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한 은유적 상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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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한 은유적 상념:

[기업의 무한이익 추구는 선]인가? 과연 [정부는 보호자]인가?

 

나익주 (한겨레말글연구소)

*이 글은 ‘말과 글’ 2016년 여름호(제147호)에 실린 글입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로 인해 2016년 5월 현재 정부 집계로는 140여명이 죽었고 피해자단체 집계로는 220여명이 죽었다. 폐 손상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피해자들의 수는 훨씬 더 많다. 질병관리본부가 2011년 가습기살균제와 폐 손상 사이의 인과관계가 있다고 발표하고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참사에 대해 정부는 직접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며 방관자적 태도를 취해왔다. 피해자들의 고통에 공감하지 않는 정부의 이러한 태도에 많은 국민들이 분노하기 시작한 지난 5월에야 비로소 대통령은 가습기살균제 사태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피해자 구제를 지시했다.

많은 국민들이 보여주는 이 분노의 행동은 이 참사를 이해하고 있는 그들의 은유적인 사고에 근거한다. 은유는 단지 우리의 언어생활뿐만 아니라 우리의 사고와 이해, 행동 방식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 표현을 살펴보면 그들이 어떤 은유적 사고를 바탕으로 이렇게 분노하는지를 알 수 있다.

 

[가습기살균제는 살인자/침입자] 은유

미디어는 2011년 이후 이 참사를 꾸준히 보도해 왔으며, 올해 특히 더 많은 소식과 특집 기사나 방송을 내보냈다. (1)에 제시된 기사 제목에서 보듯이, 미디어는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보도할 때 [가습기살균제는 살인자/침입자] 은유를 예시하는 표현들을 자주 사용한다. 이 은유는 사람이 아닌 개체에 대한 넓고 다양한 경험을 인간의 동기나 특성, 활동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존재론적 은유의 한 유형인 의인화에 해당한다. 문자적으로는 사람이 아니라 유독성물질인 가습기살균제를 은유적으로 사람(살인자/침입자)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1)
a. ‘침묵의 살인자’ 받아 든 독일…우리 정부와는 달랐던 대처
독일 정부의 흡입독성 시험 요구에 시장 진출 포기한 옥시
b. 사람 죽이는 생활 용품: 가습기 살균제
c. 질병관리본부 초동조치 실패
d. 가습기 살균제로부터 왜 국민을 보호하지 못했나?

이러한 표현은 모두 가습기살균제를 외부에서 침입하여 선한 사람들에게 상해를 입해거나 그들을 죽이는 살인자로 묘사한다는 점에서 은유적이다. 기본적인 의미로 사용될 때, 명사 ‘살인자’는 살아 있는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악당을 지칭하고 동사구 ‘사람을 죽이다’는 그러한 행위를 지칭한다. 그리고 명사 ‘초동조치’는 기본적으로 어떤 재앙적인 사태(예: 전쟁, 범죄, 재난 등)가 발생했거나 그러한 사태의 발생이 예상될 때 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맨 먼저 취하는 대응 행동을 지칭한다. 기본적인 의미로 사용될 때, 동사 ‘보호하다’도 어떤 침입자(예: 외부의 흉악한 적이나 범죄자)로부터 선량한 사람들의 생명을 온전히 지키는 행위를 지칭한다. 그런데 (1a-d)에서는 이러한 표현―‘살인자’와 ‘사람을 죽이다’, ‘초동조치’, ‘보호하다’―이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선한 사람들이 당한 비극적인 피해를 묘사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 국민들이 가습기살균제를 어떤 명분도 없이 단지 자신의 이익을 얻기 위해 선한 사람들에게 신체적 해악을 끼치고 심지어는 그들의 생명을 빼앗는 살인자―특히 외부 침입자―로 인식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가는 가정] 은유: 왜 정부에도 분노하는가?

가습기살균제가 살인자나 침입자라면, 피해자들이 이 살인이나 침입을 사주한 사람들에 해당하는 제조회사에 분노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피해자들은 제조회사뿐만 아니라 정부에 대해서도 분노를 표출한다. 왜 그러할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러한 살인자나 침입자로부터 피해자들을 지켜야 할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와 관련이 있다. 초등 조치를 완벽히 하여 선량한 국민들의 생명을 안전하게 지켰어야 할 보호자는 누구인가? 피해를 입은 당사자 자신과 그의 가족인가, 아니면 정부인가? (1a)와 (1d)의 기사 제목은 우리나라 국민들이 이 살인적인 가습기살균제의 침입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것은 당연히 정부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단순히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보도하는 경우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국가를 은유적으로 가정이라 이해하고 국민들을 자녀들에 비유하며 정부나 정부의 수장을 자신들의 부모로 여기며 국가(정부)가 자신들을 보호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이러한 은유적 이해에서 고국은 집에, 국민은 형제자매에, 정부(나 정부의 수장)는 부모에 대응한다. 은유적으로 국가를 가정으로 이해한다고 할 때, 가습기살균제의 제조와 판매, 피해자 발생 과정에서 대한민국 정부는 가장으로서 자녀들인 국민들을 안전하게 보호해 왔는가?

 

[정부는 보호자] 은유 대 [정부는 방관자] 은유

이 참사와 관련해서 정부를 바라보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갈린다. 하나는 피해자들이나 피해자들에게 공감을 하는 일반국민 대다수의 이해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정부 관계자들의 이해 방식이다. 다음 (2)의 발화는 피해자들이 방송사 프로그램의 인터뷰에서 정부의 태도에 대해 분노를 터뜨리는 발화의 일부이다.

