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어려운 이 때, 학교를 다시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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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참으로 알 수 없다. 미래에 대해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사실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과학자나 미래학자들이 유토피아나 디스토피아를 언급할 때마다 우리는 이리저리 흔들린다. 미래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미래는 예정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 교육이 아이들을 통해 만들어가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능력과 인격을 길러줄 것인가?

이우학교 전 교장을 지낸 경기도교육연구원의 이수광 원장이 ‘교육시선 오늘’에서 도발적인 말 걸기를 시도했다.

“지금까지 한국 교육을 지배하는 이념은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 ‘능력주의’)였다. 그러나 메리토크라시는 이 AC(After Corona ‘코로나 이후’) 시대’에는 적합지 않다. 왜냐하면 코로나19는 각자도생의 생존전략이 불가능해졌음을 전면으로 드러내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에서도 모든 학생의 존엄 증진을 국가가 담당해야 한다. 이러한 이념적 지향을 함축하는 예비적 개념으로 ‘디그노크라시’(dignocracy ‘존업주의’)를 상정해 볼 수 있다. 디그노크라시란 모든 학생의 존엄과 동등성을 보장하고 개별 학생이 지닌 고유성의 탁월한 발현을 공교육의 목적으로 삼는 이념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런 문제의식을 살려 공교육 혁신을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학교는 긴 방학과 이어지는 간헐적 수업, 여러 차례 바뀌는 학사 일정으로 인해 혼란에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이 혼란은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기 좋은 조건이기도 하다. 이제 성실한 직장인, 노동자를 양성하는데 주력했던 학교의 성격을 바꾸어야 한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 사회를 살아갈 힘과 능력을 키우고, 약육강식의 정글에서 살아남는 경쟁력이 아니라 ‘환대와 연대’의 건강한 시민으로 우리 아이들을 성장시키는 학교를 꿈꾸어야 한다.

Ⅰ. 우리 아이들이 미래에 술, 도박, 마약, 게임에 빠져 살아갈 가능성은?

미국은 서부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원주민인 인디언을 고향에서 몰아내거나 살육을 했다. 남아있는 인디언들을 모조리 없애기 힘드니까, 19세기 중반부터는 미국 정부가 인디언보호구역을 설정하여 인디언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넉넉하게 챙겨주고 학교를 비롯한 편의시설을 제공함과 함께 생활비도 지원했다. 그곳에 살고 있던 인디언들은 어떻게 됐을까? 세월이 지난 후 인디언 남성 다수는 술과 도박, 마약에 찌들어 사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 우리는 각박한 경쟁 속에서 ‘먹고 살기 위해’ 아등바등하고 있다. 그러나 인디언 보호구역의 역사를 보면 먹고 사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지금의 10대 청소년들이 40대가 되어 본격적으로 사회에서 활동할 시기인 30년 후, 세상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20~30년 후 미래를 예측해 보면 대다수 인류는 노동에서 밀려나 있을 것이다. 자동화된 기계나 AI(인공지능)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두가 현재의 관점에서 보는 ‘실업자’는 아닐 것이다. 로봇과 AI를 소유한 자본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생산력으로 쏟아내는 상품을 구매할 소비자가 없으면 생산을 해도 의미가 없다. 결국 지금 논란이 되는 ‘기본소득제’와 같은 대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 최근 실리콘밸리의 CEO들이 로봇세나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결국 기본소득제가 전면적으로 실시되면 먹고 사는 문제는 상당히 해결될 것이다. 그런데 먹고 사는 게 해결된다고 삶이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다. 이 지점에서 인간은 도대체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질문이 더욱 절실해진다.

우리나라에서 1월에 코로나19가 시작되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4월까지 늘어난 방학 때, 그리고 개학 후에도 1/3 등교 방침에 따라 많은 시간을 집에서 지냈다. 집에서 보낸 아이들의 일상은 어떤가? 적지 않은 아이들이 게임, 유튜브, SNS 등에 빠져 보냈을 것이다. 이 아이들이 30년쯤 후 술이나 도박, 마약, 게임, 유튜브와 같은 것에 빠져 지내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있을까?

Ⅱ. 이 시대 학교란 무엇인가?

근대화와 함께 설립된 학교는 성실한 노동자를 기르겠다는 목표 하에 아이들을 ‘길들이는’ 데 초점을 맞추어 왔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뒤늦게 산업화를 시작하여 선진국을 추격해야 하는 상황에서 말 잘 듣는 학생으로 길들이기 교육과 정답 찾기 위주의 교육은 상당한 효력을 발휘했다. 그런 교육 덕분에 분단과 전쟁의 질곡을 딛고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겠지만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미래를 대비하기에 더 이상 유효한 교육이 아님은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학교는 어떤 곳이 되어야 할까?

