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 미투를 조롱에 가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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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를 의심하는 건 책임 전가이자 2차 가해다.” 7월22일 2차 기자회견에서 대리인 김재련 변호사가 “증거를 더 공개할 계획이 없다”며 한 말이다. 그는 전날 회견을 예고하면서 “궁금한 건 다 말하겠다”고 했었다. 의심해서도 안 되고, 문제 제기해서도 안 되며, 그저 믿고 따르라니, 어처구니없었다. 긴급조치가 부활했나?

아니나 다를까. 고소인이 작성해 후임 비서에게 건넨 인수인계서 내용이 공개되자, ‘여성계는 2차 가해라며 분노했다.’ 인계서인 고소인의 이런 평가와 충고가 있었다. “인생에서 다시 없을 특별한 경험” “장관급, 차기대선주자, 인품도 능력도 훌륭한 분이라 배울 것이 많음.” 성폭력 피해자라면 쓰기 힘든 내용이었다. 여성계의 서슬 때문인지 대개 매체는 사실 보도, 의문 제기보다는 ‘분노’를 비중있게 전했다.

박정희의 긴급조치는 남한판 수령제인 유신체제를 부정하거나 비판하는 모든 행위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었다. 완결판인 9호는 심지어 긴급조치에 대한 비판까지 영장 없이 체포, 구속해 1년 이상 유기징역형에 처하도록 했다. ‘유언비어’ 금지 조항도 두어, 정권에 위험한 사실이나 생각을 단지 말만 해도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의심도 할 수 없고, 문제 제기도 할 수 없는 폭정이었다.

앞서 대리인은 16일 “2차 가해 발언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침묵하는 것도 2차 가해”라고 말했다. 족벌언론과 야당은 대통령이나 여성가족부 장관, 서지현, 임은정 검사에게까지 ‘왜 침묵하느냐’고 악을 썼다. 긴급조치와 함께 ‘남한판 수령체제’를 옹위하던 국가보안법에도 그런 조항이 있었다. 부모나 자식, 배우자나 형제에 대해서까지 고발하도록 한 불고지죄다.

광기다. 불고지나 침묵의 죄처럼 양심의 자유를 유린하는 것은 없다. 정파적 광기, 증오의 광기는 지금 수십 년 동안 거대한 희생을 통해 쌓아 올린 민주적 제도와 헌법적 가치, 이성적 판단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중세 암흑기나 신정체제의 지배자는 신의 대리인이었다. 제사장, 교부, 예언자, 목사 등 대리인은 신을 내세워 면죄부를 팔아 치부하고, 마녀사냥으로 권력을 유지했다. 하지만 그런 신은 없었다. 대리인의 탐욕만 있었다. 오늘날에도 벌어지는 일이다.

‘미투’란 ‘나도 당했다.’ 당사자가 자신의 삶을 걸고 고발하는 일이다. 증거가 부실해도 시민사회와 사법부가 그 진정성을 수용하려는 것은 거기에 걸린 삶의 무게 때문이다. 반증이 오히려 설득력 있었음에도 재판부가 고소인의 주장을 받아들인 박재동 화백이나 고은 시인 사건은 그 좋은 경우일 것이다. 전 서울시향 대표 박현정, 영화배우 곽도원 등에 대한 기획 혹은 가짜 미투도 있었지만, 미투에 대한 이런 특별한 예우는 바뀌지 않는다.

이른바 ‘박 전 시장 위력 성범죄’ 사건에는 대리인만 있다. 그는 성폭력 범죄의 가장 중요한 원칙인 피해자중심주의의 원칙을 저버렸던 인물이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양심을 돈으로 바꾼 화해치유재단 이사였다. 나는 그 대리인을 의심한다. 그래서 고소인에게 묻는다.

우선 박 전 시장 사망 직후 인터넷에 떠돌던 이른바 ‘고소장’에 관한 것이다. 누가 구술, 정리, 전달했고, 누가 인터넷에 올렸는가. 대리인이 공개한 성추행 증거라는 것들은 대부분 이 문건에 나온다. 경찰이 조사한다지만, 고소인의 진정성을 지키기 위해서도 기획의 가능성이나 정치적 의도에 대한 의문을 해명해야 한다. 문건 유포는 피고소인에 대한 심각한 명예훼손이었다.

대리인은 박 전 시장 핸드폰의 포렌식을 중단하도록 한 법원의 결정에 격렬히 항의했다. 상대의 핸드폰에 있는 성추행 증거라면 고소인의 핸드폰에도 있어야 한다. 신속한 진상규명을 원한다면 고소인의 핸드폰을 수사기관에서 포렌식 해 증거를 찾도록 하면 된다. 지름길은 놔두고 법원 결정이나 비난하며 힘든 길을 가야 할 이유가 없다.

‘미투’는 계속돼야 한다. 성폭력의 더러운 적폐는 청소해야 한다. 하지만 민주적 원칙과 이성적 판단을 억압하는 광기에 의지하면 안 된다. 그건 ‘미투’를 새장 혹은 비웃음을 뜻하는 ‘조롱’에 가둘 뿐이다.

곽병찬
전 한겨레신문 대기자. 이 시대 인문의 승묵(繩墨), '향원익청(香遠益淸)'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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