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의인들 (11) 심남일 의병장을 찾다

“왜놈을 쓸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으리” 한말 전남 중·남부서 의병 일으켜 영암 전투때 日 평금산 대장 사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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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적은 1909년 9월부터 두 달 동안 우리의 의병들을 수색, 포위, 체포, 학살하는 ‘남한 폭도 대토벌 작전’을 시행하였다. 말은 ‘남한 폭도’인데 토벌 작전의 표적은 ‘전남 의병’이었다. 의병, 나라는 빼앗겼어도 민족의 얼을 지킨 의로운 젊은이들이었다. 1909년 12월 광주 감옥에서 찍은 의병장 16인의 사진만큼 소중한 민족의 유산이 또 있을까?

나라는 왜놈의 아가리에 다 먹혔지만, 민족의 얼을 놓지 않고 끝까지 왜적에 항전한 젊은이들이었다. 양진여는 담양에서, 전해산은 영광에서, 안규홍은 보성에서 총을 들고 왜적에 대항했다. 장흥 일대에서 또 한 명의 젊은이가 싸우고 있었다. 심남일 의병장이다.

남일 심수택은 1871년생이다. 본명은 수택(守澤)이고, 남일(南一)은 호이다. 영암 전투에서 일본군 평금산 대장을 사살한 의병장이었다.

나는 함평의 ‘남일 심수택 기념관’을 방문하였다. 우리를 맞이하여 준 할아버지는 심남일의 손자 심만섭 씨였다. 귀에 보청기를 낀 팔십의 할아버지가 몸소 흙일을 하고 있었다. 기념관의 터를 잡고 세운 것은 심만섭 씨의 땀에 의존한 일이었단다. 마당에는 동상이 서 있었다. 익히 보았던 한시가 적혀 있었다.

蠻夷若末掃平盡(만이약미소평진)
내 만약 왜놈들을 쓸어버리지 못하면

一死沙場誓不歸(일사사장서불귀)
모래밭에 죽어서 돌아오지 않으리

투옥된 심남일 의병장(뒷줄 좌측 4번째)(출처:남도일보)

심남일 의병장이 의병을 일으킬 때 작성한 시, ‘거의유감’(擧義有感)이었다. 왜 모래밭에 죽으리라고 맹서했을까? 1908년 1월 기삼연 의병장이 총살당한 곳이 광주천의 모래밭이었다. 알고 보니 심남일 의병장은 기삼연 의병장이 주도한 ‘호남창의회맹소’의 일원이었다.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심남일 장군이 남긴 전투일지 ‘진지록’(盡至錄)을 보여주었다. 문(文)과 무(武)를 두루 갖춘 인물로 우리는 이순신을 꼽는데, 심남일 의병장도 문무를 겸비한 장수였나 보다. 나는 밤을 새워 ‘진지록’을 읽었다

광주공원에 있는 심남일의병장순절비.(출처:남도일보)

심남일 의진의 첫 번째 전투는 강진에서 전개되었고, 두 번째 전투는 장흥에서 전개되었다. 강진과 장흥이라면 전라남도에서도 바닷가에 인접한 남쪽 고을이다. 그래서 ‘거의유감’에서 ‘바람타고 남도하네 말도 나는 듯하네’라고 읊었던가?

심남일의 글은 읽기 쉬웠다. 백성들과 가까이 지냈다는 것이다. 왜적의 앞잡이들이 많았나 보다. 왜적에게 붙은 조선인을 토왜(土倭)라 하였고, 왜적에 고용된 조선인 용병을 보조원이라고 하였다.

“슬프다. 오늘 이 땅에서 승냥이 같은 왜적이 횡행하게 됨은 창귀 같은 토왜가 그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토왜에게 경고하는 심남일의 글을 읽으면서 우리의 현재를 떠올렸다.

심남일의병장이 은신했던 동굴.

겨울이 오고 있었다. 의병들은 옷도 변변치 않았고 추위는 살을 뚫었다. 왜적은 토벌대를 편성하였다. 토벌은 잔혹했다.

해가 바뀌었다. 심남일 의병장은 1909년 2월 다시 의병투쟁을 벌였다. 남평 거성동 전투는 심남일 부대가 치른 최후의 대접전이었을 것이다. 의병투쟁은 보성 웅치 전투, 보성 천동(泉洞) 전투로 이어졌다. 곳곳에서 전해산, 안계홍 의진 등과 연합 전선을 구축하였다.

이때 융희 황제가 내린 의병해산 조칙이 뿌려졌다. 일제의 간교한 협박에 못 이겨 내린 조칙인 줄 알면서도 심남일은 눈물을 머금고 의진을 해산하였다. 1909년 9월 5일이었다. 영암 고인동에서 마지막 작별을 할 때 동료들은 모두 생사를 같이하겠다고 우겼지만 장군은 단호하게 뿌리치고 발길을 돌렸다. 장졸들은 피눈물을 뿌렸다.

능주 풍치의 석굴 안에서 부상당한 몸을 치료하던 중 10월 9일 체포되었다. 10월 9일 심남일 의병장이 체포되고 10월 10일 ‘남한 폭도 대토벌 작전’은 끝이 났다. 1910년 10월 4일 대구감옥에서 순국하니 향년 39세였다.

심남일의병장 손자 심만섭(오른쪽)씨와 증손자 심창남씨.(출처:남도일보)

擧義有感 (거의유감)
의병을 일으키며

林下書生振鐵衣 (임하서생진철의)
초야에 글 읽는 이가 갑옷을 떨쳐입고

乘風南渡馬如飛 (승풍남도마여비)
바람을 타고 남쪽으로 가니 말도 나는 듯 하구나.

蠻夷若未掃平盡 (만이약미소평진)
만약 왜놈들을 물리치지 못하면

一死沙場誓不歸 (일사사장서불귀)
맹세코 모래밭에 죽어 돌아오지 않으리.

이 글은 남도일보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http://www.namdo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563789

황광우
30만부가 나간 '철학콘서트'에 이어 '역사콘서트'와 '촛불철학'을 출간했다. 지난 5년 동안 운사 여창현의 문집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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