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 꽃심을 지닌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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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7권: 꽃심을 지닌 땅

최명희 지음(1947-1998)
유미정(2019.10.11.금)

 

〇 목차

1. 검은 너울 …………………………………… 11

2. 죄 많으신 그대 ……………………………. 41

3. 발각 …………………………………………. 75

4. 흉 …………………………………………… 103

5. 어쩌꼬잉 …………………………………….. 125

6. 내 다시 오거든 ……………………………. 145

7. 푸른 발톱 …………………………………… 159

8. 납치 ………………………………………….. 171

9. 암눈비앗 ……………………………………. 191

10.이 피를 갚으리라 ……………………….. 217

11.먼데서 온 소식 …………………………… 253

12.허공의 절벽 ……………………………….. 277

13.추궁 ………………………………………….. 293

14.지금이 바로 그때여 …………………….. 311

 

 

 

〇 수업시간에 나눌 점

1. 여성(조선 전 후기. 근대)

2. 노비(조선)

 

  1. 검은 너울“무릇 남자가 여자 같은 기질이 많으면 혹은 간사하고 혹은 연약해서 요사스러운 짓을 많이 하고, 여자가 남자 같은 기질이 많으면 혹은 사납고 혹은 잔인해서 일찍 과부가 되는 사람이 많아 본디의 음양 품수(稟受)가 서로 뒤집히고, 명수(命數)가 각각 어그러지기 쉽다고 했느니.”    -11p

손으로 짠 모시나 삼베, 명주, 흰 옷감에 풀과 꽃과 열매로 물을 들여 .. 흰감은 희어서 새물 들고, 물들었던 감은 더 짙은 물을 놓아 들여 보거나 다른 빛 물감을 풀어 넣으면 뜻밖의 색을 얻게 되어… 생쑥 뜯어 으깨어서 쑥물도 내 보고, 봉선화 꽃 장독대와 토방 아래 자지러지게 피어날 때는 그 꽃잎 따서 무명 저고리감 붉은 꽃잎도 들여 보고, 오미자, 치자는 상비로 두었으며, 쪽물 또한 놓치지 않고 들여 보았다. 심지어는 시금치 삶은 물도 써 보았다.    -13p

“이 향갑에는 사향을 넣어라. 뒤뜰 후원이나 동산을 거닐 때, 사향내는 배암의 범접을 막아주노니, 뿐 아니라 이 향을 갈아서 술이나 물에 타 마시면 급한 체증에 효험이 있니라. 사향은 향내도 좋지만 쓰임새가 꼭 있으니 유념해두렴. 또 호박이나 금파 같은 패물은 사람이 뜻밖에 다쳐 피를 흘릴 때 갈아서 응금용 지혈제로 쓰는 것이라고,… 이런 패물들은 다 허영에서 단순히 사치하자고 마련하는 게 아니라 몸가짐을 아름다이 하면서도 그 용도를 제대로 알아 지혜롭게 쓰는 부덕의 소치로 지니는 것인즉…”
-148~149p
풀을 먹일 때는 눅진하게 끓인 풀을 풀주머니에 담아가지고 꾹꾹 주무르며 응어리 없이 탑탑하게 풀어낸 물에다가 옷감을 넣고 치대어, 그 옷감에 풀이 고루 스며들도록 먹인 다음, 너무 바짝도 말고 너무 축축하게도 말고 꾸들꾸들 말리어서, 거기 다시 물을 뿜어 축이고는 빨랫보에 싸 가지고 방바닥이나 마룻바닥 평평한 곳에 놓고, 한참동안 잊어버릴 만큼 밟아야 하는데 이윽고 밟은 사람 발에서 번진 온기가 빨래에 고루 퍼질 만하면 이제 다듬이질은 시작하였다. 빨랫보를 벗겨내고 깨끗한 다듬이 보자기에 옷감을 바꿔 싸서, 차고 매끄럽고 단단한 다듬잇 돌 위에 올려 놓은 뒤 박달나무 방망이 두 개로, 딱 딱 딱 딱, 또드락 똑 딱, 또드락 또드락, 또드락 딱 딱…..      -13p

