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이 만난 링컨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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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이 시대를 여는가 아니면 시대가 영웅을 만드는가라는 맥락에서 링컨과 노무현은 많이 닮아 있다. 링컨이 탄생하게 된 시대적 배경은 노무현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던 때 보다 더 복잡하고 암울했던 시기였다. 노예제 폐지라는 화두가 뜨겁게 떠오르던 역사적 배경 속 링컨과 첫 민주 대통령을 계승하며 미처 끝내지 못한 민주적 절차들을 마무리해야하는 배경 속에 당선된 노무현은 둘 다 험로가 예견되었다. 두 대통력은 직에 있는 동안 상대진영 뿐 아니라 자기 진영에서도 맹렬한 공격을 받았다. 특히, 링컨의 경우 심지여 친구 집에서도 상처를 받을 정도였다고 했다. 이와 같이 험난했던 링컨정권의 사회 역사적 배경은 흑인 노예 해방론자 프레드릭 더글러스 (Frederick Douglas)가 링컨 사후 11년 뒤에 행한 연설문에서 엿볼 수 있다.

“그에게는 두 가지 위대한 임무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나라를 분단과 파괴에서 구해내는 것이었고 둘째는 노예제라는 대범죄에서 나라를 해방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같은 송공에 필요한 기본적인 조건이 없었더라면 그의 노력은 허사로 돌아가고 아무런 성과도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그가 연방을 구하는 것보다 노예제 폐지를 우선으로 삼았더라면, 강력한 미국민 계층으로부터 유리되어 분리주의자의 반란에 대항할 수 없었을 겁니다. 순수한 노예제 폐지론의 입장에서 보면 링컨은 느리고 차갑고 우둔하고 냉담했습니다. 그러나 국가라는 입장에서 협의를 해야 하는 정치인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빠르고, 열성적이고 적극적이고 단호했습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에서 정책결정이 얼마나 신중해야하는지 짐작케 한다. 단순히 진영논리가 아니라 국가라는 대 화합의 차원에서 시간과 논리와 설득의 과정을 필요로 하는 긴 여정이라는 의미이다. 그럴 경우 자기 진영에서는 답답하다고 할 것이고 상대진영에서는 걸어가는 방향이 다르다는 것을 시시각각 확인해야 하니 얼마나 미칠 노력이겠는가. 그러니 두 진영에서 모두 욕을 먹고 손가락질 당하는 외로움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는 노무현 또한 힘겨운 시간을 견뎌야했다. 길을 가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노무현 탓이다’를 외칠 정도로 ‘노무현 씹기’가 국민 스포츠가 될 정도였으니 그 강도를 짐작할 만하다. 이제라도 하늘에서 서로의 노고를 위로하며 천상의 언어로 기나긴 정책토론이라도 하며 시원한 맥주 한잔 하셨기를 바란다.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독자인 내가 미국의 이름 없는 시골에서 나무를 하고 배를 타며 장사를 하는 것 같은 생생한 경험을 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이야기 방식으로 링컨의 성장과정을 찬찬히 들러준다. 아울러 일상생활의 단조로움과 소소함이 자양분이 되어 일개 시골청년이 어떻게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를 서사형식으로 보여준다. 일상에 매몰되어 우울 안 개구리처럼 좁은 틀 속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다 보면 지금 이곳을 유일한 세상으로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외진 시골에서 나고 자란 링컨은 현재 그곳에서 최선을 다해 생활하지만 자신을 조금씩 발전시켜나갔다. 발은 땅에 딛고 생각은 열어둔 채 스스로를 단련시켜 나간 것이다. 그 곁에는 항상 지지해주고 관심을 기울어 준 가족, 특히 새어머니의 사랑이 있었다. 현재 새 가정에서 발생하는 아동학대 문제를 생각해 볼 때 링컨 새어머니의 완성된 인격은 신선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역시 위대한 사람 곁에는 그 보다 더 위대한 조력자가 있기 마련이었다. 책을 읽다가, 자신이 낳지 않았어도 가식 없는 사랑과 보살핌을 통해 한 아이의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인격이란 대체 어떤 것일까라는 생각에 잠시 잠기기도 했다.

