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지에서 온 편지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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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온 편지를 읽고

나지현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 정약용은 신유박해가 일어난 1801년(순조 1년) 40세의 해에 귀양을 떠나게 된다. 귀양살이 동안 그가 두 아들과 제자, 둘째 형님에게 쓴 편지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데, 이 책을 통해 정약용의 생각과 가르침을 엿볼 수 있었다. 보통 우리는 정약용을 생각할 때 실학, 목민심서, 수원 화성과 같은 업적만 떠올리고 마는데, 이 책을 통해 그 당시의 사회적인 면면과 정약용의 구체적인 생각을 알 수 있어 좋았다.

그는 아들들에게 폐족으로서 잘 처신하는 방법은 오직 독서하는 것 한 가지밖에 없다고 전한다. 오히려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게 되어 독서할 때를 만났으니 더 좋은 것이 아닌가? 라고 반문한다. 독서를 하려면 반드시 먼저 근본을 확립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 근본이란 무엇인가? 효제를 실천하여 근본을 확립하고, 그 다음에 학문을 익히는 것이다. 그리고 책을 읽을 때에는 경학과 역사, 실학에 대한 글을 즐겨 읽어 다른 백성들에게 혜택을 주겠다는 뜻으로 독서를 하라고 강권한다. 또 어떤 젊은이에겐 삼국지와 같은 소설만 읽지 말고, 좋은 경전을 읽으라고 말한다. 경학이란 인의예지란 실천에서 오는 것으로 본 학문으로 논어, 맹자 등이 있다. 그 당시에도 입신양명을 위해 수많은 독자들이 책을 읽었을 텐데, 진정한 학문의 뜻은 무엇인가? 에 대해 생각거리를 주는 것 같다. 자신이 배운 학문을 통해 모두가 그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전체로서의 ‘선’에 한 걸음 다가가는 길이 아닐까?

두 번째로는 어버이를 섬겨 효도를 하라고 말한다. 사대부 집안에서 부녀자들이 부엌에 안 들어간 지는 오래지만, 안 들어갈게 뭐가 있냐고 말한다. 그 당시 유교 사회를 생각해 볼 때 그는 굉장히 유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것 같다. 가정 내에서 서로 협동하여 화합을 도모해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일. 어쩌면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일 것이다.

세 번째로는 절조를 지키라고 말한다. 그에게 있어 옳고 그름, 이롭고 해로움에 대한 기준을 나눠보자면, 옳음을 고수하고 이익을 얻는 것이 가장 높은 단계이고, 옳음을 고수하고 해를 입는 경우가 그 다음이며, 셋째는 그름을 추종하고 이익을 얻고, 넷째는 그름을 추종하고도 해를 입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들이 홍의호에게 동정을 받도록 항복하는 편지를 쓰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자, 이것은 세 번째, 네 번째 등급이 아니겠냐고 하는 것이다. 그는 고향 땅을 밟는 것도 운명이고, 고향 땅을 밟지 못하는 것도 운명이라고 말한다. 그의 곧은 정신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네 번째로는 문명세계를 떠나지 말라고 강조한다. 처음엔 무슨 말인가 싶었지만, 읽다보니 그 당시 사회를 비추어 볼 때 인상 깊은 부분이었다. 그는 우리나라는 서울 문밖에서 몇 십리만 떨어져도 원시사회처럼 되어 있는데, 자신은 비록 시골에 숨어 살고 있으나 후손들은 서울로부터 10리 안에 살라고 말한다. 지금처럼 정보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조선시대에서는 지금보다도 훨씬 문화적 격차가 컸을 것이다. 수도권을 살다보니 적응이 되고 서울과의 연결이 편리해 갈수록 수도권에 인구가 편중될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또한 그는 심기를 화평하게 하여 벼슬길에 있는 사람들과 다르게 생활하지 말고, 자손 대에 이르러서는 과거에 응시할 수 있고 세상을 구제하는 일에 뜻을 두도록 마음을 먹으라고 말한다. 천리는 돌고 도는 것이니, 한번 넘어졌다고 반드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읽으면서 나는 이 책이 불과 200년 전에 쓰여졌다는 것이 신기했다. 200년 전이 한창 조선시대 후기였다는 점과, 우리 사회가 이렇게 현대사회로,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선 지 200년 밖에 안 되었다는 점이 신기했다. 비록 우리는 6.25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많은 격동기가 있었으나, 정약용의 글을 보며 과거의 정신과 지금이 연결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정약용이 지구가 돈다는 것과 혜성은 보통의 별들과는 다른 성질을 띠고 있다고 말하였는데, 과학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런 것들을 알았다는 점도 신기하였다. 천주교에 대한 언급도 있을까 하며 읽었는데, 편지도 검열의 대상인지 내용은 없었다. 비록 200여년의 세월은 흐르고 지금은 현대 사회이지만, 우리에게 정약용의 글은 많은 가르침을 준다.

 


동고송
안녕하세요. 사단법인 인문연구원의 웹진 동고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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