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께 보내는 미국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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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잘 지내시는지요? 날이 제법 쌀쌀합니다. 찬바람이 세상을 감싸 돌고 바싹 마른 잎들은 앙상한 나뭇가지에 매달려 이리 저리 춤을 추는 겨울입니다.

선생님 저는 3주간 미국에 다녀왔습니다. 저의 친 언니가 지난 4월 경 새로운 출발을 하기위해 미국이란 대륙으로 떠나고 딱 8개월 만에 안정되어 저를 초대했습니다. 14시간 하고도 30분을 더 비행해야 도착할 수 있는 멀고도 먼 나라, 미국. 힘든 비행을 마치고 뉴욕 J.F.K.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뉴욕과 인접한 뉴저지에 살고 있는 언니는 저를 반갑게 맞이해주었습니다.

저는 이번 여행 동안 미국 동부, 뉴욕, 뉴저지, 보스턴, 워싱턴 D.C를 방문했습니다. 각 주마다 특징이 뚜렷하여 마치 다른 나라처럼 느껴졌습니다.

뉴욕!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울렁이는 그곳. 그 중에서도 뉴욕의 맨해튼은 전 세계 상업과 경제의 우두머리인 만큼 그 위세가 위풍당당하였습니다. 높고 화려한 건물들이 서로가 잘랐다고 뽐내면서도 조화롭게 모여 있었습니다. 멀리서 바라본 맨해튼은 저에게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본 맨해튼은 무법천지였습니다. 무척이나 더럽고, 위험하고, 극명한 빈부 격차의 단면을 가려내지 못하는 곳이었지요.

뉴저지에서 바라본 맨해튼 전경

목을 뒤로 최대한 젖혀야만 맨 꼭대기를 볼 수 있는 무지막지하게 높고 화려한 빌딩건물 아래에는 집을 잃은 홈리스들이 구걸하며 앉아있고, 맛있는 음식 냄새가 솔솔 풍기는 고급 레스토랑 앞거리에는 재활용하지 않은 쓰레기가 가득 쌓여 있고, 맨해튼을 연결해주는 지하철은 썩은 냄새와 쾌쾌한 먼지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또한 가장 놀라운 것은 해가 떨어지면 이곳저곳에서 하얀 가루가 교환되곤 합니다. 길을 걷다가 노점에서 하얀 가루를 비밀스럽게 주고받는 사람들을 보고, 아 이곳은 정말 무법천지구나! 생각했습니다. 거리를 걷다보면 문득 문득 특이한 냄새가 나는데, 그것이 대마초 냄새인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죠. 그 중에서도 저를 가장 긴장하게 했던 것은, 언제든 총기 사고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쁜 점만 있던 건 아닙니다. 어디든 장단점이 있지만 이곳 뉴욕은 특히나 뚜렷한 장단점을 지닙니다.

맨해튼 월스트리트

나이와 인종과 성별에 의해 차별받지 않고 자신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동등하게 대우받는 맨해튼의 직장인들을 보며 한국의 직장 문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이번 여행 때 한국계미국인 친구를 사귀었습니다. 그 친구는 미국인이지만 한국인의 피가 흐르기 때문에 한국어도 잘 하고 한국 문화도 다른 미국인들보다 비교적 잘 알아서 한국회사에 취직을 했습니다. 삼성이지요. 미국에서 가장 큰 한인회사인 삼성. 그런데 친구는 그곳에 주재원으로 온 한국인 상사들 때문에 적잖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다른 일반 외국계 회사에선 느낄 수 없던, 꼰대문화가 원인이었습니다.

한국의 꼰대문화

구체적으로 말하면, 본인들은 시도 때도 없이 나가서 담배를 피며 휴식을 취하는데 아래 직원들이 “점심시간”에 밥을 일찍 먹고 탁구를 치고 있었더니
와서는 “쉬는 시간 다 쓰고 들어갈 생각인가 봐?”라며 핀잔을 준다고 합니다. 또한 일주일에 세네 번은 반 강제로 회식에 참석해야하는데 회식에서 하는 대화라고는 보통 “그래서 결혼은 언제 할 거야?” “남자친구는 있어?” “여자 친구는 있어?” “나 때는 이러이러하게 지냈는데 요즘 회사원들은 너무 쉽게 지내지~” 등의 질문에 대답하는 수준이니, 그 자리가 결코 즐거울리 없지요.
그 외에도 성희롱인 거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은 멘트를 쳐서 기분을 상하게 만든다거나 회식을 안 간다고 하면 개인주의다, 이기적이다는 식으로 대한다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친구와 다른 부하 직원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더라고요. 한국은 미국에 비해 군대 문화가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있어서 위계를 중시하고 부하 직원을 자기 아래 사람이라 생각하여 막 대하고 지나치게 소속감과 단체 생활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어 문제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인 친구는 이런 문화가 너무 적응이 안 되어서 하루빨리 미국 회사나 다른 외국계 회사로 이직하고 싶어 합니다.
물론 어느 정도의 차이는 존재하겠지만, 보통의 미국 회사는 회식이란 개념 자체가 없고 일 끝난 후 친한 동료들 끼리 한두잔씩 하는 경우만 있다고 합니다. 또한 자신이 맡은 일만 제 시간에 잘 처리하면 직장인으로서 인정받고 일 외에 사생활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존중받는다고 합니다.

맨해튼 타임스퀘어 부근

또 다른 미국의 장점은 다인종 국가라는 특징입니다. 지하철을 타서 앉아 있으면 저와 같은 칸에 탄 승객들의 인종과 국적이 이토록 다양할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곤 했습니다. 저는 동양인, 서있는 백인, 앉아서 책을 읽는 흑인, 노래를 듣는 남미계 사람, 아이를 보는 인도계 사람.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저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은 더욱 다양하지요.

