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글쓰기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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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대선패배의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자 포 자기하는 심정으로 박근혜의 정치를 조소하고 있던 2014년 봄날이었다. 아직도 명치끝, 뭔가 걸린 것처럼 답답한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애써 tv뉴스를 외면하고 있던 때이기도 했다. 그래도 대선패배로 큰 타격을 입어 다시는 대중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 같은 문재인 후보가 전국을 돌며 지지자들을 위로하는 행보를 막 마무리하는 시점이어서 일말의 희망이 피어나던 때이기도 했다. 봄맞이 행사로 서점을 찾아 책 쇼핑으로 마음을 다잡던 내게 ‘대통령의 글쓰기’라는 책이 눈에 띄었다. 대통령이라니 어느 대통령? 이명박? 속에 신물이 올라오던 그때 책 아래에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에게 배우는 사람을 움직이는 글쓰기 비법’이란 글귀가 눈에 띄었다. 청량제를 한 움큼 마신 것 같은 상쾌함이 몰려왔다. 책을 가방에 넣고 나오면서 빨리 읽고 싶다는 조바심이 일어 근처 카페로 들어가 단숨에 읽었던 기억이 난다.

저자는 국민을 위하는 마음만큼은 같았지만 글쓰기 스타일이 달랐던 두 분 대통령의 연설을 담당했던 비서관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깨알 같은 글씨로 꼼꼼하게 연설문을 고칠 뿐만 아니라 한 번씩 폭탄(대통령이 고쳐보려 했지만 어찌 손을 댈 수가 없는 경우 직접 녹음을 해서 테이프를 내려 보내는 경우)을 투척하곤 했던 반면에 노대통령은 연설문에 대한 열정은 김대통령 못지않았지만 끝까지 수정과 구술을 통해 완벽을 추구하는 타입이라고 회상한다. 두 분 대통령께 연설문은 국민에게 밝히는 자신의 생각이고 국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 되기 때문에 대강이란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특히 언제어디서든 ‘특강’을 마다하지 않았던 노무현대통령은 걸어 다니는 글쓰기 지침서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글이라는 것은 지은이의 가치관과 지식이 총망라된 한바탕 놀이판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술가는 공연으로 화가는 그림으로 자신을 표현하듯 작가는 글로써 자신의 모든 것을 내 보이기 때문이다. 강원국 작가는 천진난만한 아이 같은 심성을 지닌 사람이다. 그는 애초부터 글쓰기에 ‘젬병’일 뿐 아니라 글쓰기 자체가 두려웠다고 고백한다. 그렇지만 청와대에서의 에피소드, 대통령과의 대면상황, 일상생활을 담담하게 서술한 대목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매우 솔직담백하고 기교를 부리지 않는 정직한 글을 쓴다는 것이다. 곳곳에 아이처럼 꾸미지 않은 반응과 표현들을 읽고 나면 절로 미소가 나오는 상큼한 샐러드를 먹고 난 느낌이다.

다시 글로 돌아가서 두 대통령의 성향을 대비한 부분은 무척 흥미로웠다. 독서와 산책을 하고 생각, 생각, 생각을 하며 멀리보고 깊이 생각한다는 공통점과 또한 그게 맞는지, 맞다면 왜 그런지 따져보고 통념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려 했으며 여러 입장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무엇보다 사람과 사물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컸다는 점에서 두 분은 비슷한 성향을 갖고 계신다고 기억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어떤 일을 시작할 때 기본적으로 세 번의 생각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첫째, 이일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은지 생각한다. 둘째, 나쁜 점은 무엇인지 생각한다. 셋째,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한다. 첫 번째는 이 사안에 대한 내 생각은 무엇인가? 두 번째,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무슨 생각, 어떤 입장일까? 세 번째, 이 두 가지 생각을 합하면 어떤 결론이 나올 수 있을까?”

위의 세 단계를 거친 정책결정에 누가 토를 달겠는가. 신중한 의사결정을 위해 복잡한 과정을 생각을 통해 가공해야했을 직책의 엄중함을 엿볼 수 있다.

반면에 노무현 대통령은 창의적인 생각을 제시하는 타입이셨다고 한다. 회의 자리에서 골똘히 생각에 잠긴 후 곧이어 쏟아지는 대통령의 말은 예상을 뛰어넘는 원인진단과 대안 제시에 이르기까지 전후좌우를 헤집는 것이었다.

내가 자네들보다 머리가 좋을까? 아닐세, 나는 자제들보다 열배는 더 생각을 많이 할 걸세. 어느 때는 자다가도 일어나 메모를 하네. 잠자리에서 생각난 것을 잊어버릴까 봐 그러네.”

노무현 대통령답다. 넘치는 열정과 책임감이 가미된 비상한 생각의 회전능력과 창의력은 역사상 어느 누구에도 지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퇴임 후 생각의 숙성기간을 갖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보내드려야 했다는 건 우리역사상 크나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두 대통령은 서로 다른 점도 많은데 그 중 두 분을 특징짓는 결정적인 차이점은 김대중 대통령은 여간해서 생각을 바꾸지 않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얘기하는 도중에도 생각이 진화하는 움직이는 과녁, 그것도 빠르게 움직이는 과녁이기 때문에 맞히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생각의 숙성과정은 와인의 숙성과정과는 다르다. 와인은 시간을 요하는 과정이지만 생각이란 반드시 시간을 요하는 것은 아니다. 생각이 더 나아가지 않으면 머리 어디엔가 잠시 내버려두고 산책을 나가든지 게임을 하든지 아니면 다른 일로 머리를 식힐 필요가 있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르는데 그것은 언제일지 어디일지 어떤 순간일지 모른다. 노무현 대통령의 생각숙성과정은 그러한 방법을 충실히 따랐다.

글쓰기에 있어서 노무현대통령은 깊은 통찰력으로 접근하였다. 읽기 쓰기 말하기 세 박자가 신명나게 맞아 떨어진 정보전달의 달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말도 귀를 닿고 있는 이에게는 닿을 수 없다. 담을 수 있는 그릇크기 만큼만 전달되게 마련이다. 어떤 이는 달을 보라고 펴든 손 끝 손톱에 낀 작은 티끌을 보고 웃어대며 조롱했다. 비난과 조롱의 말들이 공기 속에 살아서 바쁜 국민들의 폐 속으로 스며들었다. 어느새 말과 글속의 진심은 사라지고 몇 사람의 펜대로 만들어진 거짓 이미지가 진주를 덧씌워버렸다.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임기 말, 지지자들마저 막강한 권력을 줬는데 저것밖에 못하냐는 조롱으로 합류하였다. 그 속에서 아무리 아름답고 진심어린 말과 표현으로 사랑을 전달한들 헛된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지도 하락으로 정권 재창출에 대한 회의론이 고개를 들던 때 한겨레에 기고한 내용이다. “저는 다음 정권까지 책임지겠다고 약속한 일이 없습니다. 다음 선거에서 민주 혹은 진보진영이 성공하고 못하고는 스스로의 문제이고, 국민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저에게 다음 정권에 대한 책임까지 지우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습니다.” 이 얼마나 노무현다운 말이며 한 구절이라도 틀린 말이 있는가. 하지만 저 글을 읽고 난 뒤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었을 소위 진보진영이란 사람들의 비난과 조롱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것은 지금도 수위가 조금 낮아졌을 뿐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활화산처럼 때만 노리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다.

다시 한 번 노무현 대통령의 ‘갓 잡아 올린 생선 같은’ 말을 들을 수 있다면 있는 힘껏 두 엄지를 올려드리며 소심해서 속으로만 삼켰던 환호와 박수를 끝없이 쳐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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