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 8권: 토대
- 우화와 남원 이야기
우화: 기채에게 들려준 개구리 우화에 대한 청암부인의 답
사물은 제 각각 제 모습이 있고 할 일이 있고 제 몫이 있는 것이다. 사람 아니 것하고 사람 말을 해 보려 한 것이 첫째 어리석고 이 나무꾼이 저 살아갈 궁리요 방편인 제 나무조차 안하면서 개구리 동무를 해준 것이 둘째 어리석고 저 먹으란 제 밥을 저는 하나도 안 먹고 개구리한테 바닥까지 다 내준 것이 셋째 어리석다. 그것이 산에 가서 드리는 고수레라 해도 지나치고 가여운 미물에 대한 동정심이라 해도 그렇게까지 하는 것은 과한 것이다. 내 것이 실한 연후에 안의 것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밥을 주었으면 그냥 주었지 싱겁냐? 짜냐? 일일이 간 맞추고 비위 맞추어 물어보고 , 그 미물의 뜻을 들어 주고 한 것이 넷째 어리석음이다. 다만 헤아릴 뿐 묻지는 말아야 한다. 베풀고 냉정해야 사람들이 어려워해. 평생토록 책임질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섣부르게 베푸는 시늉하는 것은 오히려 무서운 원심의 근원이 되기 쉬운 즉 이런 어리석음은 결코 저질러서는 안 된다. 다섯째 어리석음은 제 잘못으로 인하여 남의 집 망치고 남을 죽이고 남의 온 동네까지 쑥밭으로 망친 일이다. 헌데 이 나무꾼의 제일 큰 어리석음이 뭔지 아느냐? 한번 벗어난 아가리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하고 그 끈에 매달려 다시금 그 처음 아가리로 대가리를 밀고 들어간 일이니라.
서리반댁이 전하는 쥐의 이빨
쥐는 이빨이 자라면 제 턱을 뚫고 나와 죽고 말어. 상아는커녕 그러니 저 타고난 분수 본색을 제대로 잘 아는 것이 곧 제가 사는 길이야. 상아가 좋아 보인다고 남 따라 당찮은 일 흉내 냈다가는 제 이빨에 제 턱 뚫리네. 그런즉 차라리 쥐는 쥐답게 상아를 꿈꾸지 말고 부러워도 말고, 길어 나는 이빨을 부지런히 갈고 갈아서 어떻게든 못 자라게 해야 돼. 목숨 걸고 밤잠도 자지 말며 잠들면 그 틈새 이빨이 길어 나거든 방심하고 꿈꾸는 사이에 날카로운 이빨이 독이 올라, 칼끝같이 턱을 뚫어버린단 말이야. 그러니 꿈을 갈어 칼날을 만드는 게 아니라, 꿈을 갈어 가루를 만들어야 살아 남어요. 쥐는 미천한 자의 꿈은 자신을 죽이나니 상아를 꿈꾸는 쥐의 이빨 – 242
남원 사람 이야기; 강호의 기억, 중의 종 찬규의 반란
영조 16년 경상도 지방 찬규의 반란 일어난다. 찬규는 남원에 있던 사찰에 매인 사노였다. 팔천 중 하나인 중의 종인 흉중에 품은 억울 원통한 사람답게 살고 싶은 소원이 오죽했을까? 반란으로 처형당한 찬규의 저주가 남원에 불었다고 이야기 한다.
홈실댁의 기억, 장백이의 공명첩과 덕석말이
홈실댁이 시집 올 무렵 중로 장업은 공명첩을 사 양반 행세 하다가 매안으로 잡혀와 덕석몰이를 당하였다. 쥐는 제가 갉은 벽을 잊어도 벽은 그 상처가 남아 있어 길이 쥐를 잊지 못한다하지 않는가. 그러면 이번에는 매안이 쥐가 되고 고리배미는 벽이 되는 것인가 ?
질문) 최명희는 역사 속 반복되는 사건을 이야기 한다. 각 시대 속 억압 받은 자의 분노의 씨앗이 움튼다. 스스로 지은 업의 필연의 자식인 운명을 우화, 이야기를 통해 전한다. 각각 화자로부터 느낄 수 있는 양반의 의식은?
