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콘1] 1. 소크라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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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소크라테스

 

법정에 선 소크라테스

지금으로부터 2400여 년 전 아테네의 아고라의 한 법정에서는 세계사에 길이 남는 희한한 재판이 진행되고 있었다. 때는 기원전 399년, 나이 70이 넘은 한 노인이 피고석에 서서 500명의 시민들을 향하여 완벽한 논리와 화려한 독설을 퍼붓고 있었다. 500명의 시민들은 피고인의 유무죄를 판결하고 유죄일 경우엔 사형을 선언할 권리를 갖고 있는 재판관들이다. 이들은 아테네 시민들로 구성된 배심원들인데, 지금 누가 죄인이고 누가 재판관인지 헷갈리는 재판이 전개되고 있다.

노인의 이름은 소크라테스. 키는 작고 코는 들창코였는데, 나이 70에 어울리지 않게 목소리는 웅장하였고 논변은 치밀하였다. 고집은 있어 보이나 착하디 착하게 생긴 이 영감이 사형 판결을 받게 되는 운명의 하루였다.

소크라테스를 고소한 이는 멜레토스와 리콘과 아니토스. 이들은 아테네의 유력한 지도층 인사들이었다. 멜레토스는 문학계를 대표했고, 리콘은 논술계를 대표했고, 아니토스는 정계를 대표했다. 사상의 여행에 동승한 이들은 이 세 사람의 이름에서 긴장을 느껴주어야 한다. 요샛말로 하면 정계, 재계, 학계의 세 거두들이 짜고서 소크라테스를 법정에 내세운 것이다. 특히 아니토스는 당시 아테네인의 신망을 한 몸에 받고 있던 중진 정치인이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이 소크라테스를 고소한 죄목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신을 믿지 않는 불경죄요, 다른 하나는 청소년들의 정신을 타락시킨 죄였다. 만일 이 날의 재판에서 피고인이 무죄를 선고 받으면, 고소자들은 물질적 피해만이 아니라 사회적 명예에 치명적 타격을 입게 된다. 요샛 돈으로 억대에 달하는 1000드라크메의 벌금을 물고 공민권 제한을 받게 된다. 특히 아니토스의 입장에서 공민권 제한은 그의 정치적 생명이 끝장나는 것을 의미한다. 장난이 아니었다.

재판은 당일로 끝내야 하기 때문에, 소크라테스의 재판은 아침부터 오후 늦도록 하루 종일 진행되었다. 법정에 들어선 소크라테스는 먼저 늙은이의 공손하지 못한 말투에 대한 이해를 구한 다음 재판관의 바람직한 자세에 대해 충고한다. 진실과 허위를 구별하는 것이 재판하는 사람의 덕목이며, 진실을 말하는 것이 변론하는 사람의 덕목이라고 말이다. 다음으로 아테네 시민들이 자신에 대해 갖고 있는 몇 가지 오해를 정정해 줄 것을 요청한다. ‘소크라테스는 천상천하의 일들을 골똘히 생각하여 엉터리 논리를 유포하는 사람이요, 신마저 부정하는 사람’이라는 선입견은 자신과 아무 관계없는 흑색선전임을 주장한다. 또 ‘나는 누구보다 신의 목소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임을 강조한다.

당시 아테네는 제국(Empire)이었다. 아테네의 청년들은 정계에 진출하기 위하여 변론술을 배웠다. 유명한 소피스트들은 대단한 강사료를 받았다고 한다. 고르기아스와 같은 일급 소피스트들은 월 1억원이 넘는 초고액의 수입을 벌었다. 아테네의 시민들은 소크라테스도 이들 소피스트와 똑같이 아이들에게 논술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법정의 모두(冒頭)에서 소크라테스는 ‘나는 평생 돈을 받고 지식을 가르쳐 본 적이 없으며 오직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의 정체를 명시한다.

필로소피아(Philosophia). 지혜(Sophia)를 사랑(Philo)하는 사람. 소크라테스의 직업은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이었다. 동양인의 어법으로 바꾸면 ‘길을 찾는 사람’ 즉 구도자(求道者)였던 것이다.

이렇게 인생을 깨끗하고 훌륭하게 사신 분이 어이하여 송사(訟事)에 연루되어 재판정에 끌려 나오게 되었는가. 세상에 깨끗하고 용감하고 정의롭게 살아온 양반이 법정에 서야 했던 그 날 아침 소크라테스의 마음은 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태의 경위를 이렇게 해명한다.

“하루는 친구 카이레폰이 와서 그러더군요. ‘어이, 소크라테스, 델피의 여제관 있잖아, 피티아 말이야. 그녀가 신탁을 받았는데, 아테네에서 가장 현명한 자가 소크라테스, 자네라는구먼. 친구, 어떻게 생각해?’(이 말을 들은 소크라테스, 과히 기분이 나쁘진 않았을 것이다.)
과연 델피 신탁의 응답이 올바른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지요. 누가 아테네에서 제일 현명한 사람인지, 나 보다 현명한 분이 분명히 있을 것으로 믿고 아테네의 지도층 인사들을 만나 보았던 것입니다. 나는 정치인들에게 물었지요. 정의가 뭐냐, 덕이 뭐냐, 그리고 인간이 추구해야 할 삶의 궁극적 가치는 뭐냐, 물었던 겁니다.

