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시작] 블로크, 《중세사회》

0
3
This post is last updated 16 days ago.

대하소설 같은 역사서
_ 블로크, 《중세사회》

 

 

레지스탕스 운동의 지도자

전투의 시각이 다가오고 있었다. 자식을 여섯 명이나 둔 56세의 가장이었지만 이 노령의 애국자는 기꺼이 조국에 몸 바칠 결심을 한다. …… 유대인 신분에 관한 법령이 발표되자 1941년 당시 클레르몽페랑으로 옮겨가 있던 스트라스부르 대학과 몽펠리에 대학에서 계속 가르칠 수 있는 특례 자격을 얻는다. 독일이 파리 서재의 책들을 모두 압수하고 프랑스 남부 지역을 완전 봉쇄하자 …… 블로크는 역사가라는 직업의 미래를 절실하게 고민한다. 도피하듯 미국 뉴욕의 뉴스쿨로 갈 수 있었던 기회도 포기한다. 독일군이 프랑스 남부 지역까지 들어오자 대학의 지위도 포기해야 할 상황이 온다. 블로크는 마침내 오래전부터 결심해왔던 레지스탕스 활동을 할 때가 왔음을 직감한다. 조직력, 용기, 도덕적 엄격성 같은 브로크의 성격은 바로 레지스탕스 활동, 특히 리옹의 프랑티뢰르(의용유격대) 활동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이미 얼굴이 너무나 널리 알려진 블로크는 붙잡혀 1944년 6월 16일 생디디에드포르망에서 총살당한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올리비에 뒤물랭은 《마르크 블로크》에서 블로크(Marc Bloch, 1886~1944)가 레지스탕스 활동에 참여하는 과정과 블로크의 최후에 대해 이렇게 썼다. 블로크는 역사학자로서 역사가의 소명 의식에 따라 자신의 삶을 살다 간 것이다.

블로크는 프랑스 리옹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인 귀스타브 블로크는 당시 프랑스 최고의 교육기관이었던 파리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한 로마사가로서 아들이 출생할 무렵에는 리옹 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그래서 블로크는 어릴 적부터 전문적 역사 연구의 실제를 접하면서 자라났다. 블로크는 열아홉 살에 루이대왕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파리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하여 역사학과 지리학을 공부했다. 불과 4년 만에 역사학과 지리학 교수 자격을 획득한 후 독일로 유학하여 종교사를 배우고 돌아와 연구에 전념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블로크는 군에 입대하여 대위로 제대했다. 제대 후 스트라스부르 대학에 중세사 교수로 재직하면서 뤼시앵 페브르(Lucien Febvre) 등과 함께 역사 전문지인 <아날(Annales)>지를 발간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프랑스가 독일에 패배하자 고향인 리옹에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다. 블로크는 리옹 일대에서 레지스탕스 지도자로 활약하다 체포되어 총살당했다.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면서도 역사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여 《역사를 위한 변명(Apologie pour l’histoire ou métier d’historien)》을 저술하기도 했다.

《중세사회(La Société féodale)》는 블로크가 소르본 대학에서 경제사를 강의하던 시절, 앙리 페르가 기획한 ‘인류의 진보’ 총서의 일환으로 1939년에 저술한 것이다. 《중세사회》는 역사가로서 블로크의 명성과 지위를 확고하게 해준 책이었다. 블로크는 《중세사회》에서 중세사회를 그 자체로 고립시켜 파악하려는 입장을 배격하고 전체성 속에서 파악해야 할 하나의 사회형으로 설정했다.

 

중세사회 특징의 1번은 농민의 종속이다

블로크가 다룬 중세사회는 유럽의 중세사회, 특히 프랑스를 중심으로 하는 서유럽의 중세사회라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서유럽의 중세사회는 동양의 중세사회와 사회구조가 달랐다. 서유럽의 중세사회는 영주와 기사 등의 귀족층과 농민으로 구성된 평민층으로 이루어졌다. 영주는 기사에게 봉토를 주고 충성을 서약받았다. 농민들은 영주와 기사의 토지를 경작하고 소작료를 지불했다. 이렇게 구성된 서유럽 중세사회의 사회구조를 봉건제라고 한다.

블로크는 《중세사회》에서 사회사를 밑바탕에 깔면서 서유럽 중세사회의 종합적인 역사를 쓰려고 했다. 《중세사회》는 두 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1권에는 ‘인적 종속관계의 형성’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중세사회의 형성과 작동의 원리로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의존관계를 주로 다뤘다. 2권에는 ‘계급과 통치’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중세사회의 정치체제 문제를 주로 다뤘다.

중세사회에 대한 블로크의 관점이 집약적으로 드러나 있는 곳은 2권의 ‘사회형으로서 봉건제’다. 그곳에서 블로크는 서유럽 중세사회의 기본적 특징을 다음과 같이 썼다.

농민층의 종속, 일반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어 있던 봉급제 대신에 봉토 보유자가 널리 채택되고 있었던 점, 전문적 전사계급이 차지하고 있던 우월한 위치, 인간과 인간을 서로 결속시켜주던 복종과 보호의 유대관계, 권력의 세분화, 그리고 친족 집단과 국가의 존속. 국가는 계속 살아남아 중세시대 제2기에 새로운 활력을 되찾게 되었다.