지역과 학교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많은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은 낮에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밤에 활동을 시작한다. 일부는 학원에서 힘을 빼느라, 다른 일부는 피시방이나 길거리를 서성이느라, 또 다른 일부는 알바를 뛰느라 힘들다. 이 아이들에게 학교란 무엇인가? 부모와의 타협을 위해 졸업장을 따는 곳이고, 친구들과 놀 수 있는 공간이다. 그리고 이곳엔 꾹 참고 기다리면 매시간 찾아오는 꿀 같은 10분의 휴식시간과 점심시간이 있다.

지금의 10대들이 본격적으로 사회에서 주역이 되는 30년 후에는 어떤 사회생활을 하게 될까? 예상컨대 극소수만 경제활동을 영위할 것이고, 다수는 고된 노동에서 벗어나 기본소득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그러면 30년 후에도 존엄을 잃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지금의 10대에게 필요한 교육은 무엇일까? 아이들 내면의 힘, 야성을 키우는 데 주력하는 교육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학교는 입시제도에 맞춰 전통적인 교과 시간표를 쭈르륵 편성하는 방식이 아니라 때로는 교과의 벽을 과감히 뛰어넘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실제 세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배움이 학교의 담장 안에서만 일어나지 않도록 배움의 공간을 확장해야 한다. 그렇다면 아이들 내면의 힘, 야성을 길러주는 교사의 역할은 무엇일까? ‘학생이 스스로 또한 친구들과 함께 해결한 것만 같은 느낌’을 갖게 하는 보이지 않는 손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교사의 변화와 학교의 변화 또한 어마어마하다. 아이가 깨어나기 시작하면 이 깨어 있음을 유지하고 신장하도록 돕고 자극하기는 쉽다. 이제는 전통적인 교육과정에 아이들을 맞출 것이 아니라 학교의 교육과정이 아이들 내면의 힘, 야성을 키우는 데 봉사해야 한다. 그들의 성장을 긴 호흡으로 바라보고, 단계에 맞게 기획을 하고 자극을 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것이 우리 교육의 미래, 아이들의 미래를 준비하는 길이다.

그런데 여기서 ‘장기적 기획’의 다른 측면이 있다. 교사나 학부모는 아이가 어려서부터 모든 상황에서 성실하게 잘하는 것이 쌓여 결국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라 기대한다. 이런 기대는 ‘성실한 직장인’이나 ‘성실한 노동자’를 필요로 하는 시대에 어울린다. 성실한 직장인이나 성실한 노동자란 뒤집어 말하면 누군가의 지시를 기다리고, 매사 타인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좀비’ 같은 사람이 아닌가.

청소년기는 오로지 발달과 성장을 위한 시기이다. 쉬어도 가고, 헛된 꿈도 꾸면서 탐색을 할 때다. 따라서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다양한 경험에 도전하여 시행착오를 겪는 게 중요하다. 그 과정을 통해 내면의 야성 즉 불확실한 미래를 스스로 또한 함께 헤쳐 나갈 수 있는 강인한 생명력을 키워야 한다.

그런데 아이들의 도전을 가로막는 큰 걸림돌은 교사나 학부모가 평가자로서, 모든 일에 시시비비를 가리려 덤비는 것이다. 이제 교사나 학부모는 버팀목이나 디딤돌이 되면 어떨까?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의 긴 호흡으로 발달단계에 맞게 아이를 자극할 기획에 집중하는 것이다.

Ⅲ. 학교는 소수 엘리트가 아니라 95% 학생을 중심으로

현재 우리나라의 학교는 상위 5%의 아이들을 위해 운영되고 있다. 학교 설명회 때 명문대 진학생 숫자를 내세우는 것만이 아니다. 1등급 인원수를 늘리기 위해 다수의 아이들에게 흥미도 없는 과목을 수강하게 해 잘하는 아이들의 들러리를 서게 한다. 고등학교 체계는 지난 20년 동안 그들의 요구에 맞추어 과학고, 외고, 영재고, 예술고, 자사고 등으로 누더기가 되었다.