정말 실망스러웠어요. 민중을 행복한 삶으로 이끌겠다고 호언하던 지도자라는 양반들이 정작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는 거 있잖아요. 뭐라더라. 돈이 행복이라고 하던가요? 고통이 없는 것이 행복이라고 하던가요? 아테네의 정치적 지도자들은 정의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었고, 인간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 가치에 대해서는 고민조차 않더라는 겁니다. 위선자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인기 있는 정치인일수록 무식하대요. 한 숨이 나왔어요.
다음으로 문인들을 만나 보았지요. 문인들은 아름다운 글을 많이 쓰잖아요. 세상의 존경을 한 몸으로 받구요. 이분들은 정치인들과 다를 줄 알았지요. 그래도 삶과 죽음, 우주의 생성과 몰락, 정의와 행복에 대해 나름대로 일가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믿었지요. 물었습니다. 필자의 책에 기록된 문구를 가지고 물었어요. 어이가 없었어요. 자기가 쓴 글이 무슨 책 어디에 나오는지도 모르더라구요. 그래서 생각했지요. 아, 작가들이란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것을 글로 마구 쓰는 사람들이구나. 이럴 수가 있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장인들을 만나 보았지요. 이분들은 자신이 담당하는 영역의 일에 대해서는 아주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어요. 조각하시는 분들은 돌의 성질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대장장이들은 쇠의 성질에 대해 해박하더라구요. 불행한 것은 인생 일반의 중요한 일들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거 있잖아요. 그러면서 모든 일들에 대해 다 잘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살고 있었습니다. 안타깝더군요.
그랬겠지요. 아마도 지도층 인사들은 꼬치꼬치 캐묻는 이 영감탱이가 매우 불쾌했을 겁니다. 존경받는 일에만 익숙해 있는 분들일수록 자신의 체면이 깎일 때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지요. 인생에 대해 한번도 진지한 고민을 하지 않는 이 분들이 나의 질문을 받고 얼마나 당혹했겠습니까?
나는 본대로 느낀대로 그대로 제자들에게 말했지요. 정치가들이며 문인들이며 장인들, 믿을 사람 아니더라, 자신들이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는 사람들이더라, 그러면서 민중을 지도한다고 호언하고 있더라, 자신이 세상일을 다 아는 착각 속에 빠져 사는 사람들이더라, 전했지요. 하여 지도층 인사들은 내가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고 생각하게 되었을 겁니다.“

이렇게 소크라테스는 사태의 경위를 담담하게 진술하였다.

 

독사, 소크라테스

그런데 여기에서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이 얼마나 지독한 것이었는지, 왜 지도층 인사들은 소크라테스를 증오하게 되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소크라테스는 이성적 사유에 있어서는 완벽하였지만, 논쟁에서 패배한 상대가 겪어야 하는 심리적 고통에 대해서는 아주 무감한, E,Q 빵점인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그의 친구이자 연인이었던 알키아비데스의 증언을 들어 보자.

<향연>(Symposium)이란 함께(Sym) 술(posium)을 마시면서 밤을 세워 대화를 즐기는 아테네인들의 연회였다. 플라톤은 <향연>이라는 조그만 책자에서 소크라테스와 함께 그들이 사랑(Eros)에 대해 밤새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기록한다. 그리고 이 책의 말미에 소크라테스의 몸과 영혼을 흠모하였던 그의 동성애자 알키아비데스가 이런 고백을 한다.

“나는 이분이 인간의 영혼을 만지는 영혼 조각의 대가라고 단언하네. 소크라테스, 이 양반이 빚어내는 조각품을 쪼개 열어보면 그 안에는 영혼의 신상(神像)이 들어 있지. 페리클레스처럼 이름난 연설가들의 웅변을 들으면, 그 분, 참 말 잘한다 생각되지만, 소크라테스와 나누는 대화에서 받는 영혼의 떨림은 없지. 소크라테스, 이분으로 인해 나는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으로 더 이상 살아서는 안 되겠다, 새로운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여러 번 하였어.
이 분의 말을 듣노라면 내가 참으로 모자란 존재임을 절감해. 그리하여 더욱 열심히 일을 해야겠다는 각오를 하게 되지. 솔직히 고백하네. 나는 마치 오딧세이가 귀를 틀어막고 요정 사이렌이 부는 노래 소리를 피하려 하였듯이 소크라테스로부터 도망치려 한 적도 있었다네. 도망치려 할수록 수치심을 느꼈고 말이야. 이분을 피해 도망 다니다가 어쩌다 이분을 마주치지. 그 때에는 정말 죽고 싶은 수치심을 느꼈다네. 어쩔 땐 이분이 아테네에서 사라져 주었으면 하는 마음까지도 들더군.

소크라테스, 이분은 독사야. 이분과 철학적 대화를 하다 한방 물리는 날엔 죽는 거지. 자신 있게 전개해 나가던 나의 논리가 뒤죽박죽 돼버릴 때, 정신은 혼미하고 횡설수설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될 때, 이 때처럼 비참한 순간이 있을까? 철학적 대화를 할 때 보이는 이분의 광기에 가까운 정열을 당신들은 보았는가.“

이러한 알키아비데스의 고백만큼 소크라테스의 성품을 잘 전달해주는 문구는 없을 것이다. 사람이 너무 완벽하면 불편해진다. 만날 때마다 훈계를 하는 선배는 피하고 싶어지는 사람이다. 논리적으로 완벽할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흠잡을 데가 없는 선배는 정말 부담스러운 존재이다. 중종이 조광조에게 사약을 내린 것도 다 이런 맥락이었을 것이다. 보면 부담스러운 사람, 그 말이 올바르고 행실이 너무 완벽하기 때문에 나를 더욱 초라하게 만드는 사람, 그런 사람은 보기 싫어지는 사람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타인을 얼마나 괴롭히고 다녔는지 몰랐던 것 같다. 오죽 했으면 동성애자 알키비아데스마저 차라리 사라져 주었으면 하는 충동을 느꼈을까? 이것은 악마적 충동이다. 꿈속에서 친구를 살해하고 난 다음 아침 우리는 얼마나 깊은 자책감에 빠지던가. 그러니 이런 친구는 존재 자체가 나에게 부담스러워지고, 더욱 보기 싫어지는 것이고, 더욱 괴롭고…..중종이 조광조에게 느꼈던 정신적 고통을 알키아비데스는 소크라테스에게 느꼈던 것이다.

