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보내며, 미친소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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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란시사(竹蘭詩社)를 꿈꾸다

살구꽃이 피면 새해 첫 모임을 갖는다. 복숭아꽃이 피면 꽃에 앉은 봄을 보기위해 다시 모인다. 한 여름 참외가 익으면 여름을 즐기기 위해 한 번 만난다. 그것도 잠시, 서늘해지기 시작하여 서지(西池)에 핀 연꽃을 완상하기 위해 또 모인다. 가을이 깊어져 국화가 피면 서로 만나 얼굴을 보고, 겨울에 들어 큰 눈이 내리면 다시 만난다. 한 해가 기울 무렵, 분에 심어둔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면 모두 모인다.

 

다산 정약용이 주도했던 열다섯 벗들이 만든 죽란시사(竹蘭詩社)의 모임 규칙은 이러했다. 모일 때는 붓과 벼루 그리고 안주를 갖춰 술을 마시고 담소를 나누고 시를 짓는다. 정기모임은 일 에 일곱 번 뿐이지만 비정기 모임을 더러 연다. 누가 아들을 낳으면 모임을 마련하고, 벼슬이 높아지면 축하하기 위해 모인다. 회원 중 수령으로 나가는 이가 있으면 만나고 자제가 과거에 급제하면 그 집에서 잔치를 벌인다.

 

다산이 죽란을 만들 때는 한창 잘 나가던 시절, 정조의 총애를 받고 있을 때, 요즈음의 청와대 실세들 쯤으로 보면 된다. 정조임금이 뽑은 초계문신(抄啓文臣)들이니 말이다. 죽란은 대나무 난간을 의미한다. 다산은 심부름하느라 쫓아다니는 비복들의 옷깃에 스쳐 꽃들이 상처를 입을까봐 마당의 동북쪽으로 난간을 세워 이를 죽란(竹蘭)이라 했다. 그리고 때 맞춰 찾아오는 선비들도 죽란을 거쳐 온다하여 모임의 이름을 죽란시사라 했다.

동고송, 경자(庚子)년의 꿈

  1. 고전공부모임

우리는 셰익스피어를 함께 읽어나갈 것입니다. 사춘기에 읽은 명작이 사추기(思秋期)에 읽으면 어떻게 다르게 익힐까요? 서가에 쳐박아 두었던 셰익스피어 관련 책자를 찾으니 스무 권이 넘게 발견되었습니다.

2009년 10년 전 영국 런던의 책방에서 구입하고선, 아직까지 한 번도 읽지 않은 책이 있는데, 요놈이 벌써부터 저를 설레게 합니다. The Life, Mind and World of William Shakespeare입니다. 박전일 연구원이 서울 수유너머에서 갈고 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기해년 여름 우리는 위당 선생을 초치하여 주역의 점치는 법을 배웠습니다. 경자년엔 주역의 64괘, 요 똘똘한 녀석들을 만나러 갈 것입니다. 저는 국문과 한문 그리고 영문으로 편집한 21세기 현대식 주역 교재를 만들고 있습니다. 가칭 <황역(黃易)>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영문본은 Legge의 주역풀이에 의존하고 있으며, 프로이드의 제자이자 집단 심리학의 석학인 칼 융의 주역 서문을 부록으로 편집합니다. 어떻습니까? 소문을 많이 퍼날라 주시기 바랍니다.

 

  1. <의향 광주의 뿌리 찾기>

기해년 우리는 한말 호남 의병 운동에 관해 연구를 하였습니다. 노성태 선생께서 안내를 해주었습니다. 송사 기우만과 성재 기삼연, 녹천 고광순과 담산 안규홍 등 한말 의병장들의 삶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또 지난 9월 한국학 호남 진흥원의 공모에 응하여, 의병 발표회를 열었습니다. 홍영기 교수와 노성태 서생님, 박전일 연구원, 김보름 선생과 신봉수 선생의 발표는 너무 감동적이었습니다. 이대로 감추고 있기엔 너무 아까운 발표였습니다.

