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의인들(10) 광주학생독립운동 장재성, 부끄러운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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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비밀결사 성진회 결성 기념사진
1929년 11월 3일 조선인학생들과 일본인학생들 간 충돌사건이 발생하자 전국적 항일운동을 일으키기로 하고 광주지역 학생시위 지도책임을 맡은 장재성은 11월 12일 ‘일본제국주의 타도하자’ 등의 구호와 독서회 제작 유인물을 배부하며 거리 시위를 주도하였다. 원안이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역 장재성 선생. 장재성은 함께 구속된 260명 중 최고 형량인 4년형을 선고받았다./신봉수 역사교사 제공

2019년 11월 3일의 일이다. 광주학생 독립운동 기념식을 위해 서울에서 높으신 분이 오셨다. 국무총리 이낙연 씨가 오셨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청중들 앞에서 좌르르 설명했다고 한다. 광주학생 독립운동의 원조는 성진회요, 광주학생 독립운동의 주역은 독서회이며, 성진회를 창립하고, 독서회를 조직한 이는 장재성 씨였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그렇게 말했다고 전해 들었다. 이낙연 씨가 누구인가? 전직 기자 출신이요, 더더욱 광주일고를 졸업한 분이니만큼 광주학생 독립운동에 관한 그의 강연은 격조 높은 해설장이었으리라…

그런데다. 그런데 거기에서 그치고 말았다고 한다. 이낙연 씨는 장재성 씨가 아직도 대한민국으로부터 독립유공자의 서훈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몰랐을까?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장재성의 서훈을 추진하라는 멘트를 보냈다. 그런데 보훈처 공무원들이 미적거렸다. 그렇다면 보훈처 공무원들의 직무유기를 따져 물을 분이 누구일까? 국무총리 아닌가? 나는 속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것이 우리 광주의 모습이다. 말로는 잘 떠든다. ‘의향 광주’라고. 세상에 독립운동을 하다 청춘을 감옥에서 보낸 분을 독립유공자로 서훈하지 않으면 누구를 독립유공자로 서훈할까?

나는 안다. 대한민국 공무원들의 뻔뻔한 직무유기를…. 국가가 주는 월급을 받는 공무원이라면, 나서서 독립유공자를 찾아낼 일이다. 독립유공의 서류를 제출하지 못했다면 나서서 대행해야 할 분들이 보훈처 공무원들이다. 하지만 우리의 총명한 공무원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자손들이 신고하기 전까지 찾지 않는다. 서류가 오면, 이제 공무원이 할 일은 서류의 흠결을 찾는 일이다.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고…. 화가 하늘까지 솟구친 유공자의 자녀는 몇 해 동안 준비한 서류더미를 던져버린다. “이 *같은 나라, 느그들에게 서훈을 신청한 내가 바보다.”

누가 만든 나라인가? 나는 한 때 대한민국의 창건자들을 곱게 보지 않았다. 해방이 되자 조르르 미군정청으로 달려간 자들, 일제 때엔 일본*들에게 빌붙어 동족의 뼈골을 빨아먹던 자들, 해방이 되니 또 외세에 붙은 이들이 만든 군대가 대한민국의 군대요, 이들이 만든 학교가 대한민국의 학교요, 이 들이 인수한 형무소가 대한민국의 교도소라는 것을 알고 분개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나의 나라이다. 싫건 좋건 나의 조국이다.

소녀회 관련 동아일보 기사, 소녀회는 장재성이 이끄는 독서회중앙부 산하 광주여자고보(현 전남여고) 조직임. 사진 중앙이 장재성의 누이인 장매성(1995년 건국포장 수여).

미국의 아이들은 자기 나라를 만든 분들을 건국의 아버지(Founding Fathers)라 배우며 자란다. 미국의 독립 전쟁을 이끌었던 이, 미국의 독립 선언문 작성에 참여한 이들을 아이들은 영웅으로 존경하며 자란다. 언제까지 후진국의 후진적 작태를 계속할 것인가? 일제 치하에서 전개한 독립운동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존립할 수 없다. 3·1운동이 없는 대한민국, 상상할 수 있는가? 광주학생 독립운동이 빠진 한국현대사, 작성할 수 있는가?

광주학생독립운동 여학도기념비

장재성 어르신은 광주학생 독립운동을 이끌었다는 죄목으로 4년의 감옥살이를 하였다. 1년의 감옥살이는 살만하다. 감옥에서 법정으로 왔다 갔다 하다 보면 1년은 금방 지나간다. 2년부터 힘들다. 3년의 감옥살이는 중형이다. 도둑, 깡패들도 중형을 받고 들어온 죄수에 대해선 특별대우를 한다. 장재성 어르신은 4년 형을 살고 나왔다.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가 1937년 다시 돌아왔다. 일본 형사들은 또 장재성을 감옥에 집어넣었다. 이번에는 3년 감옥살이를 한다.

1950년 6월 어느 날 광주 형무소에 수감 중이던 장재성 어르신은 무등산으로 끌려가 총살을 당했다고 한다. 장재성 어르신처럼 광주학생 독립운동에 가담하여 옥고를 치렀으나 아직도 독립유공자의 서훈을 받지 못한 광주출신자들이 54명이 된다. 이것이 광주다.

 

이글은 남도일보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www.namdo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557671

 

출처남도일보
황광우
30만부가 나간 '철학콘서트'에 이어 '역사콘서트'와 '촛불철학'을 출간했다. 지난 5년 동안 운사 여창현의 문집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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