그런데 그동안도 문제였지만, 앞으로는 더 심각해질 수 있다. 학자, 관료, 언론 등 빅마우스들이 그들과 그들의 부모를 대변한다. 사실 95% 아이들을 위한 교육을 하게 되면 5% 아이들의 문제도 해결된다. 스카이캐슬 안에 갇혀 지내면 5% 아이들은 자신의 영달만을 꾀하는 이기적인 엘리트로 자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공교육이 95% 아이들을 위한 교육에 집중하면 다양한 강점과 색깔을 지닌 아이들에 대한 연대의식을 몸으로 체득한 ‘진정한’ 리더를 키울 수 있다.

그렇다면 95%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학교가 지금처럼 ‘성실한 노동력’으로 열심히 준비시켜 봐야 자동화된 기계나 인공지능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30년 후 지금의 십대가 40대가 된 미래에는 대부분의 인류가 고된 노동으로부터 해방된다. 로봇과 인공지능이 대부분의 노동을 감당하기 때문이다. 높은 생산력과 다수의 실업에 따른 소비의 급격한 위축, 양극화의 심화는 기본소득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그러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결국 대다수 인류의 먹고 사는 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될 것이다.

그러면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대다수 인류는 기존 일터에서 할 일이 없다. 그래서 그들이 할 일은 노동(labor)이 아니라 흥미로우면서도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work)이 된다. 그동안 인류가 생존을 위해 필요한 재화를 생산하고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땀 흘려 노동(labor)을 했다면 이제 인류는 불평등‧환경문제‧소수자의 인권문제를 해결하는 활동, 메이커 운동, 문화를 창조하고 향유하는 활동, 동식물‧우주‧심해를 연구하는 활동 등 사회적‧문화적으로 의미있는 일(work)을 하게 될 것이다. 고된 노동은 노예에게 맡긴 채 국정을 논하고, 비극을 보면서 인간의 운명에 대해 고뇌하며, 철학적 수수께끼를 풀었던 그리스 시민들처럼 인류 대다수가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시대가 열릴 수 있다.

제러미 리프킨에 의하면 “앞으로 20~30년 후에는 자본주의 경제가 자연스럽게 ‘사회적 경제’(social economy)로 변모할 것이다. 즉 힘들고 귀찮은 일들을 기계에 맡겨놓고 사람은 건강관리, 복지, 교육, 스포츠, 문화 등의 영역에서 정당한 대가를 받으며 ‘심오한 작업’이 아니라 ‘심오한 놀이’에 전념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지금 청소년들은 40대에는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함께 하고 싶은 동료들과 하면 된다.

오늘의 교육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소수를 위한 입시제도 타령은 멈추고, 공교육은 다수의 학생에게 필요한 것에 집중해야 한다. 입시를 위한 교육과정에 학생들을 맞출 것이 아니라 학교의 교육과정이 학생들 내면의 힘을 키우는 데 맞춰야 한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우레탄을 걷어내고, 쉬는 시간과 점심 때 교실 밖에서 친구들과 마음껏 놀 수 있어야 한다. 모래 놀이나 집짓기 놀이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텃밭도 가꾸며, 야영 등을 경험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학습 부진아가 발생하지 않도록 각 교실에는 반드시 보조교사를 배치해야 한다.

중‧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스스로 주요 행사를 기획해 실행하고, 실제 세상의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갖게 하며, 학교의 주인으로서 학교 운영에 목소리를 내고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중학교 1학년 때 자유학년제가 실시된다고는 하지만 2~3학년 때에는 공통교과 위주로 운영된다. 중학교 2~3학년 때에도 학생들의 흥미와 특성을 살리는 프로젝트 수업을 운영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편성해야 한다.

고등학교 시기에는 학생 중심의 교과 선택제가 정착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편성‧운영해야 한다. 특히 고등학교 2~3학년 시기는 비판적 사고력과 사회성, 창의적 문제해결력이 급격히 발달하는 시기이므로 이런 것들을 계발할 과목을 개설하는 게 중요하다. 이런 과목을 운영할 때 교내 교사의 역량이 취약할 수 있으므로 외부 전문가와 팀티칭을 하는 것도 적극 고려해볼 만하다.

아이의 성장을 긴 호흡으로 바라보고, 발달단계에 맞게 기획하고 자극을 하는 것, 자신의 활동 경험을 해석하고, 사물과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여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 ‘성실한 직장인’이 아니라 ‘각성된 시민’이자 ‘창조적 유희인(遊戲人)’으로 성장시키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Ⅳ. 대학입시의 압박을 벗어난 학교를 만들려면

서울의 대안학교인 성미산학교에서 오랜 기간 교장을 역임한 박복선 교장의 문제제기로 시작하자.