무심한 피륙이 홍두깨에 감기어 다듬잇돌 위에 얹힌 채, 단단하기 바위도 쪼갤만한 방망이를 온몸에 맞으면서 맞은 자리마다 피멍이 비명을 토하는 대신 저토록 고운 얼을 무늬로 이루는 것이 어찌 예사로운 일이랴.      -14p

“동정귀 어긋난 년, 버선 수눅 틀어지거나 뒤바뀌게 신은 년, 가리마 비뚤어진 년, 낭자머리 뒤꼭지에 머리카락 삐친 년.“ 은 사람으로 치지도 않는다는 것이 매안 부인들의 불문율이었다. …… 기본적인 이 차림새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는 사람이란, 오직 게으르거나 어려서부터 제대로 배우지 못했거나, 그런 것을 언제 돌아다 볼 틈도 없이 마구 범벅으로 살아야 하는 상것들일 뿐인즉, 축에 끼워주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15~16p

한 집안의 가장이 의젓하지 못하면 딸린 식구들이 초라하고 궁핍한 생활을 면치 못하는 법이요, 한 집안의 가모인 주부가 야물고 깔끔하지 못하면 가솔들 고라지 꾀죄죄하기 동네 걸인 진배없고, 그 손에 얻어 입은 의관으로는 도무지 남편의 위용이 안팎에 서지 않으니, 남에게 존경받게 하기는커녕 멸시만 한 바가지 가득이 아니랴.      -19p

그것을 드러내 말하는 것은 사치하라는 것이 아니라 부녀로 하여금 공을 들이게 하고자 함이지. 산다는 것이 곧 공들인다는 것이야,       -23p

비단을 다듬기를 달걀과 같이 반들반들하게 하고, 베를 다릴 때 매미 날개와 같이 아늘아늘하게 하는 것은 사치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그것이 부녀자의 정성이니, 정성이 없고서야 어찌 능히 인생을 이루리.

“아이고 나는 열불이 나서 한겨울에도 치마말기를 꽁꽁 동이고는 못 살겄데. 옷고름도 그래. 당최 짬 매고 묶고 허는 건 못 전디겄드구만, 어찌 그리도 잘 참고, 때깔들 잘 내이?”

“나 죽우면 수의도 할 것 없다. 그저 홑이불 둘둘 감어서 파묻어 주어. 까갑헝게. 아 오직이 좋냐. 걸린 데 없고 매인 데 없고, 쾌활허지. 죽어서까지 그놈의 치마저고리, 끈으로 묶고 고름 매는 거 나는 싫다.” 동촌댁이 며느리한테 보리방아를 찧으며 말했다. “벗고 가면 더 좋고.”   -25p

“사람은 누구라도 앞모습보다 뒷모습이 실해야 한다.” “살고 난 뒷자리도 마찬가지라.”
“앞에서 보면 그럴듯해도 돌아선 뒷 태가 이상하게 무너진 듯 허전한 사람은, 그 인생이 미덥고 실하지 못하다.”  “뒷모습은 숨길 수가 없다,” “전상(前相)이 불여(不如) 후상(後相)이라, 후상(後相)이 불여(不如) 심상(心相)이라.”     -28p

무릇 부모 된 이들은 그 자녀 훈육하기를 인생에 가장 중요한 일로 알았으니, 명나라 사람 하의려(賀醫閭) 선생 같은 분은, 여러 딸들을 12가지 조목으로 엄격하게 일러 가르쳤다