토대가 상부 구조를 결정하는가? 조선의 경제적 토대는 농사이고 상부는 서원이다. 1543년 주세붕 풍기 군수는 대흉년에 서원을 짓는다 비난하자 “ 천하가 썩어 없어져도 교육이 중요하다”며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내부를 잘 다스리자.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를 주장하면 서원을 지었다. 세종 때 있던 백성을 위한 역법, 과학이 사라지고, 경전 교육이 중심인 조선은 실학을 경시 하는 경향이 있었고 관념적이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 양반은 감응 조화의 도를 알고 행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일 것이다. 도가 없는 무늬만 양반은 억압 받은 자에게 원을 사게 된다. 경전의 진정한 내용을 읽어 내지 못하면 형식만을 따르게 된다. 이런 계급적 특권은 일방향이다. 조화를 위한 노력은 억압 받은 자의 몫이다. 그런 조화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책임감 없는 특권은 스스로 약해져 변화의 시기에 불안감으로 덕을 잃어버렸다. 스스로를 바라보고 변화를 향해 나아가지 못하고 변화에 분노 해 업을 지은 기채의 과는 부메랑처럼 온다. 젊은 강호와 그의 아내 서리반댁은 역사 스스로 구성된 인과응보를 이야기하고 그것을 인식하고 있다. 현실을 인식하고 스스로 변하려고 하는 모습이 있다.
- 뿌리를 찾아서 : 남원의 역사
후백제는 졌다. 졌으면 없어져도 좋은 것이다. 라고 이긴 고려는 못난 후백제를 문질러 버렸다. 후백제를 역사 속 야유거리로 전락 시키고 말았다… 빗자루로 쓸어버리듯 이 한나라를 역사 속에서 쓸어 버려도 좋은가 말이다. … 티끌 같이 작은 일도 내가 온 몸을 열어 놓고 오관을 다하여 마음으로 느낌으로 받아들인다면 역사는 바로 그 순간에 나와 한 몸을 이루어 체화 될 것이다. 나로부터 엮어 보는 역사. 역사의 현장을 교과서에서 찾지 말라. 바로 나 자신에게서 찾으라. 내가 없는 역사를 무엇에 쓸 것인가….. 내가누구인가 정말 궁금하여 아버지, 아버지가 살던 땅,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살던 시대, 고조부, 선세 옷깃을 찾아 오르고 오르면서 드디어 단군 할아버지에 도달하는 길은 절실하고도 구체적이다. 내가 원인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125 ~129 심진학 선생
고려 훈요십조에는 군왕이라면 갖추어야할 최소한의 위선조차 보이지 않는다. – 99
민족의 잠재정서. 태조 왕건이 이 땅을 증오하였다. 지배자에게 근이 깊은 묵의 가시..
한 나라가 백성을 얼마나 깊이 사로잡으면 이와 같음 사모와 사무침을 남길 수 있으리야.
앙금도 씨앗이 되는가? 전주는 결국 왕을 낳았다. 태조 이성계
질문 ) 최명희는 승자의 왜곡된 기록에서 진실 찾으려고 노력한다. 남원의 역사를 찾아 조선, 백제 마한 고조선까지 거슬러 오르는 이야기를 한다. 기록은 견훤을 지렁이, 약탈, 죄악의 원흉이라 비유 했다. 고려시대 왕건이 전주를 대하는 태도 속 후백제의 어떤 숨결이 있는 것일까 ?
최명희가 스스로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만난 역사. 인간의 내면은 닮아 있기에 깊이 느끼려고 하면 만날 수 있는가 보다. 기록은 왜곡 될 수 있지만 왜곡된 글 속 숨은 진실이 있고 그 것을 찾아내는 깊은 호흡이 느껴진다. 조선왕조가 기록을 중시 한 건 왜곡된 기록에 대한 두려움인 것 같다. 백제탑은 둥글 넙적 소박하고 완만하며 여유가 있다. 미적 감수성과 마음은 닮아 있다고 한다. 한 나라의 유물은 그 정신의 모습이다. 지역감정의 뿌리가 깊고도 깊은데 그 뿌리는 왜곡된 승자의 합리화이다. 직관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미적 감수성인 것 같다. 유물에서 느낄 수 있는 백제가 품는 푸근함이 있다.
