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 오르는 강>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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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 오르는 강>에 빠지다

작가 문순태가 평생을 두고 낑낑대온 작품이 <타오르는 강>이다. 일흔이 넘도록 투혼을 불어넣은 작품이니 그런 점에서, <타오르는 강>은 박경리의 <토지>, 최명희의 <혼불>과 같다. 100년 전 선조의 말과 숨결을 오롯이 재연한 문학의 기적이다.
생오지 마을에 가면, 무등산 뒤 구불구불 오솔길을 따라 가다 보면, 작가의 작업실이 나지막하게 앉아 있다. 2012년 봄이었던가, 나는 생오지에서 연 책 잔치에 참여했다.
‘두꺼운 책은 죄악’이라며 고대 그리스인들은 투덜거렸는데 정말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번에야 읽게 되었으니, 이 게으름을 무엇으로 용서받을 수 있을까? 이내 나는 <타 오르는 강>의 물속에 빠졌다.
이야기는 종 웅보의 도망에서부터 시작된다. 웅보의 도망은 몇 발자국 못가 실패했다. 잡혀온 웅보는 팽나무에 묶였다. “바람이 요동을 치는 길고 긴 겨울밤, 영산강이 밤새도록 울어”댔다며, 웅보의 비운을 예고였으니 그것은 복선이었을 게다.
도처에서 영산강이 얼굴을 내민다. “전라도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영산강이 흐른다.” “ 눅눅하게 젖은 강바람의 냄새는 달콤했다.” “영산강변에 나가 바람의 냄새만 맡아보아도 봄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영산강이 숨을 쉬면 안개가 자욱하게 강을 덮는단다. 영산강은 살아 있는 생명체였다. 그 강의 품안에서 민중은 삶을 일궈갔다.
1886년 노비제가 폐지되었다. 그 잔혹한 노비제가 폐지되었다. 갑신정변 2년 후의 일이었다. 하지만 종들이 갈 곳은 없었다. 웅보는 자유를 열망하였으나, 웅보의 아버지는 주인댁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야기는, 웅보가 부모 곁을 떠나는 것으로 이어진다.
“땅 한 뼘도 없이 뜬골로 나가서 안 굶어죽고 살 것 같으냐?”라며 아버지 장쇠는 아들의 발걸음을 말렸다. 어머니는 며느리에게 당부한다. “아가, 잘 살어라 와.“ 애잔한 이별이었다. 이곳의 ‘와’는 오라(come)는 명령어가 아니다. 여인들만이 낼 수 있는, 그 짠한, 한(恨) 맺힌 소리이다.
웅보가 정착한 곳은 영산강의 갈대 우거진 곳 새끼내였다. 주막집 대장간에 방을 들이고, 신방을 차렸다. 방바닥에는 가마니를 깔았다. 방바닥이 가마니라니? 100년 전 민초들은 그렇게 살았다. 가마니 위에서 잤다.
작가는 영산강을 불러낸다. “붉은 해가 영산강을 붉게 물들이며 기울자, 어슴어슴 어둠이 내리는가 싶었는데…” 어둠이 어슴어슴 내린단다. 그 속에 들어가 눈을 감고 싶어진다.
새끼내는 민초의 공동체였다. 찾아온 사람들을 돌려보내지 않았고 모두 받아주었다. 그들은 둑을 쌓아 논을 만들어 나갔다. 날마다 강에 나가서 고기를 잡았다. 남자들은 쪽배를 타고 멀리 나가 뱀장어를 잡았다. 십 년 이상 자란, 깊은 바다에서 산란을 끝낸, 돌아와 장엄한 일생을 마치게 될 뻘두적이 은뱀장어를 잡았다.

작가는 또 영산강을 부른다. “달이 떠오르자 어둠속에 파묻혔던 영산강이 은빛 비늘을 일으키며 구렁이처럼 꿈틀거렸다.” 으스스하다. “초가을의 달빛이 가늘고 부드럽게 영산강을 덮었다. 바람이 불지 않는 날 밤에는 영산강도 울지 않았다.” 교교하다. “꿈속 같은 영산강 변 갈대밭 사이로, 속옷 차림의 여인네가 꿈꾸듯 나비처럼 너울거렸다.” 몽환적이다.
가뭄이 왔다. 못자리가 쩍 벌어지자 새끼내 사람들은 잠을 자지 못했다. 산에 올라가서 도토리를 따고 풋밤을 까기도 하고, 산딸기며 꾸지뽕으로 배를 채웠다. 하지만 밥을 먹지 않은 눈은 침침했고 속은 허심허심하였다. 식구를 줄여야했다. 나이도 덜 찬 딸을 시집보냈다.
강이 운단다. “웅보는 꿈속에서도 영산강이 우는 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바람이 불지 않는 날 밤에는 영산강도 울지 않았다.” “바람이 깨어나자 영산강 우는 소리가 마치 무거운 한숨처럼 들렸다.”
설 풍경이 정겹다. “떡국을 쑤어 먹을 흰떡도 빚었다. 아무리 가난해도 희 떡국을 먹어야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게 되었다.” 그랬다. 떡국을 먹어야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고 하였다. “새벽부터 복조리 사라고 외쳐대는 소리가 새끼내 고삿마다에서 들려왔다.” 고삿은 골목이다. 까마득히 어린 나의 유년 1963년에도, 그 시절의 설은 복조리 사라는 소리와 함께 왔다.

역시 소설은 말의 축제이다. “열녀전 끼고 서방질한다” 성에 관한 인간 이중성의 신랄한 폭로이다. “대신 댁 송아지 백정 무서운 줄 모른다.” 권력에 달라붙은 자들의 위선에 대한 질타이다. “자식 죽는 것은 보아도 차마 벼 포기 죽는 것은 못 본다.” 농사에 대한 농부의 지독한 애착의 역설이다. “풍년 거지가 더 서럽다” 가난한 사람들의 설움을 표현한 위트다. “첫봄에 샛바람이 불면 그해엔 난봉이 많이 난다던가” 입가에 미소를 번지게하는 농담이다.
한 가지를 얻으면 한 가지를 잃는 것인가. <타오르는 강>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많은 것을 잃어버렸음을 고통스럽게 확인하였다. ‘집뒤 층층나무 가지에 앉아 울어대는 개똥지바귀 새 소리’를 잃었다. ‘지난 해 봄에 심어놓은 참오동나무’며 ‘햇살과 함께 흔들리는 접시감나무 잎들’이며 ‘가시 많은 큰 꾸지뽕나무’를 잃고 ‘미루나무 숲’도 잃어버렸다. “미루나무 꼭대기에 조각구름 걸려 있네”라고 초등학교 3학년 때 분명 노래했는데 말이다.
작가는 또 영산강을 호명한다. “웅보는 갑자기 강가로 나가고 싶었다. 강가에 나가서 안개 속에 파묻히고 싶었다. 할아버지는 안개 속에서 영산강이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고 하였다.” 환청이었을 것이다. “점점 더 물속으로 깊이 들어갔다. 자신이 강물로 변하는 것 같은 황홀감에 도취되었다.”
사람은 죽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죽어서 흙과 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민초의 신앙이었다. 바람에 실려 오는 할아버지의 음성을 들었다. “이 할애비는 죽어서 영산강의 강물이 되었단다. 영산강의 강물이 되어 언제까지나 살아서 흐르고 있단다.” 
황광우
30만부가 나간 '철학콘서트'에 이어 '역사콘서트'와 '촛불철학'을 출간했다. 지난 5년 동안 운사 여창현의 문집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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