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병찬] 방위비 분담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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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아직도 점령군인가?

_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 부쳐

 

지난 10월18일 한국진보대학생연합 회원들이 서울 중구 정동 주한미국대사관저에 침입했다. 방위비 분담금 폭증을 요구하는 미국을 규탄하려는 것이었다. 정치권과 언론은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한 것처럼 개탄했다. 수사당국도 국사범 처리하듯 강제수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도 언론도 학생들이 왜 대사관저에까지 들어가 저의 주장을 세상에 알리려 했는지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했다. 미국이 요구하는 방위비 분담금 50억 달러가 의미하는 것에 대해서도 일언반구 말하지 않았다. 11차 분담금 특별협정 2차 협상이 별무소득으로 끝나고, 미국의 증액 요구가 표면화되면서야 체면치레 정도의 입발린 소리만 했다.

사실 이들은 미국의 요구가 10차 협정보다 6배 많은 6조 원에 이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해리 해리스 미국대사가 10월14일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우리는 주한미군 경비의 1/5만 받고 있다’고 불만을 털어놓아도 꿀먹은 벙어리였다. 정부는 세부내역과 지급방식이 나오지 않았으니 그때까지 기다려보자고만 했다.

50억 달러는 내년도 한국의 국방예산의 12%에 이르는 규모다. 한국군의 전력을 증강하기 위한 사업비를 통째로 줘야 할 판이다. 주한미군(2018년 말 기준 28,034명) 1인당 1억8000만여 원이 돌아가는 액수다. 올해 우리 국민의 1인당 지디피는 3452만 원이다.

2018년 미국의 주한미군 주둔경비 예산은 11억 달러였다. 50억 달러면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과 군속의 인건비는 물론 주한미군이 고용한 한국인 인건비, 군사시설 유지 보수비, 군수지원비 등을 모두 충당하고도 20억 달러 가까이 남는다. 대학생이 아니라 세금을 내는 이 나라 국민과 이 세금으로 나라를 운영하는 당국자 그리고 세금의 씀씀이를 감시하는 정치인과 언론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따져야 할 일이다. 우리가 왜 그런 요구를 받아야 하는지, 그런 요구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혈세를 그렇게 퍼주며 미군을 주둔하도록 해야 하는지 따져야 한다. 차라리 북한의 핵 위협에 독자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안도 논의해야 한다.

방위비 분담금 제도는 미국과 동맹 관계를 맺은 전세계 35개국 가운데 한국과 일본에서만 시행되는 예외적인 제도다. 일본의 경우 1952년 맺은 옛 미일행정협정을 통해 부지 및 시설을 포함해 주일미군 주둔경비의 50%를 냈다. 2차대전 후 전쟁 피해배상을 면제받은 대신 미국에 오키나와 등 미군기지를 제공하고 주둔 경비의 일부를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일종의 점령비였다. 그마저도 1960년 미일행정협정을 개정하면서 삭제된 것이었다.

그것이 부활한 것은 1980년대 후반. 미국은 심각한 달러 강세로 경상수지 적자가 늘고, 옛 소련과의 무기경쟁으로 국방비가 천문학적으로 늘어 재정적자도 폭증했다. 달러 가치를 절하하기 위한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엔화 가치가 크게 절상되면서 주둔경비도 더 늘었다. 미국은 결국 1987년 방위비 분담금 제도를 소환했다. 태평양전쟁 도발의 책임 차원에서 전쟁을 포기한 일본으로서는 안보에 관한 한 미국의 요구에 전적으로 순응했다.

미국은 일본에 이어 한국에도 방위비 분담금을 요구했다. 일본 침략의 피해자이자 항일독립항전을 계속해온 한국에게 요구할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한국 정부 역시 버틸 수 없었다. 한국은 1991년 소파 5조에 대한 예외를 규정한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을 체결했다. 다만 지원 대상을 주한미군이 고용한 한국인의 인건비와 시설 관리 및 군수지원으로 제한했다. 첫해인 1991년 합의한 분담금은 1073억 여원(1억5천만 달러)이었다. 그것이 올해 1조383억 원으로 늘었고, 내년엔 6조 원(50억 달러)으로 증액하라는 게 미국의 요구다.