알키아데스가 소크라테스의 동성애자라니요? 아테네의 시민들은 남여간의 육체적 사랑을 저속한 사랑으로 간주하였고, 남자들 간의 동성애를 품위 있는 사랑으로 간주하였던 모양이다. 소크라테스가 동성애자였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 어른 남성이 미소년을 사랑하는 것이 아테네의 습속이었다는 사실은 이제는 많이 퍼진 비밀이다.

이야기가 옆길로 샛는데 내친 김에 소크라테스에 대한 알키아비데스의 사랑 고백을 더 들어 보자.

“선생은 나의 연인이 될 자격을 갖춘 유일한 사람이었지. 몸의 눈이 정지할 때 사유의 눈은 예리해지지…. 이 분은 내 아름다운 몸을 무시했어. 이분과 나는 함께 잠을 잤으나, 아무 일이 없었던 거야. 또 아무도 없는 곳에서 둘만이 씨름을 하였는데 아무 일이 없었던거야? 나는 완전히 조롱당했다는 느낌이었어. 나의 이 멋진 몸매를 완전히 무시한 거지.“

그러니까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과 사랑을 나누었으나, 젊은이들의 몸을 탐닉한 것이 아니라, 젊은이들의 영혼을 사랑했던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제자들의 영혼이 바르고 아름답게 자라길 희구하였던 것이고, 그런 점에서 영혼의 조각가였던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성품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진술을 알키아비데스로부터 청취하여 보자.

“한번은 포테이다이아 전투에 같이 참여한 적이 있었지. 소크라테스와 나는 함께 식사한 전우가 되었어. 그런데 말이야, 고통을 참는데 있어서 이분만큼 징글징글한 사람도 없을 거야. 그 위태로운 순간 이분은 꿈쩍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 적으로부터 나를 구출한 분도 이 분이었다네. 이분은 그 어떤 힘든 일도 끄덕 없이 해낸다네.
술도 죽여주지. 술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한 번 마시면 주량의 끝이 없어. 나는 아직껏 이 분과 술을 많이 마셔 보았지만, 술 취한 모습을 본 적이 없어. 대단한 사람이야. 추위를 모르며 살지. 이분이 신발을 신는 때는 겨울 뿐이야.“

지금 알키아비데스는 소크라테스의 용맹과 절제력을 증언하고 있다. 용기와 절제는 플라톤이 강조하는 덕목들이다. 플라톤이 그의 이상국가를 건설하면서 수호자들에게 요구하는 세 가지 덕목이 있었으니 그것은 용기와 절제 그리고 지혜이다. 지혜와 용기와 절제를 한 몸에 구현한 정의의 화신, 그가 소크라테스이다. 이제 진리를 탐구하는 소크라테스의 집요함을 목격할 차례이다.

“이런 일도 있었어. 하루는 아침부터 깊은 생각에 빠지대. 정오가 되었는데도 그대로 서 있더군. 우리들은 어쩌나 지켜보았지. 얼마나 갈까? 아니, 글쎄 밤이 깊었는데도 계속 그 자리에 서 있지 않겠나? 우리는 놀랬어. 한번 생각에 빠지면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거지.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태양에 기도를 드린 다음 자리를 뜨더라니깐.“

 

멜레토스와 오고 간 논변

소크라테스, 무서운 인간이었다. 오죽 하였으면 연인이자 제자의 입에서 독사라는 표현이 나왔을까? 독사를 잘못 건든 멜레토스, 500명의 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이제 독사의 논변(elenchos)을 이겨내야 한다. 다시 아고라의 법정으로 돌아오자.

“멜레토스, 당신은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나를 기소하였지요. 내가 보기엔 젊은이의 교육에 아무 관심이 없는 당신이 젊은이의 교육에 진지한 관심을 갖고 있는 척 하는데, 어디 좀 물어봅시다.”

소크라테스; 멜레토스, 내가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데 그러면 젊은이들을 훌륭하게 만드는 분이 있다면 누굴까요?
(소크라테스의 이 질문은 독이 묻은 질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한 존재이다. 멜레토스가 자기가 아는 모모를 훌륭한 교사라고 지목하는 순간 소크라테스의 날카로운 역습을 받게 된다. 아테네 시민들이 다 알고 있는 모모 교사의 허물을 적시하는 순간, 청소년을 타락시킨 죄로 왜 그 교사는 기소하지 않았는지, 캐물음의 제2탄이 나간다. 우리 식으로 말하여 모모 교사는 허구헌날 학부모님들과 노래방 가던디.)

멜레토스; 젊은이들을 훌륭하게 이끄는 것은 우리의 법률이지요.
(아주 영악한 답변이다. 구체적인 인물을 피해 버렸다. 그리고 아테네인들이 그 권위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보편적 제도를 적시한 것이다. 하지만 독사는 물러서는 법이 없다. 캐물음의 제2탄이 나간다.)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법률을 아는 사람이 누구요?
(법률 그 자체를 가지고 논변하는 것은 아무 소득이 없다.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로 논변을 유도해야 한다.)