“나는 혁신학교운동을 지지하고, 혁신학교들이 이루어낸 성과를 존중한다. 그러나 혁신학교에서 이런 큰 질문(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좋은 사회란 어떤 것인가? 좋은 일이란 무엇인가? 등)에 대한 답을 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이런저런 자리에서 혁신학교 교사들을 만났다. 일이 많아서 힘들다고 하지만 다들 활력이 넘쳤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많은 일은 결국 수업을 잘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수업을 잘하는 것이 나쁠 리 없다. 문제는 딱 거기까지만 고민을 한다는 것, 입시라는 암초를 제거까지는 아니어도 피해 갈 수 있는 어떤 철학적 토대가 없다.”(박복선, 2014: 13)

2009년부터 혁신학교가 시작되어 10여 년 동안 학교에 새로운 활력과 변화를 만들어 왔다. 그러나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의미 있는 변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는 여전히 입시제도의 굴레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교사만이 아니라 학생이나 학부모도 오랜 관성으로 인해 익숙한 교육과정의 틀을 깨기 어렵다. 누가 좋아서 EBS 수능문제집을 풀게 하고, 학원을 보내려 할까?

그러기에 입시의 자장에서 벗어나 지금과 미래를 살아갈 힘을 기르는 고등학교의 시도는 소중해 보인다. 더불어 사는 삶을 실현하기 위한 ‘실험과 상상의 배움터’라는 2기 비전을 구현하기 위해 이우고등학교가 2019년부터 시도하고 있는 것들을 일부 소개해 보자.

우선, 학생들이 교과 수업에서 주도성을 가질 수 있고 스스로 배우고 또한 함께 배우는 힘을 키울 수 있도록 수업을 디자인하기를 시도했다. 이를 위해 수업에서 개별화 학습의 요소를 많이 도입했다. 예를 들면 개인별 혹은 팀별로 과제의 내용 및 형식을 스스로 정하고 이렇게 제출한 과제에 대해서 교사가 피드백을 강화하기로 했다. 또한 2~3학년 공통교과로 지정했던 과목들(환경과 세계문제, 미래사회)을 선택교과로 돌리기로 했다. 학생들이 흥미와 관심을 갖는 분야(내용)를 학습할 때 집중과 몰입을 경험할 수 있다는 학습이론에 따른 것이다.

둘째, 학생들이 세상의 진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프로젝트 수업을 디자인하기를 시도했다. 예를 들면 문제공감 프로젝트에서 문제의 사이즈를 적정 수준으로 조절해야 학생들이 문제를 잘 공감하는 것은 물론 해결방안을 찾고(ideation) 프로토타입(prototype)을 만들며 실제 해결까지 도모해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 인턴십이나 열아홉 프로젝트가 학생 개인의 진로 탐색에 머무는 게 아니라 세상의 진짜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도록 외부 기관이나 전문가와 연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셋째, 학교의 경계를 넘나들며 유연한 배움이 일어날 수 있도록 교사가 세상과 접속하며 학교 밖 전문가와 협업하기를 시도했다. 이를 위해 방학 중 집중연수기간에 팀별로 서울 성수동 혁신밸리, 서울혁신파크, 문래동 마을재생단지, 대학로, 연남동, 용인시 동천동, 수원 상상캠퍼스 등을 탐방하고 인터뷰를 비롯한 다양한 활동을 모색했다. 또한 수요일을 교사 배움의 날로 지정해 각 교사들이 원하는 주제별로 모여 세미나, 탐방, 외부 컨퍼런스 참석 등의 연찬을 했다.

그 결과 올해는 인턴십 및 열아홉 프로젝트 등에서 학생들을 외부 전문가와 연결 짓는 일이 실험과 상상부를 통해 활발하게 일어났다. 그뿐 아니라 외부 전문가와 코티칭을 하는 다수의 과목(창의적 디자인과 비즈니스 사고. 신재생에너지, 팀프로젝트-20플러스 랩, 팀프로젝트-사회적 경제 등)이 개설되기도 했다.

넷째, 기존 숫자 중심의 성적표를 대체할 역량 중심 성적표를 개발하기를 시도했다. 학벌이 업무 능력과 크게 연관이 없다는 이유로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하는 기업이 증가하고 있지만 학부모들은 기존 숫자 중심의 성적표를 받아보았을 때 자녀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걱정에 휩싸이기 때문이다. <성적 없는 성적표(류태호)>에서 영감을 받은 우리는 몇몇 파일럿 과목에서 역량 중심 성적표를 개발하고, 이를 다른 과목에 확산시켜 보자고 했다. 현재 이에 대해 자문 받을 수 있는 전문가를 물색 중이다.