(2)
a. 사실 제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로서) 인터뷰도 많이 거부를 했었는데요. 할 때마다 그때 상황을 떠올려야 되고 …… 함께 (가습기살균제로부터) 아이를 지켜주지 못해서 …… 너무 답답하고 힘든데 …… 누구도 정부에서 미안하다 사과한다는 말 한마디 없었어요.

b. 정부에 물어보면 기업과 싸우라고 한다. 정부가 중재나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는 게 아니라 골치 아프니 피해자와 가해기업끼리 해결하라는 식이다.

c. ‘신중한 검토’란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신중함’이란 2가지가 있습니다. 내용과 시간입니다. 내용은 신중해야죠, 3년간 무엇을 했는데요? 기획재정부가 나라 예산 아끼자는 것 백번 인정해요. 저희 떼돈 벌려고 나온 것 아니에요. 저희 아파트 값 떨어진다고 나온 것 아니잖아요. 억울하게 죽었잖아요. 127명 …… 저렇게 귀여운 얘가 산소마스크 쓰고 가잖아요, 누가 팔자 고치재요? 제 딸 목숨 팔아서?

[국가는 가정] 은유에 따라 사고하고 행동하는 국민들은 당연히 정부를 자신들의 안전을 지켜주는 부모로 인식한다. 이러한 기대와 달리 피해자들은 자신들을 보호해야 할 부모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정부가 피해가 발생한 이후에도 여전히 자신들을 보호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국민들의 기대 속에서는 [정부는 보호자]인데 현실에서는 [정부는 방관자]로서 기대와 사실이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입장에서 피해자들은 가장으로서 자신이 보호해야 할 가정구성원이 아닌 것이다. 정부의 이러한 인식은 정부 관계자의 다음 발언을 보면 분명히 드러난다.

 

(3)
a.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는 제조업체와 개인 간의 문제로서 국가의 직접 개입은 부적절
b. 특별법 제정으로 인한 피해 및 구제까지 특별법으로 규율한 것은 국가의 과잉개입

(3)의 발화는 2013년에 발의된 ‘가습기 살균제의 흡입독성 화학물질에 의한 피해 구제에 관한 법률안’에 대해 기획재정부가 제시한 검토 의견의 일부이다. 이 의견에 피해자들의 지원 요청을 외면하고 한 발 물러서서 상황을 관망하고자 하는 국가(정부)의 입장은 명확히 드러나 있다. 정부의 이러한 태도는 부모로서 자녀(피해자)들을 보호해야 할 자신의 역할 수행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부가 [국가는 가정] 은유를 거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대신에 정부는 [국가는 사람] 은유에 따라 사고하고 행동하며, 국가도 단지 하나의 개인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취한다. 이 은유에 따르면, 국가는 가정이 아니고 단지 한 개인이므로 정부는 국민들을 가족구성원으로 갖는 부모일 수 없다. 따라서 정부는 (살인자로 개념화되는) 가습기살균제라는 독성물질을 제조한 (역시 사람으로 개념화되는) 기업이나 피해를 입은 당사자(의 식구)와 다른 제3자로서 방관자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다.

 

[결과는 원인을 대신함] 환유

피해자들이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한 회사들에게 책임을 묻는 근거는 [결과로 원인을 대신함]이라는 개념적 환유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폐 손상이 다른 원인이 아니라 독성물질인 가습기살균제의 사용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흥미롭게도 이 독성물질을 제조하여 판매한 기업(옥시, 애경, 세퓨, 홈플러스, 롯데마트, 이마트 등)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펼치는 주장도 역시 [결과로 원인을 대신함]이라는 환유적 추론에 근거한다. 또한 가습기살균제의 제조와 판매를 허용한 정부도 역시 자신에게 돌아오는 책임을 피하기 위해 이러한 환유적 추론을 제시한다.

(4)
a. 질병관리본부는 (2011년 8월 31일) 원인미폐 손상 발생 원인에 대한 중간조사 결과 가습기 살균제위험요인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b. 폐 질환과 가습기 살균제 간 인과관계가 아직 명확하지 않으며, 국가책임과 관련해서는 소송이 계속 진행 중인 상황임을 감안 시 법 제정은 시기상조 (2013년 민주당이 제출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구제 법안’에 대한기획재정부 검토 의견 )

c. ‘옥시 가습기 살균제와 폐질환 사이에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한국 정부의 주장은 잘못 (2014년 옥시 변호인단)

피해자들의 주장과 정부나 제조기업의 주장은 동일한 개념적 환유에 근거하고 있다. 하지만 이 두 집단 사이의 차이는 피해자들은 원인과 결과 사이에 명확한 관련성을 전제하여 주장을 펼치는 반면, (4)의 발췌 기사에서 보듯이 정부는 둘 사이의 관련성이 모호하다는 입장을 취하고 제조업체는 둘 사이의 관련성을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태도를 취한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가습기살균제를 가습기에 자신이 넣어서 어린 자녀가 죽었다고 절규하면서 적절한 보상과 치료비 지원을 주장하는 피해자들의 요구를 인과관계의 불명확을 이유로 외면하는 기업과 정부의 태도를 보면서 깊은 은유적 상념에 젖는다. [기업의 무한 이익추구]는 과연 [선]인가. 고통 받는 선량한 국민들의 아픔에 공감하지 않는 [정부]는 진정 우리가 원하는 [보호자]인가.

 

 

낮에는 영어 교사, 밤에는 언어학자로 살아온 두 얼굴의 사나이. ‘동고송’의 전신인 '고전을 공부하는 교사모임'의 창립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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