  1. 침착하고 자상하며 공손하고 부지런해야 한다.(安詳恭勤)
  2. 제사를 받들 때는 엄숙히 하여야 한다.(承祭祀以嚴)
  3.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효도로써 받들어야 한다.(奉舅姑以孝)
  4. 남편을 예의로써 섬겨야 한다.(事丈夫以禮)
  5. 동서들을 온화 화목으로써 대접 하여야 한다.(侍娣似以和)
  6. 아들딸을 바른 도리로써 가르쳐야 한다.(敎子女以正)
  7. 남녀 하인들을 어진 은혜로써 어루만져야 한다.(撫婢僕以恩)
  8. 친척을 공경으로써 대접하여야 한다.(接親戚以敬)
  9. 옳은 말을 기쁜 마음으로써 들어야 한다.(聽善言以喜)
  10. 간사하고 망령된 것을 진정으로 경계하여야 한다.(戒邪忘以誠)
  11. 길쌈을 소중히 여기어 부지런히 힘써야 한다.(務紡績以勤)
  12. 부디 재물을 아껴 쓰고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用財物以儉)

이런 말을 일일이 조목 지어 문자로 적어 놓고, 짚어가며 배우지 않는다고 모를 리 있으랴만, 각별히 명심하여 네 앞날에 아로새기라고 너한테 이렇게 적어 주는 것이니라. 종조모 청암부인이 강실이에게 궁체로 손수 쓴 두루마리를 새해 선물로 내려주었다.  -28~30p

“양반이란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다. 양반은 겉보기에는 위용 있고 고결하고 신선같이 때깔 있지만, 그 속은 민어가시보다 억세고, 섬세하고, 미묘하고, 까다로워 그 노릇을 제대로 하기는 결코 쉽지 않는 것이니라. 일일이 무엇이나 말 안 해도 저절로 터득해서 어느 자리에 서든지 앉든지, 오직 그 몸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움이 둘레의 향으로 번져, 돌아서면서도 마음이 그 사람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는 만드는 것 ,그것이 양반의 인품이고 기품이다….”

이제 남의 집으로 시집가서 위로 층층 시어른들 모시고, 시동기간, 일가친척 공경하며 살아야 할 것인데, 집안마다 풍속이 같지 않으니 성심으로 눈치껏 제가 알아 익혀 나가야 한다. 처음 가서 모르는 건 흉이 아니지만, 말 안 해도 스스로 깨달아 내 할 일 빈틈없이 해낸다면 상(上)이지. 말해서 알아듣고 행하는 것도 끝내 못 하는 것 보담이야 낫겠지만, 벌써 남한테 말하게 한다는 것부터가 상은 아니니라.
할머니 상복으로 입은 흰옷 소복을 자신의 저승길 마지막 옷으로 입은 채, 살아서는 한 올도 흐트러지게 하지 않아야 하는 머리카락, 두 번씩이나 땅에 뉘여 흙 묻힌 설움이 이미 견디기 버거워서… 호수를 향하여 절을 하고는 신을 벗고 머리를 풀고 있는 것이다.     -39p


질문1. 1930년대 남원의 매안이씨 집안은 여전히 조선시대 양반가의 분위기이다. 효원이, 강실이, 옹구네, 강실어머니 오류골댁등의 여성들의 삶을 통해 조선시대, 근대, 현대의 여성의 사회적 위치에 대해 이야기 해봅시다.

 

양반가의 생활을 중심으로 조선 전 · 후기 여성의 삶

여성의 결혼 : 혼인한 후에 남편과 함께 친정집에서 사는 경우가 많았다. 예로 들어 신사임당은 혼인 후 강릉친정에서 살았다. 여유 있는 양반가에서 음식은 찬모가, 바느질은 침모가, 아이돌보기는 유모가, 맡았다. 그러나 안방마님은 요리와 바느질, 제사의 제수 마련하는 일은 손수 챙겼다. 손님접대도 담당하였다. 신사임당은 부인의 그림솜씨를 보여주고 싶어 하는 남편을 위해 ‘초충도’를 그려 손님에게 주기도 하였다. 여성들은 새 아내를 얻지 말라고 당당히 요구(사임당)하였고, 기생과 어울리지 못하게 하고 자식의 혼사와 상례를 자기 생각으로 치렀다(이문건의 처)

조정에서는 시집에서 며느리를 맞이해 혼례를 치르는 ‘친영례’를 강조했지만 많은 이들은 신부집에서 혼례를 치루었다. 부인은 친정에 머물렀고 남편은 본가와 처가를 오가며 살았다.