멜레토스; 재판관들입니다.
(기분이 찝찝하지만, 이렇게라도 대답을 아니 할 수 없는 노릇. 법률을 아는 사람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잖아)

소크라테스; 이분들 모두가 젊은이들을 훌륭하게 만든다는 거지요?

멜레토스; 그렇소.
(이제 독사에게 먹히기 시작한다.)

소크라테스; 이분들 모두가 말이오?

멜레토스; 모두요.
(한 번 더 다짐해두는 것이다.)

소크라테스; 방청객들도 법률을 잘 아는가요?

멜레토스; 그렇소.
(이게 소크라테스의 논법이다. 재판관들이 법률을 잘 안다면 방청객들도 법률을 잘 아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밖에. 그렇게 답변하지 않으면 도대체 배심원으로 뽑힌 사람들과 방청객들의 자질이 왜 다른가 계속 물어올 것이다.)

소크라테스; 협의회 의원들도요?

멜레토스; 그렇소.
(소크라테스는 논리를 계속 확장한다. 어디까지 갈까? 협의회 회원이란 우리말로 시의원들일 것이다.)

소크라테스; 그러면 민회 사람들도 잘 알겠군만요.

멜레토스; 그렇소.
(재판관에서 시작하여 방청객들로 확대되고 협의회 의원들로 확대되어 마침내 민회 사람들까지 왔다. 우리말로 대법관에서 통반장까지 모두가 법률을 잘 안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 당신의 답변에 의하면 아테네인들 모두가 법률을 잘 알고 젊은이들을 훌륭하게 키우고 있다는 말이로군. 이 영감 한 사람만 제외하고 말이야.
(논변의 승부는 여기에서 끝났다. 법률을 아는 자가 좋은 교사라면, 아테네인 모두가 좋은 교사인 셈이다. 이렇게 훌륭한 교사들로 가득 찬 훌륭한 사회에서 청소년이 타락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잖은가? 여기 법률에 무지한 한 영감이 있어, 그로 인해 청소년들이 타락하였다면, 그렇다면 아테네인들은 청소년들의 교육을 방치하고 살았다는 것이다. 아테네인 모두가 청소년 유기죄를 저질렀음을 멜레토스는 자백하여 버린 것이다.)

소크라테스; 만약에 오직 한 사람만이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나머지 모든 사람들은 젊은이를 이롭게 해 준다면 젊은이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크게 복된 일일 것이오. 하지만 멜레토스, 당신의 답변은 젊은이에 대한 아테네인들의 직무유기를 자백하고 있는 것이오.(게임 오버)

 

사상범이란….

다음 신을 믿지 않는다는 죄목에 대해 논변할 차례다. 어떤 사회나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을 묶고 이끌어주는 공통 의식, 혹은 이념이 있다. 이를 우리는 지배 이념이라 부른다. 중세 유럽의 지배 이념은 기독교 사상이었고, 조선 시대의 지배 이념은 성리학이었다. 지배계급은 이 지배 이념을 앞세워 민중을 교화하고 순치하며 통치하는 것이다.

그런데 삐딱한 지식인이 나와 ‘임금님 귀는 당나귀’라고 나발 불고 다니면 이거 성가신 일이 된다. 한 사람의 저항적 지식인이 나와 ‘왕후장상 씨가 따로 없지 않소’라고 떠들며 다니면 민심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진시황이 고전을 불태우고 지식인들을 땅에 묻은 일이나, 교회가 태양중심설을 주장한 부르노를 화형에 처한 일이나, 갈릴레이를 종신 가택 연금시켜 그의 입을 봉한 일이나, 스탈린이 레닌의 유언장(스탈린은 무례하여 당 서기직을 맡아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었음)을 본 동료들을 모조리 처형한 일이나, 일제가 조선의 독립 운동가들을 치안유지법으로 잡아 가두고 그것도 모자라 보호감옥에 집어넣은 일이나, 지금 아테네의 멜레토스와 리콘과 아니토스가 신을 부정하였다는 죄목으로 소크라테스를 재판정에 세운 것이나, 이거, 다, 똑같은 거다.

이렇게 가슴 속에 품은 신념 하나로 권력의 탄압을 받는 이들을 우리는 사상범이라 부른다. 사상범은 다른 잡범들과 달라서 자신의 생각 때문에 탄압받는 사람이다. 남의 물건을 훔친 것도 아니고 누구를 해꼬지 한 것도 아니고, 다만 지배자들이 풀고 다니는 노가리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 하나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다.

사람이 의미 있는 새로운 사상을 발견하게 될 경우 이 사상을 숨기는 것은 매우 고통스럽다. 관습적으로 반복되는 생각, 일상적으로 되풀이되는 생활양식이 아닌 새로운 생각, 새로운 생활양식을 발견한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든 이 천기(天機)를 누설하게 된다. 책을 써서 공간(publish)하든 유인물을 찍어 돌리든 상징적 비유로 시를 쓰든 새로운 사상은 인간들의 소통(communication)을 요구한다.

그렇게 해서 집권자들에게 붙들리는 것이고, 체포와 고문과 구속의 고통을 당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배층에게 사상범은 다른 잡범들과 달라서 생각만 바꾸어주면 된다. 내가 포지한 사상이 실은 오류였음을 자백하는 전향서 한 장만 써주면 무죄가 된다.

