ ‘걸레녀’, ‘상폐남’이나 ‘상폐녀’와 같은 표현을 추방해야 한다고 믿는다.

‘된장녀/김치녀’와 ‘한남충’에서 숨어 있는 오리엔탈리즘의 그림자

[서양은 위]와 「동양은 아래] 은유

‘된장+녀(女)’의 결합인 ‘된장녀’와 ‘김치+녀(女)’의 결합인 ‘김치녀’의 글자 그대로의 의미인 “된장으로 만든 음식을 좋아하는 여자”와 “김치를 좋아하는 여자”는 비하나 비난, 모욕의 어감을 담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된장’과 ‘김치’는 더 이상 사용 가치가 없어 폐기해야 할 물건이나 악취를 풍기는 오물도 아니라 오히려 한국인들의 식단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고유의 식품으로 여전히 가치 있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된장녀’와 ‘김치년’는 각각 2005년과 2011년 무렵부터 여성을 비하하는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국립국어원의 ‘우리말 샘 사전’은 ‘된장녀’를 어휘 목록으로 인정하고 ‘명품 소비를 지향하며 과시형 소비를 일삼는 여성을 비하하는 말’이라고 간단하게 정의하고 있다. 온라인백과사전 나무위키는 ‘스타벅스 커피를 즐겨 마시고 경제활동을 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돈으로 해외 명품을 구입하고 돈과 외모, 사회적 지위를 두루 갖춘 남성과의 연애와 결혼을 목표로 삼는 것’을 ‘된장녀’의 특징으로 서술한다. ‘김치녀’는 아직 ‘우리말 샘 사전’의 어휘 목록에 올라와 있지 않다. 나무위키는 ‘김치녀’에 대해 대략 ‘남자에게 의존하면서도 남자를 하대하고 도구처럼 부리는 이기적인 행태를 일삼는 개념 없는 여성’이라고 정의하고, 그 특성을 책임과 의무는 외면한 채 권리 타령만 하며 평소에는 여성 우선을 외치다가 불리할 때만 남녀평등을 외치고 남자를 재력과 학벌, 외모로만 보며 남자를 현금자동인출기(ATM) 취급을 한다고 제시한다. ‘김치녀’도 ‘된장녀’와 거의 유사한 비유적인 비하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

영어 사용자들이 “돈을 노리고 남자와 교제하거나 결혼하는 여자”를 gold digger로 비난하는 것과 유사하게, 한국에서는 남성들에게 의존해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여성을 ‘된장녀’와 ‘김치녀’로 명명해 그들의 이기적인 행태를 비난하고 있다. 바로 비하의 근거는 ‘개념 없음’이다. 그렇다면 ‘개똥녀’ ‘패륜녀’ ‘명품녀’ ‘신상녀’ ‘개똥남’ ‘쩍벌남’ 등과 마찬가지로 ‘된장녀’와 ‘김치녀’의 비하 의미도 [이성은 위]와 [비이성(=개념 없음)은 아래] 은유에 근거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일부 여성들의 염치없고 개념 없는 허영심을 비난하기 위해 이러한 이 두 낱말을 조어한 남성들이 왜 하필 한국과 한국인을 대표하는 음식인 ‘된장’과 ‘김치’를 선택했는지는 [비이성(=개념 없음)은 아래] 은유로 설명되지 않는다. 왜 그들은 ‘라떼녀’나 ‘피클녀’라 조어하지 않고 ‘된장녀’와 ‘김치녀’라 명명했을까?

이러한 조어 방식은 서양인들이 동양과 동양인들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구성해 우리들의 마음속에 심어놓은 일련의 고정관념인 오리엔탈리즘이 여전히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달리 말하면, 오리엔탈리즘이 ‘된장남’과 ‘김치남’을 조어한 남성들이나 이 표현에 동조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일종의 인지적 무의식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프레임에서는 서양(인)을 대표하는 특성은 문명화, 강함, 성숙함, 합리성, 안정성 등인 반면, 동양(인)을 대표하는 특성은 야만, 허약, 미성숙, 비합리성 등이다. 어떤 문화에서나 이러한 특성은 흔히 물리적인 수직성 개념의 관점에서 은유적으로 이해한다. 은유적으로 [강함은 위]이고 [약함은 아래]이며, [성숙은 위]이고 [미성숙은 아래]이며, [문명은 위]이고 [야만은 아래]이며, [합리성은 위]이고 [비합리성은 아래]이다. 오리엔탈리즘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서양은 위]이고 [동양은 아래]이다.

이 프레임의 그림자는 급진 여성주의자들이 한국 남성 전체를 벌레에 빗대어 비난하는 ‘한남충’에도 짙게 드리워져 있으며, ‘한남충’의 열등함과 ‘갓양남’의 우월함이라는 의미적 대립에서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외모나 성격, 성기 크기 등 모든 측면에서 서양 남성이 한국 남성보다 우월함을 찬양하는 ‘갓(god)+서양 남성’의 줄임말 ‘갓양남’도 역시 [서양은 위]와 [동양은 아래] 은유의 언어적 발현이다.

점점 격화되어 가는 ‘페미니즘 전쟁’의 와중에서 이 글을 쓰는 목적은 어느 편이 옳은가 그른가를 말하거나, 이 전쟁의 사회적·경제적 근원이 무엇인가를 밝히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언어학자인 나의 역량을 넘어서는 일이고, 다만 젠더 갈등에서 터져 나오는 혐오 표현들의 기저에 인지적으로 무의식적인 어떤 은유들이 깔려 있는지를 명시적으로 밝혀내고 싶었다. 아무리 무한경쟁과 승자독식, 각자도생의 신자유주의 정글을 헤쳐가고 있는 현 시대의 남성과 여성은 [전쟁으로서의 논쟁(젠더 갈등)]의 당사자로서 은유적으로 ‘적(敵)’일 수는 있으나 결코 글자 그대로 ‘실재의 적’일 수 없다. 어느 한쪽이 완전히 사라져 ‘갈등’조차 존재할 수 없는 세상이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아니지 않은가? ‘현재의 한국 사회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명제에 남성과 여성이 동의하는 정도는 다르지만 모두에게 평평한 운동장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서로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전쟁으로서의 논쟁(젠더 갈등)]을 펼쳐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하려면 혐오 표현은 [전쟁으로서의 젠더 갈등]의 도구로서 혐오 표현은 지금 여기서 버려야 하지 않을까.

나익주
낮에는 영어 교사, 밤에는 언어학자로 살아온 두 얼굴의 사나이. ‘동고송’의 전신인 '고전을 공부하는 교사모임'의 창립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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