재산 : 아들과 딸에게 고르게 분배되었다. 또 여자가 시집갈 때 가져간 재산은 남편재산과 따로 관리했다. 만약 자식을 낳지 못하고 죽으면 시댁에서는 그녀의 재산을 친정집에 되돌려 주어야 했다.

교육 : 여성은 경전을 읽고 한시를 지을 정도의 교양을 지녔다. 유희춘의 처 송덕봉은 시와 사(辭)를 남기고 여자 선비로 불렸으며, 이준경의 어머니 신씨는 아들에게 《소학》, 《효경》, 《대학》을 직접 가르쳤다. 허균의 누이 허난설헌은 일곱 살에 시를 짓고 중국에서 그녀의 시집이 간행되었다. 그러나 여성 모두가 한문을 익힌 것은 아니고 한글을 익혀 한글로 의사소통했으며《내훈》,《삼강행실》,《열녀도》,《소학언해》등을 읽었다.

제사 : 16세기까지는 부모가 죽으면 자식들이 딸 아들 구별 없이 부모의 유산을 고루 나누어 물려받고 제사도 돌려가며 지냈다. 이를 ‘윤회봉사’라고 한다. (장자봉사1566 이이의 집안)

사대부는 할아버지나 증조부대까지 3대 제사가 한정되다가, 16세기 말부터 영남지역을 중심으로《주자가례》에 따라 4대조 고조까지 제사를 지내다 17세기 이후 4대 봉사가 고착되었다. 유산분배와 제사에서 아들 딸이 없었던 것처럼 족보에도 남녀자손이 함께 실렸다.《안동권씨성화보(1467년)》《문화유씨가정보(1562년)》등 16세기까지 만들어진 족보를 보면 아들과 딸을 가리지 않고 태어난 순서대로 실었고, 혼인한 딸의 후손도 빠짐없이 기재되었다.

아들 딸 차별 : 17세기로 넘어가면서 맏아들이 제사를 주관하고 딸의 재산 상속분을 줄여나갔다. 사위는 몰라도 외손이 4대까지 제사를 지내기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족보에도 17세기부터 딸의 후손에 대한 기록이 3대 이하로 한정되기 시작했다. 아들형제도 17세기 까지는 고르게 상속받았지만 점차 맏아들 위주가 되어갔다. 제사권을 가진 맏아들이 가계를 계승한다는 가부장적 ‘종법질서‘체제로 들어선 것이다.

근대의 여성– 1920년대 여성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규방 안에서만 지내던 여성들은 집 밖으로 나와 활동하기 시작하여 이들을 ‘모건걸’, ‘신여성’이라 불렀다. 댕기머리에서 단발을 했으므로 한편으론 ‘모단(毛斷)걸’과 ‘못된 걸’로 불리기도 하였다. 신식학교를 다녔지만 많은 여학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주부’란 이름으로, 또 다른 가정에 복귀했다. 이 당시에는 여학교의 교육목표가 거의 ‘현모양처’에 가까웠다.

일부 여성의사, 약사 기자, 비행사 등이 배출되었다. 윤심덕과 나혜석은 1세대 전문직여성이었으며, 1918년 기혼자 이광수는 의사 허영숙과 결혼하여 자유연애의 선풍을 일으켰다. 또한 붉은 연애라 하여 사회주의자들의 연애도 있었다. 훗날 남로당의 지도자가 되는 박헌영과 여성혁명가 주세죽의 결혼도 있었다


  1. 죄 많으신 그대

노비란 자고로 마소〔馬牛〕, 전답이나 한가지여서 주인에게 한번 속해지면 그 상전의 뜻대로 소유할 수 있고, 세습하여 자식들한테 물려주며, 또 분가하거나 출가하는 자녀들한테 재산분배로 나누어 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47p