서유럽 중세사회의 특징을 집약했다. 농민층은 영주에 종속되어 있었다. 영주의 토지에 매여 있었기 때문에 노예의 상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중세사회의 농민을 농노라 부르기도 한다. 영주는 기사가 충성하는 대가로 봉급이 아니라 봉토를 주었다. 기사는 영주에 매여 있었지만 농민보다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며 귀족층의 일원이 되었다. 이렇듯 서유럽 중세사회는 영주, 기사, 농민이 경제적 관계가 아니라 인격적 관계로 얽혀 있었다. 그래서 블로크는 ‘인간과 인간을 서로 결속시켜주던 복종과 보호의 유대관계’라고 했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농민층의 종속을 중세사회의 첫 번째 특징으로 들고 있다는 점이다. 즉 블로크는 하나의 사회를 파악할 때 농민과 같은 직접적인 생산자층의 상태를 가장 우선시했던 것이다.

그러면 서유럽의 중세 봉건제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일반적으로 게르만족에 의해 고대 로마가 붕괴하면서 나타났다고 한다. 그러나 블로크는 고대 로마의 사회구조와 게르만족의 사회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결합하지 못하고 폭력적으로 강제 결합한 결과 중세사회가 성립했다고 보았다. 이러한 강제 결합을 가져온 폭력을 블로크는 이슬람교도, 스칸디나비아인과 헝가리인의 침입에서 찾았다. 그래서 블로크는 중세사회가 로마제국의 붕괴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8, 9세기에 있었던 이민족의 침입에서 시작되었다고 보았다.

 

중세사회의 대하소설

블로크는 중세사회를 연구하면서 중세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사회적 요소의 상호작용을 중요시했다. 블로크는 이렇게 말했다.

특정한 거주 형태의 분포와 특정한 형태의 법률과 같이 전혀 다른 계열에 속하는 현상들을 병렬하는 경우에 원인과 결과라는 미묘한 문제가 제기되게 마련이다. 그런데 본질적으로 다른 두 계열의 현상을 수세기에 걸친 발전 과정에 비추어 비교해보면 ‘한쪽에는 모든 원인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모든 결과가 있다’고 말하는 것만큼 무의미한 이분법도 없을 것이다. 정신과 마찬가지로 사회도 끊임없는 상호작용의 조직이다.

블로크는 전체적인 인간관계의 망이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하는가를 살펴보고자 했다. 이 점이 블로크가 중세사회를 파악하면서 보여주는 하나의 특징이다. 블로크가 보여주는 또 다른 특징은 계약의 상호성을 매우 중시했다는 점이다. 블로크는 기사의 영주에 대한 충성, 영주의 국왕에 대한 충성이 봉건제 후기에 국가의 재건과 왕권의 강화에 강력한 이념적 도구로 작용했음을 지적한다. 또한 블로크는 봉건적 계약이 국왕이나 영주에게도 백성의 복지 도모라는 의무를 부여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 의무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을 경우 백성은 국왕이나 영주에게 저항할 권리가 있었다. 물론 이러한 블로크의 주장은 상당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중세사회》의 뛰어난 점은 블로크가 다양한 역사적 자료를 이용하여 중세 사람들의 삶을 생동감 있게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블로크는 서사시, 벽화, 기도문 등 중세시대의 정신적 소산들을 충분히 활용했다. 예를 들면 귀족층의 생활 세계와 감정 그리고 사고방식 등을 <롤랑의 노래>나 <엘시드의 노래>와 같은 정통적인 무훈 서사시를 이용하여 보여주었다. 정통 무훈 서사시만 이용한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반역자 무훈 서사시도 많이 활용했다.

뿐만 아니라 블로크는 무훈 서사시, 기사 이야기, 기사도의 전범 같은 문학 작품과 역사적 자료를 활용하여 영주와 기사의 관계나 봉토 수수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도 알려준다. 이를 위해 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현상적 측면이 아니라 당대인들의 의식구조 자체를 알려주는 자료로서 한다(??). 블로크는 문학 작품이 영주와 기사들의 사고방식, 행동거지를 규제하는 일종의 모범으로 작용함으로써 영주와 기사들의 집단적 자의식 형성에 크게 한몫했다고 보았다.

중세 사람들의 독특한 의식구조에 대한 블로크의 설명 역시 흥미롭다. 예를 들면 숫자 개념의 결여, 이로부터 야기되는 시간 개념의 결여,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두려움 등을 서술한 부분은 《중세사회》의 백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중세 사람들의 의식에 대한 부정적 언급은 근대인의 사고방식으로 중세인을 바라본 문제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중세사회》는 마치 중세 서유럽을 배경으로 하는 한 편의 빼어난 대하소설 같은 느낌을 주는 역사서다. 별다른 설명 없이 불쑥 들이미는 예화 하나하나는 중세인들이 살아가던 삶의 갖가지 모습을 생생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그러므로 《중세사회》는 중세 사람들의 삶의 총체성을 드러내주는 탁월한 작품이라고 할 것이다.

 

홍승기
인민노련 홍보부를 담당하면서 6월 항쟁을 현장에서 이끈 숨은 일꾼. 술만 사 준다면 지옥에도 함께 들어갈 천진무구한 청년이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