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시작] 그로티우스, 《전쟁과 평화의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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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자연법사상의 단초를 열다
_ 그로티우스, 《전쟁과 평화의 법》

 

떠돌아다닌 삶

그로티우스는 네덜란드 델프트에서 태어났다. 오늘날 ‘자연법, 국제법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로티우스는 사실 학자 이전에 정치가이자 외교관이었다. 그로티우스는 네덜란드 독립 전쟁 중에 태어났다. 당시 네덜란드는 스페인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독립 전쟁은 1568년에 시작되었다. 1581년에 오라녜 공 빌럼을 초대 총독으로 네덜란드 연방공화국이 선포되었지만 전쟁은 계속되었다. 네덜란드 축구팀을 오렌지 군단이라 하는 것도 오리녜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로티우스는 어렸을 때부터 총명하여 신동으로 불렸다. 열한 살 때 네덜란드의 대학에 들어갔고 열여섯 살 때 프랑스의 대학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로티우스는 스물다섯 살 때부터 정치에 참여했는데, 아르미니우스파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인 올덴바르네펠트의 보좌관직을 맡았다. 아르미니우스는 네덜란드의 개혁파 신학자로 조건부 예정설을 주장했다. 오늘날에도 미국의 감리교는 아르미니우스의 교리를 따르고 있다. 올덴바르네펠트는 연금국장을 맡았던 인물로 네덜란드와 프랑스의 동맹을 주선하는 정책에 개입했다. 그런데 프랑스가 스페인과 긴밀한 관계였기 때문에 프랑스와의 동맹이 네덜란드를 스페인에 팔아넘기려는 술책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1816년 그로티우스는 올덴바르네펠트와 함께 체포되어 이듬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로티우스는 1621년 감옥에서 탈옥한 후 프랑스와 독일 등을 떠돌다 1634년에 스웨덴으로 정치적 망명을 했다. 이듬해 프랑스 주재 스웨덴 대사로 임명되어 활동하다 1645년에 생애를 마쳤다.

《전쟁과 평화의 법》은 그로티우스가 1625년 프랑스에 머물고 있을 때 쓴 책이다. 당시 루이 13세의 비호를 받던 그로티우스는 이 책을 루이 13세에게 봉정했다. 그로티우스는 이 책을 출판함으로써 근대적인 자연법사상과 국제법 이론을 전개한 인물로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 스웨덴 여왕 크리스티나는 이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아 그로티우스를 초청했다. 그래서 그로티우스가 스웨덴으로 정치적 망명을 했던 것이다.

 

자연법의 아버지

그로티우스는 《전쟁과 평화의 법》에서 먼저 자연법에 대해 썼다. 자연법에 대한 탐구는 매우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법에 대한 이론을 세운 이후 특히 중세에 들어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가 이론 체계를 완성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과 종교철학을 토대로 자연법사상의 체계를 구축했다. 그러나 16, 17세기 중세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시기에 새로운 사상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자연히 자연법에 대한 새로운 사상의 출현이 요구되었다. 그로티우스의 자연법사상은 이런 시대적 요구의 반영이었다. 그로티우스 이후로 홉스, 로크, 루소 그리고 칸트 등이 자연법을 연구하여 근대 자연법사상을 발전시켰다. 즉 새로운 철학의 등장과 근대 자연법사상의 발전은 그 궤도를 같이했다. 이 근대 자연법사상의 시초가 그로티우스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로티우스를 ‘자연법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근대 자연법사상이란 자연 상태의 인간, 즉 국가와 법이 생겨나기 이전 인간의 본성과 이성에 기초한 자연법 이론을 말한다. 그러므로 자연법은 신이나 자연과 분리된다. 자연법과 신 혹은 자연을 단절시킨 사람이 그로티우스다. 자연법이란 인간의 사회적 본성에 합치되는 공동생활의 법칙이다. 인간은 사회생활에 강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사회는 아무렇게나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 사회는 여러 사람들이 자신들의 지성 정도에 따라 조직한 것이다. 사회의 목적은 평화로운 질서의 유지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자연법이 생겨난다.

인간 지성과 일치하는 사회적 질서의 본능은 본래적 의미의 법, 즉 자연법의 원천이다. 이 법에는 우리가 타인의 것에 손대지 않는 것, 우리가 타인의 것을 점유하거나 점유한 것으로부터 이익을 얻었을 경우 그 이익을 반환하는 것, 약속을 지키는 것, 자기의 과실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는 것, 자연법 등을 위반하여 벌을 받을 만한 사람에게 벌을 가하는 것이 포함된다.

그로티우스에 따르면 자연법은 오로지 인간 이성의 명령이다. 이 사상에 따라 그로티우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자연법은 신이라 할지라도 바꿀 수 없는 불변의 것이다. 신의 힘은 측정할 수 없다고 하지만 그 힘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 존재한다. …… 신조차도 2의 두 배가 4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이 본질적으로 나쁜 것을 나쁘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그로티우스는 자연법과 대비되는 법을 실정법이라고 했다. 그로티우스는 인간의 본성이 자연법의 어머니이자 실정법의 증조할머니라고 말한다. 자연법이든 실정법이든 원천은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이고, 자연법과 실정법의 관계만 보면 실정법은 자연법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로티우스는 그 관계를 이렇게 설명했다. “실정법의 어머니는 합의에 의한 의무다. 그런데 그 의무는 자연법에 의해 힘을 부여받는다. 따라서 인간의 본성은 말하자면 실정법의 증조할머니라고 해야 한다.”