분담금 폭탄 증액을 주도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입만 열면 일본의 지원 규모와 비교했다. 한국의 보수 언론도 일본의 부담률이 70%인데 반해 한국의 분담율은 40~50%이라며 트럼프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방위비 분담금 이외의 직간접 지원을 더하면, 부담률은 70%에 이른다. 2015년의 경우 한국은 미 통신선 및 연합C4I체제 사용비용, 카투사병력지원, 부동산 지원, 기지주변정비, 공무집행피해 배상 등 방위비 분담금에 포함되지 않은 직접 비용으로 1조5천억여 원을 지원했다. 무상공유 토지임대료, 카투사 지원비용, 훈련장사용지원(이상 기회비용 8277억원) 관세 지방세 등 세금면제, 상하수도, 전기, 가스 통신 등 감면, 도로 항만 공항 철도 이용료 면제 등 면제 및 감면비용(1312억여 원) 등 간접 지원까지 합치면 모두 3조4천여억 원에 이른다. 여기에는 미군의 기지 이전에 따른 반환기지 오염정화, 반환공여구역 토지매입 그리고 기지이전 비용 2조7백여억원은 제외되어 있다. 기지이전비까지 합칠 경우 5조4천억여 원에 이른다.

무상공여 토지임대료의 경우 우리 정부는 7105억여 원만 산정했지만, 미국의 일간지 <월스트리트 저널>은 2018년 용산미군기지 81만 평의 임대료만 최소 1조7천억 원에서 최대 4조4천억 원으로 평가했다. 평택 미군기지가 완공되기 전 미군에 공여된 토지는 모두 3030만 평이었으니, 토지임대료를 현실화할 경우 지원비는 훨씬 더 는다.

일본이 분담금을 우리보다 많이 내는 것은 사실이다. 2012년 일본은 4조4천억 원, 한국은 8361억원이었다. 일본의 경우 직접 및 간접 비용을 모두 포함한 액수이기 때문에 산술적인 비교는 의미가 없다. 게다가 주일미군은 6만여 명이지만 주한미군은 2만8천여 명으로 절반도 안 된다. 방위비 분담금만 따지더라도 한국의 GDP 대비 기여율은 한국은 0.68%이며, 일본은 일본 0.064%다. 예산 대비 분담금 비율은 한국(0.254%), 일본(0.200%)이다. 함부로 비교해 멋대로 내뱉을 말이 아니다.

사실 주한미군은 지금의 분담금도 다 쓰지 못하고 있다. 9차 협정 기간인 2014년부터 2018년까지 남는 분담금은 5317억 원으로, 전체(4조685억 원)의 13.1%에 달했다. 2008년 8차 협상 과정에서 미군이 분담금 미사용액 1조1000억 원을 계좌에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주한미군이 아파트를 호화판으로 짓고, 주차장, 교회 등 군사시설과 무관한 건물을 짓는 등 한국의 분담금을 흥청망청 뿌리는 것은 이 때문이었다. 2013년4월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는 보고서에서 “평택 기지를 조성할 때 미2사단을 위한 박물관을 짓는 데 분담금 1040만 달러(116억 원)을 쓰는 등 주한미군이 한국의 분담금을 ‘공돈’처럼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한미군으로 말미암아 한국만 안보이익을 챙긴다는 것도 웃기는 이야기다.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1995년 2월 미국의 동아시아전략보고서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미국의 납세자에게는 미군을 전방에 전개해 두는 편이 미국 본토 안에 배치해 두는 것보다 현실적으로 부담이 더 가볍다. 그 좋은 예가 운영유지비를 계속 지원하는 한국과 일본이다.”

주한미군이 본토로 철수한다고 했을 때 한국의 지원한 5조여 원은 미국의 납세자가 내야 한다. 게다가 미국은 동북아의 패권을 지키기 위한 최전방 최선의 기지를 상실한다. 지금 미국의 최대 관심사는 중국의 팽창을 견제하는 일이다. 한국에 배치한 사드 레이더만으로도 중국의 전략거점들을 샅샅이 훑어볼 수 있다. 신속이동군으로 전환되고 있는 주한미군은 동북아에서 중국의 도전을 억제한다. 무엇보다 전쟁이 본토에서 발발할 가능성을 현저히 낮춘다.

때문에 2016년 주한미군 사령관으로 임명된 빈센트 브룩스 육군 대장은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존 매케인 의원의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주한미군 한국에 주둔시키는 게 미국에 주둔하는 것보다 비용이 적게 된다는데 맞는가?” 브룩스가 답했다. “물론!” 월터 샤프 전 주한미군사령관도 말했다. “미군의 한국 주둔은 반드시 필요하며, 정말로 우리에게 거대한 이익을 가져다 준다.”