- 사덕 칠현 그리고 나무화병
강실이가 기억하는 청암부인의 말
무릇 여인이 갖추어야 할 일곱 가지 어진 모습에, 첫째는 보행이 단정하여 흔들리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얼굴이 모난데 없이 둥글고 몸 또한 두터워야 하면, 셋째는 귀 눈 코 입 눈썹의 오관이 모두 반듯하게 바르고, 넷째는 이마와 코와 턱, 삼재가 균등한 것, 그리고 다섯째는 그 언어가 단정하면서도 차지 아니하고 허풍이 없는 것이다. 여섯째 용모는 엄숙하면서도 인정이 넘치며, 일곱째로 눈동자의 검은 모공이 크고 눈은 항시 바르게 정시하는 것을 이른바 칠현이라고 하느니라. – 222
사덕 : 첫째 평소에 남과 다투지 아니하고, 둘째 고난 중에도 상대를 원망하지 않으며, 셋째 쌀 한 톨이나 음식 찌꺼기 한 웅큼이라도 결코 버리지 않고, 넷째 급한 일을 당해도 놀라거나 기뻐하지 않는 것
덕윤신 : 마음속에 덕을 쌓으면 저절로 겉모습도 윤택해진다. 덕 없는 미색은 덧 없는 것이라. 천하의 경국지색도 덕성 기품은 당하지는 못해. 선천적으로 타고 나기도해야 하고 결국은 제 스스로 부지런히 갈고 닦기도 해야하고 – 226
나무화병
구름이 몸을 이루면 바위가 되고 바위가 몸을 풀면 구름이 된다. 이처럼 유현하고 황홀하고 매혹적인 몸매와 마음을 사로잡는 무늬는 천만 뜻밖에도 시궁창 속에서 태어난 것이라 하지 않는가. 청천 하늘 아래 햇빛 먹고 비 마시며 순결하게 자라던 생나무 둥치 아름드리가 어느하루 나무 깍는 장인의 도끼날에 그만 토막 토막 잘리어서 흩어지며 시궁창에 처박힐 때 우구라서 그 나무라면 참혹타 아니하랴. 한해도 아니고 두해도 아니고 석삼년 캄캄한 세월동안을 나무토막은 부글부글 괴어 끓는 도랑창 더러운 복판에서 남모르게 홀로 삭고 썩는 것이다. 그러다 이윽고 날이 차서 건져내면 열에 아홉은 형체마저 찾지 못하게 썩어 버리지만 그 중에 천행으로 겨우 한 개 건져낸 토막 은 다행이도 살아 있어 소중하게 보듬아 올린다. 이제 이 나무는 종이보다 가벼우면 돌보다 단단하고 불 속에 구워낸 것처럼 변함없는 성질로 천년이 가도 만년이 가도 다시는 ᄊᅠᆨ지 않을 몸을 이루어낸 것이다. 새로운 재질로 태어난 것이다. 썩어서 썩지 않은 그대. 죄도 없는 몸뚱이를 시궁창에 잠그고 삭으며 부스러지고 갈라지면서 또 아물며 무섭게 뒤틀리다 몸 속에 품고 있던 응어리 진액을 마지막까지 다 토하고 토해 내면서 기왕의 존재를 버리고 새로이 태어난 가벼운 생명. 그것이 곧 저 화병에 어리는 저 무늬요 나무의 지문이며 한세상을 다 썩도록 견디어 이겨낸 자의 아름답고 찬연한 낙관이 되었으니 이 화병은 서럽지 않으리라.
질문) 양반가 여성이 갖추어야 할 사덕칠현 그리고 나무 화병의 은유 속 여인의 모습이 어떻게 느껴지나요? ?
조선이 심은 여인의 정신 덕. 정신이 살아 있을 때 환경은 극복될 수 있어 보인다.시대 속 약자로 존재하는 여성의 모습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품어 안으며 지키는 아름다움이 있다. 이런 아름다움의 미학에 대한 관점은 개인화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낯설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희생이 아름답지만 모두 극복 해 피어나는 당연한 것은 아니다. 시대 속 억압된 개인이 자유를 꿈꾸며 사라지고 있는 모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채로 사라지는 것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것은 아녀자 그리고 노예의 숙명 이었다. 바라보기 아름답지만 내가 그런 존재이기는 두려운 그런 아름다움이다. 풍랑의 시기 나그네였던 남편의 틈을 매꾸며 홀로 가정을 품으며 이겨 내야 하는 그 시대 여성의 강건함은 풍요로고 자유로운 지금 이 시대에 다르게 온다.
