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이 남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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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이 남긴 것

친구의 1주기다. 그동안 한 달마다 칼럼을 쓰면서도 그를 언급할 수가 없었고, 인터뷰도 모두 거절했다. 이번에는 그를 말하고 싶었다. 궁금해 하는 것들에 답하고 싶었다.

우선 고등학교 시절에 대한 얘기부터 한 자락 시작하자. 가장 많이 떠오르는 장면은 시험 끝나면 친구들과 함께 가던, 경복궁이 내려다보이는 `영춘관` 2층 방이다. 그곳에서 군만두를 안주 삼아 고량주를 꽤 마셨다. 그리고 이어지던 시국 얘기며 철학과 문화·예술에 관한 토론들. 헤어지기 아쉬워 2차로 몰려간 곳은 노회찬의 자취집. 밤새워 마시고 토론하고 음악을 들었다. 시험 때마다 치러진 이 의례는 노회찬의 제안으로 서양사상사의 탐색으로 이어졌다. 소크라테스를 거쳐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거치던 지적 항해는 중세로 접어들면서 좌초했지만 대학 시절 탐구의 원형이 아니었을까?

이렇듯 고교 시절부터 시국을 걱정했던 그는 1980년대 노동운동을 거쳐 1990년대 진보정당운동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외로운 자리를 지켰다. 최근이야 당의 원내대표였지만 지난 40여 년은 패배와 좌절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고단한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힘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그는 한국전쟁 때 함흥에서 월남해 부산에 둥지를 튼 분들의 맏이로 태어났다.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책과 음악을 벗 삼는 환경에서 성장했다. 서울로 유학 온 고교 시절에는 역사와 철학에 관심이 많았다. 20대 초반 그는 지식인으로서 세상을 바꾸는 일을 도모하기보다는 용접공의 길을 선택했다. 그런데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과 민중당의 참패를 겪으면서 그와 함께했던 많은 이들이 다른 길을 모색했다. 그럼에도 그가 끝내 진보정당운동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의 아픔에 대한 공감 때문 아니었을까. 그가 6411 새벽버스를 타는 청소노동자, 투명인간들에게 이름을 불러주자 했던 것은 번뜩이는 정치적 감각에 기인한 것은 아니다. 그의 일상이 그러했다. 사실 진보정당의 지도부에 있다 보면 정책이나 전략을 고민하기도 버겁다. 그럼에도 그는 늘 현장의 최전선에 동참했고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끊임없이 만났다. 지난 토요일 노회찬을 추모하는 자리에 참 많은 분이 왔다. 학교 동창들, 노동운동의 동지들, 그리고 진보정당을 함께한 동지들까지는 알 만했다. 그런데 모르는 분들이 참 많았다. 모두들 그와 함께한 사연들을 가슴에 깊이 간직한 분들이리라.

그리고 어떤 상황이나 사건을 역사적 안목으로 바라보고, 그 이면도 들여다볼 줄 아는 혜안을 지녔기 때문 아니었을까. 그는 모두에게 따뜻한 세상을 만들고 싶어 했다. 매번 겪는 패배와 시련 속에서도 긴 호흡으로 지금의 상황을 바라보면 남 탓하지 않고, 지금 살려야 할 부분과 더 발전시킬 부분, 그리고 포기할 부분이 보인다. 그러면 실패로 인한 좌절감에 사로잡히지 않고, 다음을 준비하는 여유도 생긴다. 나도 40년 넘게 이 친구랑 어울리면서, 이런 점을 조금씩 배우려 노력했다.

한편 의기소침해진 사람들의 마음에 힘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유머가 필수다.그래서 그는 정부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에 반대하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에 대해 “동네 파출소가 생긴다고 하니까 그 동네 폭력배들이 싫어하는 것과 똑같다. 모기들이 반대한다고 에프킬라 안 삽니까?”라는 촌철살인의 멘트를 날렸다. 화나고 답답한 상황에서 이런 유쾌한 유머가 가능했던 것은 큰 꿈을 꾸고, 먼 길을 가는 사람의 여유에서 비롯된 내공 때문이리라.

우리는 그 여유와 유머에 음으로 양으로 많은 빚을 졌다. 그 덕분에 한바탕 웃고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불판은 갈아야 해!` 또는 `모기는 잡아야 해!`라고 결의를 다지지 않았던가.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웃음 속에 본질을 놓치지 않는 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 그는 참 많은 것으로 우리에게 남아 있다.

정광필
대안학교 이우학교를 설립했고, 지금은 ‘50+인생 학교’를 이끌고 있다. 그를 만나면 ‘호연지기’의 뜻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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