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시작] 홉스, 《리바이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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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왕에게 너무 많은 것을 위임했다
_ 홉스, 《리바이어던》

 

모든 거만한 것들의 왕

너는 낚시로 리바이어던을 낚을 수 있느냐? 그 혀를 끈으로 맬 수 있느냐? 코에 줄을 꿰고 턱을 갈고리로 꿸 수 있느냐? 그가 너에게 빌고 빌며 애처로운 소리로 애원할 성싶으냐? 너와 계약을 맺고 종신토록 너의 종이 될 듯싶으냐? …… 지상의 그 누가 그와 겨루랴. 생겨날 때부터 도무지 두려움을 모르는구나. 모든 권력자가 그 앞에서 쩔쩔매니, 모든 거만한 것들의 왕이 여기에 있다.

《구약성서》 <욥기> 40장 25~28절과 41장 25~26절의 구절이다. 야훼가 욥에게 신의 절대적 위력을 과시하면서 자신이 창조한 ‘리바이어던’이라는 바다 괴물의 위력을 묘사하는 대목이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는 이 구절에서 자신의 책 제목을 따왔다. ‘리바이어던’. 여기에서 리바이어던은 국가를 뜻한다. 절대적인 권력을 지닌 전제 국가. 홉스는 그런 국가를 성경에 나오는 ‘리바이어던’에 빗대었다. 따라서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국가론이다.

홉스는 프랑스 망명 시절에 《리바이어던》을 집필해 1651년 출간했다. 홉스는 영국 의회가 자신을 왕권옹호자로 몰아붙이며 처벌결의안을 통과시키자 프랑스로 망명했다. 프랑스에서도 홉스는 환영받지 못했다. 프랑스의 왕당파에게 미움을 샀기 때문이다. 그때 영국에서 크롬웰(Oliver Cromwell)이 등장했다. 홉스는 크롬웰의 공화국이 조국 영국에 평화와 안정을 되찾아주기를 바랐다. 여기에 홉스의 이중적인 입장이 있다. 왕권옹호와 새로운 국가체계에 대한 희망, 그 이질적인 열망이 《리바이어던》의 집필로 이어졌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리바이어던》 하면 등장하는 가장 유명한 말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다. 이 말은 일반적으로 이기심과 욕심으로 극단적인 경쟁을 벌이는 인간들의 모습을 비유하는 데도 인용된다. 홉스가 이 말을 썼던 이유는 국가가 성립하기 이전 상태인 자연 상태를 묘사하기 위해서였다.

홉스 사상의 핵심은 ‘사회계약설’이다. 사회계약설은 국가의 형성을 설명하는 것이다. 사회계약설에 의하면 국가는 사람들의 계약에 의해 형성된 것이고, 왕권은 신이 부여한 것이 아니라 계약에 의해 국민이 위임한 것이다. 그런데 홉스는 사회계약설을 주장하면서도 절대군주제를 강력히 옹호했다. 군주는 법의 규제를 받지 않으며, 그 누구도 군주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사람들이 자신의 권력을 위임한 이상, 그들에게 남는 것은 절대적인 복종과 순종뿐이다. 홉스는 말한다. “모든 사람이 자신들의 인격을 떠맡고 있는 그 인물에게 주권을 주었기 때문에 그를 폐위시킨다는 것은 그에게서 자신들의 것을 박탈하는 것이 되므로, 이는 정의가 아니다. 군주를 폐위시키려다가 군주에게 살해되거나 처벌받는 자는 스스로 자신의 처벌을 자초한 것이다.”

이렇듯 홉스는 주권재민의 사상을 가졌으면서도 강력한 전제군주론을 주장했다. 모순처럼 보이는 홉스의 사상을 이해하려면 이론적 배경과 당대의 정치 상황을 알아야 한다. 서양 역사에서 17~19세기는 ‘시민혁명의 시대’였다. 대표적인 시민혁명으로는 17세기 중반에서 말까지 영국에서 일어난 청교도혁명과 명예혁명, 1775년 영국의 식민 지배로부터 벗어나 민주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싸웠던 미국의 독립전쟁, 1789년 시작되어 19세기 후반까지 지속된 프랑스혁명 등이 있다. 시민혁명은 새롭게 사회의 주체 세력으로 등장한 시민계급이 이끌었다.

시민혁명에는 혁명적인 이념이 동반한다. 그러면 당시 시민혁명의 이념은 무엇이었을까? 주권재민론, 자유와 평등에 대한 이념, 법 앞에서의 평등 등이 새로운 시대를 떠받드는 이념이었다. 이런 이념들은 ‘자유주의’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었고 자유주의 이념의 핵심은 사회계약설이었다.

 

아비규환의 현장, 자연 상태

사회계약설을 주장한 대표적인 학자로는 홉스 이외에 로크와 루소가 있다. 세 사람은 당시 새롭게 등장하는 시민계급의 입장에서 시민계급의 정치적 권익을 옹호하고자 했다. 특히 로크와 루소의 주장은 이후 전개되는 시민혁명의 주요한 이념적 기둥이 되었다. 사회계약설의 핵심은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주권재민론이다. 주권재민론은 왕권신수설, 즉 ‘주권은 신이 왕에게 주었다’는 주장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었다.