 

국제질서도 자연법에 기초해야 한다

그로티우스는 자연법사상을 토대로 국제 관계의 이론을 제시했다. 그로티우스가 국제 관계의 이론을 제시한 데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그로티우스가 활동하던 시절 스페인, 영국, 프랑스 등 유럽 열강들은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고 있었다. 선두 주자는 스페인이었다. 스페인은 이른바 무적함대를 앞세워 해양의 패권을 장악하고, 아메리카 대륙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 식민지를 경영했다. 그런데 1588년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영국 함대에 패배함으로써 해양의 패권은 영국에 넘어갔다. 당시 스페인과 독립 전쟁을 하고 있던 네덜란드는 스페인 무적함대의 패배를 계기로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되었다. 이미 1581년에 독립을 선언한 네덜란드는 스페인이 약화된 틈을 타서 식민지 쟁탈전에 뛰어들었다.

1602년에 인도네시아를 근거지로 하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설립되었다. 1604년 동인도회사는 22세의 그로티우스에게 네덜란드의 무역권을 빼앗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반박할 논문을 의뢰했다. 이를 계기로 그로티우스는 국제법에 대해 연구를 시작하여 《포획법론(De jure praedae)》을 썼지만 당시에는 출간되지 않고 1868년에야 출간되었다. 이 책에서 그로티우스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상선대가 경쟁 상대인 포르투갈의 상선 카타리나 호를 포획한 사건을 다루면서 그 포획이 정당하다고 했다. 이 책에 담긴 주장은 이후 《전쟁과 평화의 법》에서 다루는 정당한 전쟁의 이론적 기초가 되었다. 즉 피해를 입은 쪽이 자기 방어를 위해, 적을 응징하기 위해, 피해 배상을 위해 수행된 전쟁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전쟁과 평화의 법》에서 그로티우스는 전쟁을 사적 전쟁, 공적 전쟁, 혼합 전쟁 등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눴다. 사적 전쟁이란 전쟁을 수행할 합법적인 권한을 가지지 못한 자가 수행하는 전쟁을 말한다. 반대로 합법적인 권한을 가진 자가 수행하는 전쟁이 공적 전쟁이고, 사적 전쟁과 공적 전쟁의 성격이 섞여 있는 전쟁이 혼합 전쟁이다. 그로티우스는 권한을 가진 자의 전쟁일지라도 정당한 목적이 있어야만 정당한 전쟁이라고 말한다. 정당한 목적이란 《포획론법》에서 밝힌 자기 방어, 적의 응징, 피해 배상이고 이 모두는 인간의 자기 보존이라는 본성, 즉 자연법에서 유래한다고 했다.

그로티우스는 1609년에 《해양자유론(Mare liberum)》을 발표했다. 이 책에서 그로티우스는 통상과 항해는 전 인류의 자유라며 해양 자유의 원칙을 주장했다. 이 원칙은 《전쟁과 평화의 법》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그로티우스는 사물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하여 모든 인간에게 공통되는 사물과 특정 개인의 소유가 될 수 있는 사물로 나눴다. 여기에서 세 가지 원칙이 나온다. 첫째, 모든 개인은 자신의 소유물을 자유로이 처분할 권리가 있고, 둘째, 모든 개인은 하천과 같은 공공의 것을 평등하게 사용할 자유가 있으며, 셋째, 만인은 해양을 통하여 항해와 통상을 할 자유가 있다. 이 중에서 해양에서의 항해와 통상의 자유는 자연의 섭리와 인간의 이성에 관련된 문제로서 오로지 만물의 어머니인 자연으로부터 나온 자연법의 원칙에 의한다는 것이 그로티우스의 주장이다.

그로티우스의 국제관계 이론은 네덜란드의 현실과 관련이 있다. 독립전쟁을 치르던 후발 주자 네덜란드가 국제 무대에서 겪고 있는 여러 어려움을 돌파해낼 이론적 기초로서 이 이론이 제시되었던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그로티우스의 이론은 자신의 고용주였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네덜란드, 스웨덴의 이익을 충실하게 대변하는 이론이었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로티우스의 이론은 후발국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좀 더 보편적일 수 있었다는 긍정적 측면을 가지고 있다.

《전쟁과 평화의 법》은 제목과 달리 전쟁에 관한 내용을 주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로티우스는 정당한 전쟁과 정당하지 않은 전쟁을 구분함으로써 국제 분쟁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이론을 제공했다. 《전쟁과 평화의 법》의 주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국제 평화와 안전의 유지를 위해 최소한 주권국가가 법의 지배 아래 놓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로티우스는 어떤 국가든 국제법의 규율 아래 놓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가를 규제하는 법은 국가의 의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본질적으로 자연법에서 유래한다고도 했다. 이런 그로티우스의 주장은 강자 중심의 국제 질서에 대한 하나의 비판이라고도 할 수 있다.

 

홍승기
인민노련 홍보부를 담당하면서 6월 항쟁을 현장에서 이끈 숨은 일꾼. 술만 사 준다면 지옥에도 함께 들어갈 천진무구한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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