소크라테스는 무신론자냐 유신론자냐. 무엇이 진실이냐. 만일 소크라테스가 무신론자였다면, 소크라테스에게 사형을 언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어 보나마나다. 사형을 결정한 아테네 시민들의 양심은 편안하였을 것이다. 만일 소크라테스가 무신론자였다면, 이 고집쟁이 영감은 끝끝내 ‘신은 존재하지 않음’을 주장하였을 것이다. 교회의 재판정 앞에서는 성경의 말씀을 순순히 따르겠다 서약을 해놓고, 재판정의 문을 나가면서 ‘그래도 돈디’라고 읊조린 갈릴레이와 소크라테스는 크게 달랐다. 소크라테스는 이성적 사유의 정당성을 확신한 인물이고, 이성적 사유의 가르침대로 살아버린 인물이다. 속으론 무신론이면서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겉으로 “신은 존재한다.”고 말할 인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유신론자였다. 제자 플라톤을 보면 안다. 플라톤은 그의 대저 <국가>를 세우면서 모든 논지를 신의 완전함에서 끌어낸다. 제자가 유신론자였다면 스승도 유신론자였던 것이 확실하다.

그렇다면 멜레토스는 무슨 근거로 소크라테스를 무신론자라고 고소하였던가.

소크라테스; 멜레토스, 당신은 내가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요. 신을 믿지 말라고 가르친다고 고소하였지요?

멜레토스; 그렇소.

소크라테스; 해와 달이 신이 아니라고 말했다는 거지요?
(이 대목에서 우리는 헷갈리면 안 된다. 당시 아테네인들에게 해와 달은 신이었다.)

멜레토스; 재판관 여러분, 소크라테스는 해는 돌이고 달은 흙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멜레토스는 참 비열한 인종이었던 모양이다. 해는 돌이고 달은 흙이라 가르친 소피스트가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아낙사고락스였다. 멜레토스가 진정 아테네 지배체제를 수호하려는 충성심으로 무신론자를 잡아들이려 하였다면 사실은 아낙사고라스를 고소해야 옳았다. 멜레토스는 지금 마녀사냥을 하고 있다.)

소크라테스; 허허, 내가 아낙사고라스라도 된다는 이야긴가?
(비열한 자들과는 논변이 되지 않는다. 진실을 밝히는 일엔 아무 관심이 없는 이들이 노리는 것은 사욕을 챙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누가 범인인가?

소크라테스는 이어 아테네인들을 훈계한다. 신이 지시하는 일이라면 그 어떤 위험을 무릎 쓰고라도 실천하는 것이 이성적 인간의 태도라고 말이다. 이어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호출한다. 당신들이 나에게 사형을 내린다하여도 이 소크라테스는 눈 하나 까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자의 어리석은 사고라는 것. 죽음을 나쁜 것으로 아는 당신들의 천박한 사고야말로 무지의 산물이라며 재판관들을 훈계한다. 아니, 질타한다. 유죄 판결도 두렵지 않으며 사형 판결도 두렵지 않다는 것이다.

‘배 째.’ 상대가 무섭게 덤비면 덜컥 겁이 난다. 지금 두려워 떨고 있는 자는 재판관들이다. 멜레토스를 앞세워 소크라테스를 고소한 자는 아니토스였다. 아테네인들의 신망을 한 몸에 받고 있던 중견 정치인 아니토스, 자신이 당한 수모를 복수하기 위해 이 영감탱이를 재판정으로 불려냈던 아니토스, 하지만 자기는 뒤에 있고 멜레토스를 앞 세워 소크라테스와 다투도록 원격 조종하고 있는 아니토스.

‘어, 이거 아닌데’ 사태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음을 직감한다. 이런 재판을 보러 온 것이 아니었는데. 재판정에 서면 피고인들은 양처럼 유순해진다. 공손하게 고개 숙이며 때로는 없는 눈물이라도 흘려 가며, 제발 살려 달라고, 발바닥이 손바닥 되도록 빌고 읍소하는 것이 피고인의 자세이다.

죽어도 상관없다며 달려드는 소크라테스를 보며 사태가 꼬이고 있음을 직감한다. 너무 나가는 것이다. 사태의 흐름을 읽는 것은 정치인의 동물적 직감이다. 정치인은 정치인이다. 지금이 때다. 영감에게 살 길을 열어 주자. 나서야 한다. 나서서 발언하자. 일어서는 아니토스.

“소크라테스여, 제발 철학하는 일만 그만 두라. 그러면 무죄로 하겠다.”

철학하는 일만 그만 두라. 그러면 무죄로 하겠다. 500명의 배심원들이 보는 앞에서 아니토스는 자신의 본심을 토로하여 버렸다. 불경죄도 청소년 타락죄도 다 껍데기였다. 아니토스가 불쾌하게 여긴 소크라테스의 죄는 <철학하는 일>이었다. 철학하는 일을 그만 둔다면 무죄라는 것이다. 이게 뭐냐?

지금 아니토스가는 무죄 방면이라는 미끼로 한 철인의 양심을 흔들고 있다. 흥정하자는 것이다. 여기에서 소크라테스, 타협할까? 아니토스는 몰라도 너무 몰랐다. 사익보다 소중한 거, 명예 보다 소중한 거, 목숨 보다 소중한 가치가 따로 있음을 몰랐던 것이다.

범인은 아니토스였다. 아니토스의 죄목은 무고죄. 세상에 착하고 깨끗하고 진실하게 살아가는 한 철학자를 엉뚱한 죄목으로 엮고 배심원들을 매수하여 독배를 들도록 음모한 것이다. “철학하는 일만 그만 두라. 그러면 무죄로 하겠다.” 이게 뭐냐? 이제 남는 일은 소크라테스의 담담한 충언이다.