사회계약설은 ‘자연 상태’라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처음 인간은 ‘자연 상태’에 있었다. 자연 상태란 ‘사회 상태’ 또는 ‘국가 속에서의 생활’과 반대되는 것으로, 인간이 최초로 생활한 상태를 가리킨다. 물론 사회계약설에서 말하는 자연 상태는 실제 존재했던 인간 사회의 형태가 아니다. 여기서 자연 상태란 사회계약설을 주장한 사람들이 실제 조사나 연구를 통해 밝혀낸 것이 아니라 논리적인 추론을 통해 상정한 것이었다.

홉스와 로크 그리고 루소가 사회계약설을 주장했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자연 상태를 달리 보았기 때문에 그들의 결론은 달라졌다. 홉스는 자연 상태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상태라고 보았다. 반면 로크는 자연 상태를 전쟁과 폭력이 난무하는 상태가 아니라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가 지켜진 평화로운 상태라고 생각했다. 루소는 로크보다 자연 상태를 더욱 평화롭고 행복한 상태로 상정했다.

홉스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일어나는 자연 상태를 그냥 두면 모든 인간이 죽어버릴 수 있으므로 사람들이 ‘계약’을 맺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홉스가 보기에 계약의 내용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모든 것을 주권자에게 위임하고 주권자에게 복종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홉스는 주권자의 권리를 막강하게 명시했다. 국민은 주권자의 지배를 벗어날 수 없고 주권자는 입법권, 사법권, 행정권을 마음대로 행사할 뿐만 아니라 언론 탄압의 권리까지 갖는다. 홉스는 주권자의 막강한 권한이 국민과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보았다.

또한 홉스는 국가를 주권체로 보았다. 홉스는 말한다. “정의하자면 국가는 다수의 사람들이 서로 상호계약으로 만들어낸 창조자다. 국가는 사람들의 평화와 공동 방위를 위해서 편리하다고 생각하는 대로 모든 사람들의 힘과 수단을 끝까지 사용할 수 있는 하나의 인격이다.” 국가는 계약에 따라 사람들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집행한다. 국가의 주된 목적은 내적으로 평화를 유지하고 외적의 침입을 막아내는 일이다. 홉스는 자연 상태가 전쟁과 투쟁의 아비규환이기 때문에 이를 막고 평화를 유지하려면 국가가 강력한 권력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목적에 가장 적합한 정치형태가 군주제다.

 

사회계약설의 선두 주자

로크의 주장은 홉스의 주장과 다르다. 로크는 자연 상태가 평화롭고 살 만하지만 불안하다고 보았다. 사람들의 생명과 재산을 유지하기 위해서 좀 더 안전한 장치가 필요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계약’을 맺었다. 계약의 결과 국가가 생겨났다. 로크에 따르면 국가의 주된 목적은 사람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는 것이다. 따라서 절대 권력이 필요하지 않다.

루소 역시 계약을 통해서 국가가 생겨났다고 말한다. 여기서 루소는 ‘일반의지(一般意志)’라는 개념을 등장시켰다. 일반의지란 사람들이 자신의 생명을 포함한 모든 권리를 위임하는 대상이다. 쉽게 말하면 모든 사람들의 행복과 복지를 위하는 보편적인 의지인 셈이다. 이런 일반의지, 보편적 의지의 구현체가 국가다. 때문에 루소는 국가가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 외에 경제적 평등을 이루는 데도 힘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통치자가 일반의지를 실현하지 못하고 국민을 억압한다면 물러나야 한다. 국민은 주권자를 몰아낼 수 없다는 홉스의 주장과 통치자가 일반의지를 실현하지 못하면 물러나야 한다는 루소의 주장은 정반대의 입장에 서 있는 셈이다.

홉스의 주장에는 문제점이 많다. 예를 들면 홉스가 전제군주론을 합리화하는 근거로 제시한 ‘자연 상태’에 대한 묘사는 별로 설득력이 없다. 왜 인간은 그렇게 서로 죽고 죽이는 상태여야만 하는가? 서로 협조하며 살아갈 가능성은 없는가? 이런 물음에 대해 홉스는 대답을 할 수가 없다. 다만 인간의 본성이 악해서 그렇다는 말밖에 하지 못한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반대의 주장도 얼마든지 성립할 수 있다. 특히 홉스가 관찰이 아니라 논리적 추론을 통해 주장을 내세운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가 있다.

홉스가 주장하는 전제군주론에도 문제가 있다. 홉스가 묘사한 자연 상태에 근거한 전제군주론은 지나친 논리적 비약이다. 군주가 반드시 만능의 권력을 소유해야 하는가, 군주의 권력을 합리적인 방법으로 많은 사람들이 공유함으로써 정치의 목적을 더 잘 수행할 수는 없을까? 이런 질문에 대해서도 홉스는 만족스러운 답변을 하지 못한다. 홉스 자신의 주관적인 주장만이 앞설 뿐이다.

그러나 홉스의 사상은 근대사회로 넘어오는 시기에 사회계약설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는 점에서 여전히 의의가 있다. 또한 인간의 본성에 대한 심도 깊은 분석과 이에 근거한 논리적인 유추와 추론으로 계약과 국가에 대해 분석한 것 역시 여전히 탁월하다. 이런 점들 때문에 홉스의 《리바이어던》이 지금도 여전히 가치 있는 책으로 읽히고 있다.

 

인민노련 홍보부를 담당하면서 6월 항쟁을 현장에서 이끈 숨은 일꾼. 술만 사 준다면 지옥에도 함께 들어갈 천진무구한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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