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와 미국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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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종 (경북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1991년 12월 31일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뒤 유일 강대국으로 군림한 미국의 민낯이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다. 코로나19의 확산과 국가 경제의 피폐, 그리고 여기 더해진 경찰의 비무장 민간인 살해까지. 이것이 세계 최강 미국의 모습인가 하는 의구심이 급속도로 퍼져 나가고 있다. 이런 상황 악화의 중심에 현직 대통령 트럼프가 있다. 세계 대통령이라 불리던 미국 대통령의 초라해진 모습이 약여(躍如)하다.

코로나19로 10만이 넘는 사망자와 4천만이 넘는 실직자가 발생한 나라 미국, 설상가상 백인 경찰이 비무장 상태의 흑인 남성을 무참하게 살해한 사건으로 전역에서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민중의 지팡이’인 경찰이 어떻게 비무장 국민을 한낮에 살해할 수 있단 말인가?

지난 5월 25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엽기적인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위조지폐로 담배를 사려 한다는 연락을 받고 미니애폴리스 경찰이 현장에 출동한다. 경찰관 4명은 비무장 상태의 조지 플로이드를 체포했고, 백인 경관 데릭 쇼빈은 무려 8분 46초 동안 군화 신은 무릎으로 조지의 목을 누른다. “숨을 쉴 수 없다.”고 조지가 애원했지만 쇼빈의 무릎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

조지가 의식을 잃은 후에도, 심지어 응급 의료진이 현장에 도착한 1분 후에도 쇼빈은 조지의 목을 계속 짓눌렀다. 경찰차가 현장에 도착한 뒤 17분 만에 흑인 조지 플로이드는 사망한다. <뉴욕타임스>가 현지시각 5월 31일 현장 CCTV, 목격자 촬영 영상, 관련 공식문서 등을 토대로 재구성한 ‘흑인 플로이드 사망 사건’의 전모다. 단언컨대 이번 사건은 백인 경찰이 합법성을 등에 업은 폭력으로 비무장 흑인을 악랄하게 학살한 사건이다.

조지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담은 영상이 SNS로 널리 유포되면서 시위가 시작된다. 하지만 트럼프는 5월 29일 백악관 앞에서 시위가 벌어지자 시위대를 조롱하고 ‘군대의 무한한 힘’을 통한 무력진압을 천명한다. 아울러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대응시위를 벌이라고 제안한다. 국가가 혼란에 빠진 상황에서도 트럼프는 오직 재선을 위한 정략적 선택에 집중하고 있다.

홍콩의 국가보안법 제정을 둘러싸고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한편, 코로나19 문제를 중국과 세계보건기구(WHO)로 돌리면서 무차별적인 비난을 멈추지 않는다. 시위를 진압하는 경찰은 치켜세우면서, 민주당 소속 시장들에게는 악의적인 언사를 서슴지 않는다. 모든 책임이 민주당과 지지자들 때문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는 그의 주장이 공허하게 메아리치고 있다.

코로나19가 가져온 세계화에 대한 불확실성과 유럽연합의 분열양상, 미국의 신고립주의는 21세기 세계의 혼란과 분열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했던 제국 아메리카의 소멸 혹은 쇠락(衰落)이 목전에 펼쳐지고 있다. 앞으로 어떤 예기치 못한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인지. 정말 궁금하기 짝이 없는 시간대가 우리를 지나가고 있다.

<경북매일신문> 2020년 6월 4일자 칼럼 ‘파안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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