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잡이 검사는 어떤 칼을 사용할까? 마구 찌르는 검사는 왜 명의가 아닐까?

[수사/기소는 검투] 은유와 [수사/기소는 의술] 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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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익주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

지난 해 여름 이른바 ‘조국 사태’ 이후 온 나라의 이목을 집중시킨 검찰 수사를 두고 국민들은 둘로 갈라졌다. 한쪽에서는 ‘문재인 탄핵’과 ‘공수처(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반대’, ‘‘조국’ 구속’을 외쳤고, 다른 한쪽에서는 ‘검찰 개혁’과 ‘공수처 설치’, ‘‘조국’ 수호’를 외쳤다.

‘검찰 수사’라는 동일한 현상을 두고 이렇게 극명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을 보면서 이런 의문이 들었다. “은유가 인간의 사고 체계 내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인지 기제라면, 이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어떤 은유가 작용하고 있을까?” 당연히 이러한 기사에는 수많은 은유가 숨어 있을 것이다. 실제로 언론의 기사에는 ‘검찰’과 ‘검사’, ‘검사의 수사’를 묘사하는 다양한 비유적인 표현이 등장했다. 특히 나의 관심을 사로잡은 것은 ‘검사’를 ‘칼잡이’에 비유하는 표현이었다. 이러한 표현의 기제에 구체적으로 어떤 개념적 은유가 깔려 있는지와, 이 표현의 의미는 정확히 어떻게 구성되는지 궁금해졌다.

· 어떻게든 조국 구속? 검찰의 칼잡이 교체: 가족 탈탈 털던 검찰, 돌고 돌아 김태우 건으로 영장 청구

· 권력 눈치 보며 춤추는 검찰의 칼: 2010년은 검찰의 기업 사정……서부지검의 칼날날카로웠다. 하지만 현 정권 실세와 관련 있는 기업가들에게는 그 칼날이 한없이 무뎠다.

출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98494&CMP T_CD=SEARCH 오마이뉴스 2019.12.24.
출처: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9218 시사인 2011.1.11.

검사가 비유적으로 칼잡이라면, 그들이 사용하는 칼은 무슨 칼일까? 사무라이들의 일본도? 만화 속 중원 무림 검객들의 칼? 도축업자들의 큰칼? 부엌의 식칼? 과일을 깎는 칼? 연필을 깎는 칼? 아니면 외과 의사들의 수술용 칼? 마음속으로 이런저런 유형의 칼이 떠올랐다. 하지만 바로 과일이나 연필을 깎는 칼은 아닐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칼에 비유되는 검사의 수사권이 겨냥하는 목표물인 피의자는 연필이나 과일과 같은 무생물이 아니라 생명이 있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동일한 이유로 살아 있는 상태가 아니라 이미 죽은 상태의 식물이나 동물을 자르는 부엌의 조리용 칼도 검사들의 칼일 수 없다.

[수사/기소는 검투] 은유

그렇다면 검사의 비유적인 칼은 무사들의 검이나 외과 의사들의 수술용 칼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검사는 칼잡이’ ‘검사의 칼날’ ‘급소를 찌르는 검찰의 칼끝’ 등의 표현을 들을 때, 가운을 입고 수술실에서 수술용 칼로 환자의 몸을 자르는 외과 의사의 모습보다는 등에 칼을 차고 다니면서 칼싸움을 하는 무림과 강호의 검객들이 더 강력하게 내 마음속에 떠오른다. 어떻게 이러한 연상이 가능할까? 이러한 낱말은 ‘싸움/전쟁’ 프레임을 통해 수사와 기소라는 ‘법률행위’를 은유적으로 이해하는 우리의 머릿속 사고방식을 활성화하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기사는 이러한 은유적 사고방식에서 발현되는 언어적 표현이다.

· 홍○표, 윤○열에 ‘검사인지 샐러리맨인지 보자’: 검사들이 칼을 뺐다. 니들이 검사인지 샐러리맨인지 판명이 날 수 있는 순간이 왔다. 설마 면죄부 수사를 위해서 압수수색한 것은 아니겠지만 검사 정신이 살아 있다는 걸 똑똑히 보여 주어라. 윤○열 총장이 진정한 칼잡이인지 지켜보겠다.

