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대통령 본 적 없다” 나훈아 논란이 비생산적인 이유

"대통령? 국민이 나라 지켰다" 언어학적으로 분석해본 나훈아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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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대통령? 국민이 나라 지켰다” 언어학적으로 분석해본 나훈아 발언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방송화면 캡쳐

출처: 한겨레신문

가수 나훈아의 발언이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9월 30일 방송된 KBS 2TV 나훈아 비대면 콘서트 ‘대한민국 어게인’에서(관련기사 보기) 나훈아는 공연 도중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 걸었다는 사람 못 봤다. 바로 여러분이 나라를 지켰다”, “(KBS가) 국민을 위한 방송이 됐으면 좋겠다”는 등 발언을 했다. 그의 말을 두고 정치인들은 물론 양 진영의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공방과 논란이 일어났다.

나는 그의 쇼를 보지 않았고 그가 정확히 무슨 의도로 이런 말을 했는지는 모른다. 그가 이 말을 하기 전에 얼마나 내용과 논리를 준비했는지도 알 수 없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연설문을 발표하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구태여 그의 쇼 중 시간을 내어 전 국민을 상대로 정치적으로 민감하게 들릴 수 있는 주제에 관한 말을 했다. 그가 표현에 세심하게 신경을 썼으면 좋았을 것이다.

왜 그의 말이 이토록 화제가 되고 있을까? 차분히 그 말의 내용과 논리를 분석해 보자.

우리는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 절대로 한 문장만 말하지 않으며, 자신의 주장이나 의견을 밝히기 위해 문장을 연결하여 논지를 전개한다. 나훈아 말을 분석해 보면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역사적 배경을 언급한 뒤 이어 “이 나라를 누가 지켰냐 하면, 바로 오늘 여러분들이 이 나라를 지켰습니다”라고 말했다. 이게 그의 핵심 주장(글에서는 주제문)이다. 이 부분은 매끄럽게 전개되었다.

즉 한국 역사에서 위정자들이 썩었을 때도, 민초들이 뭉쳐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해 왔다는 그의 역사관을 바탕으로 해 핵심 주장을 언급하는 것으로 말을 시작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예시로 곧바로 IMF 때의 금 모으기 운동을 언급한 후 최근의 예로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말을 잘 듣고 잘 따르는지”를 추가했다.

그런데 그가 이 추가 예시가 앞서 그가 언급한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본 적이 없습니다”라는 역사관과는 맥락적 연결이 되지 않는다. 그의 말을 두고 해석이 분분하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훈아 발언, 논리상 앞뒤가 맞지 않는데도

앞서 그는 한국 역사에서 위정자들이 거의 예외 없이 부당한 권력을 휘두르며 국가적 위기를 회피한 비겁한 자들이라고 주장하고서는, 그 주장의 예시로 최근 코로나 사태 속에서 한국 국민들이 말을 잘 듣고, 즉 결국은 정부의 말을 잘 들으며 위기를 극복 중인 상황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연결해보면, ‘한국 역사에서 위정자들은 다 비겁했는데, 지금 국민들은 그 위정자의 말을 잘 듣고 있다’는 식이다.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고 보인다.

글이나 말에 있어서 필자 또는 화자는, 자신의 핵심 주장을 언급한 후 그 주장을 분명하고 설득력 있게 뒷받침하는 증거나 예들만을 제시하여 글의 일관성(coherence)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일관성은 글이나 말의 수준을 결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다. 그의 말은 핵심 주장과 예시의 연결 부분에서 일관성이 없다고 볼 수 있다.