“아테네인들이여 나는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복종하지 않습니다. 나는 신에게 복종합니다. 나는 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진리를 사랑할 것이며, 여러분에게 충언하는 일을 그만두지 않을 것입니다. 아침이면 일어나 광장에 나가 젊은이들과 이야기하는, 오랫동안 내가 해 오던 일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보시오. 그대들은 위대하고 지혜롭고 씩씩한 나라 아테네의 시민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그렇게 나라를 세웠고, 일구었으며 그런 자랑스런 나라를 우리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정신 상태는 어떻습니까? 장사꾼들처럼 온통 돈벌이에만 눈이 멀어 있지 않습니까? 참된 명예에 대해서, 진리에 대해서 그리고 고매한 영혼에 대해서 아무 신경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이것이야말로 부끄러운 일 아니겠습니까?“

2400년 전 아테네에서도 아고라의 한 법정에서 울려 퍼지는 소크라테스의 충언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오늘 우리들의 가슴을 후빈다. 사람보다 돈을 숭배하는 나라, 물신숭배의 나라, 대한민국 국민들은 소크라테스의 충언을 조용히 음미해야 한다. 약은 쓰다.

“여러분은 덩치가 크고 혈통이 좋은 말입니다. 그러나 덩치만 크고 굼뜬 말입니다. 이런 말에게는 착 달라붙어 괴롭히는 등에가 필요합니다. 나, 이 소크라테스는 여러분의 등에인 것입니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소크라테스는 무죄 판결을 애걸하지 않았다. 재판관들의 동정을 사기 위해 눈물을 흘리고 빌고 탄원하는 일은 철학자의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성적으로 사유하고 정당한 판결을 내려야 할 재판관에게 동정심에 호소하는 것은 재판을 하지 말자는 짓이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유죄 280표 무죄 220표.

아테네의 법정은 1차 재판에서 유죄와 무죄를 가르고 유죄가 인정될 경우 형량을 결정하는 2차 재판을 연다. 그리고 2차 재판의 모두에 형(刑)에 대한 원고와 피고의 진술을 듣는다. 아니토스는 멜레토스를 앞세워 소크라테스를 사형에 처할 것을 주장하였다. 철학하는 짓만 그만 두면 무죄 방면해 주겠다는 자신의 제언을 무시한 것이다. 아니 500여 시민들 앞에서 자신의 인격을 박살낸 것이다.

아니토스가 사형을 주장하였던 데에는 모종의 음모가 있었다. 소크라테스 너, 죽기 싫지. 그러면 추방형을 선택해. 그래 제발 꺼지라는 거다. 아테네를 꺼지라니까. 이것이 아니토스의 속마음이었다. 그런데 또 소크라테스는 추방형을 거부해버린다.

“형량이라.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형을 받아야하지? 나는 일생 동안 돈 받고 강의한 적이 없어. 나는 거지야. 벌금 낼 돈 없어.

나는 자랑스런 아테네의 자유인이지. 잘 알잖아. 젊은 시절 세 차례나 전쟁터에 나간 것을. 나만큼 용맹하게 싸운 사람 있으면 나와 봐. 그런 내가 노예들이나 하는 노역을 왜 해야 하는 거지?

추방이라고? 내가 왜 이 나이에 다른 나라에 가서 사나? 이 늙은이를 다른 나라 사람들은 좋아할까? 나는 다른 나라에서도 또 꼬치꼬치 캐묻고 따지고 싫은 소리하고 살터인데 그러면 또 그 사람들도 나를 좇아낼 것 아닌가배? 내가 받아야 할 정당한 형량을 굳이 밝히자면, 내가 받아야 할 것은 영빈관의 만찬 초대장이지. 음. 나만큼 공익을 추구한 이가 있으면 나와 봐?“

이렇게 아니토스를 아니꼬운 인물로 몰아부친 소크라테스, 죽음을 찬미하여 버린다.

“죽음이 무엇인가? 죽음은 몸의 영원한 잠이지. 몸이 수면 상태로 들어가면 혼은 몸으로부터 자유로워져. 그러면 나의 영혼은 행복한 섬의 나라로 가 우리들의 영웅 아킬레스와 오딧세이를 뵐 것이며 우리들의 시인 헤시오도스와 호메로스를 만나 담소를 나눌 것이야. 이들 영웅들과 시인들은 진리를 탐구한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이진 않겠지.“

갈수록 태산이다. 아니토스는 분노를 넘어 한숨이다. 이거 잘못 건든 것이다. 머리 뚜껑이 열린 지는 오래, 이제 두려움이 앞선다. 내가 일판을 잘못 벌인 것이다. 아니다. 여기에서 소심은 금물이다. 가야한다. 일관되게 밀고 나가야 한다. 동지들이여, 저 영감탱이를, 죽이자.

이리하여 세계사에 찾아볼 수 없는 희한한 판결이 나온 것이다. 유무죄를 가르는 1차 판결에서 유죄 표결이 280, 무죄 표결이 220이었는데, 사형 제의에 동의한 표가 무려 320표. 이게 뭐냐?

자 이제 날은 저물어 가고 하루의 재판도 마감할 때이다. 모두를 향해 드린 소크라테스의 작별 인사를 듣자.

“내 애들이 성년이 되어 훌륭한 인격을 추구하지 않고, 재물이나 그 밖의 속물적인 것에 빠져 산다면, 내가 그동안 여러분을 괴롭혔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내 아이들을 괴롭혀 주십시요. 이제는 떠날 시간입니다. 나는 죽기 위해, 여러분은 살기 위해 헤어져야 할 시간입니다. 우리 중에 누가 행복한 나라로 가게 될지는 신만이 알 것입니다.”