· 요즘 검찰의 모습을 보면 검법의 기초도 제대로 닦지 않고 강호에 출두한 어설픈 검객을 연상시킨다. 정확한 목표를 정해 날렵하게 급소를 찌르기보다는 여기저기 들쑤셔 상처만 낸다.

출처: https://www.sedaily.com/NewsView/1VN4SHRHXQ 서울경제신문 2019.8.27.
출처: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448061.html#csidx7cfd343110fef539834d52e 93cd0bfe 한겨레 2010.11.10.

‘검사’는 경찰관을 지휘하고 감독하여 피의자의 범죄 사실을 수사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기소 여부를 독점적으로 결정하며 공판 과정에서 법원에게 법령의 정당한 적용을 청구하고 형의 집행을 지휘하고 감독하는 역할을 하는 사법관이다. ‘검사’라는 낱말을 들을 때, 사람들은 보통 전문적이고 복합적인 이 정의(定義)를 떠올리기보다 시민들을 괴롭히는 조직폭력배를 비롯한 범죄자들을 체포하여 기소하여 법의 심판을 받게 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이것은 일반인들에게 이 정의를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근원영역이라 불리는 더 구체적이고 단순한 개념을 통해서 목표영역이라 불리는 추상적이고 복합적인 개념을 은유적으로 이해하는 우리의 사고방식 때문이다. 따라서 이 연상(聯想)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검투―전쟁의 하위유형―라는 더 구체적인 개념을 통해서 검찰의 주요 활동을 이해하는 이 은유적 사고방식 덕택에, 우리는 위의 표현이나 ‘검찰, 범죄와의 전쟁 다시 선포’와 같은 표현들을 별다른 의식적인 노력 없이 사용하고 그 의미를 즉각적으로 이해한다. 달리 말하면, 이러한 표현은 한국인들의 사고체계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수사/기소는 검투] 은유의 언어적 발현이다.

구체적으로 이 은유는 ‘수사/기소’라는 조금은 더 비(非)물리적인 개념 영역의 요소들과 ‘검투’라는 더 물리적인 개념 영역 사이에 이루어지는 일련의 대응이다. 검투에서 뛰어난 검술을 지닌 고수는 급소를 정확하게 겨누어 단 한 칼에 상대를 죽이거나 상대에게 치명상을 안기지만, 검술이 서툰 하수는 수차례의 공격에도 급소를 제대로 찌르지 못하거나 단 한 칼에 상대를 제압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상대나 그 배후를 두려워하여 싸움을 회피한다. 마찬가지로 수사 역량이 뛰어난 검사는 피의자의 범죄 혐의를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를 단 시간에 확보하여 기소하고 피의자를 감옥에 보내고 사회적으로 매장시킨다. 반면에 수사 역량이 뛰어나지 않은 검사는 빈번한 압수 수색과 소환 조사에도 피의자의 범죄 혐의를 입증하지 못하거나 심지어는 공소를 제대로 유지하지 못해 무죄로 풀려나게 하는 경우도 있다.

수사/기소는 검투 은유의 대응

목표영역: 수사/기소 근원영역: 검투
·검사·검객
·수사/기소 권한·살상용 칼
·피의자·대결 상대
·범죄 혐의·급소
·증거 확보·공격 성공
·수사/기소/유죄판결 도출·응징(살상)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면 피의자를 처벌할 수 있다.―  ·급소를 정확하게 찌르면 상대는 치명상을 입거나 죽는다.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은 감옥에 갇혀 사회적 활동을 못한다.―  ·치명상을 입은 상대는 칼을 사용할 능력을 잃는다.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은 사회적 명성을 잃고 매장 당한다.―  ·사람은 죽으면 땅에 묻힌다.  
[수사/기소는 검투] 은유의 대응

요약하면, [수사/기소는 검투] 은유에서 검사는 검객에 대응하고 피의자는 대결 상대에 해당하며, 검사의 수사/기소 권한은 살상용 칼에 대응하고 피의자의 혐의는 급소에 해당하며, 증거 확보는 칼로 급소를 찌른 공격의 성공에 대응한다(위의 표 참조).

