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시작] 갈릴레이, 《두 우주 구조에 대한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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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와 결별한 과학관
_ 갈릴레이, 《두 우주 구조에 대한 대화》

 

그래도 지구는 돈다

1616년 2월 26일 추기경 벨라르미누스의 경고 후 위원회는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에게 다음과 같이 명령한다.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고 돌지 않으며 지구는 운동을 한다는 견해를 완전히 포기해야 한다. 지금부터 말과 글을 포함하여 어떤 방식으로든 그 견해를 지속적으로 주장하거나 가르치거나 옹호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지 않을 경우 재판에 회부될 것이다.
-1616년 2월 26일 로마 교황청 추기경위원회 의사록

갈릴레이가 약식 종교재판에 회부된 것은 태양중심이론(helio-centric theory)을 옹호했기 때문이다. 특히 1613년에 출간된 《태양 흑점에 관한 서신》이 문제였다. 그리고 갈릴레이는 1632년에 다시 《두 우주 구조에 대한 대화(Dialogo sopra i due massimi sistemi del mondo, tolemaico e copernicaon)》를 쓴다. 다시 교황청으로 소환된 갈릴레이는 무릎을 꿇고 유죄 선고를 받아야 했다. 갈릴레이는 굴욕적인 맹세를 한다. 태양이 아니라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며, 앞으로 이단적인 행동을 절대 하지 않겠다고 한다. 유죄 선고가 내려졌던 1633년 6월 22일에 갈릴레이는 혼잣말로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을 믿을 수는 없다. 그러나 두 차례의 종교재판에 회부되면서까지 갈릴레이는 지구가 움직인다는 사실을 밝히려 했다.

무엇이 갈릴레이에게 그런 신념을 갖게 했을까? 갈릴레이는 자신의 두 눈으로 보고 세운 이론을 포기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갈릴레이의 재판을 종교에 의한 과학의 탄압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단지 종교와 과학의 갈등에 지나지 않았을까? 아니다. 그것은 지나간 과학과 새로운 과학의 충돌이었고, 나아가 우주를 바라보고 세상의 현상을 이해하는 세계관의 충돌이었다.

갈릴레이는 이탈리아 피사에서 태어났다. 갈릴레이의 성과 이름이 비슷한 이유는 장남인 경우 성을 겹쳐 썼던 토스카나 지역의 관습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수도원 학교에서 인문학을 배우고, 피렌체 교외의 바론브로사수도원 부속학교에서 초등교육을 마쳤다. 열여덟 살 때 피사 대학 의학부에 들어갔다. 그러나 수학에 흥미를 느껴 3년 반 만에 대학을 중퇴하고 가정교사를 하며 수학을 연구했다. 수학 분야의 논문을 발표하여 명성을 쌓은 덕분에 1592년 피사 대학의 수학 교수가 되었고, 나중에는 파도바 대학에서 가르쳤다.

이때 갈릴레이의 인생을 뒤바꾼 계기가 생긴다. 망원경과의 만남이었다. 당시의 망원경은 성능이 좋지 않았다. 그저 귀족들의 장난감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그러나 갈릴레이는 망원경의 원리를 간파하여 고배율의 망원경을 발명해냈다. 고배율 망원경을 통해 천체를 관측한 갈릴레이는 새로운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목성의 위성과 달의 반점 그리고 태양의 흑점 등 새로운 발견을 했고 이 발견들은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이론을 입증하는 증거가 되어주었다.

갈릴레이의 연구 성과는 당시의 기독교적 원리와 대립하는 것이었기에 상당한 비난을 받아야 했다. 이 때문에 로마를 방문하여 변명을 했으나 1616년에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태양중심이론을 포기하도록 명령받았다. 그러나 갈릴레이는 굽히지 않고 태양중심이론을 주장하여 1632년에 《두 우주 구조에 대한 대화》를 발표했다. 《두 우주 구조에 대한 대화》는 그때까지 세상을 지배하던 철학과 천문학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를 공격하라

《두 우주 구조에 대한 대화》는 두 개의 우주론, 즉 지구중심이론(geo-centric theory)과 태양중심이론을 다룬다. 그러나 갈릴레이는 이 책에서 어떤 결론도 내지 않고 지구중심이론과 태양중심이론의 쟁점만 정리했다. 그러나 태양중심이론을 옹호하고 그 논거를 제시하고 있음은 명확하다. 《두 우주 구조에 대한 대화》는 세 명의 대화로 이루어진다. 살비아티는 코페르니쿠스의 지지자로 태양중심이론을 주장하고, 심플리치오는 프톹레마이오스의 지지자로 지구중심이론을 주장하며 사그레도는 중립적인 인물이다. 세 사람은 4일간 대화를 나누고 갈릴레이는 이 대화를 통해 태양중심이론의 장점을 독자들이 인식할 수 있게 했다.

지구중심이론은 고대 그리스의 프톨레마이오스의 저작 《천문학 집대성》에서 비롯되었다. 지구중심이론의 핵심은 ‘지구는 움직이지 않는다’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다’다. 이 지구중심의 세계관에 대한 믿음 뒤에는 지구가 움직인다면 어떻게 사람들이 지구에 서 있을 수 있느냐 하는 단순 논리가 자리하고 있었다.