그럼에도 미국은 툭하면 미군철수를 거론하며 분담금 증액을 요구한다. 그러나 분담금 때문에 주한미군을 철수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미군 감축은 1971년, 1991년, 2004~2005년 등 몇차례 있었지만 이는 닉슨독트린(1969), 냉전 종식(1990), 해외 미군재배치 계획(2003)와 같은 국제정세 변화나 미국 군사전략 변화에 따른 것이었다. 주한미군은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안보이익을 지키는 투자다.

‘방위비 분담금 50억 달러’가 더 심난한 이유는 규모보다 성격에 있다. 주한미군지위협정(소파)와 특별협정은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에 대해서만 경비를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50억 달러’에는 기타 미군에 대한 작전 지원도 포함되어 있다. 미군의 전략자산 전개, 주한미군의 순환배치, 작전준비태세 비용이 그것이다. 괌이나 오키나와에서 발진하는 전략 폭격기의 훈련비도 지원하라는 것이다. 미군의 전략자산 전개나 준비태세는 미국의 세계 패권전략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이런 요구는 한국을 미군의 병참기지로 활용하겠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 경우 한국은 미국과 중국, 러시아의 군사적 대결 구도 속에 빨려들어간다. 과거 스탈린은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라는 이유만으로, 연해주 한인들을 잠재적 스파이로 간주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한국은 치명적인 안보 위협을 감수해야 한다.

미국의 이런 의도는 한미 동맹위기관리 각서의 개정 협상에서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미국은 ‘미국의 유사시 한국군의 참전’을 명기해 미군이 개입하는 분쟁에 한국군의 참전을 의무화하도록 하고 있다. 미국은 지금 호르무즈 해협에서 이란과 충돌하고 있으며, 남중국해에선 중국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미국의 요구대로 각서가 개정된다면 한국군은 미군의 요청에 따라 이란과도 싸워야 하고, 중국과도 맞서야 한다. 미국은 유명무실한 유엔사의 권한을 강화해, 전시작전권 이양 후에도 유엔사를 통한 한국군 통제를 계속하려 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일본은 대동아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을 한반도에서 쓸어갔다. 청년은 전쟁터로, 처녀는 일본군 성노예로, 장년층은 탄광이나 군수물자 공장으로 끌고 갔다. 식량이나 광물 자원은 물론 집안의 쇠붙이까지 공출했다. 한국은 일제의 전쟁 수행을 위한 병참기지였다. 지금 미국은 그 정도만 다를 뿐 본질에선 일제 때와 다르지 않은 요구를 하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 이후 미국은 북의 핵 위협으로부터 보호를 방위비 분담금 증액의 또 다른 명분으로 삼는다. 그러나 미국은 북핵에 맞선 한국의 군사력 건설은 막고, 또 북핵을 없애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은 하지 않는다. 북핵을 이른바 ‘보호비’를 증액하는데 이용하는 것이다. 조폭이 과거 동대문시장이나 남대문시장에서 다른 조폭으로부터 상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보호비 혹은 관리비를 뜯어내는 것이나 다르지 않다. 조폭은 다른 조폭과의 세력다툼에 상인을 동원하지는 않았다. 미국은 다른 패권 국가와의 분쟁에 한국군을 동원하려 하고 있다.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은 평택 미군기지(험프리스 개리슨)를 방문해, ‘원더풀’을 연발했다. 험프리스는 430만여 평에 세워진 세계 최대, 최고의 해외 미군기지이며 대중국 전진기지다. 한국이 전체 건설비용의 92%인 18조 원을 댔다. 그러나 험프리스의 주소는 대한민국 경기도가 아니라 미합중국 캘리포니아이다. 식당에선 한국 카드를 받지 않는다. 우체통에 편지를 넣으면 미국으로 간다.

트럼프 대통령의 눈에 한국은 주권국가가 아닐 수 있다. 그럴 만한 이유도 있다. 그가 ‘전화 몇 통화면 5억 달러가 나온다’고 한국을 조롱할 때에도 광화문 광장에서는 정치인들이 성조기를 온몸에 두르고 흔드는 사람들과 함께 정부를 흔들어댔다. 미국이 대한민국을 병참기지로 삼고 우리 군을 미군의 용병으로 삼아 중국 러시아 이란 등과 맞서도록 하려는 상황에서도 야당은 국사를 작파하고 장외로 뛰쳐나갔다. 날로 벗겨 먹어도 정신 못 차릴 나라로 본다고 누가 비난할 수 있을까.

 

곽병찬
전 한겨레신문 대기자. 이 시대 인문의 승묵(繩墨), '향원익청(香遠益淸)'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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