4.기채의 마음 , 강모의 마음, 강호의 마음
강모의 기억속 기채의 말
그저 한낱 가그매처럼 허공에 휘이 떠돌며 건성으로 스치면, 제 아무리 귀한 보배 쥐어 주어도, 보고,,듣고, 배우고, 깨달을 것 없으되, 눈여기어 심중을 기울이면, 뜻 깊지 않은 것이 세상에는 없으리라. 천하에 제일 몹쓸 것이 건방진 것이니라. 소인 못난 종자가 제멋에 비틀어져 꼬이고 순탄치 못하면 제 속이 뭉쳐 옹이가 생기지, 옹이는 다른 결로 단단하다. 이 오직 딴딴한 것 하나 믿고 남의 고른 살 파고들며 치고 뻗고, 스스로 제 기운 충돌을 일으키면, 이 충돌이 뭉쳐서 또 다른 옹이가 생기지. 이럼 행티 심술을 부려 남을 해치는 버릇은 절대로 군자가 취할 바가 아니로다. 106-107
모름지기 새로운 고을에 가거든 겸손히 그 땅의 내력을 들을 일이요. 그 고을이 오래고 긴 세월 걸리어 길러낸 자손들의 성품과 문화에 함께 녹아들도록 하라. 행여라도 너의 옹이와 아집이 그들에게 부딪쳐 서로 깨지는 일이 없어야 한다. 무익하게 부서지지 말라. 무엇이든 너의 것으로 받아들여 살찌워라. 내가 한집안에서 겉돌면 이웃집 누구와도 사이 좋기 어렵고 내가 한 고을에서 떠돌림 끝내는 나그네 면하기 어려우리라. 머무는 곳을 소중하게 알아야 한다.내가 지금 서 있는 이 자리, 내가 만난 이 순간의 사람이 내 생애의 징검다리가 되는 것인즉..
‘그것이 부실한 징검돌이면요 ? 부유와 부랑 …. 다만 떠내려갈 뿐 물위에 뜨는 돌 뒤집흰 돌 추춧돌은 커녕 돌멩이 하나 제대로 가슴에 박지 못한 나는 이 위에 무엇을 지으리 ….
강호가 춘복에게 문병 와 건네는 말
아플 때는 눈을 뜨고 있어야 해. 눈을 감어 버리면 더 까라지고 기운이 없어서 못써. 아무것도 안보이면 회복이 더디어. 눈을 뜨면 내가 무얼 보는 것 아닌가? 해도 보고, 달도 보고, 별도 보고, 삼라만상, 산천초목, 들짐승, 날짐승 다 보잖는가? 그런데 눈을 뜨면 그 순간 내가 무얼 보는 순간, 이번에는 또 그 온갖 것들이 거꾸로 내 눈 속으로 생생하게 쏟아져 들어오는 것이야. 한세상이 살어서 생기운이 펄펄 넘치게..
질문) 최명희의 강모와 기채에 대한 시선이 따뜻해진 것 같다. 부정 했던 아버지를 긍정하는 모습 그리고 부랑하는 강모의 자의식 속 부유하는 돌이 상징하는 것은 ? 최명희가 새 등장인물 강호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은 ?
최명희가 기채를 바라보는 시선의 이동이 있다. 변화의 시대에 변방에 살았던 기채의 향수,일본 유학생 강호가 바라 본 필연적인 변화의 움직임을 감지하기도 어렵고 안다 해도 살아온 세월의 관성으로 변화가 두려운 그 시대 어르신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최명희의 관점이 따뜻한 시선으로 변한 듯하다. 그 시대 어르신의 몫이 아닌 이 시대의 젊은이의 몫이라고 여기는 최명희는 강호를 묘사는 모습에 정신이 사라지지 않고 이어진다는 기대감이 어려 있다. 스스로의 삶을 지켜내지 못하고 도망 온 강모의 정신은 둥둥 떠 있다. 부랑 할 뿐 뿌리 징검다리가 되지 못하는 가벼운 돌… 뿌리 잃고 부유하는 현대인의 모습 같기도 하다.