첫째 날, 대화의 주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천체론이다. 사실 지구중심이론의 바탕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천상계와 지상계를 구분한다. 그러나 갈릴레이는 천상과 지상의 구분에 반대하여 천상과 지상이 모두 같은 운동법칙에 지배받는다고 했다. 지구중심이론과 태양중심이론에 대한 사그레도의 정리를 보자.

첫 번째 견해는 천상의 물질이 본래 생성되지도 부패하지도 변형되지도 않으므로. ……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천상의 물질은 생성하고 부패하며 변화하는 우리 지상의 물체와 아주 다른 원질인 에테르라는 것이다, 두 번째 견해는 천상과 지상이 다르지 않다고 말하며 …… 지구도 달, 목성, 금성이나 다른 행성들과 마찬가지로 운동을 하는 천체라고 주장한다.

물론 중립적인 사그레도는 태양중심이론이 더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갈릴레이는 관측을 통해 천상 역시 지상처럼 변화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천체관을 비판했던 것이다.

둘째 날, 대화의 주제는 지구의 자전이다. 심플리치오는 하늘을 향해 던진 돌멩이가 제자리에 떨어지는 예를 들어 지구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지구가 움직인다면 돌멩이는 수직으로 떨어질 수 없고, 돌멩이가 하늘에 떠 있는 동안 지구가 움직이기 때문에 돌멩이는 처음 던진 자리와 다른 곳에 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갈릴레이는 움직이는 배의 예를 들어 지구가 움직인다고 설명한다. 움직이는 배 안에서도 물방울은 수직으로 떨어진다. 떨어지는 자리 역시 변하지 않는다. 물고기는 어항에서 배가 움직이지 않을 때와 똑같이 움직인다. 갈릴레이는 지구의 회전 속도가 매우 미미하다고 말하며, 원심력이 작기 때문에 원심력의 작용은 그것보다 몇 배 강한 중력의 작용에 의해 지워져버린다고 논증한다.

 

지구는 자전하고 또 공전한다

셋째 날, 대화의 주제는 지구의 공전이다. 지구중심이론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고 지구를 중심으로 천체가 움직인다고 주장한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이기도 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주가 유한한 공 모양이고 그 중심에 지구가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지구는 우주의 중심, 세상의 중심, 항성 천구의 중심이어야 한다.

이에 대해 갈릴레이는 지구가 공전과 자전을 한다면서 반박한다.

지구는 운동하는 천체들 사이에 놓여 있다. 지구는 금성과 화성 사이에 있다. 성은 아홉 달에 한 바퀴 돌고 화성은 2년에 한 바퀴 돈다. 그러니 금성과 화성 사이에 있는 지구가 정지해 있다고 보기보다는 1년에 한 바퀴 도는 운동을 한다고 보는 것이 훨씬 우아하고 정연한 일이 되리라 생각한다. …… 지구가 자전하지 않으면서 태양 둘레를 도는 운동만 한다면 1년은 한 번의 낮과 한 번의 밤만 나타날 것이다. 다시 말해 여섯 달 동안 낮이 되고, 여섯 달 동안 밤이 된다.

마지막, 넷째 날 대화에서는 태양중심이론의 필연성을 확립한다. 갈릴레이는 태양중심이론의 근거로 바다에서 일어나는 밀물과 썰물을 예로 든다. 만약에 지구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바다에서 밀물 썰물 현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물론 밀물 썰물 현상은 지구의 회전에 의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직 만유인력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갈릴레이는 바닷물이 들고 나는 현상은 지구의 회전에 의해 일어난다고 보았던 것이다.

갈릴레이는 지구중심이론이라는 하나의 학설과 논쟁한 것이 아니다. 뿌리 깊게 이어온 구시대의 세계관과 논쟁을 했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당시 종교와 과학의 버팀목이었다. 그래서 갈릴레이의 아리스토텔레스 비판은 동시에 아리스토텔레스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당시 학자들에 대한 공격이었다. 갈릴레이의 대변인 격인 살리아티의 말을 들어보자.

내 얘기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에 귀 기울여서는 안 된다는 뜻이 아니다. 사실 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을 읽고 세심하게 연구하는 일에 갈채를 보낸다. 내가 비판하는 것은 오로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라면 맹목적으로 찬동하고 어떤 다른 근거도 찾아보려 하지 않으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불가침의 신조처럼 모시는 식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노예가 되려는 사람들이다.

살비아티의 말을 통해 당시 과학자들이 관측과 실험을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실험과 해부를 통해 얻어진 결과에 대해서도 당시 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글귀를 들이밀며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당시 과학은 낡은 권위에 묶여 있었던 것이다.

《두 우주 구조에 대한 대화》는 코페르니쿠스의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Derevolutionibusorbiumcoelestium)》, 뉴턴의 《프린키피아》와 함께 천체물리학의 진보를 이룩한 획기적인 3대 저서로 꼽히고 있다. 더욱이 교회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이런 책을 펴낸 갈릴레이의 용기는 모든 과학자에게 귀감이 되었다.

 

홍승기
인민노련 홍보부를 담당하면서 6월 항쟁을 현장에서 이끈 숨은 일꾼. 술만 사 준다면 지옥에도 함께 들어갈 천진무구한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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