링컨이 공화당 상원 후보로 지명되면서 한 수락연설은 역사적으로 많이 회자되어온 유명한 연설이다.

“만일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만 알 수 있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더 나은 판단을 내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노예제의 고통을 종식시키겠다는 정책이 뚜렷한 목적과 확신 있는 약속을 가지고 입안된 지도 어언 5년이 흘렀습니다. 그 정책이 실시되는 동안, 고통은 사라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날이 갈수록 더해지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우리가 위기와 맞닥뜨려 그 위기를 극복하기 전까지는 이 고통이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은 설 수 없습니다.’ 저는 이 정부가, 절반은 노예이고 절반은 자유인인 상태로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연방이 해체되는 것, 즉 집안이 무너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분쟁이 종식되는 것입니다. 모두가 노예가 되거나 모두가 자유인이 되거나 할 것입니다.”

‘모두가 노예가 되거나 모두가 자유인이 되는’ 분쟁의 종식을 위해 링컨은 뚜벅뚜벅 나아갔다. 때론 거대한 벽에 부딪혀도 결코 좌고우면하지 않았다. ‘심각한 멍청이’, ‘정부를 다스릴 능력이 전혀 없으므로 군사 쿠데타로 추방해야한다’, ‘미국 정치에 아무런 영향력도 미칠 수 없는 바보 고릴라’ 등의 모욕적인 말들도 정치적 수사로 흘러버렸다. 오히려 그런 말들을 내뱉고 다닌 사람을 국방부 장관에 임명하여 끝까지 믿어주었다. 국방장관이 된 뒤에도 링컨을 향해 ‘만일 그런 명령을 했다면 그는(링컨은) 비난 받아 마땅한 바보일 뿐입니다’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그가 바보라고 말했다면 내가 바보임에 틀림없다. 이제 그에게 자문을 구해야겠네”라고 까지 하며 절대적인 신뢰를 보냈다. 이 대목을 읽고 작금의 사태와 관련하여 너무나 큰 위안을 얻게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총장이 도도한 역사적 흐름을 읽지 못하고 사적 조직을 위해 칼춤을 추고 있는 상황에서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별 조치 없이 지켜보는 것도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해본다. ‘절대적인 신뢰’를 보낼 만큼 검찰종창이 능력 있고 생각이 큰 사람이기를.

링컨은 힘든 하루를 보내고 휴식을 위해 찾은 극장에서 어느 ‘신념(?)’ 투철한 한 시민에 의해 암살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5월 4일 링컨의 유해가 담긴 관은 스프링필드 근교의 묘지에 묻혔다. 미국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시기에, 가장 비통한 심정을 안고 고난에 찬 대통령직을 수행한 링컨은 또한 가장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비록 살아서는 그가 자신의 소임이라고 확신했던 국민 통합을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정신은 미국인의 가슴속에서 부활했고 전 세계인의 귀감이 되었다. 링컨의 죽음은 노예제 폐지를 지지했던 북부인에게는 관용의 정신을, 반대했던 남부인에게는 가책을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미국의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은 죽음을 통해 미국을 통합시키는 역사적 소임을 완성하게 되었다.

한국의 16대 대통령 노무현은 어떠한가. 그 또한 재임기간동안 온갖 조롱을 받으며 정치판에서 왕따를 당하는 신세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휘두르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내려놓아서 힘없는 헛바지 대통령이라고 놀림을 당하기 일쑤였다. 결국은 자신이 놓아버린 그 권력에 의해 인격살인을 당하며 삶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그 또한 모든 한국인들의 가슴속에 싹틔울 씨앗하나를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 씨앗은 그의 죽음에 대한 국민들의 부채를 자양분으로 하여 무럭무럭 자라 역사의 수레바퀴를 힘차게 돌리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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