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 소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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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류 신
작성일: 2020년 3월 29일

미투(Metoo)운동, ‘집단 성 착취 영상 거래 사건’(n번방 사건)을 보고 들으면, 나에겐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고 떠오르는 사건이 있다. 아니, 지우기 힘든 상처가 있다.

나의 친구 영희(가명)는 대학생 때 동아리에서 만나 알게 되었다. 우리가 들어 간 동아리는 남녀 성비가 비슷했고, 여느 동아리같이 회원들은 서로 잘 어울려 놀았다. 그중에는 썸남 썸녀에서 연인사이로 발전된 사람들도 꽤 있었다.

새내기 시절 우리에게 연애는 처음이었다. 포옹하고 키스하는 스킨십이 낯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이상의 스킨십에는 두려움을 느끼는 친구들도 많았다.

그 두려움을 그대로 이해해주고, 천천히 다가왔다면 좋았을 텐데. 뭐가 그렇게 급했던 걸까? 어느 날, 친구 영희는 우연히 남자 친구인 철수(가명)의 핸드폰을 보게 되었다. 거기에서 그들의 비밀의 숲이 드러났다.

“내가 키스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여자 친구의 가슴에 손이 갔는데 여자 친구가 울어 버리는 거야. 이럴 땐 어떻게 해야 되는 거냐?”

철수가 물었다.

“걔, 그거 좋으면서 괜히 내숭 떠는 거야. 좀 더 적극적으로 해봐. 좋아할 걸?”

철수의 친구, 민수(가명)가 답했다.

이 대화를 우연히 보게 된 영희, 처음에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둘만이 알고 있어야할 비밀이 남에게 알려졌을 때 느끼는 수치심, 그리고 느끼는 배신감 그리고 이어지는 두려움.

수치심. ‘내숭’의 사전적 의미는 ‘겉으로는 순해 보이나 속으로는 엉큼함’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우리의 두려움이 남자 친구들에게는 내숭으로 변질되어 있었다. 왜 그들은 우리의 두려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런 사고방식에 이르게 됐을까?

나는 한 심리학 칼럼니스트의 칼럼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정말 한 순간의 잘못일까?’라는 칼럼이었다. ‘지뇽뇽’이라는 필명을 쓰는 칼럼니스트는 뉴질랜드의 웰링턴 대학 심리학자 데본 폴라섹(Devon Polaschek) 교수의 연구 자료를 인용하면서 성 폭력 문제를 분석했다. 데본 폴라섹 교수는 성 범죄자들에게서 크게 다섯 가지의 왜곡된 사고방식이 나타난다고 보았다. 그 중 하나가 ‘여성은 알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다.

여성과 남성은 근본적으로 다르며, 여성은 속을 알 수 없는 존재라고 보는 방식이다. 여성은 믿을 수 없고 속임수를 쓰는 존재, 겉과 속이 다른 존재라는 믿음도 깔려 있다. 여성은 자신의 의도를 솔직하게 이야기 하지 않고 따라서 ‘싫다’는 ‘좋다’인 경우가 많다고 생각하는 것이 한 예다. 많은 성범죄자들이 이러한 사고방식에 기인해 여성의 저항 자체를 성관계를 위한 전희 정도로 본다고 한다. ‘좋으면서 왜 그래?’

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21671

배신감. 영희의 남자 친구는 둘 사이의 문제에 대해 조언을 구한답시고 다른 사람에게 말했다. 같은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민수에게 말이다. 민수와 영희는 같이 밥도 먹고, 이야기도 하고, 오빠 동생하면서 고민 상담도 나누었던 사이였다. 함께 술도 마시고, 놀러가기도 했던 사이였으니 배신감은 두 배로 다가왔다.

영희는 여자 친구들에게 고민 상담했고, 이 사건은 여자 친구들 사이에 암암리로 퍼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민수는 영희를 불러서 왜 그런 소문을 내느냐고 따졌다고 한다. 적반하장이었다. 또 남자 친구의 핸드폰을 몰래 본 영희에게 잘못이 있다고 민수는 말했다 한다. 민수는 도대체 영희를 어떤 존재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또 다른 두려움. 민수의 친구들도 똑같지 않을까라는 의심이 생겼다. 그러자 그동안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던 그들의 행동들이 다르게 보였다. 문득 낯설게 느껴졌다.

동아리의 남자 동기들이 모여서 여자 동기들의 얼평을 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니네가 무슨 주제로 우리의 얼굴을 평가하는 거야?” 전에는 한소리 하는 것에서 그쳤었다. 근데 이제는 우리를 어떻게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을지 두려워졌다. 이후 동아리 남자들과 여자들 사이에 소통은 단절됐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아물지 않는 상처를 남겼다. 우리는 남자를 만날 때 더 신중해져야 했다. 하지만 상처를 남겨줬던 그들은 아무 죄의식 없이 잘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쓴웃음이 나온다.

2018년 초 미투 운동으로 성차별과 양성 평등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우리 사회에 양성 평등 의식이 자리를 잡을 때도 되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오늘의 현실은 더욱 암울하다. ‘집단 성 착취 영상 거래’ 사건이 터졌지 않은가?

대학 시절 우리가 겪은 그 일이 특별한 사건이 아니었다. 잘못된 악습의 뿌리가 이 사회에 만연하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정치·사회·경제·문화 사회의 전 영역에 너무 깊이 박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고 어디서부터 바꿔야 되는 것일까? 막막하다. 우리는 과연 같은 사람으로 소통할 수 있을까?

동고송
안녕하세요. 사단법인 인문연구원의 웹진 동고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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