아테네의 벗들에게 남긴 이 육성은 플라톤의 영혼에 깊숙이 남는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이렇듯 철저히 정치적인 것이었다. 유교식으로 말하자면 속물적인 것만을 탐하는 소인배들에 대한 군자의 외로운 대결이었고, 기독교식으로 말하자면 회칠한 무덤처럼 겉은 화려하나 속은 썩은 시체로 가득 찬 유대인 종교지도자들에 대항한 예수의 고독한 싸움이었다.

여기에서 소크라테스와 작별하기엔 좀 아쉽다. 다행히도 때는 축제 기간. 소크라테스가 재판을 받기 전 날, 일단의 사절단들이 배를 타고 델로스 섬의 종교 행사에 참여하러 떠났는데, 이 사절단의 배가 다시 돌아오기까지 사형 집행을 금지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시 옥에 갇힌 소크라테스의 음성을 듣는 행운을 쥐게 된다.

 

악법도 법이라고?

오랫동안 우리의 사회 교과서는 법의 안정성을 강조하고자 “악법도 법”임을 주장하여 왔다. 그리고 악법 준수의 신화를 만드는데 죄 없는 소크라테스가 이용되었다.

소크라테스가 죽기 전 제자들과 나누었던 대화를 전하는 문건은 <크리톤>이다. 크리톤은 어렸을 적부터 소크라테스의 친구였다. 장사로 돈을 많이 벌었다던가?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에게 그야말로 헌신적이인 후원자였다.

그런 크리톤이 소크라테스가 처형되기 전 날 제발 탈옥하여 줄 것을 종용하러 감옥에 찾아간다. 친구를 잃기 싫은 크리톤은 갖가지 이유들을 들어가며 설득한다. 자라나는 자식들 어떻게 할래. 자식들 클 때까지라도 아비가 살아 있어야 하지 않느냐. 부인은 어떻게 하고. 간절히 호소한다.

탈옥은 당시의 아테네 시민들에게 불명예스런 행위가 아니었다. 한 차례의 정변이 생길 때마다 정치인들은 외국으로 망명하였던 것이고, 다시 정변이 일어나면 망명객들이 귀국하곤 했기 때문이다.

지금 소크라테스가 머물고 있는 사형 대기실은 희한한 대기실이었다. 친구는 탈옥을 권유하는데 사형수는 독배를 고집한다. 왜 독배를 마셔야 하는지 구구절절 이유를 대어 음독 행위의 정당성을 설명하고 있다. 원, 참….

“나는 언제나 나의 이성적 사유에 입각하여 가장 올바른 것으로 판단되는 원칙만을 따르며 살았네. 이 원칙 준수의 결과가 사형 선고일지라도 나는 원칙을 포기할 수 없다네. 아이들에게 겁을 주어 설득하듯 투옥과 재산 몰수, 죽음으로 나에게 압력을 가하더라도 나는 나의 길을 갈 것이야. 사람들의 평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올바른 사유가 중요한 것이지. 어영부영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훌륭하게(eu) 아름답게(kalos) 올바르게(dikaion) 사는 것이 중요한 거야.“

우리의 선조들은 눈 덮인 들판을 걸을 때 한 발 한 발 조심히 걸으라고 충고했다. 뒤에 오는 사람이 따라 걷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배우고 끊임없이 반성하면서 어진 인격이 되고자 노력하였던 선조들처럼 소크라테스 역시 끊임없이 올바르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로 하여금 진리로 이끄는 안내자는 그의 이성이었다. 이성적 사유는 훌륭하고 아름답고 올바른 삶을 이끌어 주는 그의 스승이었다.

나라의 법률이나 명령을 준수하는 것은 시민의 기본 의무이다. 그런데 나라의 법률이나 명령이 잘못되었을 경우, 이의를 제기할 권리가 시민에게 있다. 나의 이의제기를 나라가 수용하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대목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당시의 헬라스인들은 이 도시 저 도시를 선택할 권리가 있었고, 이 도시가 마음에 들지 않아 다른 도시로 옮길 경우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았다.

“우리 아테네인들은 누구든 국사와 법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떠날 자유까지 갖고 있지. 가는 곳이 우리의 식민지이든 혹은 다른 나라이든 상관하지 않으며 자신의 모든 재산을 다 가지고 갈 수 있도록 아테네의 법률은 허용하고 있잖아.”

이제 소크라테스가 독약을 마셔야 할 정황이 또렷이 드러난다. 소크라테스는 법정에서 추방형을 제의할 수 있었다. 그랬다면 소크라테스는 크리톤의 권유대로 망명을 선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와 사형을 회피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비겁한 짓이다.

“그러니까 이번 재판의 경우에도 나는 추방형을 제의할 기회를 갖고 있었잖아. 고소자들의 속마음 역시 추방이었기 때문에 내가 추방형을 자원하였다면 법정은 나에게 합법적인 망명의 길을 터주었을 것이야. 그러나 나는 내 고집대로 갔잖아? 철학하는 자유를 포기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달라는 것이 내 이성의 명령이었어. 크리톤, 이제와 법정의 판결을 거부하고 다른 나라로 도망하는 것은 가장 미천한 노예나 하는 짓 아니겠는가?”

참으로 냉정한 사유다. 소크라테스는 지금 멜레토스와 리콘과 아니토스에 대한 아무런 사감(私憾)이 없다. 지금 소크라테스는 세기의 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가 벌이고 있는 투쟁은 아니토스와 같은 속물들과 벌이고 있는 투쟁이 아니다. 그가 벌이고 있는 투쟁은 <철학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다. 이 신성한 싸움의 제단에 소크라테스의 목숨 하나 바치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닌 것이다. 자, 건배. 철학의 자유를 위하여!!!