Ⅴ. 새로운 돌파구는 어디서 열 수 있을까?

작년부터 경기도에서 대안형 특성화학교로 중‧고 통합학교를 준비하고 있다. 의왕, 부천에서 한 학년당 4학급 규모로, 기숙사 없이 지역에서 통학하는 학교다. 기숙사가 있는 대안학교는 광역단위 모집을 하는데, 이로 인해 지역사회와의 연결이 쉽지 않다.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마을과 함께 하는 교육과정을 통해 학생들의 ‘살아가는 힘’도 키우고, 마을의 전문가들을 강사로 결합하여 지역사회와 유기적으로 연결된 교육생태계를 꿈꾸고 있다.

대안형 특성화학교는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권이 더 많다. 이우학교가 2000년대 초 대안형 특성화학교를 선택한 이유도 바로 이 점이다. 7차 교육과정의 틀 내에서 당시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과감한 시도를 할 수 있었다. 돌아보면 당시 많은 학교에서 입시교육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것은 교육과정의 제약이 많아서라기보다는 교사들이 과거의 관성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이런 한계는 혁신학교들이 늘어나면서 한결 나아진 듯하지만, 큰 틀에서는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대안형 특성화학교를 학교 유형으로 잡은 것은 적절하다. 학교의 구성원들이 입시의 자장에서 벗어나 과감한 실험과 상상의 배움터로 도전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시기는 제2의 뇌발달이 일어나는 시기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아이들이 대학입시에 매여서 자신의 잠재력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하고, 엉덩이 힘만 기르도록 묶여 있다. 반면 중‧고 통합 미래학교는 6년이라는 긴 호흡으로 아이들의 내면의 힘을 성장시킬 수 있다. 중학교에서부터 길러진 힘으로 고등학교 과정을 밀고 갈 수 있다. 게다가 통합학교로 운영되면 중학교 교사도 고등학교 과정의 선택과목이나 활동에 참여할 수 있어 학생들에게 풍부한 배움과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즉 중규모이면서 대규모 학교의 장점을 살릴 수 있다.

기존의 많은 대안형 특성화학교들은 학교에 부적응한 학생들이 주 대상이었다. 그러나 경기도 교육청의 2020경기미래학교 추진 방향에 따르면 지금 설립 준비 중인 대안형 특성화학교는 ‘미래사회 변화에 대응하는 미래교육의 방향 제시와 미래학교 모델 개발’을 주요한 설립 목적으로 삼고 있다. 사실 근래 유행처럼 이야기되는 미래학교가 ICT, 코딩, A.I, 브랜딩 등과 연결되어 기술 중심으로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그런데 앞에서 전망한 것처럼 미래 사회를 살아갈 힘을 기르기 위해서도 오히려 아이들 내면의 힘, 야성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지역의 학부모와 교육청, 교육부를 설득하고, 학교 개교까지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적절한 균형과 타협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큰일 날 일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놓쳐서는 안 되는 부분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체다. 이우학교의 경우 10여 명이 7년을 준비했고, 그들이 개교 이후 학교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교육과정을 실현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경기도교육청에서 2019년부터 미래교육리더십아카데미를 통해 매년 50명씩 교사를 훈련하고 있다고 하지만 결국 학교의 정체성을 담보할 수 있는 열쇠는 책임 있게 설립 주체 역할을 담당할 ‘특정’ 교사들과 교장에 달려있다. 주체 입장에서 학교의 철학과 정체성을 세우고, 교육과정을 준비하며, 스스로를 훈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 관점에서 학교의 설립 단계부터 주체들이 모일 공간을 고민해야 한다. 학교의 정체성과 철학, 이것을 구현할 교육과정, 일상의 문화를 만드는 일 등이 쌓여 학교의 전통이 자리 잡는다. 그리고 개교 이후 학교 정체성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 인사 정책들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참고 문헌
이수광(2019), 교육이 감당해야 할 기억의 몫, 세월호가 묻고 교육이 답하다, 서울: 살림터
정광필(2018), 미래, 교육을 묻다, 서울: 살림터
이수광(2020), 코로나19 사태와 학교교육 : 열린 ‘정책의 창’에 도발적인 말걸기, 경기도교육연구원
이현영(2020), ‘미래학교(엄윤미·한성은)’ 서평, 네이버블로그

대안학교 이우학교를 설립했고, 지금은 ‘50+인생 학교’를 이끌고 있다. 그를 만나면 ‘호연지기’의 뜻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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