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시작] 헤겔, 《역사철학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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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아니라 세계정신이 너를 인도하리라
_ 헤겔, 《역사철학 강의》

 

철학에 재능 없는 대학생

기운 없이 머리를 숙인 채 몸을 움츠리고 앉아서 커다란 노트를 앞뒤로 넘기고 위아래로 훑으며 말을 했다. 헛기침, 잔기침을 계속하는 바람에 말의 흐름이 중간중간 끊어졌다. 그래서 문장이 이어지지 않았다. 때로는 문장이 뒤죽박죽 섞이기도 했고 모든 낱말과 음절을 아주 힘들게 조각조각 발음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금속성 음색의 슈바벤 지방 사투리로 발음하는 하나하나의 낱말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의 강의를 들은 한 제자의 기록이다. 낮은 목소리로 더듬거리는 선생의 강의. 한마디로 하품 나는 강의였다. 그럼에도 헤겔의 강의실은 학생들로 넘쳐났다. 동시대의 저명한 철학자인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는 헤겔에 대해 “천박하고, 우둔하고, 역겹고, 메스껍고, 무식한 사기꾼”이라고 극언을 했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헤겔과 경쟁하기 위해 같은 시간대에 강의를 개설했다. 그렇지만 학생들은 헤겔의 강의실로 몰려갈 뿐, 쇼펜하우어의 강의실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결국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강의를 폐강해야 했다.

이렇듯 따분한 강의를 하고 동시대 철학자로부터 ‘사기꾼’이라는 비판을 들었음에도 헤겔의 철학은 당대부터 상당한 영향력이 있었다. 헤겔은 열여덟 살 때부터 5년간 튀빙겐 대학에서 공부했다. 그가 스물세 살에 받아든 졸업증명서에는 “재능 있는 인격자로서 신학과 문헌학에는 조예가 있으나 철학적 능력은 없다”라고 적혀 있었다. 대학 시절에는 철학에 재능이 없었다는 헤겔. 그러나 헤겔의 철학을 듣기 위해 학생뿐만 아니라 육군 소령과 대령부터 추밀원 고문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강의실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헤겔의 철학은 오늘날까지도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헤겔 철학의 매력은 무엇일까? 그 답을 알려면 헤겔의 책을 읽을 수밖에 없다. 헤겔의 책은 어렵기로 몇 손가락 안에 들기 때문에 쉽게 읽히지 않는다. 그러나 《역사철학 강의(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Weltgeschichte)》는 다르다. 《역사철학 강의》는 헤겔이 직접 쓴 저서가 아니다. 그가 1822년부터 1831년까지 베를린 대학에서 강의한 내용을 헤겔의 사후인 1837년 제자들이 정리하여 간행한 책이다. 강의 내용을 정리했기 때문에 다른 저서와 달리 어렵지 않다. 또한 역사를 주제로 해서 독자들이 접근하기 쉽다. 그러므로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비교적 쉽게 헤겔 철학에 접근할 수 있다.

 

영웅이 역사의 주체인가?

《역사철학 강의》에서 헤겔의 관심은 과거의 생각을 현재에 되살리는 것이었다. 헤겔은 과거를 현재와 단절시키지 않고 과거의 생각이 현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지금의 생각에는 과거가 포함되어 있고 미래의 생각에는 현재의 생각이 포함될 것이다. 이렇듯 생각은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반복한다. 헤겔은 이런 상호작용을 설명하기 위해 정-반-합이라는 변증법을 사용한다. 이 변증법을 역사의 흐름에 적용한 책이 《역사철학 강의》다.

역사에 대한 헤겔의 기본 관점은 역사가 이성적으로 진행되어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를 이성적으로 진행시켜온 힘은 세계정신이라고 했다. 즉 세계정신이 역사의 주체라는 것이다. “철학이 지니고 있는 유일한 사상은 이성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사는 이성적으로 진행되어왔다. 세계사는 세계정신의 이성적이고 필연적인 운동 과정이다. 동일 불변의 본성을 가진 유일한 정신인 세계정신은 자신의 유일한 본성을 세계사 속에서 드러내고 있다.”

우리는 역사책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 카이사르, 나폴레옹 등 수많은 위인들을 보아왔다. 이런 위인들이 출현하기 이전과 이후의 역사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위인들을 역사의 주체로 상정하기도 한다. 실제로 위인의 출현을 중심으로 서술한 역사책을 우리는 많이 보았다. 우리나라 역사를 삼국 시대, 고려 시대, 조선 시대로 구분하여 서술하는 것도 이런 유의 역사 서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역사 서술은 왕조사(王朝史)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렵다. 이런 식의 역사관은 난관에 부딪힌다. 알렉산드로스, 카이사르, 나폴레옹, 왕건, 이성계 같은 사람이 그 시대에 태어난 것은 우연이다. 그러므로 위인들이 역사의 주체가 되려면 역사는 우연에 의해 진행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헤겔은 이런 역사 인식을 거부한다. 헤겔은 우연적인 것의 배후에 흐르는 필연성, 즉 역사를 이끄는 힘을 포착하고자 했다.

 

역사를 인도하는 것은 세계정신이다

헤겔에 따르면 역사의 주체는 세계정신 혹은 이성, 이념이다. 역사철학의 목적은 역사 속에서 세계정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념은 혼의 지도자, ‘신의 사자’ 메르쿠리우스와 같이 진실로 민족과 세계의 지도자다. 이 지도자의 이성적이며 필연적인 의지, 즉 정신이 이제까지 세계의 모든 사건을 이끌어왔다. 또한 현재의 사건 역시 이끌고 있다. 따라서 이 지도 정신을 인식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다.”