사랑에서 허락이 내려 청암부인을 모시어 배행하고 온 것이 바로 부인의 청암 친정집에 누대로 세습되어 내려오는 씨종의 씨, 사노(私奴) 순구, 안서방이었다. … 내 가장 믿을 만한 종을 너에게 주노니, 부모의 정 한 점을 떼어 다숩게 지니고 가거라. 너도 잘 알겠지만, 종이란 종모법(從母法)에 의해서 그 신분이 어미를 따라가는 것 아니냐?.. 노비 아닌 양민의 처자를 애써 구해서 짝을 지어주면, 그 자식 대에는 면천(免賤)을 할 수 있으리라.       -48p

4.흉 (흉억)

“이 죽일 놈.”
그냥 도굴만 하였대도 살아남기는 어려운 판국에 투장이라니.
이기채의 눈빛은 갈기갈기 찢긴 춘복이의 피투성이 살점보다 더 참혹하고 참담하게 찢긴 상처와 분노로 응혈이 져, 걷잡을 수 없는 기세로 상한 불길을 일으키고 있었다.        -112p

5.어쩌꼬잉

“죽은 뼈다귀 때문에 생사람이 죽겠구나. 다 쓰고 죽은 몸, 어디에 묻히면 어떻고. 좋은 자리에 함께 나누어 묻히면 또 어떤고. 모두 부질없는 일, 헛짓들이다. 망상이야. 살아있는 동안에, 받은 정기 잘 갊아서 손상시키지 않도록 환히 밝혀 태우다가, 그 정신만 원전(原電)으로 가지고가면 그만이지. 생명 정기 다 빠진 빈 몸뚱이 헛된 물질 뼈다귀 하나에 산사람 인생을 의탁하여, 운명을 개조해 보자는 게 애초에 어리석은 일 아닌가. (이징의)    -122p

아 느그 양반들은 종도 많고 머심도 많고 호제도 많드라? 죽어서 묏등에 파묻힌 망자도 살어 생전에마냥 종 부리고 머심부리고 호제 부리먼 안 좋것냐? 그렁게 우리 압씨가 느그 어머이 묏등 속에 옆구리 좀 차지허는 것도, 솟을대문 안채 옆에 행랑채 하나 지었다 생각허먼 될 거 아니여? 그거이 먼 죄여? 심바람 시길 일 있으면 불르기도 좋고, 아 그러다가 춘풍에 도화꽃피먼 음양이 어우러져 한찬 놀아도 보고, 안 좋냐? 이승 저승은 유명도 달르고 맹암도 달른디, 양반 상놈도 뒤바껴서, 없든 시상 한번 살아보믄 그것도 참 괜찮응 것 아니냐?   -143p

그리여 나는 귀영머리 마주 풀고 찬물 바쳐 육리 갖춘 마느래도 아니고, 양반의 따님으로 고귀하신 지체도 아니다. 거그다가 나이 애려 꽃 같고 달 같은 청상에 생과부도 아니제. 너보돔 나이 많은 홀에미, 단물 빠진 늙다리 , 자식끄장 딸린 년이다만, 아무리 그렇다고 사람 박대를 이렇게 막 대놓고 헌단 말이냐. -116p 옹구네

  1. 이 피를 갚으리라

옹구네. “즈그들은 양반이라고, 멀쩡허게 서방 있는 넘의 각시도 오라 가라, 앉으라 서라, 누워라 엎어져라, 지 맘대로 주무르고 치긋고 차지험서나, 그러다가 어느 하루 지 마음 식으면 홱 내떤져 붐서나, 아 그께잇 노무 공산(空山)에 묏동 조께 살째기 쑤시고 들으갔대서 저 지랄을 허고 길길이 등천을 헝마잉. 천하에 다시없는 못헐 짓 헝 것 맹이로. 경우가 안 그리여? 경우가. 말로 따지자먼. 도둑질은 다 똑같은디..  -217p”

춘복. “이 피를 갚으리라.”  -234p

불문곡직 무작스럽게 달려들어 개 패듯이 패다니. 그것은 오직 그가 상놈이기 때문이었다. 문서도 절차도 없이..  -239p


질문 2. : 양반 계급의 이기채의 분노와 상민계급의 춘복의 에 대해 이야기 해봅시다.