한국은 여전히 사실상 단일 민족으로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보니 아무래도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경향이 없지 않은 듯합니다. 이민자들에 대한 시선이 무척이나 부정적이고 그들의 유입을 강하게 반대하고 외국노동자들에 대한 배려나 존중은 찾아보기 힘들지요. 백인에 대한 시선은 보통 긍정적이나 다른 인종에 대해선 상당히 부정적이고 신기해하는 것을 인터넷이나 뉴스에서 자주 보게 됩니다. 중국인에 대한 인식 차별도 심하고 동남아인들에 대한 차별도 심하고 사실 저 부터도 일본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견해를 지니고 있는데 일본의 평범한 시민들까지 비판하는 이런 태도도 인종차별이겠습니다.
물론 미국 내 흑인 차별과 이민자들 차별은 여전히 심각한 사회문제임에 틀림없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더욱 극명해졌지요. 지난 2016년 미국 남부, 조지아 주에 위치한 University of West Georgia 대학교에 연수 받기 위해 방문했을 때 일입니다. 주말에 관광 명소인 커다란 국립공원에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남부연합기를 흔들고 있는 백인 노인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여전히 흑인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강하게 내뿜고 있는 곳이었지요.
그러나 미국 동부, 적어도 맨해튼에서는 차별적인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정말 많은 다인종 사람들이 함께 얽히고 섞여 자라기 때문인지, 서로를 적당히 존중하고 어색해하지 않으며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도 다른 유럽 국가들을 여행하거나 미국 남부나, 심지어는 동부에서도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면 동양인인 저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시선들을 많이 느꼈는데 맨해튼에서는 전혀 느끼지 않았어요. 무척 자연스럽게 대해주었습니다. 뉴욕은 저에게 미국은 이민자들의 나라라는 사실을 강하게 느끼도록 해주었습니다. 정말 다양하고 재미있는 주입니다.

보스턴 하버드 대학교

다음으로 방문한 보스턴 주에는 그 유명한 하버드와 MIT가 위치하지요. 보스턴의 주 별칭이 The spirit of America인 만큼, 스스로를 학문의 중심, 미국의 정신이라고 자부하는 동네였습니다. 차분하고, 깨끗하고 쌀쌀한 보스턴. 항구에서 굴과 랍스터를 저렴하고 싱싱하게 먹을 수 있다는 것 외에 특별히 관광할 만한 것이 없는 조용한 곳. 다만 그 조용한 주에 많은 대학교들이 자리하며 보스턴을 빛내고 있었습니다.

워싱턴 D.C 링컨기념관

한편 3박 4일간 방문한 워싱턴D.C는 진정 미국의 정치, 문화의 중심지다운 모습이었습니다. 맨해튼과 정말 비교될 정도로 깨끗하고 넓고 한적한 거리와 잘 정돈된 건물들이 눈에 띠었습니다. 넓고 긴 대지에 국회의사당, 우주항공박물관, 국립미술관, 워싱턴 기념탑, 링컨 메모리얼, 흑인 박물관, 백악관, 등등 다양한 목적의 건물들이 줄지어 서있고 가장 좋은 점은 모두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료로 시민들에게 문화와 교육을 제공하겠다는 정치적 의도가 다분한 곳이지요. 하지만 저의 코웃음을 치게 한 곳이 있었는데, 미국 역사박물관에 속해 있는 전쟁기념관이었습니다. 그때 느꼈던 감정과 생각을 선생님께서 이미 지적하셨더라고요.

선생님께서 얼마 전 중앙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발췌했습니다.

“우리는 미국이 세계의 자유를 지키는 경찰국가인 것으로 배우면서 자랐습니다. 케네디의 취임사를 외우면서 자랐습니다. “오랜 세계사에서, 이처럼 자유가 극도의 위협에 처한 시기에 자유의 수호역할을 맡게 된 세대는 거의 없었다.” 그때 소련은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설치하려 했고, 미국은 턱 밑에서부터 미국의 자유를 위협받는 상황이었습니다. 강대국 소련의 위협에 맞선 케네디의 행동은 용감하였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이후 미국이 보여준 일련의 행동은 과연 미국이 자유를 수호하는 나라인지 의문을 들게 했습니다. 미국은 자신의 자유를 위해 남의 자유를 짓밟는 나라가 아닌가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불행히도 미국은 베트남을 침공했고, 또 이란과 필리핀, 칠레와 아르헨티나에서 부패한 정권을 지원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박정희 정권의 숱한 인권 유린을 방조했고, 급기야는 전두환 군부집단의 광주학살을 묵인했습니다.”

네 선생님 맞습니다. 미국은 자신들이 자행한 전쟁을 미화하고 진실을 감추는 이중적인 괴물 같습니다. 전쟁기념관에 적힌 문구들을 보면 정말 기가 찹니다. 우리는 정의를 위해 싸웠고, 세계 평화와 민주주의를 지켜 냈다. 우리의 적국은 악이다. 우리의 희생은 숭고하다! 등등…
미국이 나아갈 길은 아직도 멀고도 멀었습니다. 강대국일수록 자기반성이 철저해야 세계가 평화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워싱턴D.C 답사는 미국이 세계를 어떻게 해석하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단면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언니가 터를 잡고 지내는 뉴저지는 주 별칭이 Garden city 인 만큼 조용~하고 한적하고 포근한 동네입니다. 아기자기한 집과 정원들 그리고 공원이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이토록 다양한 색깔을 지니고 다양한 느낌을 풍기는 미국! 수많은 수식어와 설명이 필요한 다양성의 결정체 미국! 앞으로 살면서 미국이란 나라를 자주 방문하여 조금씩 더 미국과 친해지고 하나하나 자세히 알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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