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제(presupposition)와 2차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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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시장 사망 사건과 성추행 소송 관련 공방이 뜨겁다. 연일 고소인의 변호인과 그 분의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 사건 관련 그들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조금이라도 합리적인 의심을 표현하면 고소인에게 ‘2차가해’를 가하지 말라고 호소를 하고 있다. 여기서 잠깐 생각해 보자.

2차가해?? 이 표현이 현 시점에서 과연 적절한 용어일까?

언어 현상은 신비하다. 화자가 한 문장을 발화했을 때 그 명제적 내용뿐만 아니라 다양한 논리적 및 화용적 의미들 (전제, 함의, 대화상 함축)을 함께 전달한다. 간단한 예로 내가 ‘나는 더 이상 유니클로에 가지 않겠다’라고 말을 하면 ‘더 이상’이라는 전제 유발 표현 (presupposition trigger) 때문에 ‘나는 유니클로에 간 적이 있다‘는 전제(presupposition)을 함께 전달한다. 전제는 그 발화가 의미를 갖기 위해서 참이라고 인정해야 하는 논리적 의미이다. 흥미로운 것은 발화가 의문문일 경우 즉 이 경우 ’더 이상 유니클로에 가지 않을 겁니까?‘라고 상대방이 물었을 때 ’예/아니오‘라는 대답으로 긍정 혹은 부정을 하든 그 전제의 의미는 그대로 전달된다는 점이다. 즉 화자의 대답과 상관없이 ’나는 유니클로에 간 적이 있다‘라는 전제를 함께 인정하고 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전제의 이 의미적 특성 때문에 법정에서는 전제를 포함한 문장으로 증인을 심문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서 성추행 사건 피고를 상대로 검사가 “피고는 원고를 성추행하는 것을 멈추었습니까?”라고 질문하면 피고의 “예/아니오” 대답과 상관없이 ‘이전에 원고를 성추행한 적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검사는 “피고는 원고를 성추행한 적이 있습니까?”라고 질문하고 피고가 “예/아니오”라고 대답한 것을 기반으로 하나씩 사실 관계를 전제 없이 심문해야 한다.

의미론 강의를 끝내고 본 주제로 돌아가자.

지금 언론과 SNS 상에서는 대리 법정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양쪽 진영이 증거를 제시하고 논증을 전개하면 반박하고 재반박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위에서 내가 지적한 법정의 규칙이 엄격히 적용되어야 한다.

2차가해의 전제는 ‘1차가해가 있었다’이다. 그런데 이 전제가 참일까?

바로 여기에서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갈리고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박원순 시장의 죽음을 이 전제의 참을 증명하는 것으로 해석을 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아직 증명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나도 그런 입장을 가진 사람이다. 즉 아직 ’1차가해가 있었다‘는 것이 증명이 안 되었다고 생각하므로 이 전제를 참으로 받아들일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경우이든지 2차가해라는 말을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언어는 사고에 영향을 준다. 어떤 맥락이나 상황적 의미로 이 표현을 쓰든지 ‘2차가해’는 ‘1차가해가 있었다’라는 전제를 인정하게 되므로 ‘고소인의 입장도 존중해야 한다’ 정도의 표현이 양방 모두에게 공정하고 중립적이며 적절한 표현이 될 것이다.

이 사건은 박원순 시장의 사망으로 피고의 반론을 들을 기회가 없이 원고의 일방적 주장만으로 일반 시민 배심원들이 판단을 하게 된 형국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므로 죄의 입증 부담(burden of proof)이 철저히 고소인 측에 있다. 고소인은 나서지 않고 있으니 그 분을 대변하는 김재련 변호사는 요란한 기자회견식 언론플레이를 중지하고 결정적 증거(smoking gun)를 빨리 공개해서 이 논란과 사회적 스트레스를 없애주기를 정중하고 간곡히 요청한다. 그것이 고소인과 고인은 물론 일반 시민 모두를 위한 길이라고 믿는다. 우리 모두 소모적 논쟁을 끝내고 조용히 애도와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창봉
(가톨릭대 교수. University of Pennsylvania 언어학박사. 컬럼비아대 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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