 

죽음은 영혼이 해방(Lysis)되는 사건

플라톤은 <파이돈>에서 죽음은 영혼이 몸에서 해방되는 사건이라고 기술하였다. 그렇게 스승 소크라테스는 죽기 전 제자들에게 죽음을 논술하였던 것이다. 철학자란 모름지기 자신의 이성적 사유가 명령하는 바에 따라 사는 것이며, 그렇게 이성적으로, 정의롭게 인생을 산 철인은 죽음을 의연하게 맞이하는 것이라 보았다.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소크라테스는 죽음이란 영혼이 몸에서 해방(Lysis)되는 사건이니, 이 지긋지긋한 욕정의 덩어리 몸으로부터 이성적 사유의 날개인 영혼이 자유로워지는 이 계기를 너무 너무 기쁘게 맞이한다고 소크라테스는 말한 것이다.

당시 아테네인들은 질병에 걸려 고생하다가 건강을 회복하게 되면, 의술의 여신인 아스킬레피오스에게 감사의 제물을 올리었다. 소크라테스가 제자들에게 죽기 직전 “아스킬레피오스 여신에게 닭 한 마리 바쳐 달라.”고 말하였던 것은, 육체라고 하는 질병 덩어리로부터 마침내 영혼의 자유를 얻게 된 것에 대한 감사였던 것이다. 독미나리즙을 마시기 직전 제자들과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직접 들어 보자.

“오오, 심미아스, 참 철인(哲人)은 늘 죽는 일에 마음을 쓰는 자이고, 따라서 모든 사람 가운데 죽음을 가장 무서워하지 않는 자일세. 그들이 늘 육체와 싸우고, 영혼을 정화하길 원했다면 말일세. 그들의 소원이 성취되어 하데스[死後 世界]에 도착하면 그들은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 것이네. 이 지긋지긋한 몸을 털고 말이야. 그런데 자유의 세계로 떠나는 즈음, 기뻐하지 않고 도리어 떨고 있다면, 이것 모순 된 일이 아닌가? 만일 그가 참 철학자라고 하면 오히려 기쁜 마음으로 저승에 갈 것일세.“

스승은 다시 말하였지요. “어이, 크리톤, 자네가 말하는 그 사람들이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독배를 마시길 지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걸세. 그들은 조금이라도 수명을 연장하는 것이 이득이 있다고 생각하니 말이야. 그러나 나는 독약을 좀 늦게 마신다고 해서 무슨 이득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네. 이미 죽을 목숨을 좀 연장시키고 거기 매달린다는 것은 내 자신이 보기에도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네. 그러니 내가 말하는 대로 해 주게나. ”

크리톤은 곁에 서 있던 심부름 하는 아이에게 눈짓했지요. 아이가 밖으로 나가 한참 만에 독약을 주는 사람을 데리고 오더군요. 독미나리 즙이 든 사발을 들고 있었지요. 스승은 말하였지요.

“어떻게 마셔야 독이 잘 번지는지 일러 주시지요.”

“걸으십시요. 다리가 무거워지면 그때 누우세요. 그러면 약 기운이 잘 돌 겁니다.” 간수는 말했습니다.

“어이, 간수” 스승은 아주 태연하게 평상시와 조금도 다름없이 잔을 들고 이렇게 말하더군요.

“신에게 감사하는 뜻으로 약 한 방울 떨어뜨리면 안 될까?”

“마실 만큼만 가져온 것입니다.” 간수는 말하였습니다.

“알았네. 그러나 저승으로 가는 이 여행을 잘 안내해달라고 기도는 드릴 수 있을 테지.”

이렇게 말하면서 스승은 잔을 입술에 대고 조용히 약을 마셨습니다. 약을 다 들이키는 선생님을 보고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만 울음을 터뜨렸어요. 얼굴을 가리고 울었습니다. 다시는 선생님을 만나지 못한다는 생각이 떠오르니 슬픔이 복받쳤던 거지요. 크리톤은 저보다 먼저 울음을 참지 못하여 밖으로 나갔습니다. 아폴로도로스는 진작부터 흐느끼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약을 다 마시자 통곡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스승만이 조용했어요.

“이게 뭔가.”라고 스승은 말하셨습니다.

“이상한 사람들 다 보겠네. 내가 아낙네들을 내보낸 것은 이런 창피스런 꼴을 보일까 봐 그런 거야. 사람은 모름지기 조용히 죽는 것이야. 조용히, 그리고 의젓하게.”

이 말을 듣고 우리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눈물을 삼켰습니다. 그는 이리저리 걷더니 한참 만에 다리가 무겁다고 말하고는 반듯이 드러눕더군요. 스승이 누우니까 간수는 다리와 발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한참 있다가 발을 세게 누르면서 감각이 있느냐고 묻더군요. 스승이 “없다.”고 하니까, 그 다음엔 다리를 눌러 보고는 몸이 점점 차가워지고 굳어지고 있다고 말하더군요. 그리고는 다시 우리에게 “독이 심장에까지 미치면 마지막입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하반신이 거의 다 차가워지던 순간에 스승은 얼굴 덮개를 벗더니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스승이 남긴 최후의 말이었습니다.

“어이, 크리톤, 아스클레피오스 여신에게 내가 닭 한 마리를 빚지고 있네. 기억해 두었다가 갚아 주게.”

<파이돈>은 이렇게 한 철인의 최후를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참으로 깨끗하고 평화로운 죽음이다.

 

황광우
30만부가 나간 '철학콘서트'에 이어 '역사콘서트'와 '촛불철학'을 출간했다. 지난 5년 동안 운사 여창현의 문집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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