[수사/기소는 의술] 은유

개념적 은유 [수사/기소는 검투]와 마찬가지로 한국인들이 검찰과 검사를 은유적으로 이해할 때 흔히 동원하는 개념 영역은 ‘의술’의 하위영역인 ‘외과수술’이다. 이 은유적 이해에서 칼잡이로서의 검사가 사용하는 칼은 ‘수술용 칼’이다. 올해 초 현 법무부 장관이 취임식을 마치고 내놓은 다음 발언은 바로 이 개념적 은유―즉 [수사/기소는 의술]―의 언어적 발현 사례이다.

·추○애 “수술칼 여러 번 찌르는 건 명의 아니다” 작심 검찰 비판: 수술 칼을 환자에게 여러 번 찔러서 병의 원인을 도려내는 것이 명의가 아니라 정확하게 진단하고 병의 부위를 제대로 도려내는 게 명의……검찰이 수사권, 기소권을 갖고 있다고 해서 인권은 뒷전으로 한 채 마구 찔러서 원하는 결과를 얻어냄으로써 검찰이 신뢰를 얻는 것이 아니다……인권을 중시하면서도 정확하게 범죄를 진단해내고, 응징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검찰 본연의 역할이듯 그런 유능한 검찰조직으로 거듭나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도록 하겠다.

출처: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4089532&code=61111111&sid1=pol 국민일보 2020.1.2.
출처: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4089532&code=61111111&sid1=pol 국민일보 2020.1.2.

위의 발언은 현 법무부 장관이 지난 해 여름 이후 4개월 넘게 진행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가족, 주변 인물에 대한 검찰의 수사 과정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담아 검찰에게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전한 메시지의 일부이다. 물론 저인망식 압수 수색과 먼지 털기 식 수사, 소환 조사 없는 기소가 인권 침해와 기소권 남용의 소지가 있다는 인식을 반영한다. 왜 이 장관은 역시 은유적으로 사람인 검찰 조직을 명의가 아니라고 보았을

까? 그리고 어떻게 해서 우리는 이 메시지의 의미를 별로 특별한 인지적 노력 없이 즉각 이해할 수 있었을까? 바로 우리의 사고체계 속에서 거의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수사/기소는 의술] 은유 덕택이다.

명의는 외과적 수술이 필요한 환자의 질병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병소의 크기와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여 꼭 필요한 만큼만을 절제하고 봉합해야 한다. 만일 외과 의사가 정확한 진단을 내리지도 못한 채 병소가 아닌 엉뚱한 부위를 절제한다거나 병소 주변의 여러 부위도 함께 절제한다면 환자는 치명상을 입거나 죽을 수도 있다. 특정 범죄를 수사할 때, 검사는 헌법상의 적법 절차를 지키면서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 범죄자들의 혐의를 입증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직접 관련이 없는 피의자 주변의 너무 많은 사람들을 소환하거나, 아침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너무 장시간 조사하거나, 의도한 특정 범죄 이외의 다른 사건으로 피해자를 기소한다면, 인권 침해 논란이나 공권력 남용의 논란을 부른다. 실제로 검사들의 이러한 수사 관행이 인권을 침해한다고 비판하는 시민들도 적지 않다. 환자의 병소 이외에 다른 신체 부위를 절제하는 외과 의사가 명의일 수 없듯이, 인권을 침해하는 검사는 훌륭하거나 바람직한 검사일 수 없다.

위에서 예시한 법무부 장관 발언의 기저에 있는 은유는 ‘의술’이라는 개념 영역과 ‘수사/기소’라는 개념 영역 사이에 이루어지는 일련의 대응으로 구성된다(아래 표 참조).