노비양반가를 움직이는 눈에 잘 보이는 손조선시대

양반가의 아침은 노비가 연다. 사대부는 노비가 지은 밥을 먹고 노비가 그는 말을 타고 외출하며 편지도 노비를 통해 전하고 쉴 때는 노비를 불러 거문고를 타게하고 노래도 부르게 한다. 밤에는 여지ㅏ 종이 잠자리를 깔아주어 하루를 마무리한다. 아침부터 밤까지 양반가는 노비와 함께 움직였다.

양반가의 재산 1.2: 노비와 토지였다. 미암 유희춘의 경우 100여 명의 노비와 해남과 강진에 자신과 부인의 땅이 있었다. 퇴계 이황이 skarls 재산은 노비 367명에 땅은 3천마지기가 넘었다.

노비의 종류 : 마부, 심부름꾼, 음식담당, 몸시중, 유모, 주인집 심부름꾼, 마름역할 농장관리인, 종노릇 대신 멀리 살면서 면포 두 필만 바치는 노비, 묘 지키는 묘직노가 있었다.

노비가 하는 일 : 집안 일, 농삿일, 전국각지에 땅이 있는 경우 수확물의 1/2을 받아냈다.

노비라는 존재 : 노비는 재산 중에서도 대를 이어 물려받고 늘려 받을 수 있는 재산이었다. 부모 중 한사람만 노비여도 자식은 노비가 되었다. 따라서 노비가 혼인하여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가 누구의 소유인가가 큰 관심거리였다. 서로 주인이 다른 남자 종과 여자 종이 혼인하여 아이를 낳으면, 여자 종의 주인이 아이를 소유했다. 그래서 남자 종이 다른 주인 소유의 여자 종과 혼인하려면 자기 주인의 허락이 필요했다. 그러나 남자 종이 양인 여자와 결혼하면 그 소생은 남자 종의 주인에게 딸린 노비가 되었다. 결국 양반의 입장에서 보면, 여자 종은 누구와 혼인해도 좋지만 남자 종은 양인 여자와 혼인하는 게 재산증식의 지름길이었다.


<낱말>

-거둠거둠 : 손으로 여러 번 거두어 쥐는 모양.

-사특하다 (邪慝) : 요사스럽고 간특하다.

-또아리 :갈큇발의 다른 끝을 모아 휘감아 잡아맨 부분. ‘똬리’의 잘못.

-느껍다 : 어떤 느낌이 마음에 북받쳐서 벅차다.

-애먼 : 일의 결과가 다른 데로 돌아가 억울하게 느껴지는.

-수북히 : ‘수북이’의 옛말.

-괴춤 : ‘고의춤(고의나 바지의 허리를 접어서 여민 사이)’의 준말. 허리춤

-설렁줄 : 설렁을 울릴 때 잡아당기는 줄. 설렁- 처마 끝 같은 곳에 달아 놓아 사람을 부를 때 줄을 잡아당기면 소리를 내는 방울.

-저저끔 : 제가끔’의 방언(전남).

-고누 : <민속> 땅이나 종이 위에 말밭을 그려 놓고 두 편으로 나누어 말을 많이 따거나 말 길을 막는 것을 다투는 놀이. 우물고누, 네밭고누, 육밭고누, 열두밭고누 따위가 있다.

-옴쏙옴쏙 : 작은 것을 입에 넣고 자꾸 맛있게 씹는 모양.

-물외 : <식물> ‘참외’에 대하여 ‘오이’를 구별하여 이르는 말.

-모산지배 (謀算之輩) : 꾀를 내어 이해타산을 일삼는 무리.

-무람없다 :예의를 지키지 않으며 삼가고 조심하는 것이 없다.

-옹통지다 : ‘다부지다’의 방언(전남).

 


 

 

 

동고송
안녕하세요. 사단법인 인문연구원의 웹진 동고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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