 

경자년을 맞아 우리는 <의향 광주의 뿌리 찾기>를 계속 이어가고자 합니다. 2020년엔 일제하 광주-전남 독립운동의 주요 인물들을 탐색할 것입니다. 역시 노성태 선생님의 안내를 받아 묻혀 진 역사, 잃어버린 진실을 찾아내고자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반기에 우리의 연구 성과를 시민과 함께 공유하는 발표회를 열고 싶습니다.

 

  1. 명사 초대 강연회

기해년 우리는 시인 황지우, 작가 곽병찬, 과학자 배석철의 강연을 들었습니다. 경자년에는 좀 더 적극적으로 기획을 하고 싶습니다. 모시고 이야기를 듣고 싶은 분이 있으면 허심탄회하게 추천해주길 바랍니다. 나익주, 박전일 , 김용범 이사께 명사 초대 기획의 임무를 맡기고 싶습니다. 기획에 참여하고 싶은 분, 또 있습니까?

 

  1. 유럽 인문 기행

기해년 동고송의 마독스(마르크스, 독일, 스위스의 줄임말) 기행은 환상적이었습니다. 동고송은 인문 기행에서도 유감없이 그 격조를 발휘하였습니다. 한 가지 유감스러운 사태가 터졌습니다. 소문을 들은 여러 지인들이 ‘왜 나는 뺐느냐?’며 항의를 하는 것입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인간 평등사상을 동고송은 위반하였던 것입니다.

 

경자년에도 임창노 대표의 배려 속에서 유럽 여행을 이어갈 것입니다. 희망하는 분들께 문호를 열어놓을 것입니다. 여행의 실무는 박광렬 회원에게 일임하고자 합니다.

 

  1. 국내 인문 기행

기해년 6월엔 합수 사업회와 함께 나주 지역 역사 기행을 했고, 11월엔 허경도 회원의 안내로 함양 지역 역사 기행을 했습니다. 허경도 이사의 품격 높은 해설이 돋보였습니다.

 

경자년에도 합수 사업회와 함께 역사 기행을 할 것이며, 허경도 이사의 안내를 받아 늦가을 역사기행을 추진하겠습니다. 우리가 놓친, 꼭 가 보아야 할, 코리아의 명소가 있으면 추천해 주십시오. 단, 묘향산 기행은 통일이 되면 추진하겠습니다.

  1. 홈페이지와 인문통신

기해년 한 해 동고송 사무국이 성취한 사업의 하나가 홈피와 통신의 구축이었습니다. 박광렬 회원께 열렬한 박수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동고송 홈피가 자랑하고 싶은 것은 목소리의 다양성입니다. 의사, 교사, 변호사 등 다양한 분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올리고 싶습니다.

그동안 이은주 회원께서 바쁜 일정 속에도 꾸준히 체험기를 올려주었습니다. “이은주 따라 배우기”를 제안합니다. 한 달에 한 편, 수기를 홈피에 올리는 것, 어떻습니까?

 

인문통신을 받아보는 독자가 1000명에 달하고 있습니다. 좋은 글을 좋은 독자와 공유하는 것이야말로 (사) 인문연구원 동고송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이사들의 글을 정기적으로 발송하고 싶습니다.

 

  1. 책 잔치

기해년 창립대회 때, 우리는 곽병찬 작가의 <향원익청> 책잔치를 열었습니다. 경자년에도 동고송 이사들의 신간이 출간될 예정입니다. 나익주의 <은유로 보는 한국 사회>, 황광우의 <마지막 선비>, 그리고 장 석의 신간 시집이 출간된다고 합니다.

 

  1. <인문의 향연> 복간

1년에 한 번 동고송 회원들의 문집을 발간하고 싶습니다. 이 점에 관해 이사님들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기묘(己亥)년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서산대사의 시를 읽는 것으로 저의 보고를 마치겠습니다.

 

踏 雪 野 中 去

눈을 밟으며 들길을 갈 때

 

不 須 胡 亂 行

모름지기 허튼 걸음을 말라.

 

今 日 我 行 跡

오늘 내가 남긴 발자취는

 

遂 作 後 人 程

마침내 후인의 길이 되리니.

30만부가 나간 '철학콘서트'에 이어 '역사콘서트'와 '촛불철학'을 출간했다. 지난 5년 동안 운사 여창현의 문집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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