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는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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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영화 <1987>을 다시 보았다. 1987년 6월항쟁 30주년을 맞이하여 당시 상황을 정면으로 다룬 장준환 감독의 <1987>은 전국관객 723만을 모았다. <1987>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당하다가 목숨을 잃은 서울대생 박종철을 전반부에서 다룬다. 후반부에서는 1987년 6월 9일 연세대 정문에서 시위하던 청년학도 이한열의 투쟁과 죽음을 보여준다.

불과 30년 전에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충격적인 대학생 살해사건이 새삼 끔찍하게 다가왔다.
대공 업무를 전담하는 경찰관들이 종철이 머리를 욕조에 강제로 밀어 넣어 질식사시킨 희대의 고문 살인사건. 45도 이상 각도로 최루탄을 발사해야 함에도 수평으로 직격(直擊)하여 한열이를 죽음으로 몰고 간 전투경찰. 공권력의 이름으로 자행된 국가폭력의 실체를 확인하면서 삼복염천에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이다.

‘정의’라는 어휘가 반복되는 장면에서 사유가 흔들리곤 한다. 5공의 전두환 일파가 내세운 ‘정의사회구현’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명칭이 왜 자꾸 겹치는지! 분명히 그들은 한글을 모국어로 함께 쓰는 한민족의 같은 일원이었으나, 그들의 정의는 너무도 달랐다. ‘정의’의 사전적 의미는 “사회나 공동체를 위한 옳고 바른 도리”다. 최고 권력자와 하수인들의 정의와 천주교 신부들의 정의가 왜 그토록 다른지, 영화는 묻는다.

권부의 기득권 수호를 빨갱이 사냥으로 포장하면서 부하들을 다그치는 박처원 치안감의 종횡무진 활약상은 1980년대의 무차별적인 광기를 몸서리치게 재현한다. “내가 아니었으면 이 나라, 벌써 김일성이한테 멕혔어야!” 하고 강변하는 그의 서슬이 하늘을 찌른다. 당대 2인자로 불렸던 안기부장 장세동의 위세도 두려워하지 않는 박처원. 1950년 월남하여 대공업무의 전설이 되었지만, 그 역시 좌우 이데올로기의 희생자로 보이는 인간일지 모른다.

그들에 맞서는 함세웅 신부와 김승훈 신부, 김정남과 이부영의 정의는 민초(民草)들의 바람과 직결돼 있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전말(顚末)을 밝힘으로써 사회정의를 바로 잡겠다는 그들의 신념은 베드로의 반석처럼 단단하다. 영화가 흥미로운 까닭은 이들 양대 세력 사이에 자리한 이름 없는 소시민들의 행적이 곳곳에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어느 편에 서는가, 그것이 정의의 궁극적인 향배(向背)를 결정할 터였다.

민주주의는 일상적인 국민투표로 이루어지며, 그것은 여론의 형태로 발현된다. 그래서 구시대의 반민주적인 정권과 앞잡이들은 언론에 재갈을 물리거나, 여론조작을 공공연히 자행했다. 매주 발표되는 대통령 지지율이나, 여야의 지지율도 여론의 동향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2016년 교수들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 ‘군주민수(君舟民水)’는 의미심장하다. 임금은 배, 백성은 물인데, 물은 배를 띄울 수도, 뒤집을 수도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요즘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명시적인 대결과 충돌이 화제다. 그들이 주장하는 사회정의와 권력 그리고 민주와 독재의 고갱이가 무엇인지, 다시 살펴볼 일이다.

<경북매일신문>, 2020년 8월 6일자 칼럼 ‘파안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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