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콘1]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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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현자들의 인터뷰

 

소크라테스, 공자, 석가, 플라톤, 예수, 퇴계, 토마스 모어, 아담 스미스, 마르크스, 노자, 인류가 자랑하는 10인의 현자들을 철학 콘서트에 초대하였다. 먼저 10인의 현자들에 관해 인터뷰를 하여 보자.

* 가장 단명한 사람은? 예수.
* 가장 장수한 사람은? 석가와 플라톤.
* 사형을 당한 이는? 소크라테스와 예수 그리고 토마스 모어.
* 출생 신분이 높은 사람은? 석가는 왕자, 플라톤은 명문 귀족 출신.
* 출생 신분이 미천한 이는? 공자와 예수.
* 권력의 최고 지위에 오른 이는? 토마스 모어.
* 부부관계가 좋지 않은 이는? 공자.
* 금슬이 좋은 사람은? 마르크스.
* 풍자의 대가는? 토머스 모어.
* 가장 고집이 센 사람은? 소크라테스.
* 가장 어진 인격은? 퇴계.
* 가장 힘든 삶을 견딘 이는? 마르크스.
* 가장 많은 이야기를 한 이는? 석가.
* 가장 이상주의적인 인물은? 토마스 모어.
* 가장 현실주의적인 인물은? 아담 스미스.
* 가장 짧은 글은? <반야바라밀다심경>.
* 가장 난해한 책은? 마르크스의 <자본론>
* 가장 풍부한 책은? 플라톤의 <국가>
* 가장 심오한 책은? 공자의 <논어>

내가 플라톤을 처음 만난 것은 대학 신입생 때였다. 대학 입학식을 마치고 돌아온 나에게 형은 대학 4년 동안 책 두 권만 읽으라는 것이었다. 한 권은 공자의 <논어>요, 다른 한 권이 플라톤의 <국가>였다. 역발산(力勃山) 기개세(氣蓋世), 산을 들고 세상을 뒤엎을 기세이던 20대의 젊은 나이, 만 권의 책을 다 읽어도 채워지지 않을 왕성한 탐구욕을 지녔던 그 나이의 젊은이에게 4년 동안 책 두 권만 읽으라니….

물론 형은 나에게 만만치 않은 조건을 주문하였다. 국문이 아닌 원문으로 읽으라는 것이었다. 대학 공부란 어학 공부라면서 영어와 한문을 챙기라는 것이었다. 이후 대학 1년 내내 나는 영문판 <국가>를 휴대하고 다니면서 읽었다. 빈 강의실에서도 읽고 음악 감상실에서도 읽고 식당에서도 읽었다. 뭐가 뭔지 모르면서 읽었다. 하루 한 페이지도 좋고 두 페이지도 좋고 꾸역꾸역 읽어갔는데, 1977년 10월, 캠퍼스에 진주한 전투 경찰들과 다투다 학교를 그만 두게 되었다. 이후 이어진 여러 인연의 고리들을 지나, 다시 <국가>를 손에 쥐게 된 것은 나이 사십 때였다. <국가>의 일독을 완료한 것이 두 해 전의 일이니 이 책을 읽는데 나는 무려 27년의 세월을 걸린 셈이다.

“거친 밥 먹고 물마시고 팔베개하며 잘지라도 인생의 즐거움은 이 가운데 있으니 불의한 부와 권세는 나에게 뜬 구름이라.”(논어)

이 구절을 처음 배운 때가 열일곱. 아직도 종로학원의 국어 수업은 생생하다. 수업의 절반은 그냥 교과서를 읽는 것이다.“참 좋다.”는 한마디가 그 날 국어 수업의 전부였다. 시간이 남으니 논어 한 구절 공부하고 마치잔다. 이 희한한 국어수업이 나는 좋았다.

내가 본격적으로 공자를 만난 것은 1990년, 서른 세 살의 일이었다. 이 때 <논어>를 완독하는데 꼬박 6개월이 걸렸다. 이후 해마다 <논어>라는 숲 속에 심어진 600여 그루의 거목들을 감상하지만, 공자는 정말 붙들기 힘든 사람이다. 나이 54세에 치국평천하의 야심을 품고 천하를 유랑한 공자, 그가 고향에 다시 돌아온 것은 68세. <논어>의 원형은 이 나이에 형성된 것임을 이번에야 감지하였다.