그의 말이 일관성이 있으려면, 그가 언급한 “국민 때문에 목숨 걸었다는 왕이나 대통령을 본 적 없다”는 발언, 즉 역사적 배경은 오히려 “위정자들은 다 비겁했는데 민초들이 그들의 불의에 맞서 싸우고 저항하여 국가적 위기를 극복해 왔다’는 취지로 말을 이어갔어야 앞뒤 맥락이 맞는 것이었다. 그리고 만일 그가 ‘위기 때 한국민들은 말을 잘 듣는다’는 주장을 강조하려고 한 것이었다면, “위정자들이 올곧을 때는 민초들이 말을 잘 듣고 뭉쳐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해 왔다”는 식으로 말을 했어야 논리상 옳다.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한국 역사의 근본적인 정체성은 무엇일까? 민초들이 줄곧 말을 잘 듣는 순응적 역사였을까? 아니면 민초들이 부당한 지배세력에 순응하지 않고 늘 맞서서 투쟁한 저항의 역사가 그 줄기일까?

세계 역사적으로 볼 때도 한국 민초들처럼 말을 안 듣는 사람들이 없을 것이다. 한국 민초들은 불의한 왕이나 썩은 독재 권력과 부당한 세력에 정면으로 맞서서, 자신들 목숨까지 던지며 대항하고 투쟁하고 저항해 온 역동적인 역사를 이끌어 왔다. 가까이는 작년의 서초동 촛불시위부터 시작하여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시위, 6월 항쟁, 광주 민주 항쟁, 부마 항쟁, 4.19 혁명, 3.1 운동, 동학혁명, 수많은 민란 등 한국사는 실로 부당하고 불의한 권력에 맞서 싸운 민초들의 저항과 투쟁의 역사로 점철되어 있다.

물론 한국 민초들이 말을 잘 들은 적도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나훈아가 최근 코로나 사태 속에서 한국 사람들이 정부 방침을 잘 따르고 뭉쳐서 위기를 잘 극복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면,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는 담화의 흐름 속에서 바로 한국 민초들이 권력의 말을 잘 듣고 순응한 때는 바로 그 권력과 집권 세력이 민주적이고 올곧을 때만 그랬다는 함축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고 있지 못하기에, 오해를 야기하게 되고 억지 논리로 보이게 된 것이다.

담화분석(discourse analysis)적 측면에서 볼 때 나훈아의 말은 말의 전개에 있어서 앞뒤로 이어지는 맥락의 불일치로 응집성(coherence)이 심각하게 부족하고, 그런 이유로 그가 의도한 함축의 메시지가 어떤 것인지 매우 모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 진영의 정치인들이나 지지자들은 그의 말의 일관성 없음과 모호성을 애써 외면하고 그의 말을 이용하여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치적 여론을 만드는 데에만 열중하고 있는 모습이 실로 개탄스럽다.

특히 야당과 현 정부 비판 세력들은 그의 말의 일관성의 구멍을 교묘하게 파고 들어서 그가 앞서 언급한 역사적 배경만을 강조하여, “(위정자들은 다 비겁하고 현재 정부와 대통령도 그런데) 국민들이 (말을 잘 듣고)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는 식으로 해석한다. 국민들이 누구 말을 잘 듣는지, 정확한 해석은 애써 무시하고 마치 대통령과 정부는 문제가 심각한데 국민들의 힘으로만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는 식의 억지 해석을 전파하려고 혈안이 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수십 년 동안 조용히 지내던, 왕년에 인기 있던 가수가 갑자기 나타나서 그의 쇼 중에 정치적으로 민감하게 해석될 수 있는 말을 한 것도 이상하지만, 일관성이 없는 그의 말의 모호성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억지 해석도 마다하지 않는 일부 정치인들과 지지자들의 행태는 더욱 개탄스럽다.

결론은 그가 한 말은 이상하며, 그의 말의 의미 해석 또한 이상하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그의 말을 둘러싼 논란 또한 비생산적이라고 생각한다.

이창봉
(가톨릭대 교수. University of Pennsylvania 언어학박사. 컬럼비아대 교수 역임)

 

출처한겨레신문
이창봉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University of Pennsylvania)에서 언어학을 공부했고, 언어문화의 보편성과 다양성 관련 주제들을 연구하며 언어를 통해 정치와 사회와 문화를 분석하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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