그렇다면 위인들은 역사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세계정신은 다른 것의 도움 없이 자기 자신을 실현해갈 수 없다. 위인들은 바로 세계정신이 자기를 실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다. 위인들은 단지 자신들의 지위, 명예, 안전 등 개인적인 정열, 욕망, 충동에 따라 행동한다. 그런 위인들의 행동 뒤에 세계정신이 있다. 즉 위인들은 개인적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행동하지만 그 행동을 통해 보편적인 일을 수행한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장군인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사례를 들어보자. “카이사르는 단지 자신의 지위, 명예, 안전을 위해 싸웠다. 하지만 그의 적은 로마제국 각 지방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적에 대한 승리는 바로 전 제국의 정복을 의미했다. 카이사르는 국가조직의 형태를 바꾸지 않고도 독재자가 되었다. 카이사르는 자신의 목적을 완수하기 위해 싸웠고 그 과정에서 얻은 것, 즉 로마의 독재는 로마사와 세계사에서 필연적인 과정이었다.”

위인들이 항상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아니다. 카이사르는 적을 물리치고 로마의 권력을 한 손에 거머쥐었지만 얼마 후에 부하들의 손에 살해되었다. 위인들은 세계정신에게 이용당하다 무참하게 버려지는 것이다. 헤겔 철학의 매력은 한 개인이 역사를 이끈다는 관점을 거부하고 역사를 이끄는 힘을 발견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그 힘은 세계의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안에, 그래서 역사 안에 존재한다.

 

세계정신은 어떻게 구현되는가?

헤겔은 세계정신이 자기 모습을 드러낼 때 역사가 끝난다고 말했다. 헤겔은 당시 독일의 국가형태인 군주 국가가 세계정신의 모습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헤겔 시대에 역사는 끝이 났다. 이런 헤겔의 주장은 역사적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헤겔이 활동했던 시기는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고 그 여파로 유럽에서 절대 봉건국가가 붕괴하던 시기였다. 헤겔은 프랑스 대혁명을 열렬히 환영했고 나폴레옹을 세계정신의 체현자로 생각했다. 이런 헤겔의 태도에 모순이 있었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국민이 요구했던 자유, 평등, 박애에 입각한 민주주의의 실현과 1인 전제정치의 부활인 나폴레옹 체제는 대립되는 것이다. 그런데 나폴레옹은 해외 원정을 통해 주변 봉건국가들을 몰락시켰다. 그런 점에서 헤겔은 나폴레옹을 프랑스 대혁명의 체현자로 보았던 것이다. 헤겔이 말하는 군주 국가는 바로 입헌군주 국가였다. 이는 분명 봉건국가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진보적이었지만 지주 귀족층인 융커(junker)와 농노 등 봉건적 잔재가 엄존하는 국가였다. 노동자에 대한 자본가의 가혹한 착취를 보호해주는 국가였고, 정치적으로 반민주적인 1인 통치 국가였다.

이런 양면성을 갖는 국가를 세계정신의 모습이라고 한 것은 헤겔의 정신에 내재하는 진보성과 보수성의 양면을 내보인 것이었다. 이런 양면성은 헤겔 자신에게는 모순이 아니었다. 헤겔은 봉건제도의 파괴와 자본주의의 확립이라는 2대 과제를 지지했다. 비록 입헌군주 국가가 봉건제도를 완전히 파괴하지는 않았지만 자본주의의 성립과 발전을 보호했기 때문에 헤겔은 입헌군주 국가를 지지했다. 이런 태도 때문에 헤겔은 ‘어용학자’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헤겔은 《역사철학 강의》에서 자신의 역사철학을 이렇게 요약한다. “철학은 다만 세계사 안에 반영되는 이념의 광채만을 문제로 삼아야 한다. 철학은 현실에서 일어나는 직접적이고 미숙한 정열의 움직임에서 한 걸음 물러서서 그것들을 고찰하는 것이다. 철학의 관심은 자기를 실현하는 이념의 전개 과정, 자유의 의식이라는 형태에서만 나타나는 자유라는 이념의 전개 과정을 인식하는 것이다.”

헤겔은 세계정신이 당대의 군주 국가에서 자기 모습을 드러냈다고 했다. 그래서 세계사는 끝이 났고, 세계정신의 인식을 목적으로 하는 철학도 끝이 났다. 세계정신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헤겔이 세계정신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헤겔은 세계사와 철학은 자기에 의해 끝이 났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역사는 멈추지 않았고 철학은 새롭게 등장했다. 헤겔의 말년에 봉건 왕조가 재등장하면서 봉건 왕조와 자본주의를 타도하기 위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시대에 맞는 새로운 철학이 등장했다. 그 철학은 헤겔의 방법, 즉 변증법적 방법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세계정신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집어던지고 노동자계급이 역사의 주체라고 주장했다. 그 철학은 세계정신의 자기 운동에 대한 인식이라는 고상한 목적을 던져버리고 직접적이고 미숙한 정열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세계에 대한 인식이 아니라 세계의 근본적 변혁을 목적으로 하는 철학이었던 것이다.

 

 

홍승기
인민노련 홍보부를 담당하면서 6월 항쟁을 현장에서 이끈 숨은 일꾼. 술만 사 준다면 지옥에도 함께 들어갈 천진무구한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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