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탁을 생각하며

0
20
This post is last updated 0 days ago.

김홍식(광주국공립중등교장회장, 일동중교장)

껍질은 물체의 속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는 딱딱함으로 무장하고 있다. 그 딱딱함은 외부세계와 내부세계를 경계하는 엄숙함이고 오랜 시간 동안 단련해 온 견고함이기도 하다. 언제나 그렇듯이 내부세계를 굳게 지켜내려는 사명감으로 빛난다. 그 속에는 쉽사리 벽을 내놓지 않으려는 고집스러움이 보호 본능으로 철저하게 작용한다. 오직 우주의 빛과 숨결, 그리고 내부의 연약한 꿈틀거림으로만 깨어지는 그 사려 깊은 견고함이 신비스럽기만 하다.

껍질은 생명체의 보호와 성숙을 위해 철저하게 시공의 약속을 지키는 존재이다. 껍질은 지키려는 힘과 무너뜨리려는 힘의 팽팽한 균형을 이루며 경계를 이루고 있다. 껍질은 그 안의 생명력을 온전하게 지키기 위해 외부의 위협 요인을 차단함과 동시에 내부 생명의 성장과 탄생을 위해 필요한 요소를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역동적 기능을 한다. 껍질의 경계는 생명 탄생을 위해 반드시 무너져야 하지만 일정 시간은 견고하게 유지되어야만 그 생명이 지켜질 수 있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양면성을 갖기도 한다. 결코 깨져서는 안 되는 한시적 견고함과 어느 순간에는 홀연히 깨져야만 하는 존재론적 모순 속에 존재하는 것이 바로 껍질의 운명적 속성이다. 그러면서도 깨지기 이전과 이후의 껍질 모두 생명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유한한 껍질의 존재론적 사명이 다하는 순간에 새로운 생명이 우주 앞에 조심스럽게 얼굴을 내민다.

어미의 부리가/닿는 곳마다/별이 뜬다//한 번에 깨지는/알 껍질이 있겠는가//밤 하늘엔/나를 꺼내려는 어미의/빗나간 부리질이 있다//반짝, 먼 나라의 별빛이/젖은 내 눈을 친다 (이정록의 줄탁’)

이쪽과 저쪽을 구분하는 껍질의 완고함 속에서 생명 탄생의 가치는 그만큼 더 상승한다. 껍질의 경계를 허물기 위한 고통스러운 노력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깨야 할 때 깨야 한다. 적시성이다. 내부의 상태를 정확히 알아야만 가능하다. 그래서 경계를 사이에 두고 이루어지는 어미의 무수한 부리질은 진지하고 현명하다. 이는 어둠 속의 생명을 빛의 세계로 인도하는 각고의 노력이기도 하다. 결코 한 번에 깨지지 않는 껍질을 깨트리기 위한 모성의 집요한 사랑이 눈물겹게 아름답다. 현재까지 무수한 어미조상들로부터 비밀처럼 전해져 온 부리질이라는 유산이 빛을 발하며 새 생명에게 찬란한 우주의 별빛을 부여하는 과정이다. 빛은 껍질 밖에서 온 세상 가득 넘쳐나게 존재하고 있지만 빛을 찾아주려는 어미의 노력 없이는 빛을 찾기 직전에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생명 탄생이 허무하게 무화되는 순간이다. 어미의 부리가 닿는 곳마다 작은 균열이 생기고 그 틈새로 우주 공간에서 오래전에 출발한 머나먼 별빛이 드디어 새 생명과의 공간적 거리를 그대로 유지한 채 처음 대면하는 순간이다. 이때 실재하는 별은 새 생명에게 인식의 대상으로 자리 잡는다. 인식은 생명 활동의 객관적 징표이다. 인식의 대상이던 별이 내 눈을 촉촉이 적시는 주관적인 감성의 별빛으로 전환되고 기능함으로써 생명 탄생의 과정이 입체적인 공간성을 획득하며 무한히 확장된다. 이미 우주의 별빛과 나는 어미의 매개 작용을 통해 신비한 생명 탄생의 구조적 틀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하늘의 별빛과 내 눈과의 만남은 공간적 거리감을 뛰어넘어 인식의 대상에서 의미의 대상으로 전환한다. 별-어미의 부리-나로 이어지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하나의 생명이 우주 속에 소중하게 자리매김하는 순간이다.

교육도 이와 똑같다. 진지하고 엄숙한 인간성장의 과정이니까. 별 준비 없이 직면한 비대면수업과 대면수업을 번갈아 가며 교사, 학생 모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이때 ‘이것이다’라고 누구도 속 시원한 답을 아직은 내놓지 못하는 상황에서 다시 줄탁의 교육적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본다. 답은 기본에서 찾아야 할 것이기에.

 

<줄탁동시 (啐啄同時) ; 빠는 소리 줄 · 쫄 탁 · 같을 동 · 때 시>
줄(啐)과 탁(啄)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새끼와 어미 닭이 안팎에서 서로 쪼아야 한다는 뜻으로, 가장 이상적인 사제지간을 비유하거나, 서로 합심하여 일이 잘 이루어지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