- 나라의 토대 평민 : 춘복이와 옹구네 그리고 공배와 공배네
흘러간 공은 돌아보들 말어. 배추 벌거지가 배추 속잎 다 뜯어먹고 크지만, 지 날개 돋으면 두 번도 더 안 망설이고 후루룩 날러가 불잖이여? 나비 되야 가 부리능 걸 배추가 어쩌겄능가? 헐 수 없제. 그저 구녘 숭숭 뜷린 잎사구나 너실거림서 시름을 달래고 원망을 말어야여. – 210
울안에 핀 풀꽃이 이름 없다고 남의 꽃이랴. 순리 따라 자연이 된 관계는, 설명하지 않아도 어느덧 세상이 다 아는 풍경으로 어우러졌는데.
속지르기로 작정하고 내리 꽂아 쏘아댄 것이 분명한 옹구네 말에 밑창부터 뒤집혀 버렸던 것이다.. 마치, 커다란 항아리에 흙탕물을 담아두면 찌꺼기가 아래로 가라 앉아 윗물이 우선 말갛게 보이나, 지푸라기 한 낱만 슬쩍 집어넣어 꼭꼭 쑤셔도 그만 순식간에 다시금 모조리 흙탕물이 되고 마는 것처럼, 공배네는 자식 잃은 아낙의 설움이 늘 가슴 밑바닥에 고여 있다가, 별거 아닌 덧거리 말에도 남모르게 속이 뒤집히곤 하였는데 무던한 성품에, 좀체 내색을 안 하니 곁에 사람은 얼핏 눈치를 채지 못하고 넘어가기 쉬웠던 것뿐이다. 213
옹구네는 갓난애 울음 소리를 흉내 낸다. 춘복이는 낯을 붉히고 옹구네는 그런 춘복이의 낯바닥을 쫙 할퀴어 뜯어 놓고 싶다. 그렇지만 조금도 드러내지 않는다. 이제 곧 숨도 못 쉬게 조일 것이니 지금은 그 때를 위해서 낙낙하게 풀어 두는 것이 좋은 것이다. 옹구네는 배암같이 서리 튼 속마음을 꼬깃꼬깃 꽈리로 쟁여 넣으며 혓바닥 날름이어 휘감듯이 감겨든다.
질문) 역사적 관점에서 춘복이와 옹구네의 출연의 필연성은 무엇일까?
나라의 기강이 흔들리면 창부가 많아진다. 노력 없이 쉽게 얻으려는 정신적 창부는 노력할 곳이 없어 생기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 무력하게 사라지는 조선의 모습을 감지하며 억압 받은 사람들은 변화를 꿈꾼다. 홀홀단신 길 위에 서 외로운 춘복이는 공배 가족의 사랑과 관심을 받았지만 그것을 모른다. 스스로 혼자이기에 잃을 것이 없어 두려움 없는 강자로 여겼지만 실은 근원적인 두려움을 안고 있다. 뿌리 없이 갈길 모르고 길 위에 사는 사람의 사랑을 품을 줄 모르는 마음. 스스로만을 생각하고 타인에 대한 사랑이 없다. 강실을 향한 연모는 지독한 자기애처럼 보인다.
옹구네는 촉이 있고 움직임이 빠르다. 생각하면 곧장 행동하는데 그 행동은 자기 합리화를 하며 스스로의 이익를 향해 간다. 논리로 타인은 설득시키고 본능을 부추긴다. 다친 춘복이를 돌보는 선하게 보이는 행동도 다른 마음을 품고 하는 행동이다. 억압받은 인간의 마음에 있을 수 있지만 대개는 피하는 일들을 적극적으로 도모하며 부끄러움을 모른다.
공배와 공배네는 순리를 안다. 자연에 따르는 삶을 아름답게 여기고 순응하고 살아간다. 반면 춘복과 옹배네의 모습은 얼을 잃어버려 부끄러움을 상실한 사랑이 사라지는 세상의 끝에서 자기만을 사랑하는 외로운 현대인 같다. 자유롭고 편한 것을 갈망하는 시대가 잉태한 그늘이 있다. 우리는 회색도시에서 미디어가 전해 주는 움직임을 보며, 빠른 변화의 속도에 자연의 호흡을 잊어버렸다. 어떻게 자연의 속도를 회복 해 지구를 살릴 것인가 ?
다음 수업 일정입니다.
11월 8일 : 1교시 혼불 9,10 ( 황광우 선생님)
2교시: 소크라테스 변론 강독 ( 황광우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