[수사/기소는 의술] 은유의 대응

목표영역: 수사/기소 근원영역: 의술
·검사·외과 의사
·수사/기소 권한·수술용 칼
·범죄 피의자·환자
·범죄 혐의·질병
·결정적 증거 확보·질병 진단
·수사/기소/유죄 판결 도출·외과 수술
·인권 침해 검사·엉터리 외과 의사
·수사 절차 위반(예: 인권 침해) ·병소의 반복적/과도한 절제
·범죄 혐의를 정확하게 포착해 신속하고 정확한 수사로 기소하여 범죄자를 응징한다.―  ·질병을 정확하게 진단해 병소를 최소한의 절제로 질병의 근원을 제거한다.
·결정적 증거의 부족은 피의자의 응징을 방해한다.―  ·부정확한 진단은 환자의 치료를 더디게 한다.
·수사절차 위반(예: 인권 침해)은 피의자를 과도하게 응징해 피의자의 삶을 파괴할 수 있다.―  ·병소의 반복적인 절제와 부정확한 절제는 수술 실패를 초래해 환자를 죽일 수 있다.

수술 능력이 뛰어나지 않은 외과 의사에 대해 불평을 할 때 사람들은 ‘그 외과 의사는 도축업자야’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 은유적 표현의 의미는 다음과 같은 일련의 대응에 근거한다. ‘도축업자’는 ‘외과의사’에 대응하고, ‘동물(소/돼지)’은 ‘환자’에 대응하며, ‘도축용 큰칼’은 ‘수술용 칼’에 대응하고, ‘수술실’은 ‘도축장’에 대응한다. 특히 “외과의사의 무능함”이라는 이 표현의 의미는 수술 목적과 도축 목적의 대조에서 나온다. 도축의 목적은 소나 돼지의 살을 발라내는 것이며, 뛰어난 도축 기술의 소유자가 아무리 신속하게 도축을 한다 해도 소나 돼지는 고통을 받으며 죽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수술의 목적은 환자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것이다. 수술 과정에서 환자에게 너무 많은 고통을 주거나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는 외과의사는 도축업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도살자의 기술 숙련도에 관계없이 ‘이 외과의사는 도축업자’라는 표현은 ‘외과의사의 무능함’을 강조하는 의미를 전달한다.

검사들의 수사와 기소 행위를 외과 수술에 비유하는 사고방식에 외과수술을 도축에 비유하는 사고방식을 더하면, 우리는 도축을 통해서 수사와 기소를 은유적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실제로 한국인 화자들의 일부는 간첩 사건을 조작하여 개인과 가족의 삶을 파괴한 검사들에 대해서는 ‘검사는 인간이 아니라 칼 든 도살자’나 ‘(검사) 김기춘은 소름끼치는 인간도살자였다’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검사들의 활동을 도축업에 비유하는 표현이 더 이상 확산되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아가 검사들의 활동을 칼싸움을 통해 이해하는 은유적 사고가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자리 잡고 있다 해도, 그 칼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자비롭고 다른 어떤 사람들에게는 무자비한 불공평한 칼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동일한 자비와 무자비를 행사하는 공평한 칼이었으면 좋겠다. 또한 그 어떤 검사도 돌팔이 의사라는 평가를 받지 않고 모든 검사들이 외과수술 분야의 명의라 칭송받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검사는 칼잡이’라는 말을 때 나는 사람을 살리는 ‘좋은 칼’이 아니라 사람을 괴롭히는 ‘나쁜 칼’이 먼저 떠오른다. 이렇게 별다른 인지적 노력 없이 내 마음속에서 작동하고 있는 이 은유적 사고는 일상의 수많은 경험에서 무의식적으로 생겨난 것이다. 따라서 ‘나쁜 칼’에서 ‘좋은 칼’로의 은유적인 사고 전환은 검사들의 활동에 나도 모르게 감동을 받는 일상의 경험이 마음속에 쌓이고 나서야 가능할 것 같다.

낮에는 영어 교사, 밤에는 언어학자로 살아온 두 얼굴의 사나이. ‘동고송’의 전신인 '고전을 공부하는 교사모임'의 창립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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