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를 떠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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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것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그리고 적절한 시점에 끝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밤과 낮의 교체, 사계절의 운항, 국가와 민족의 흥망성쇠도 같은 궤적을 가진다. 생로병사로 점철되는 인생도 시작과 중간과 끝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유기체에 지나지 않는다. 만남과 작별에는 과정의 필연성이 내재해 있다. 거기에는 보이지 않는 필연 혹은 인과율의 거대한 손길이 잠재해 있는지도 모른다. 2019년 2월 18일 시작된 광주생활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경북대와 전남대의 교수 교환제도에 기초하여 1년 가까이 진행된 나의 광주 삶이 바야흐로 끝나가고 있다. 날마다 점심이나 저녁자리에서 그동안 신세진 분들과 인사를 나누며 아쉬움을 함께 하고 있다.

기나긴 인생살이에서 1년 시간은 짧은 기간이다. 더욱이 나이 들면 시간의 흐름이 신속하게 느껴지는 법이어서 광주에서 체류한 1년은 그야말로 순간의 일처럼 느껴진다.

1980년 5월 광주항쟁 이후 언젠가 광주에서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된 살인과 폭력이 절정에 달했던 80년 5월 광주에 진 마음의 빚이 오랜 부채(負債)처럼 떠나지 않았던 때문이다. 광주와 전남대에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도 그것이었다. “왜 광주에 왔는가?” 하지만 정작 광주항쟁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관념적 사치 혹은 철지난 바닷가 같은 쓸쓸하고 우울한 느낌 때문일 것이다.

책에서 영화에서 드라마에서 보고 들었던 광주와 살면서 실감한 광주는 분명 차이가 있다. 그것을 제한된 지면(紙面)에서 말하고 싶지는 않다. 불과 한 해를 살아보고 광주의 전모를 알았다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들의 도움과 관심이 있었기에 무탈하게 1년을 보낼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동고송 (冬孤松)’ 여러분이 보여준 우의와 관심은 오래 기억할 것이다.

 

작년 4월 19일 개관한 사단법인 동고송. 광주의 가난하고 어려운 문인들을 도와주고자 창립한 동고송. 나는 일간지에 실린 기사를 보고 창립 기념일에 동고송을 찾은 일이 있다.

훗날 동고송 관계자들이 내게 연락을 하고, 나의 대중강연에 몸소 찾아와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다시 나를 불러 ‘서향재’에서 <유라시아와 격동의 20세기> 강연을 청하고, 지난주에는 축령산을 함께 산보하며 재회를 기약한 것이다.

나와 비슷한 연배의 가난한 식자들이 십시일반 추렴하여 후학들을 위해 사단법인을 만들고, 함께 모여 인문학을 공부하며 세상을 논한다. 대구에서도 부산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이런 작업을 경이롭게 바라보고 있다. 가난한 문인이 어디 광주에만 있으랴! 하지만 그들을 위한 구체적인 활동을 기획하고 실천하는 곳은 광주가 유일한 것 같다. 이런 아름다운 면면이 항쟁 40주년을 맞이하는 광주의 든든한 자산이라 생각한다.

헤어지면서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이들에게서 보고 듣고 배운 것을 대구에서도 실천해보리라 다짐한다. 고맙고 정다운 광주여, 이제 안녕! 다시 만날 때까지!

출처 : 경북매일 : https://www.kb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837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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