자연과학은 20대에 이해할 수 있다. 인문학은 자연과학과 정반대. 인문학은 인생의 깊이만큼만 이해된다. 그래서 21세기의 현대인들이 여전히 플라톤과 공자로부터 인문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플라톤의 <국가>를 읽기 전에 나는 <소크라테스의 변명>과 <향연>을 읽어야 옳았다. 철학하는 일만 그만 두면 목숨을 살려주겠다는 제안을 거부하고 독배를 마시면서까지 철학의 자유를 옹호한 소크라테스, 그의 삶을 먼저 더듬어야 옳았다. 향연은 함께(Sym) 술(Posium)을 마시며 나누는 사상의 향연(Symposium). 사랑(Eros)이란 불멸(Immortality)의 이데아를 향한 그리움이라 플라톤은 풀이하였다. 참으로 멋진 상상력이다. 이후 2400년 동안 진행되어온 유럽인의 사유는 저마다의 영역에서 하나의 이데아를 찾는 작업이었다. 마르크스의 역사유물론도 아인쉬타인의 상대성 이론도 이데아의 구체적 표현이 아닐까.

유럽의 철학은 세계를 이해하는 보편적 지식을 제공한다면 동양의 사상은 삶을 사는 아름다운 지혜를 준다. 석가의 <공>은 자유를 향한 부정(Negation) 정신의 극치이다. 공자는 치국평천하의 뜻을 이루지 못하였으나 우리에게 <군자의 상(像)>을 물려주었다. 유교는 사라졌지만 <군자의 인격>은 여전히 내 삶의 토대를 이루고 있음을 이제야 본다. “내가 보물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자애로움이요, 둘째는 검소함이요, 셋째는 감히 천하에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도덕경>은 살아 있는 지혜의 보고이다.

한 권의 고전은 백 권의 신서 보다 더 소중하다. 한 권의 고전에 담긴 철학과 지혜를 발견하기까지 인류가 수 백 년의 세월을 공들였음을 기억하자. 하지만 고전을 권유하는 내 가슴 한 구석에 늘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고전을 읽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제 <철학 콘서트>가 열렸다. 편한 마음으로 감상하길 바란다. 윌 듀란트는 <철학 이야기>에서 서양 철학의 대표 주자들을 불러내었다. 지금 우리의 <철학 콘서트>에는 동양과 서양을 대표하는 10인의 현자들이 초대되었다. 홉스와 롯크, 벤담과 롤즈, 맹자와 한비자, 화담과 율곡 등 여러 사상가들이 찬조 출연을 하였다. 10인의 현자를 한 번에 이해하려 말자. 먼저 소크라테스와 예수, 모어와 스미스를 읽기 바란다. 여력이 있으면 석가와 공자, 퇴계와 노자를 읽으시라. 플라톤과 마르크스는 아무래도 어려울 것이다.

인간의 가치는 그의 사상과 행동이 공동체의 선을 위하여 얼마나 기여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한다. <철학 콘서트>가 우리의 성숙에 조금 기여하였으면 좋겠다. 좋은 책을 만들어준 웅진출판사에 감사를 드린다.

2006년 5월 18일 빛고을에서 황광우 씀

 


목차

프롤로그 – 현자들의 인터뷰
1,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 소크라테스
2, 불멸의 이데아를 향한 그리움 -플라톤
3, 아제아제 바라아제 – 석가
4, 천하 주유에 나선 돈키호테 – 공자
5, 십자가의 역설 -예수
6, 철인의 나라 조선 – 퇴계 이황
7, 내 수염은 반역죄를 짓지 않았네 – 토마스 모어
8, 거지, 이타심에 의존하는 사람 – 아담 스미스
9, 로빈슨 크루소의 섬에 간 까닭은? – 칼 마르크스
10, 21세기가 노자를 부른다 -노자
에필로그-백석의 울림

 

황광우
30만부가 나간 '철학콘서트'에 이어 '역사콘서트'와 '촛불철학'을 출간했다. 지난 5년 동안 운사 여창현의 문집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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